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페인 100장면] 아우구스투스의 카이사르 신격화 캠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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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gustus, BC63. ~ AD14. 고대 로마 초대 황제(BC27~AD14 재임)

1.

기원전 44년 3월 15일 카이사르는 갑자스레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권력을 원로원으로 되돌려놓으려 했던 공화파들은 카이사르 암살하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권력을 되찾는 데에는 실패했다. 어렵사리 내전을 끝낸 카이사르가 사라지고 나자 또다시 피의 숙청이 시작되었을 뿐이었다. 가장 유력한 차기 권력자는 로마의 전설적인 명장 안토니우스였다. 하지만 최종적으로 로마의 황제가 된 것은 그 당시 알려지지 않았던 19살의 병약한 청년 옥타비아누스, 훗날 명칭 임페라토르 율리우스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이다.

2. 옥타비아누스는 원래 가이우스 옥타비우스 투리누스라는 이름의 평민계급 출신 소년이었다. 혈육이 없던 카이사르에 어린 시절 입양되었고 유언장에서 카이사르의 유일한 후계자로 지목된 것이 그의 전부였다. 양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재산과 귀족 지위는 모두 큰 도움이 되었지만, 카이사르의 유산 중 가장 값진 것은 바로 ‘카이사르’라는 이름 그 자체였다. 카이사르의 진정한 후계자임을 보증하는 이 이름은 평생에 걸쳐 옥타비아누스의 가장 중요한 정치적 자산으로 기능한다. 자신의 이름으로 충분히 권력을 유지할 수 있을 때까지 ‘카이사르’는 라이벌들로부터 그를 지켜주는 갑옷이었고, 대중의 존경을 이끌어 내는 왕관과 같았다. 옥타비아누스가 장례 때 카이사르 재산의 일부를 로마 시민들에게 나눠준 것도 카이사르의 명성을 드높이며, 동시에 후계자인 자신을 홍보할 수 있는 좋은 기회로 활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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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구스투스도 동전에 자신의 얼굴과 함께 뒷면엔 ‘Divus Julius(율리우스 신)’이라고 새겨 넣었다.

3. 무엇보다 카이사르 브랜딩의 정점은 카이사르 신격화 작업이었다. 카이사르도 생전에 율리우스 가문이 비너스의 후손임을 강조하며 신성한 혈통을 자랑했었다. 자신과 비너스와의 연계를 과시하기 위해 비너스를 자신의 수호신으로 삼아 비너스 신전을 지어 바치기도 했다. 카이사르 사후 옥타비아누스는 카이사르 신격화 작업에 착수한다. 카이사르가 암살된 지 2년 후 옥타비아누스의 주장에 따라 원로원은 카이사르를 신으로 추대하기로 결정하고, 이로써 ‘Divus Julius(Divine Julius, 율리우스 신)’가 탄생한다. 옥타비아누스의 이런 노력은 양아버지에 대한 추모와 존경, 그리고 법적, 사회적 의무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로 인해 자신도 ‘Divi filius(son of the divinity, 신의 아들)’이 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후부터 옥타비아누스는 스스로를 ‘신의 아들’이라고 칭했고 이 문구는 자신의 얼굴과 함께 동전에도 새겨 널리 알렸다. 그리고 기원전 29년 악티움 해전에서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를 물리친 후 돌아와 카이사르의 신전을 건립하고 며칠간의 축제를 벌인다. 안토니우스와의 오랜 전쟁을 끝내고 돌아와 수행한 카이사르 신전 건립과 축제는 아우구스투스가 로마 권력의 정점으로 우뚝 솟아있는 자신의 지위를 확인하는 최종 의례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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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성된 율리우스 신전의 모습(현재는 터전만 남아 있음)

4. 한편, 카이사르라는 이름 때문에 비참한 운명을 맞이해야 하는 이도 있었는데, 바로 클레오파트라와 카이사르 사이에서 태어난 카이사리온이다. 법적으로 인정받지 못했지만 살아있는 카이사르의 혈족이었으나, 또 다른 카이사르의 출현을 두려워한 아우구스투스는 살해를 명령하여 추후의 위험을 방지한다. 자신의 출세가 아버지의 이름 덕임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기에, 같은 이름을 둔 형제를 살려둘 수는 없었던 것이다.

5. 아버지가 누렸던 명성을 상속받아 통치의 정당성으로 활용하는 후광효과는 선거를 통해 지도자를 선출하는 민주제 하에서도 그대로 이어진다. 근대의 루이 나폴레옹 뿐 아니라 현대의 조지 부시, 박근혜 대통령도 그러한 예이다.
김성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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