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케이션, 미디어] 기자와 살인자

“그렇다면 기자는 소설가나 마찬가지라는 얘기군요. 그런 뜻입니까?”
-맥도널드 대 맥기니스 명예훼손 재판 중 윌리엄 리 판사의 결의(1987년 7월7일)

1. ‘훅-’ 찌르고 들어오는 첫 문장부터 뜨끔하다. 그리고 이어지는 본문.

2. “기자라면 누구나, 너무 멍청하거나 오만해서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는 사람이 아니라면, 자기가 하는 일이 도덕적으로 용납될 수 없음을 안다. 기자는 사람들의 허영이나 무지 또는 외로움을 이용해 신뢰를 얻고 나서 가차 없이 그들을 배신하는 사기꾼이나 다름 없다. 사람을 너무 믿어서 탈인 과부가 어느 날 잠에서 깨어보니 사랑했던 매력적인 청년이 전 재산을 훔쳐 달아났다는 사실을 알게 되듯이 기자의 취재 대상이 되기로 합의했던 사람은 나중에 자기 이야기가 기사나 책으로 공개된 다음에야 뼈아픈 교훈을 얻는다. 기자들은 각자 기질에 따라 온갖 방법으로 그들의 배신 행위를 정당화한다. 오만한 부류들은 언론의 자유와 ‘대중의 알 권리’를 들먹이고, 재능이 없는 자들은 예술성을 내세우며, 그나마 덜 뻔뻔한 자들은 다 먹고살려고 하는 짓이라고 털어놓는다.”

3. 그렇다. 한 번이라도 기자 또는 인터뷰 대상이 되어봤다면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얘기다. 뉴요커 기자이자 논픽션 작가였던 재닛 맬컴은 실제 논픽션 작품의 주인공이 자기 이야기를 책으로 쓴 저널리스트를 상대로 낸 명예훼손 소송을 취재한 ‘기자와 살인자’라는 책을 통해 인터뷰 대상자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한 기자들의 취재 관행에 문제를 제기했다.

4. 무려 1990년에 출간된 이 책은 저널리즘의 고전으로 꼽혀왔다는데, 이제야 읽었다. 지난 2013년 프랑스에서 주요 저널리즘 저서에 수여하는 ‘아시스 상(Prix des Assises)’을 받으면서 재조명되어 신간으로 나온 덕분이다.

5. 가장 인상적인 건 맬컴이 약 30년 전에 인터뷰하고 자료 정리를 해서 쓴 책의 내용들이 2016년 현재에도 한 문장 한 문장 살아 숨쉬는 듯 유효하다는 점이다. 그도 그럴 것이, 책에서 적고 있듯 “기자의 도덕적 모호함은 글이 아니라 그 글이 만들어지는 관계, 필연적으로 늘 한쪽으로만 치우친 권력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6. 저널리즘의 ‘오래된 미래’에 대한 작가의 통찰은 다음과 같다. 기자와 인터뷰를 할 기회가 생길 수 있는 모든 사람들이 염두에 둘 만 하다.

“저널리즘에 진실성과 생명력을 부여하는 것은 인터뷰 대상의 눈먼 자아도취와 기자의 회의주의 사이의 긴장이다. 인터뷰 대상의 이야기를 그대로 글로 옮겨 출판하는 기자는 기자가 아니라 홍보 매니저다. 앞으로 인터뷰 요청을 받는 모든 사람이 맥도널드(살인자) 대 맥기니스(기자) 소송의 교훈을 염두에 둔다면, 콘스타인(기자 측 변호인)이 주장한 것처럼 표현의 자유가 위협당하고 저널리즘의 종말이 올 수도 있다. 그러나 논픽션 작가와 독자에게는 다행스럽게도, 인터뷰할 때 기꺼이 자기 사연을 늘어놓는 사람들은 미래에도 차고 넘칠 것이다. 그것이 바로 인간의 본성이다……그들은 기자가 전화를 걸면 여전히 인터뷰를 승낙하고, 나중에 자기 목에 떨어지는 칼날을 보게 될 때 여전히 경악할 것이다.”

기자와 살인자, 재닛 맬컴, 2015, 이숲

By 김재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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