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채홍의 디자인커뮤니케이션 32] 책을 사랑한다면 책 수리 기술을 익히자

1. 가자, 동네 서점으로.

지난주 주요 인터넷 서점 서버가 마비되는 북새통 속에 나도 있었다. 모바일 주문이 안 돼 이상했다. 아내가 부탁한 책을 어찌어찌 주문하고 나서야 다음날이 새로운 도서정가제를 시행하는 날이라는 것을 알았다. ‘앞으로 읽어야 하거나, 읽을 가능성이 높은’ 양서를 장바구니에 급히 채워 넣는 동료를 보고 맘이 흔들렸으나, 결제로 넘어가지 않는 대답 없는 화면을 쳐다보곤 포기했다. 그리곤 저녁에 홍대 앞 동네서점 ‘땡스북스’에 갔다. 디자이너가 좋아하는 책들이 잘 선별되어 있어서 가끔 들르는 곳이다. 역시나 인터넷 서점·대형 오프라인 서점에서 쉬 발견할 수 없는 책들이 군데군데 놓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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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릿느릿 배다리씨와 헌책 수리법”
이날 나를 사로잡은 책이다. 찢어지고, 벌어지고, 책등이 분리된 경우까지 책 수리하는 법을 모은 책.

1) 상태를 보자. 오래된 책에 낙장이 생겼다. 내 마음까지 낙장된 기분이다.
2) 목공용 풀을 면봉에 묻혀 소량 발라준다. 많은 양을 바르면 추후 다른 페이지의 책장이 벌어지니 주의하자.
3) 무거운 책으로 눌러 하루 정도 둔다.
4) 낙장이 생긴 페이지를 살펴보면 잘 붙은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완전히 벌어지지 않는 단점이 있다. 그렇다고 배다리씨를 원망하진 말자.
(45~47쪽, ‘떨어져 나간 책장 수리 – 오래된 책 수리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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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과 함께 간추린 수리 과정이 꼼꼼하다. 헌책에 생긴 낙장과 새책에 생긴 낙장 수리법이 다르다. ‘찢어진 책장 수리’ 편도 종이가 두꺼운 책과 얇은 책으로 나누어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책장이 조금 찢어졌을 때 무심코 스카치테이프를 붙이기보다는 이 책을 따라 조금만 공을 들이면 거의 감쪽같이 고칠 수 있을 것 같다.

2. 헌책에 대한 애정을 듬뿍 담은 디자인

책 디자인을 한번 살펴보자. “느릿느릿 배다리씨와 헌책 수리법”은 124쪽 분량에 크기도 아주 작다. 한 손에 쏙 들어오는 귀여운 매뉴얼 북이다. 수리의 핵심을 잘 간추린 덕분에 레이아웃이 간결하고 지면 여백이 넉넉해서 보기에 편하다. 모든 글자와 사진을 가운데 정렬로 맞춰 시선을 책의 가운데로 모았다. 고전적인 느낌이다. 어쩐지 선비처럼 정좌하고 경건하게 책 수리에 임해야 할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그러나 너무 긴장하지는 말자. 수리법을 일러주는 말투가 재밌고 친근해서 따라가기에 부담이 없다. 수리법 중간에 쉬어가는 페이지로 나오는 헌책방의 요정 ‘배다리씨’ 인터뷰도 정답다. 이 책의 탄생 배경과 훈훈한 책 사랑을 친근한 캐릭터의 입을 빌려 독자에게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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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본은 책 수리법을 알려주는 책이 튼튼하지 않으면 곤란하므로 실로 맸다(사철). 책이 쫙쫙 펼쳐진다. 책 수리할 때 옆에 펼쳐놓기 좋다. 분홍색 색지에 짙은 파란색 한 가지만으로 인쇄해서 의도적으로 옛날 인쇄물 느낌을 냈다. 본문에 쓴 두꺼운 명조와 고딕 조합의 글자체 또한 옛날 느낌을 더해준다. 실매기 제본 뒤에 하드 커버를 붙이지 않고 그대로 마감해버렸다. 두툼한 커버가 사라지고 책 등에 그대로 드러난 실 꿰맨 자국·풀 자국은 수공예적 냄새를 강하게 풍긴다. 표지가 사라진 느낌을 하얀색 종이를 감싸서 보완했다. 헌책 수리법를 알려주는 이 책은 새책이지만, 헌책에 대한 애정을 담으려 애쓴 디자인이다.

3. 책의 생로병사

나는 책 디자인을 한동안 해온 터라 언제나 새 책을 만드는 생산현장에 있었다. 책의 생로병사 주기 안에 ‘생’에만 집중했다. “느릿느릿 배다리씨와 헌책 수리법”을 만든 이들은 ‘로병사’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다. 책 만든 품새를 보며 만든 이들을 짐작해보는 것도 책을 즐기는 방법 가운데 하나다. 이들이 수리를 위해 고른 책은 나름 한 시대의 위엄을 가지고 있는 책들이다. “종이접기2”, “이것은 미술이 아니다”, “퐁네프의 연인들”, “기형도 전집”, “멋지다! 마사루” 등. 풀을 바르고 무거운 책으로 눌러 말릴 때는 언제나 육중한 “세계철학사”를 썼다. 고른 책들만으로도 뭔가 여러 가지 얘기를 상상해볼 수 있다. 문득 책장 속의 옛 책들을 꺼내보고 싶은 마음이 든다.

아끼는 책, 오래 간직하고 싶은 책이 다쳤을 때 애틋한 마음으로 어루만지고자 하는 사람에게 이 책을 권한다.
당신의 책장이 오래된 책으로 오래도록 아름답길 바라며.

서채홍

*작은 서점들에서 판다. 유어마인드, 땡스북스, 스토리지북앤필름, 더북소사이어티, 헬로인디북스 등등. 알라딘에서도 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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