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채홍의 디자인커뮤니케이션 33] 소화전·소화기 안내 사인 다시 보기 – 안전을 위한 디자인적 고려가 필요하다.

1. 은색 바탕에 금색 글자는 잘 안 보인다

혹시 지하철이나 공공장소에서 ‘소화전’과 ‘소화기’ 표시를 눈여겨 본적이 있습니까?
예외 없이 은색의 스테인리스 재질 위에 ‘소화전’, ‘소화기’라는 글자가 금색의 금속재질로 돌출되어 있습니다. 일단 은색과 금색 대비가 약해서 눈에 잘 띄지 않습니다. 그렇다 보니 눈에 띄게 하려면 별도의 장치가 더 필요합니다. ‘소화기’함 위에 별도로 빨간색 강조 표시를 만들어 붙인 곳이 많습니다. 지하철 숙대입구역 소화전은 스테인리스 재질 위에 흰색을 덧대어 글자가 더 잘 보이도록 애쓴 흔적이 있습니다. 아주 예외적인 경우입니다.

소화전안국역s

소화전숙대입구s

2. 흘려 쓴 궁서체는 과연…

소화기·소화전 글자체는 ‘궁서체’인데요. 자세히 보면 초성·중성·종성이 분리되지 않도록 한 글자로 흘려 썼습니다. 제작공정에서 글자를 붙일 때 삐뚤빼뚤하지 않고 간편하게 붙이려고 흘려 쓴 것입니다.

궁서체는 조선 시대 상궁들이 붓으로 널리 쓰던 손글씨체입니다. 두꺼운 붓의 느낌 때문에 고풍스러운 느낌이 역시 강합니다. 요즘엔 B급 대중문화의 ‘키치’적 감수성을 전달하려고 할 때 많이 활용합니다. 소화기·소화전과 같은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는 장치에 쓰기엔 좀 어색한 폰트라 생각합니다.

3. 악조건에서도 잘 보이는 글자

안전이 중요한 공공장소에의 글자꼴은 악조건에서도 충분히 잘 알아볼 수 있는 게 중요합니다. 폰트 디자이너 고바야시 아키라는 “폰트의 비밀”이라는 책에서 많이 쓰는 글자꼴 세 가지를 흐릿하게 만들어 ‘식별성’의 차이를 보여줍니다(158-159쪽). 악치덴츠 그로테스크, 헬베티카, 프루티거 세 가지 폰트입니다. 같은 고딕 계열(산세리프체)이지만, 그림에서 보듯 프루티거는 많이 흐려져도 식별할 수 있습니다. 곡선의 모양과 글자 가운데 공간의 차이가 선명함의 차이를 만듭니다. 인천공항의 안내 사인 영문 글자체가 프루티거입니다.

폰트의비밀s

얼마 전 일본에 갔다가 본 소화기·소화전은 빨강 바탕에 흰색 글자(고딕 계열)이거나, 흰 바탕에 빨강 글자여서 눈에 잘 띄었습니다. 우리나라도 안전을 고려해 소화기·소화전의 색 대비와 글자꼴 선택에 좀 더 신경 써야 하지 않을까요?

소화전후쿠오카지하철s

서채홍

참조: 고바야시 아키라, “폰트의 비밀”, 이후린 옮김, 예경, 2013
한국타이포그라피학회 지음, “타이포그래피 사전”, 안그라픽스,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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