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리뷰] 드라마 을 바라보는 취준생의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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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미생>이 화제다.

웹툰 <미생>이 대박 난 전력이 있으니 당연한 거 아니냐고 할 사람도 있겠으나 tvN드라마 <미생>의 조짐은 그것 이상이다. 다음에서 웹드라마로 먼저 제작된 바 있었으나 소리 소문 없이 묻혔던 전력을 생각해보면, 드라마 <미생>은 단순히 웹툰 <미생>에 얹혀 가는 드라마는 아니다.
나만 이렇게 느끼는 건 아닌 것 같다. 취준생(취업준비생) 게시판에서도 미생의 인기를 심심치 않게 느낄 수 있다. 별 거 없는 인턴(나부랭이)인 주인공 ‘장그래’와 다를 바 없는 취준생들 입장에서 <미생>의 현실이 더 뼈아프게 느껴졌을 것이다.
그래서 써보려고 한다. 취준생이 <미생>을 보는 시선을.

1. 노력이란, 남들도 다 할 수 있는 것.

장그래는 할 줄 아는 외국어도, 학벌도, 스펙도 뭣도 없는 ‘요새 보기 드문’ 청년이다. 컴퓨터활용능력자격증 2급이 있다고 하지만, 그건 냉면에 얹어진 배 같은 존재다. 냉면이나 육수가 준비된 다음에야, ‘있으면 좋고, 없으면 할 수 없는’ 성격의 것이지, 그것만 가지고 배를 채울 수는 없다.

그래서 장그래에게 남은 것은 ‘노력’ 뿐이다.

장그래는 생각한다.
‘나의 무엇. 내게 남은 단 하나의 무엇.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무엇.’이 무엇인지에 대해.

그리고 답한다.
“노력이요,
전 지금까지 제 노력을 쓰지 않았으니까, 제 노력은 쌔빠진 신상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노력’은 변별력이 없다는 거다. 남들도 다 하는 게 노력이다. 그래서 장그래도 덧붙인다.

“제 노력은 다릅니다. 질이요. 양도요.”

청년실업 100만의 시대에, ‘뽑아만 주신다면 제 한 몸 바쳐’ 일할 각오가 되어 있는 ‘고스펙자들’도 쌔고 쌨다. 그 가운데 장그래는 어떤 노력을 할 수 있을 것인가.
나는 여기서 아득함을 느꼈다.

2. 최선의 노력이 부정될 때.

장그래가 처음으로 ‘남들과 다른’ 노력을 선보일 수 있었던 기회는 파일을 정리하는 일이었다.
장그래는 스스로 밝히지는 않았지만 바둑을 두던 전력이 있는데, 결국 실패로 끝난 그 경험이 파일을 정리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기뻐한다. 장그래가 공언한 것처럼 ‘질이 다른’ 노력을 보여줄 수 있게 됐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기존에 만들어져 있는 폴더트리가 모든 파일을 포괄하지 못 한다는 문제점을 발견하고, 장그래는 폴더트리 전체를 다시 만든다.

그리고는 과장에게 의기양양하게 말한다.
“기존 폴더트리로는 애매한 파일이 있어서 다시 만들어봤습니다. 이렇게 하면 될까요?”

과장은 말한다.
“아니.”
“너 친구 없지? 혼자 쓰는 일기 보는 느낌이다.”

그리고 장그래의 옆을 스쳐지나가며 덧붙인다.
“크게 기대한 건 아니었어.”

최선을 다하지 않았을 때 부정적인 평가를 듣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다음에 더 열심히 하면 되지. 라고 생각하면 되니까. 개선의 여지가 있으니까.
그런데 최선을 다했을 때, “크게 기대한 건 아니었어”라는 말을 듣는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아무리 생각해도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더 잘 할 수가 없는데 그 결과물이 멸시받는다면, 그는 쓸모없는 인간이 될 수밖에는 없다.

나는 이 장면이 참 슬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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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질로 승부 볼 수 없다면, 남은 것은 양밖에는 없다.

장그래는 자신이 만든 ‘폴더트리’가 거부당하자 ‘질적으로 다른 노력’을 보여줄 수 없다고 체념한 듯 보이기도 했다. 그 대신 남들과 ‘양적으로 다른 노력’을 선보인다. 그 중 하나는 오징어젓갈이 담긴 드럼통 수십 개를 일일이 뒤져 꼴뚜기를 찾아낸 것이다. 다른 인턴들이 불평할 때 장그래는 불평 한 마디 없이, 어머니가 사주신 새 양복을 입고 오징어젓갈에 손을 담근다.

장그래의 ‘양적인 노력’을 보여준 장면은 또 있다. 오징어젓갈범벅이 된 장그래는 과장 및 인턴들과의 술자리를 뒤로 하고 회사로 향한다. 앞서 멸시받은 폴더트리를 고쳐놓기 위해서다. 만신창이가 된 그래의 몰골을 본 과장은 만류하지만 그래는 말한다.

“잘못 해놨으니까 다시 해두겠습니다.
아닙니다. 내일 출근하시면 보실 수 있도록 해놓겠습니다.”

양적인 노력은 다른 인턴들의 무시를 받았고 (“그렇게 계속 열심히‘만’ 하세요~ㅋㅋ”)
과장의 동정을 받았지만 (야, 그거 내일 해도 돼.)
그것밖에 남지 않은 사람에게는 필사적인 무기인 것이다.

4. 저건 별로다 싶은 면이 없는 건 아니다.

장그래에 이입한 덕분에 울고 웃으며 드라마를 봤지만, 모든 부분이 다 좋았던 것은 아니다.
청소년드라마에 나오는 학교가 내가 다닌 학교와 다른 것처럼 <미생>에 나온 회사의 모습과 <미생>에 나온 인턴들의 행동은 실제 상황과는 거리가 있어 보였다.
능력자 인턴인 안영이는 극중 상대회사의 CEO를 설득해 계약을 성사시키는데 8할의 공헌을 한다. 그러나 실제 회사에서 인턴은 그럴 역량이 있는지 여부는 둘째 치더라도 그럴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 제3, 제4 외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직원들도 저렇게 많을 리 없다. 장그래를 티나게 ‘왕따시키는’ 행위도 진짜 회사였다면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나중에 인사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니까. 아니꼬운 동료가 있다면 무시하면 그뿐이다.

5. 장그래도 되지 못한 자

장그래는 흡사 패배자처럼 나오지만, 곰곰이 훑어보면 우월하다.
첫째, 회사 인턴에 넣어줄 만큼 소위 ‘빽’이 있고, 둘째, 어마어마하게 잘생겼으며, 셋째, 직업용어사전을 나흘 만에 통째로 외워버릴 만큼 머리가 좋다.

그래서 다시 나를 돌아보게 되는 것이다.
장그래에 감정이입을 해야 하는가, 혹은 부러워해야 하는 것은 아닌가?

김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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