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페인 100장면] 교황 우르바노 2세의 십자군 캠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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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pe Urbano II, 1042~ 1099. 159대 교황(재임 1088~1099)

1.
두터운 붉은 망토를 두른 노인이 천천히 일어났다. 그의 몸을 감싸고 있는 풍성한 옷감과 망토만큼이나 붉고 거대한 모자가 그의 머리 위에서 잠시 흔들렸다. 그가 연단에 서자 그 앞에 도열한 수많은 추기경들의 웅성거림이 잦아들었다. 이 늙고 앙상한 노인이 입을 열자, 대포와 같은 우렁찬 기운이 회의장 안을 감쌌다. 점점 격정에 빠지며 거의 울부짖는 듯한 노인의 목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졌다.

2.
“예루살렘, 안티오크 및 그 밖의 도시들에서 기독교도가 박해를 받고 있습니다. 불경한 투르크족은 그칠 줄을 모르고 콘스탄티노플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성지의 형제들을 구해야 합니다. 유럽의 그리스도인이여! 지위가 높건 낮건, 재산이 많건 적건, 크리스트교도의 구원에 나서야 할 때입니다. 신은 그대들을 인도하실 것입니다. 신의 정의를 위하여 싸우다 쓰러지는 자는 죄의 사함을 받을 것입니다.“

3.
1095년 클레몽에서 열린 공의회에서 이슬람에 대한 대대적인 성전을 외쳤던 이 노인은 교황 우르바노 2세이다. 우르바노 2세는 프랑스 귀족가문 출신으로 그레고리 7세 교황의 교회 개혁 운동을 열심히 도왔던 지지 세력이었고 빅토르 3세의 뒤를 이어 교황에 올랐다. 그러나 그의 명성은 대부분 역사상 가장 거대한 종교 전쟁이었던 십자군 운동을 처음 기획하고 실행한 인물이라는 점에 기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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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몽 공의회에서 설교하는 우르바노 2세

4.
1096년에 처음 시작되어 1270년대에 끝날 때까지 180년이 넘게 지속된 십자군 원정은 캠페인의 관점에서 그 규모와 지속성에 있어 유례 없는 대사건이다. 이것이 가능할 수 있었던 데에는 중세 시대의 특수성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종교적 가치가 우선시 되었던 중세에는 귀족과 성직자를 제외하고는 교육수준이 낮고 문맹율이 높았다.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이야기들, 특히 신화나 마법사, 기사와 미녀와 같은 로맨틱하고 환상적인 이야기가 유행이었다. 종교가 갖는 특유의 속성인 추상성, 관념성, 도덕성, 희생 추구가 강조되다 보니 중세인들의 사고체계도 관념적이고 감정적인 자극에 더 취약했다. 그래서 감성적으로 쉽게 선동되는 사람들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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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자 피에르를 따라 군중 십자군을 떠나려는 사람들

5.
이교도들을 몰아내고 비잔틴 제국을 건설하고자 열망했던 우르바노 2세는 파문이나, 구원이 사람들에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천국의 열쇠를 가지고 있다고 여겨지는 교황이었다. 교황은 면죄부와 구원을 조건으로 내걸고 십자군 기사단을 촉구했다. 그리고 십자군 전쟁은 ‘신의 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신성한 전쟁’이라고 선포하고, 전쟁에서 죽는 것 조차 죄를 구원받을 수 있는 기회라고 설득했다.

6.
물론 종교적 열정만으로 사람들을 설득한 것은 아니다. 십자군 원정에 환상을 품을 만한유효한 타깃이 있었다. 현재 상태에 만족하지 못하거나 새로운 기회를 찾는 사람들이었다. 세력 확장을 꾀하는 유럽의 제후들이 있었고, 장자상속 제도하에 상속권이 없는 귀족의 자제도 새로운 기회가 필요했다. 게다가 현재 상황에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는 하급 기사 등은 쉽게 인생에 모험을 걸어볼 만한 대상이었다. 우르바노 2세는 그들에게 외쳤다. “여러분이 살고 있는 이 땅은 사람들이 너무 많이 몰려 있기 때문에 빈궁해졌습니다. 이 땅에서 불행한 자와 가난한 자는 그 땅에서 번영할 것입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내세워 그곳에 가면 현재의 고통에서 벗어난 풍요로운 삶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는 메시지는 구약 성서부터 고전적으로 사람들을 매료시킨 이야기였다.

7.
그가 내뿜은 열정은 온 유럽으로 퍼졌고 각지의 제후들과 기사들이 십자군 전쟁에 참여하기 위해 몰려들었다. 급기야 종교적 신념에 사로잡힌 일군의 하급기사와 일반 민중들의 무리떼가 정식 십자군이 출발하기 전에 자발적으로 먼저 출발하여 마구잡이로 공격을 일삼는 군중 십자군 사태까지 벌어졌다. 사회적 약자들과 심리적 결핍이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헌신을 요구하고, 그 대가로 ‘영생’, ‘은총’, ‘지상낙원’과 같은 환상에 가득 차 보상을 약속하는 패턴은 1978년 존스 타운의 909명의 신도 집단 자살 사건을 비롯해 1987년의 한국의 오대양 사건, 1995년 일본의 옴진리교 독가스 살포 사건 등도 사이비 종교집단 뿐 아니라 히틀러의 나치당, 북한 김일성 정권 등 주로 독재정권의 사례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김성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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