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페인 100장면]메디치가의 사회공헌 캠페인 Medici, 13C ~ 17C, 피렌체 최고 권력 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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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치 가문을 상징하는 문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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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회의 CSR(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 기업의 사회적 책임) 캠페인을 보면, 간혹 독특하고 참신한 아이디어도 눈에 띄지만, 대부분의 경우 보여주기 식의 형식적인 행사에 그치는 것을 많이 목격한다. 정형화된 기념사진과 상투적인 문구로 설명되는 캠페인에는 어떠한 감동이나 통찰도 들어있지 않다. 여기 사회 공헌 캠페인의 원조라 할 만한 한 가문이 있다. 이들은 집안 대대로의 사회공헌 활동을 통해 가문의 위상을 드높였을 뿐만 아니라 통치의 수단으로까지 승화시키는데 성공했다. 바로 메디치 가문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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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치 가문의 시작이자 국부로 칭송받는 코지모 데 메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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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치가는 근대 초기 유럽에게 가장 돈이 많은 집안 중 하나였다. 요즘으로 치자면 전세계 재계 서열 순위 10위권 안에 드는 기업이었다. 피렌체를 기반으로 이탈리아 반도와 유럽을 넘나들며 주로 은행업과 제조업의 사업을 벌여 큰 부를 쌓았다. 현대적 복식부기 방식을 처음 도입하여 사업에 활용한 곳도 메디치이다. 한 기업이 이렇게 돈이 많아지면 사회적 영향력이 커지게 되고 이는 곧 권력으로 연결되는 법이다. 피렌체의 라이벌 가문과의 파워 게임을 거쳐 메디치도 독점적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위치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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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치가의 통치 방식은 독특했다. ‘보이지 않게 통치하는 것’이 제 1의 룰이었다. 그들은 어떠한공직에도 오르지 않았다. 권위자가 되지 않고 피렌체의 첫번째 시민이 되겠다는 것이 내세운 이유였다. 대신 가문의 뜻에 따라 움직이는 수많은 대리인들이 있었다. 피렌체의 행정 및 사회적 문제들은 대리인을 통해 메디치가의 뜻대로 이루어 진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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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치 일가의 사람들은 종종 그림 속에 등장하고 한다. Benozzo Gozzoli가 그린 동방박사 행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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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치의 제 2의 룰은 ‘권력의 정당성은 국가에 대한 기여로 확보한다’는 것이었다. 메디치가가 없는 피렌체의 발전은 상상할 수 없는 것이었다. 코지모 데 메디치는 인문학을 가르치기 위한 학교를 짓고 학자들을 불러모았다. 건축가들에게 성당을 비롯한 건물과 다리, 도로 등을 건설하게 했다. 막대한 금액이 드는 일이었고 오직 메디치만이 가능한 일이었다. 시민들은 코지모를 칭송하여 피렌체의 기본 인프라를 구축했다는 의미에서 ‘국가의 아버지’ 라고 불렀다. 이러한 전통은 후대의 ‘위대한 로렌초’를 비롯해 수많은 메디치 후손들에게 그대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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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박해를 피해 메디치 가문의 후원을 받은 갈릴레오 갈릴레이. 후에 보은의 뜻으로 자신이 발견한 별을 메디치에 헌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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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문화와 예술의 후원자로서의 메디치 가문의 안목은 탁월했다. 그들로 인해 이탈리아 르네상스가 꽃피울 수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가문 구성원들은 소박한 옷차림에 검소한 생활을 추구했지만, 안목은 최고급이었다. 부를 과시하기 위해 예술을 소비한 것이 아니라, 예술을 소비하기 위해 부를 축적했다. 메디치 가문은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핵심적 후원자였고 레오나르도 다빈치, 도나텔로, 보티첼리, 미켈란젤로, 부르넬레스키, 풀라 안젤리코와 같은 위대한 예술가들이 메디치 가문의 후원아래 작품을 제작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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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메디치가 인권과 자유의 가치를 존중하며 통치를 한 것은 아니었다. 정쟁과 모략의 시기였고, 필요하다면 납치, 고문, 살인은 얼마든지 용인될 수 있었다. 메디치 치하의 시민들은 다른 도시국가의 시민들과 마찬가지로 억압되고 검열된 사회에 살았다. 하지만 메디치에게는 우아한 포장지가 있었다. 사회적 헌신과 예술에 대한 사랑이라는 프레임은 메디치 가문의 권력에 대해 시민들의 자발적인 순응을 이끌어 내는 매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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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트의 국가 봉사와 재산의 기부 등은 고대 로마적 전통으로 계승되어 내려오는 것이었지만, 메디치 만큼 확고한 목표 아래 지속적이고 일관되고 사회공헌을 유지한 사례는 찾아보기 힘들다. 가문의 마지막 후손인 안나 마리아 루이사 데 메디치는 가문 소유인 우피치(Uffizi, office) 건물과 소유한 모든 예술 작품을 국가에 기증했다. 이후 메디치가의 유산은 피렌체 뿐 아니라 전세계의 유산으로 남아 있다.

김성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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