[미디어리뷰] 손자병법으로 을 읽다. – 이기는 전쟁을 만든 이순신, 지는 전쟁을 자초한 선조.

명량

<명량>을 봤다.
졸작이냐 수작이냐 논란을 빚는 영화와 달리, 이순신 자체에는 이견이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영화 내용 중 그 누구도 원치 않는 전쟁을 치뤄내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왕도, 동료장수도, 부하들도, 모두가 반대한 전쟁을 치르도록 하는 이순신의 모습에서 전율이 일었다.

이순신 장군의 그 모습에 ‘손자병법’의 구절이 겹쳐 보였다.
“… 군대를 이탈할 수 없는 곳에 투입하면 죽을지라도 싸움을 할 것이지 달아나지 않을 것이다. 죽으면 얻는 것이 없을 뿐이니 군사들은 힘을 다하여 싸운다.“ <손자병법, 구지편 4>

사실, 이 구절 외에도 임진왜란은 손자병법으로 곱씹어볼 구석이 많다.

1. 장수가 능하고 군주가 견제하지 않으면 승리한다. <모공편, 5>

임진왜란은 이순신을 영웅으로 만들었지만, 동시에 이순신을 죄인으로 만들었다. 한 가지 요인만으로 설명하기 어렵겠으나, 이순신을 시기하고 질투하는 세력이 있었고 선조 역시 이순신을 고까워했던 탓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장수가 능하면 민심은 그 장수를 향하게 마련. 이순신의 경우, 당시 선조를 향한 민심은 땅에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선조는 이순신을 견제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라 추측한다.
이로 인해 안 그래도 힘든 싸움이 더 힘들어지는 참극이 일어났다.

2. 군이 물러서서는 안 되는 것을 알지 못 하면서 퇴각을 명령한다. 이것은 군을 속박하는 것이다. <모공편 4>

선조는 “배가 12척밖에 없으니 권율과 합쳐 육군에 합류하라”는 명을 내린다.
얼핏 합리적인 명령인 것처럼 보이나 전투를 해야 한다는 확신을 가지고 전투를 준비하고 있던 장수에게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명이었을 것이다. 이미 사기가 떨어진 부하들은 더 짙은 패배감에 휩싸였을 것이며, 이순신의 명을 듣지 않아도 될 명분을 가지게 된 셈이 됐을 것이기 때문이다.

3. 사지(死地)에서는 싸워야 한다. <구지편 1>

이순신 장군이 병사들을 전투로 이끌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있는 곳을 사지(死地)로 만들고 나서였다.

손자병법에 따르면 전투의 장소는 9개로 구분할 수 있다. 국내에서 전투하는 경우, 적국이지만 아직 깊이 들어가지 않은 경우, 제3국들과의 이해관계가 중첩되는 경우 등이다. 사지는 앞에 강적이 있고 뒤로 퇴각할 수도 없는 경우다. 사지에서 전투할 때 선택지는 하나뿐이다. 싸워 승리하는 것 이외에 다른 방법은 없다.

“아직도 살고자 하는 자가 있다니 통탄을 금치 못 하겠다.” 이순신은 군사들이 살던 곳을 불태우고 말했다. “도망가는 것이 사는 길인 줄 아느냐”라고도 했다. 탈영이 줄을 잇던 곳이었던 명량은, 사지로 변했다. 정확히는, 이순신이 명량을 사지로 만들었다.

4. 윗사람과 아랫사람이 하고자 하는 것이 같으면 승리한다. <모공편, 5>

사지가 된 다음부터 병사와 장수의 목표는 같아졌다. 승진도 아니었고 탈출도 아니었다. 싸워서 이기는 것. 그것만이 그들의 목표였다.

5. 막지 못 하는 곳을 공격하라. <허실편 2>

“공격하면 반드시 취하게 되는 것은 지키지 않는 곳을 공격하기 때문이다. 수비함이 반드시 견고한 것은 공격할 수 없는 곳을 지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공격을 잘 하는 사람은 적이 그 수비할 곳을 보르게 하고 수비를 잘 하는 사람은 적이 그 공격할 곳을 모르게 하는 것이다.” <허실편 2>

영화에는 조금 다르게 그려졌으나, 사실 명량대첩에서 왜군과 조선군의 근접전은 없었다. 아무리 뛰어난 군사라고 한들 직접 칼을 들고 싸우는 전투에서 몇십 배에 달하는 적을 이기는 것은 불가능하다.
명량대첩에서 조선군이 이길 수 있었던 것은 전략에 있었다. ‘막지 못 하는 곳을 공격하는 것.’ 이것이 승리의 비법이었다. 울돌목의 회오리물결에 맥을 못 추는 왜군의 배를 화포로 공격한 것이다. 울돌목에서 화포를 막을 수 있는 곳은 존재하지 않았다. 조선군은 막지 못 하는 곳을 공격한 것이다. 승리는 예견되어 있었다.

김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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