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리뷰] 마리텔, 심야 콘텐츠 전쟁의 최종 승리자는 누구인가?

MBC에서 오랜만에 볼만한 심야 예능 프로그램이 나왔다. 마이리틀텔레비전(이하 마리텔)이다. 우연히 파일럿 방송부터 보기 시작했는데, 토요일 밤 별 일 없는 나 같은 사람들에게 딱 적당한 프로그램이다. 볼 거리로 경쟁하는 프로그램이기 때문이다. 좀더 심한 잉여들을 위해서는 휴일 오후 생방송으로도 여러 가지 볼거리를 제공한다. 마리텔은 한동안 인기를 끌던 인터넷 생방송 프로그램에서 포멧을 가져왔다. 포멧은 새롭지 않은데 티비에서 연예인들이 비제이 역할을 하니까 새로웠다. 마리텔의 채팅방에서 볼 수 있는 것은 두 가지다. 흥미로운 컨텐츠와 흥미로운 컨텐츠를 보여주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출연자들의 모습. 실제로 시청률이 안 나온 출연자들은 다음 회에서 볼 수 없었다. 볼만한 컨텐츠를 만들고, 그 컨텐츠를 제대로 보여주는 자들만이 살아남는다.

1. 그 놈의 소통
첫 회 초기에 가장 높은 시청률을 기록한 출연자는 초아다. 왜냐하면 그녀는 AOA 초아이기 때문이다. 초아를 보려고 접속한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을 정도로 초아의 인기는 대단했다. 초아도 열심히 했다. 애교도 보여주고 춤도 춰줬다. 나도 넋 놓고 사뿐사뿐을 봤다. 문제는 초아가 혼자 열심히 했다는 거다. 인터넷 생방송의 가장 큰 특징은 시청자와 출연자 간의 실시간 소통이다. 티비와의 가장 큰 차이점이기도 하다. 아무튼 초아는 사뿐사뿐을 보여주기 위해 의상을 갈아입느라 방을 비웠고, 빈 방만 나오는 화면을 보는 사람들은 어리둥절해 했다. 또 초아에게 나름대로의 요구사항을 전하던 사람들도 지쳐 채팅창에는 ‘소통 좀 해달라’는 불평이 쏟아져 나왔다. 게다가 초아가 보여준 컨텐츠, 화장하기, 요구르트 만들기는 초아 방송의 주 시청자들인 남성팬들은 전혀 관심없는 주제였다. ‘어머니 화장해 드려야 하냐’는 말도 나왔다. 컨텐츠도 대화가 필요하다.

2. 라디오와 텔레비전
첫 회 출연자 중에 정준일이 있었다. 정준일이 누구냐 하면 밴드 메이트의 보컬이자 싱어송라이터이다. 라디오를 듣는 사람들이라면 꽤 귀에 익은 이름일 것이다. 제작진들도 라디오에서의 명성을 듣고 섭외했다는 설명이 나왔다. 결과적으로 미스캐스팅이었다. 왜냐하면 정준일이 팬들을 제외한 방에 들어온 모든 사람들에게 위와 같이 자기 소개를 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뭐 낯선 사람이 뭔가 재밌는 것을 보여준다면야, 안 볼 이유는 없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정준일은 음악으로 승부했다. 키보드를 감미롭게 연주하고, 떨리는 목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나중에는 소수정예의 팬들만이 오붓한 분위기를 즐겼다. 티비와 라디오는 다르다. 마이리틀’텔레비전’에서는 보여줘야 한다.

3. 노잼! 노잼!
나는 개그맨으로서의 김영철을 좋아한다. 김영철의 억척스러운 입담과 성대모사는 어느 프로그램에 나와도 제 몫을 한다. 그런데 마리텔에서는 아니었나 보다. 첫 회에서 김영철의 ‘뻔뻔한 영어’는 시청자들에게 유용한 영어 표현을 쉽게 가르쳐주려는 의도로 시작했지만, 급락하는 시청률 때문에 막바지엔 성대모사 남발과 그나마 방에 남은 시청자들의 노잼 폭격으로 끝나버렸다. 그날 시청률도 꼴찌를 기록했다. 김영철이 꼴찌라니. 하지만 방송을 본 사람으로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내가 왜 예능프로에서 exactly를 어떻게 쓰는지 배워야 하나, 난 그저 티비나 보면서 웃고 싶을 뿐인데. 그러니까 시청자들이 원하는 것은 유익함 이전에 재미있는 컨텐츠다.

4. 컨텐츠 전쟁에서 승리하려면?
현재 마리텔에서 부동의 1위는 백주부, 백종원이다. 백종원은 실제 집에서 할 수 있는 고급진 레시피들을 알려준다. 자신이 직접 해본, 자신의 이야기가 있는(주로 아내와) 레시피들이다. 실제로 집에서 해본 적은 없지만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럽다. 아무리 쿡방이 대세라도 백종원이 레시피만 충실히 전달했다면 1위는 무리였을 거다. 의외로 백종원은 입담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 입담은 혼자 말하는 것이 아니라 시청자들과의 대화에서 나온 입담이었다. 예를 들면, 백종원의 레시피에는 설탕이 상당히 많이 들어가는데 사람들이 설탕이 너무 많다고 비난하자, 설탕과 당뇨는 상관이 없다고 변명한다. 이제 그는 슈가보이로 불린다. 믹서기가 잘 안갈려서 불평을 하다 사람들이 믹서기 회사 사장님을 걱정하니까, 사장님한테 사과 영상 편지도 쓴다. 백종원이 앞으로도 1위를 지킬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그가 프로그램이 요구하는 PD와 진행자의 역할을 아직까지 가장 잘하고 있는 것은 확실하다. 좋은 컨텐츠를 만들고, 잘 전달하는 것, 이 두 가지가 심야의 컨텐츠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어쩌면 자명한 비법이다.

박지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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