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페인 100장면] 카이사르의 Imperator 캠페인

<캠페인 100장면>을 시작하며

특정한 목적을 가지고 대중/집단을 상대로 벌이는 설득과 선전, 동원 등의 전략 및 활동 일체를 가리키는 ‘캠페인(campaign)’은 오랜 역사를 통해 무수히 많은 캠페이너들에 의해 전개되어 왔습니다.

피크15는 캠페인의 황제 카이사르부터 미국을 뜨겁게 달구는 힐러리의 캠페인에 이르기까지 탁월한 캠페인 사례를 찾아 소개하는 시리즈를 기획했습니다. 이를 통해 인류 역사에서 창조적 리더십과 대중의 관계를 되짚어 보는 기회가 되길 기대합니다.


Gaius Julius Caesar

Gaius Julius Caesar, BC 100. ~ BC 44. 고대 로마 정치가

1.

앞선 병사들은 흥에 취한 듯 외쳤다.

“시민들이여, 마누라를 숨기시오. 대머리 난봉꾼이 지나간다오.  그대 마누라들이 카이사르에게 바친 돈은 전부 갈리아 창부들의 주머니로 들어갔다오.”

 병사들의 조롱소리가 울려퍼지자 4마리 말이 이끄는 마차를 탄 붉은 망토의 사나이는 겸연쩍은 미소를 지으며 군중에게 손을 흔들었다. 뒤이은 수레에는 전쟁터에서 획득한 진귀한 보석들이 실려 있었고 그 뒤를 전쟁 노예들이 따르고 있었다. 이날 로마 시민의 최대 관심사는 전쟁 포로로 잡은 갈리아의 장수 베르킨게토릭스였다. 카이사르는 개선식에 베르킨게토릭스를 전시하기 위해 3년이나 그를 살려두었다. 거리의 시민들은 환호했고 카이사르는 만족스러웠다. 갈리아 정복 전쟁을 성공적으로 수행했고, 로마의 내전을 진압한 후 이제 마침내 카이사르는 벼르던 개선 행진을 시작했다. 최고급 의상과 우아한 마차, 사열하는 군인들과 화려한 볼거리 등이 어우러져 시민들을 마치 ‘살아있는 신’을 보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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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붉은 도포를 입은 카이사르가 갈리아 민족의 지도자 베르킨게토릭스의 항복을 받는 모습. 베르킨게토릭스는 개선행진 때 로마시민에게 포로로 공개된 후 처형되었다

(화려한 붉은 도포를 입은 카이사르가 갈리아 민족의 지도자 베르킨게토릭스의 항복을 받는 모습. 베르킨게토릭스는 개선행진 때 로마시민에게 포로로 공개된 후 처형되었다)

2.

카이사르의 개선행진은 Imperator 카이사르의 정점이었다. 영어 ‘emperor’의 어원이 되는 라틴어 ‘Imperator(임페라토르)’는 황제라는 의미 이전에 명예로운고급 군인, 전쟁에서 승리한 개선 장군을 가리키는 명칭이었다. 임페라토르가 되어 개선행진을 한다는 것은 카이사르뿐 아니라 고대 로마의 위대한 장군들이라면 일생의 영예로운 자리였다. 이는 또한 로마 시민들에게도 많은 볼거리를 제공하는 축제였는데  ‘대머리 난봉꾼’이라는 부하 병사들의 놀림도 퍼레이드에 필수적인 유머 요소였다.

3.

카이사르에게 개선행진이 중요했던 이유는 개인의 영광뿐 아니라 대중의 지지를 최종적으로 확인받기 위한 측면이 있었다. 쿠테타를 일으켜 권력을 얻은 카이사르에게 시민들에게 공개적으로 인정받는 대중 행사가 마지막 관문이었다. 카이사르는 유서깊은 귀족 출신이었으나 그의 집안은 지배 권력에서는 멀리 떨어져 있었다. 원로원의 배타성과 폐쇄성은 강력했고 특히 세력을 확장하는 카이사를 견제했다. 카이사르는 타고난 신분으로 불가능했던 영역을 군사력과 대중의 지지를 통해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한편으로는 자신에게 철저히 충성하는 군대를 키웠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대중의 명성을 얻고자 노력했다.

4.

대중에게 자신에 대한 이미지를 형성하고 이를 널리 알리는데 성공했다는 점에서 카이사르는 대단히 훌륭한 캠페이너였다. 기본적으로 뛰어난 언어 감각을 가졌기 때문에 연설을 통해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는데 능수능란했다. 미남은 아니었지만 치장을 통한 이미지의 중요성도 잘 알았기 때문에 옷과 장식으로 자신을 꾸미는 데 있어 젊어서부터 돈을 아끼지 않았다. 또한 막대한 비용이 소요되는 화려한 개선식과 로마 시민에 대한 보너스 지급, 화려한 연회 등을 아낌없이 베풀어 로마시민들의 인기를 얻었다. 카이사르는 동전에 자신의 얼굴을 새겨 넣어 널리 자신을 알린 최초의 인물이기도 하다. 이미지의 중요성, 대중 설득 커뮤니케이션, 파퓰리즘, 전쟁 영웅 서사, 감정적 선동 등 그가 보여준 완벽한 모습은 후대에 계속적으로 변형되면서 현대적 대중 정치 캠페인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카이사르는 ‘캠페인의 황제’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이미지 캠페인의 정점이라고 할 수 있는 imperator의 행진은 이후 수많은 로마 황제들과 정치 지도자의 전승 세리모니로 이어졌다. 히틀러도 로마 시대의 개선행진을 모티브로 삼아 1934년 나치당의 뉘른베르크 전당대회를 치른것으로 알려졌다.

1-Caesar3

(카이사르의 얼굴이 새겨진 로마 동전. 로마에서 최초로 주화에 자신의 얼굴을 그려 홍보했다.)

김성은 (캠페인 컨설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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