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태영의 글쓰기 심화를 위한 노트 23] 결말이 알려진 이야기는 과정을 묘사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얼마 전 영화 ‘명량’이 큰 인기를 얻었다.
역사물은 다른 주제에 비해 한계가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결론을 알고 있다는 점이다.
이순신 장군이 명량해전에서 대승을 거둔다는 것,
나중에 노량해전에서 전사한다는 사실도 안다.
결론이 알려져 있는 만큼 다른 방식으로
관객들이 긴장의 끈을 놓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면에서 갈등이나 흥미를 제공할 요소를 찾아야 한다.
과거의 인물을 다룬 역사소설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인물의 후일담을 잘 알고 있다.
스토리만 갖고는 긴장감을 줄 수 없다.
창의성이 필요한 대목이다.
그 반대의 측면도 고려해야 한다.
이미 알려진 이야기들을 새삼스레 길게 묘사할 필요는 없다.
새로운 이야기가 특별히 없다면
최대한 압축해서 전달하는 게 좋다.
다음은 <기록>의 마지막 꼭지, 마지막 대목이다.
대통령이 사저를 떠나는 모습이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기 때문에
최대한으로 압축하여 묘사했다.

그날 보석으로 풀려날 것으로 기대했던 강금원 회장은 끝내 풀려나지 못했다. 보석심리는 최종결정이 다시 연기되었다. 시간은 운명의 주말을 향해 가고 있었다. 어느 날 저녁, 그는 사저를 찾아온 이웃의 친구인 이재우와 술 한 잔을 나누었다. 그는 힘겨움을 토로했다. 자신에게 들이닥친,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심적 고통에서 비롯된 힘겨움이 아니었다. 자신 때문에 주변 사람들이 겪고 있을 고통을 헤아리는 데서 비롯된 힘겨움이었다. 그는 언제나, 자신을 만나지 않았다면 그들에게 지금과 같은 고통이 들이닥치지 않았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의 머릿속에서 모든 불행의 시작은 자신에게 있었다. 그는 그렇게 스스로를 원죄의 굴레 속에 가두어두고 있었다. 낮에 담배를 얻어 피울 요량으로 들렀던 비서실에서 한참동안 비서들이 일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그의 마음도 그러한 생각의 연장선 위에 있었다. 그의 귀향을 계기로 서울에서 봉하마을로 주거를 옮긴 비서진들이었다. 그리고 5월 23일 토요일 새벽.

침실과 붙어있는 내실 공간의 북쪽 한 귀퉁이에 자리한 컴퓨터에서 그는 글을 남기고 있었다. 창 바깥의 마당에는 홍매화의 잎이 어느 새 무성해져 있었지만 이 봄은 그에게 그것을 쳐다볼 겨를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마지막 남길 글을 바탕화면에 저장한 그는 내실을 나섰다. 문이 유난스레 큰 소리를 내며 닫혔다. 그는 경호팀에 인터폰을 했다.

검찰에 출두하던 날 이후 오랜만에 나서보는 대문이었다. 바깥에서 기다리고 있던 경호관이 꾸벅 인사를 했다. 그는 앞장서서 걷기 시작했다. 담장 아래를 따라 듬성듬성 잡초가 자라나 있었다. 그는 잠시 웅크리고 앉아 풀을 뽑았다. 농부가 되어버린 노무현의 본능이었을까? 아니면 마지막 떠나는 길에 불현듯 뜨거워지는 눈시울을 감추기 위한 것이었을까? 다시 일어선 그는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을 길을 따라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가 사랑했던 사람들, 그를 사랑했던 사람들, 그리고 그가 사랑했던 나라가 그의 발걸음을 지켜보며 슬픈 모습으로 남아있었다.

윤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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