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케이션 단신] ‘워싱턴 D.C. 미디어의 왕자’도 미디어벤처 창업하나? – 에즈라 클레인과 외부투자자들과의 만남

에즈라 클레인

에즈라 클레인

1. 에즈라 클레인(Ezra Klein) 워싱턴 포스트 정치부 필진 및 웡크블로그 에디터가 새로운 미디어 벤처 시작을 위해 외부 투자자들과 만남을 가졌다. 클레인은 동시에 워싱턴 포스트 내에서 그의 향후 커리어에 대해서도 회사와 대화하고 있다. 하지만 취재원에 따르면, 그가 회사 생활을 정리할 수도 있다고 한다. 클레인은 이에 대한 논평을 거부했다.

2. 만약 클레인이 떠나기로 결정한다면, 이는 워싱턴 포스트에게 큰 ‘폭풍’이 될 것이다. 그는 지난 몇 년간 워싱턴 포스트 뉴스룸에서 그만의 브랜드를 형성하며 영향력을 키워왔다. 웡크블로그에서 클레인과 그의 스태프는 이해하기 쉽고, 직접적인 방식으로 복잡한 정책적 아이디어들을 해부해왔다. 각종 차트들도 자주 이용했다.

3. 클레인은 24세에 신문사에 입사했고, 입사 당시에도 이미 저노리스트(기자들, 학자들이 모여 정치와 뉴스미디어에 대해 논하는 구글 비공개 그룹)의 창립자이자 정치 매거진 아메리칸 프로스펙트의 촉망받는 정책 블로거로 인정받고 있었다. 현재 워싱턴 포스트 이외에도 MSNBC 애널리스트이자 블룸버그 뷰의 칼럼니스트로도 활동하고 있다. 주간지 뉴 리퍼블릭은 그에게 ‘워싱턴 D.C. 미디어의 왕자’라는 별명을 붙였다.

4, 클레인의 명확한 온라인 영향력을 봤을 때, 그가 그 자신의 미디어를 세우는 것을 고려하는 게 놀랄만한 일은 아니다. 일전에 그와 대화를 나눴던 미디어 임원은 “클레인은 이런 움직임을 예전부터 고민해 왔었다”고 말했다. 워싱턴 포스트 대변인은 어떤 공식적인 관련 논평도 내놓지 않고 있다.

이현동

출처: 허핑턴 포스트 링크

[두 대통령과 함께한 전략적 글쓰기 27] 대통령이 강조했던 글쓰기 지침

관저 식탁에서의 2시간 강의
– 노무현 대통령의 글쓰기 지침

2003년 3월 중순, 대통령이 4월에 있을 국회 연설문을 준비할 사람을 찾았다.
노무현 대통령은 늘 ‘직접 쓸 사람’을 보자고 했다.
윤태영 연설비서관과 함께 관저로 올라갔다.

김대중 대통령을 모실 때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대통령과 독대하다시피 하면서 저녁식사를 같이 하다니.
이전 대통령은 비서실장 혹은 공보수석과 얘기하고, 그 지시내용을 비서실장이 수석에게, 수석은 비서관에게, 비서관은 행정관에게 줄줄이 내려 보내면, 그 내용을 들은 행정관이 연설문 초안을 작성했다.

그에 반해 노무현 대통령은 단도직입적이었다고나 할까?
아무튼 일을 효율적으로 하기를 원했다.
“앞으로 자네와 연설문 작업을 해야 한다 이거지? 당신 고생 좀 하겠네. 연설문에 관한한 내가 좀 눈이 높거든.”

식사까지 하면서 2시간 가까이 ‘연설문을 어떻게 써야 하는가?’ 특강이 이어졌다.
밥이 입으로 넘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몰랐다.
열심히 받아쓰기를 했다.
이후에도 연설문 관련 회의 도중에 간간이 글쓰기에 관한 지침을 줬다.

다음은 그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1. 자네 글이 아닌 내 글을 써주게. 나만의 표현방식이 있네. 그걸 존중해주게. 그런 표현방식은 차차 알게 될 걸세.
2. 자신 없고 힘이 빠지는 말투는 싫네.
‘~ 같다’는 표현은 삼가 해주게.
3. ‘부족한 제가’와 같이 형식적이고 과도한 겸양도 예의가 아니네.
4. 굳이 다 말하려고 할 필요 없네. 경우에 따라서는 질문을 던지는 것으로도 연설문이 될 수 있네.
5. 비유는 너무 많아도 좋지 않네.
6. 쉽고 친근하게 쓰게.
7. 글의 목적이 무엇인지 잘 생각해보고 쓰게. 설득인지, 설명인지, 반박인지, 감동인지
8. 연설문에는 ‘~등’이란 표현은 쓰지 말게. 연설의 힘을 떨어뜨리네.
9. 때로는 같은 말을 되풀이하는 것도 방법이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는 킹 목사의 연설처럼.
10. 짧고 간결하게 쓰게. 군더더기야말로 글쓰기의 최대 적이네.
11. 수식어는 최대한 줄이게. 진정성을 해칠 수 있네.
12. 기왕이면 스케일 크게 그리게.
13. 일반론은 싫네. 누구나 하는 얘기 말고 내 얘기를 하고 싶네.
14. 추켜세울 일이 있으면 아낌없이 추켜세우게. 돈 드는 거 아니네.
15. 문장은 자를 수 있으면 최대한 잘라서 단문으로 써주게.
탁탁 치고 가야 힘이 있네.
16. 접속사를 꼭 넣어야 된다고 생각하지 말게.
없어도 사람들은 전체 흐름으로 이해하네.
17. 통계 수치는 글을 신뢰를 높일 수 있네.
18. 상징적이고 압축적으로 머리에 콕 박히는 말을 찾아보게.
19. 글은 자연스러운 게 좋네. 인위적으로 고치려고 하지 말게.
20. 중언부언하는 것은 절대 용납 못하네.
21. 반복은 좋지만 중복은 안 되네.
22. 책임질 수 없는 말은 넣지 말게.
23. 중요한 것을 앞에 배치하게. 뒤는 잘 안 보네. 문단의 맨 앞에 명제를 던지고, 그 뒤에 설명하는 식으로 서술하는 것을 좋아하네.
24. 사례는 많이 들어도 상관없네.
25. 한 문장 안에서는 한 가지 사실만을 언급해주게. 헷갈리네.
26. 나열을 하는 것도 방법이네. ‘북핵 문제, 이라크 파병, 대선자금 수사…’ 나열만으로도 당시 상황의 어려움을 전달할 수 있지 않나?
27. 같은 메시지는 한 곳으로 몰아주게. 이곳저곳에 출몰하지 않도록
28. 백화점식 나열보다는 강조할 것은 강조하고 줄일 것은 과감히 줄여서 입체적으로 구성했으면 좋겠네.
29. 평소에 우리가 쓰는 말이 쓰는 것이 좋네. 영토 보다는 땅, 치하 보다는 칭찬이 낫지 않을까?
30. 글은 논리가 기본이네. 좋은 쓰려다가 논리가 틀어지면 아무 것도 안 되네.
31. 이전에 한 말들과 일관성을 유지해야 하네.
32. 여러 가지로 해석될 수 있는 표현은 쓰지 말게. 모호한 것은 때로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지금 이 시대가 가는 방향과 맞지 않네.;
33. 단 한 줄로 표현할 수 있는 주제가 생각나지 않으면, 그 글은 써서는 안 되는 글이네.

대통령은 생각나는 대로 얘기했지만, 이 얘기 속에 글쓰기의 모든 답이 들어있다.
지금 봐도 놀라울 따름이다.

언젠가는 음식에 비유해서 글쓰기에 대해 얘기한 적이 있다.

1. 요리사는 자신감이 있어야 해. 너무 욕심 부려서도 안 되겠지만.
글 쓰는 사람도 마찬가지야.
2. 맛있는 음식을 만들려면 무엇보다 재료가 좋아야 하지. 싱싱하고 색다르고 풍성할수록 좋지. 글쓰기도 재료가 좋아야 해.
3. 먹지도 않는 음식이 상만 채우지 않도록 군더더기는 다 빼도록 하게.
4. 글의 시작은 에피타이저, 글의 끝은 디저트에 해당하지. 이게 중요해.
5. 핵심 요리는 앞에 나와야 해. 두괄식으로 써야 한단 말이지. 다른 요리로 미리 배를 불려놓으면 정작 메인 요리는 맛있게 못 먹는 법이거든.
6. 메인요리는 일품요리가 되어야 해. 해장국이면 해장국, 아구찜이면 아구찜. 한정식 같이 이것저것 다 나오는 게 아니라 하나의 메시지에 집중해서 써야 하지.
7. 양념이 많이 들어가면 느끼하잖아. 과다한 수식어나 현학적 표현은 피하는 게 좋지.
8. 음식 서빙에도 순서가 있잖아. 글도 오락가락, 중구난방으로 쓰면 안 돼. 다 순서가 있지.
9. 음식 먹으러 갈 때 식당 분위기 파악이 필수이듯이, 그 글의 대상에 대해 잘 파악해야 해. 사람들이 일식당인줄 알고 갔는데 짜장면이 나오면 얼마나 황당하겠어.
10 요리마다 다른 요리법이 있듯이 글마다 다른 전개방식이 있는 법이지.
11. 요리사가 장식이나 기교로 승부하려고 하면 곤란하지. 글도 진정성 있는 내용으로 승부해야 해.
12. 간이 맞는지 보는 게 글로 치면 퇴고의 과정이라 할 수 있지.
13. 어머니가 해주는 집밥이 최고지 않나? 글도 그렇게 편안하고 자연스러워야 해.

이날 대통령의 얘기를 들으면서 눈앞이 캄캄했다.
이런 분을 어떻게 모시나.
실제로 대통령은 대단히 높은 수준의 글을 요구했다.
대통령은 또한 스스로 그런 글을 써서 모범답안을 보여주었다.

나는 마음을 비우고 다짐했다.
대통령을 보좌하는 참모가 아니라 대통령에게 배우는 학생이 되겠다고.
대통령은 깐깐한 선생님처럼 임기 5년 동안 단 한 번도 연설비서실에서 쓴 초안에 대해 단번에 오케이 한 적이 없다.

강원국 (라이팅 컨설턴트, 객원 필진)

[말과 글] 크리스마스 이브, 연말의 계획

이제 일주일 후면 2014년

이제 일주일 후면 2014년

“지혜로운 자의 목표는 행복을 성취하는 것이 아니라, 불행을 피하는 것이다.”
– 아리스토텔레스

1. <스마트한 선택들>(2013, 걷는나무)를 읽다가 발견한 구절입니다.

2. 나이가 들어가는 것일까요?
행복은 창출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더 듭니다.
작고 소중한 것들을 잘 지켜가는 것, 불행의 요소들을 줄여가는 것이라는 판단 같은 것이죠.

3. 기대치 게임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Over Expectation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위기관리의 목표는 최상의 상황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위기의 확산을 막는 것입니다.

4. 뒤돌아 볼 때 본래 세웠던 거창한 계획을 아예 지워보는 것,
앞으로 갈 때 소박하고 담백한 계획을 차분하게 세워보는 것,
이것이 행복을 만드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 아닐까요?

5. 연말에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하지 말고, 너무 많은 것을 생각하지 않는 것도 좋은 방법 같습니다.

유민영

[두 대통령과 함께한 전략적 글쓰기 26] 독자의 입장에서, 최대한 쉽게

읽는 사람이 갑이다.
– 쉽게 쓰자

‘포지셔닝’이란 개념을 처음 정립한 잭 트라우트(Jack Trout)가 이런 말을 했다.
‘제품은 공장에서 만들지만, 브랜드는 소비자의 마음속에서 만들어진다.’

이 내용을 글에 대비해 보면 이렇다.
‘글은 쓰는 사람이 쓰지만, 글을 받아들이고 느끼는 것은 보는 사람의 몫이다.’

쓰는 사람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읽는 사람이 잘 이해할까?
말하는 사람의 의도를 듣는 사람이 잘 알아차릴까?
김대중 대통령의 대답은 ‘아니올시다’다.

“상대방이 내 말을 쉽게 이해할 것이라고 착각하지 않는 것으로부터 글쓰기는 시작되어야 한다.
그러니 무조건 알아듣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글을 쓰는 것이 좋다.”
김 대통령의 충고다.

김대중 대통령은 최대한 쉬운 표현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그래서 김 대통령의 연설문에는 비유나 속담이 많이 등장한다.
햇볕정책을 설명하는 데는 이솝 우화가 동원됐다.
“바람과 해가 나그네의 옷을 누가 먼저 벗기나 내기를 했습니다. 바람은 강제로 벗기려하나 실패했습니다. 해는 따뜻한 햇볕을 쬐어 나그네가 스스로 옷을 벗게 합니다. 햇볕정책이 그렇게 하자는 것입니다.”
이처럼 아무리 어려운 내용도 대통령의 손을 거치면 쉽고 명쾌한 내용으로 바뀌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여기서 한 발짝 더 나아간다.
“글이라는 건 중학교 1, 2학년 정도면 다 알아들을 수 있게 써야 한다.”
실제로 중학교에서 배우는 수준이 어디쯤인지 알고 싶다고 중학교 교과서를 가져와 보라고 한 적이 있다고 한다.

역사의 진보에 대한 노 대통령의 정의, 즉 소수가 누리던 것을 보다 많은 사람에게까지 확산하는 것.
그런 시각에서 보면 선택된 소수가 아니라 누구든지 이해할 수 있는 쉬운 글을 쓰는 것이야말로 역사 발전에 일조하는 길이다.

글쓰기는 나와 남을 연결하는 일이다.
그 글을 봐 주는 사람이 이해 못하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무슨 말인지 알아듣게 하고 제대로 이해시킬 책임은 쓰는 사람에게 있다.
좀 심하게 얘기하면 글이나 말은 듣는 사람, 읽는 사람 입에 떠 넣어줘야 한다.
손에 확 잡히도록 쥐어줘야 하는 것이다.

어떻게 해야 하나?
첫째, 당연히 쉬운 말로 써야 한다.
전문용어에 돼먹지 않은 아는 체는 자제해야 한다.

둘째, 명확하게 짚어줘야 한다.
‘내가 하려고 하는 얘기의 요점은 이것, 이것, 이것이다’라고.
그래서 읽는 사람이 척 보면 알 수 있어야 한다.

셋째, 사례를 들고 비유를 하여 이해를 도와야 한다.
여행 갔을 때, 가이드가 그 나라 국토 면적을 몇 제곱킬로미터라고 하면 이해가 쉽든가?
한반도의 몇 배다, 이렇게 설명해줘야 쉽지 않든가.

넷째, 반복해줘야 한다.
세 번 정도는 반복해줘야 전달이 분명하게 된다고 한다.
글의 서두에 내가 할 얘기는 이것이다. (한 번)
이런 얘기를 하는 배경은 이것이다. (두 번)
내 얘기의 결론은 이것이다. (세 번)
단, 이런 반복이 ‘강조’로 들리지 않고,
한 얘기 또 하고 또 하는 횡설수설로 들리면 곤란하다.

김대중 대통령도 반복할 것을 주문했다.
다 알아 듣는 것 같아도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말하는 사람은 여러 번 해도 듣는 사람은 한 번이라고 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전국에서 10개 경기장이 순차적으로 개장 행사를 가졌고, 대통령은 매번 참석했다.
이때 월드컵 개최의 의미와 파급효과에 대해 모든 연설문을 똑같이 썼다.
연설비서실에서는 좀 다르게 바꿔 봤지만, 대통령은 항상 같은 내용으로 다시 원위치시켰다.
그러면서 아래와 같은 코멘트도 함께 내려 보냈다.
“나는 같은 말을 반복하지만 듣는 사람은 처음 듣는 것입니다. 설사 같은 말을 다시 듣는 사람이 있다 할지라도 상관없습니다. 한 번 말해서는 머릿속에 잘 기억되지를 않습니다. 그러니 반복하세요.”

김 대통령은 예를 들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 해박한 분이 항상 같은 예시를 들었다.
우리 민족의 우수한 독창성을 얘기할 때는 “중국으로부터 불교를 받아들이면 해동불교로 발전시켰고, 유교를 받아들이면 조선유학으로 발전시켰다.”고 되풀이했다.
다른 예가 없어서가 아니다.
이것저것 사례를 들면 헷갈릴 것을 염려해서다.

1984년 미국 대선에서 공화당 레이건이 민주당 몬데일을 이긴 이유도 이렇게 설명하기도 했다.
몬데일은 다양한 주제의 연설로 언론의 주목을 받았지만,
레이건은 두세 가지 내용만 되풀이했다.
이에 대해 ‘레이건은 콘텐츠가 빈약하다’며 비판적인 기사가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레이건은 괘념치 않았다.
결국 몬데일이 무슨 말을 했는지는 유권자의 머릿속에 명확하게 떠오르지 않았지만, 레이건의 말은 분명하게 기억했다.

이에 반해 노무현 대통령은 반복하는 걸 싫어했다.
2007년 전국적으로 혁신도시 기공식 행사가 줄줄이 있었다.
노 대통령은 혁신도시 개발 취지를 늘 달리 설명하기를 원했다.

노 대통령은 또한 일반인 누구나 쉽게 알아먹을 수 있는 서민의 언어를 쓰고자 했다.
하지만 언론에서는 ‘대통령의 언어’를 쓰라고 옥조였다.
검사와의 대화에서 “막가자는 것이지요?”라고 했을 때, ‘못해먹겠다’고 했을 때, ‘대못질’이라는 표현을 썼을 때도 ‘대통령의 말이 경박하다’, ‘대통령의 말에 품격이 없다’고 꾸짖었다.
과거 권위주의 시대 군림하는 대통령을 경험한 국민들 사이에서도 ‘그래도 대통령인데 그런 표현을 써도 되나’, ‘대통령은 대통령답게 권위가 있어야지’ 하는 소리들이 나왔다.

하지만 대통령의 말씨는 쉬 고쳐지지 않았다.
대통령은 이렇게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대통령의 말이 따로 있는가.’
‘대통령은 이렇게 해야 한다고 누가 만들었는가.’

그래서였을까?
대통령은 깔끔하게 정제된 표현보다는, 진솔하고 투박한 표현을 좋아했다.
우리가 살면서 평소 쓰는 일상어로 우리의 삶 속에 파고들려고 했다.
“제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사회는 더불어 사는 사람 모두가 입는 것, 먹는 것, 이런 걱정 좀 안 하고, 더럽고 아니꼬운 꼬라지 좀 안 보고, 그래서 하루하루가 좀 신명 나게 이어지는 그런 세상입니다. 만일 이런 세상이 지나친 욕심이라면 적어도 살기가 힘들어서, 아니면 분하고 서러워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그런 일은 없는 세상입니다.”
<1988년 7월 국회 본회의 사회문화에 관한 질문 중>

어쨌든 글은 쉽게 써야 한다.
말과 글은 듣는 사람, 읽는 사람이 갑이다.
설득 당할 것인가, 감동할 것인가의 결정권은 듣는 사람, 읽는 사람에게 있으니까.

그렇다면 쉬운 글은 쓰기 쉬운가?
더 어렵다.
더 많은 고민을 필요로 한다.
차라리 어려운 글은 쓰기 쉽다.
그런 점에서 ‘쉽게 읽히는 글이 쓰기는 어렵다.’고 한 헤밍웨이의 말은 확실히 맞다.

강원국 (라이팅 컨설턴트, 객원 필진)

[커뮤니케이션 단신] 급해도 일단 “Keep calm and Google it” – 구글은 재난구호에 어떤 변화를 가져 왔는가?

Keep calm and Google it

Keep calm and Google it

*주: Acase는 구글이 죽음에 영역에까지 도전하고 있다는 내용을 소개했었다(링크: https://acase.co.kr/2013/09/26/commenews36/). 그 이유가 공익적인 것이든, 사업이 목적이든 구글은 ‘더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다양한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알자지라 아메리카가 소개한 재난구호도 구글의 관심분야다. 언젠가 “Keep calm and Google it”이 위기 속 구원의 한마디가 될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관련 내용을 소개한다.

1. 11월 초 태풍 하이엔이 필리핀 중부지방을 강타한 후, 희생자들의 가족과 친지들은 10만7천명 이상의 이름을 구글 사람찾기(Person Finder)에 올렸다. 실종자를 찾는 게시판은 늘 있어왔지만 어떤 경우에도 실종자 발견은 매우 힘든 일이었다. 이번에 구글이 재난구호 분야에서 이런 비능률을 파괴한 일은 좋은 참고가 된다. 구글 재난대응팀 엔지니어 피트 진크(Pete Giencke)는 “막 새로운 방법들이 나타났고 우리는 꽤나 잘 하고 있다”라며 “최초의 방식들은 스프레드시트나 페이스북이었지만, 이들은 그다지 효율적이지 못 했다. 스프레드시트 하나에는 20만개의 이름이 실리고, 페이스북 페이지에는 만개의 포스트가 올라왔을 뿐이다”라고 말했다.

2. 구글 사람찾기는 2010년 아이티 대지진 이후 개발되었다. 이 지진으로 인한 사망자 수가 15만8천명에 이른 상황 속에서, 십여 개가 넘는 실종자 목록들이 발표되었고 실의에 빠진 가족과 친구들은 그 목록들을 샅샅이 뒤져야 했다. 또 발견하지 못한 실종자의 이름을 그 목록에 일일이 올려야 했다. 진크는 “우리는 더 나은 방식과 체계가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사실 이 ‘사람찾기’는 구글 엔지니어 카핑 이(Ka-Ping Yee)가 개인 프로젝트 목적으로 72시간 만에 만든 것이었다. 이 사이트는 실종자 목록에 있는 모든 정보를 가져와 이용자들이 이를 한 번에 검색할 수 있게 해준다. 또 구글은 24시간 이내에 정밀위성사진을 수집해 재난상황을 지도에 보여준다. 게다가 15센티미터 범위까지 파악 가능한 항공사진도 수집해 제공하는데, 이는 구호단체들이 재난상황을 파악하고 어디에 진료소를 세우고 구호품을 보낼지 등을 결정하는 데 매우 중요하게 이용된다.

3. 지도화는 구글이 지닌 가장 눈부신 능력 중에 하나다. 엄청난 재난이 지난 자리를 360도 전산화된 지도로 만들거나 다른 사람들이 만들도록 도와준다. 구글은 2008년 자사의 지도서비스가 보여주지 못하는 지역에 사는 자원봉사자들이 그들에게 데이터를 제공할 수 있도록 했다. 이는 곧 파키스탄 이용자들이 세계에서 가장 활발한 아마추어 지도작성자가 될 수 있도록 했다. 2010년 8월 홍수가 국토 20퍼센트를 덮었을 때, 유엔 지도관련 부서는 구글 지도에 근거해 긴급구호 활동을 펼칠 수 있었다. 구글 재난지도는 대피소, 구호품 투하지점, 도로유실지점과 시설물훼손지점에 있는 사람들에 의해 정기적으로 갱신되므로, 주민들과 구호요원들이 재난지역을 알아보기 수월해진다.

4.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발생했을 때 구글은 다양한 자료들을 편집해 보여주었다. 긴급 전화번호와 최신 소식, 기부금 모집 따위를 카트리나에 대해 검색하거나 그 재난지역에서 검색했을 때 랜딩페이지에서 한 눈에 볼 수 있게 해주었다. 2010년 아이티 대지진부터 이 일이 더 체계화되어 (진크가 ‘보잘 것 없고 산만한’ 조직이라고 표현한)구글 재난대응팀이 미국 캘리포니아 마운틴뷰, 뉴욕, 호주 시드니에서 출범했다.
그때부터 구글 재난대응팀은 25개 이상의 재난상황에 효과적으로 대응했다. 2011년 일본에 관측사상 최악의 지진이 발생했을 때, 구글 사람찾기가 90분 내로 가동되었다. 구글 자선활동기구인 Google.org 쇼나 브라운(Shona Brown) 수석부사장은 사람찾기를 통해 60만 명 이상의 이름을 수집했고, 이틀 만에 3천6백만의 방문자수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구글 정도의 회사가 아니라면 보통 이런 규모의 방문자수는 사이트를 다운 시켰을 것이다.

5. 인터넷은 구호활동에 더 중요한 요소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전화선이 끊기고 통신기지국이 무너졌을 때에도 인터넷은 잘 끊기지 않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기 때문이다. 켈리 메닝(Kelly Manning)은 올해 보스톤마라톤 폭파사건이 발생했을 때 그녀의 딸에게 30분 동안 전화를 걸었지만 응답이 없었다. 그러다가 구글 사람찾기에 들어가서 딸을 바로 찾을 수 있었던 일을 검색엔진저널(Search Engine Journal)에서 밝혔다. 하지만 브라운 수석부사장은 여전히 긴급상황에서 구글의 역할은 제한적이라며 “우리는 전산공학자이자 디벨로퍼일 뿐이다. Google.org는 재난구호 분야에 있어서 초보자다”라고 자신들을 평가했다.

6. 향후 몇 년 간, 디지털 재난대응은 더 빨라지고, 탄력적이며, 크라우드소싱화 될 것이다. 재난상황이 발생했을 때, 트위터와 페이스북은 애도를 표하는 창구일 뿐 아니라 실시간 상황을 확인하기 위해 먼저 방문해야 할 곳으로 자리매김했다. 지진과 쓰나미가 일본을 덮친 다음 날 트위터에서는 다섯 번이나 초당 5천개 이상의 트윗이 발생했다.
대부분의 트윗은 인상적이거나 배려심 깊은 내용을 담고 있기는 해도 딱히 유용하지는 않다. 하지만 그 중 상당수가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다. 2011년 발생한 태국의 홍수를 세계은행은 역사상 네 번째로 피해가 큰 자연재해라고 추산했다. 이 때 발생한 6만4천 건의 트윗을 연구한 결과에 따르면 39퍼센트의 트윗이 가치 있는 위치정보와 경고문구를 포함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또 트위터 이용자 대부분이 꺼놓고 있는 위치표시 기능을, 만일 재난 시에 켜놓았더라면 사람들의 트윗을 이용해 ‘역학 지도’를 만드는 일도 가능하다. 이 지도에는 나무가 쓰러진 지역이 어디인지부터 식량이 배급되는 지역, 약탈이 발생한 지역 등을 모두 표시하는 게 가능할 것이다.

7. 이미 재난구호활동의 소셜미디어 영향력은 적십자에서 인정되었다. 2012년 3월, 델과의 공동작업, 연방재난관리청과 백악관의 지원으로 디지털운용상황실이 출범했다. 정부관계자들은 재난에 따른 결과를 공식적으로 발표할 수 있다. 또 최신 정보를 찾는 일반 시민들은 이곳에서 서로 정보를 공유할 수 있다.
구글은 적십자가 아니다. 구글은 물류 운용을 통해 물과 식량, 항생제를 필요한 사람들에게 가져다 주지 않는다. 하지만 재난구호의 기본은 정보다. 구글의 전문분야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정보를 가능한 빨리 손쉽게 이용하도록 보내주거나, 재난 이후 당신의 할머니가 살아있는지 알아볼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그들은 재난구호 분야의 경쟁을 심화 시키기 보다는 규모 자체를 키우는 데에 관심이 있다.

이병훈 (객원 필진)

출처: 알자지라 아메리카 링크

[커뮤니케이션 단신] “제 양심은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 이동진의 ‘말하지 않을 권리’ : 속박받지 않을 권리, 통제되지 않을 자유

영화평론가 이동진

영화평론가 이동진

※ 참고로 필자는 이동진의 글쓰기와 생각하기, 그리고 팟캐스트 빨간책방을 통해 김중혁 작가와 펼치는 썰렁한 농담을 매우 진지하게 좋아한다.

1. 며칠간 영화평론가 이동진이 자신의 블로그 ‘언제나 영화처럼’ 링크 에 쓴 글이 큰 화제다.
아무렇지 않은 일이 큰 일이 되었다.
‘샤이니’의 종현이 소신발언을 했다고 어느 날 갑자기 샤이니가 ‘좋아졌다’고 혹은 ‘싫어졌다’고 한다면 서글픈 일이다.
왜 서로들 이리 나쁜 방향으로 비슷하게 닮아가려고 하는 것일까.

2. 2013년 12월18일 00:19
영화평론가 이동진은 자신의 블로그에 평소처럼 영화평, <‘변호인’을 보고>라는 글을 자정을 갓 넘긴 시간에 올렸다. 현재 이 글에는 565개의 댓글이 달려있다.
특별한 일이 생긴 것이다.
그의 팬 그룹이 편하게 글을 읽고 성원하고 있는 동안 두 개의 그룹이 댓글에 전쟁을 시작한 것이다.
두 개의 대립되는 그룹은 공히 자신의 위치에 서서 이동진에게 불만을 터뜨렸다.
한 그룹은 더 강하게 정치색을 드러내라고 주장하고 비판했다.
또 한 그룹은 정치적 선호를 드러냈다고 비판하고 비난했다.

그는 이렇게 썼을 뿐이다.
“관객이 판단하기 전에 영화가 먼저 판단하고, 설득하려 하는 대신 쏟아내려고 하는 듯한 느낌이랄까요.”
“영화적으로 볼 때 ‘변호인’에서 가장 뛰어난 것은 연기다.”

평소보다 조금 길었고 조금 더 조심스럽다는 느낌을 받았지만, 특별해 보이지는 않은 글이었다.

3. 2013년 12월18일 18:49
이동진은 저녁 입구에서 다시 ‘말하지 않을 권리’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이 글에는 성원과 함께 871개의 댓글이 붙었다.
이번 글에는 살짝 감정이 묻어난다.
‘양심결정의 자유’, 그리고 ‘침묵의 자유,’ 우리 모두가 생각해 볼 일이다.

그의 글은, 1,2,3,4,5,6,7,8,9로 구성되어 있다.
블로그에 글 복사가 가능하지 않도록 되어 있어 전문을 퍼 소개하는 것은 적절치 않아 보인다.

다음은 여섯 번째 항목의 글이다.

“6.
‘변호인’은 지극히 당연한 대한민국 헌법 제1조를
극중에서 가장 울림이 깊은 대사로 강조하는 영화입니다.

그러니 저도 ‘변호인’식으로 지극히 뻔한 상식을
다시 한번 말해보도록 하죠.

대한민국 헌법 제19조에는
“모든 국민은 양심의 자유를 가진다”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정확히 몇번째 조항인지를 몰라서 검색해보다보니
네이버 지식백과에 역시나 이런 지극히 당연한 상식을 담은 대목이 있더군요.

현행 헌법에서는 양심의 자유를 ‘모든 국민은 양심의 자유를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양심의 자유의 내용은 ‘양심결정의 자유’와 ‘침묵의 자유’로 나뉘어진다. 양심결정의 자유란 자신의 윤리적ㆍ논리적 판단에 따라 사물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자유를 의미하고, 침묵의 자유란 자신의 주관적 가치판단에 따라 결정된 양심이나 사상을 외부에 표명하도록 강제받지 아니할 자유를 의미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양심의 자유 [良心─ 自由] (시사상식사전, 박문각)

불필요한 자리에서까지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밝힐 것을 강요하고,
그렇게 하지 않으려는 사람에게 거세게 압박하거나 조롱하는 게 만연된 사회란
얼마나 끔찍한 곳입니까.

왜 당신들의 삶의 방식을 남에게 강요하려고 하시나요.“

출처: 이동진 블로그 링크

유민영

사진 출처: SBS 링크

[두 대통령과 함께한 전략적 글쓰기 25] 용기를 필요로 하는 그 이름, 글의 양념 ‘유머’

“하나님 뜻에 따르겠다니요?”
– 유머 던지기

유머나 조크는 음식의 고명과 같다.
없어서 문제 될 것은 없다.
하지만 잘 얹으면 음식의 맛과 모양이 확 달라진다.

두 대통령은 유머감각이 뛰어났다.
그들의 눈동자를 들여다보라.
민주주의를 위해 목숨 걸고 싸운 사람의 그것이 아니다.
‘이의 있다’며 결연하게 일어서던 그 눈동자가 아니다.
무언가 재미있는 일을 찾는 악동 같다.
장난기가 묻어난다.

나아가 두 대통령에게는 특유의 아우라가 있다.
만나는 것만으로도 기분을 들뜨게 한다.
볼 때마다 새롭고 기대된다.
한 마디 한 마디가 정말 재밌다.
상대를 배려하기 위한 마음이 느껴진다.

김대중 대통령 영상메시지를 녹화할 때였다.
배석하는 참모들은 휴대전화를 놓고 올라간다.
녹화 중에 휴대전화가 울리면 대통령이 처음부터 다시 녹화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대형사고’를 치는 셈이다.
그 날 처음으로 휴대전화 벨소리가 울렸다.
대통령이 녹화를 중단했다.
공보수석실 비서관 중의 한 분이었다.
순간 당황해서 전원을 끊으려 하지만, 버튼을 못 찾고 허둥댄다.
“내가 꺼줄까요?”
폭소가 터졌다.
대통령은 싸할 뻔 했던 분위기를 이렇게 조크로 넘겼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 비서관은 얼마나 마음이 불편했겠는가.

김 대통령은 ‘국민과의 대화’를 비롯해 방송에 나가서도 특유의 유머감각을 발휘했다.
IMF 고통 분담 차원에서 월급을 반납할 생각이 없냐고 묻자,
“나야 청와대에서 먹여 주고 재워 주는데 그렇게 하지 못할 이유가 없지 않느냐”고 답해 웃음을 자아냈다.

대통령은 방송에 나가 이런 일화도 소개했다.
“1980년 사형 선고를 받고 죽을 날을 기다리는데, 우리 아내가 ‘김대중을 살려달라’고 기도하는 게 아니라 ‘하느님 뜻에 따르겠다’고 해서 어찌나 섭섭했는지 몰라요.”

김 대통령은 죽음을 목전에 둔 상황을 설명할 때도 익살을 곁들였다.
“법정에서 최종 형이 선고되는 순간, 나는 판사의 입을 뚫어져라 쳐다봤어요. 입술이 옆으로 찢어지면 사형이고, 둥글게 튀어나오면 무기였어요. 살고 싶었어요. 옆으로 찢어지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지요.”

1998년 11월 중국을 국빈 방문했을 때, 장쩌민 주석이 김 대통령에게 젊어 보이는 비결을 물었다.
“저는 오랫동안 망명과 연금, 감옥생활을 했습니다. 그 동안에는 제 인생이 중단되다시피 했으니 노화도 중단되었겠지요.”

최경한 비서관이 그의 책 <김대중 리더십>에서 전하는 사례 두 가지만 더 소개하겠다.

2006년 10월 전남대 명예박사학위 수여식
여학생 사회자가 ‘이제 전남대 선배가 됐으니 후배들을 잘 지도해 달라’고 하자 김 대통령은 이렇게 응수했다.
“나는 오늘 명예박사학위를 받고 전남대와 처음 인연을 맺었으니 먼저 온 여러분이 선배지 내가 왜 선배냐? 선배님들이 후배인 나를 잘 봐 달라.”

2006년 10월 서울대 개교 60주년 초청강연
북핵문제가 다시 불거져 ‘전쟁 불사론’까지 등장하자 대통령은 전쟁만은 안 된다며 던진 비유인데, 강연장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찰리 채플린이라는 희극배우가 있었는데 그 사람이 히틀러를 반대하고 전쟁을 반대한 사람입니다. 그 사람이 희극배우답게 말했어요. 전쟁은 전부 40대 이상의 사람만 가라. 나이 먹은 사람들이 자기들은 전쟁에 안 가니까 쉽게 결정해서 젊은 사람들을 죽게 만든다. 그러니까 나이 먹는 사람들이 전쟁에 나가서 죽든 살든지 해야 한다.”

노무현 대통령 역시 유머와 위트의 달인이었다.
친근한 이미지와 친화력의 저변에는 타고난 해학과 기지가 있었다.

2004년 5월 연세대 리더십 특강
어떻게 살아왔는지 얘기하다가 요즘 근황에 대해 설명
“손녀가 예쁩니다. 그런데 아무리 예뻐 봤자 뻔하죠. 한계가 있지요. 저를 보면 상상이 되지요?”

2004년 12월 풍기 인삼 현장 방문
홍삼이 남성 정력에 좋다며 권하자 시식하며 던진 한 마디
“우리 집사람에게는 그 얘기 하지 마세요.”

2005년 11월 신임 사무관과의 대화
여성 사무관이 대통령의 건강 유지 비결을 묻자
“대통령의 건강은 국가기밀입니다.”

참모들과도 격의 없는 농담도 즐겼다.
봉하에 내려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 집필에 몰두하고 있던 대통령은 책의 목차를 짜서 참모들에게 넘겨주며 이런 말을 덧붙여 내려 보냈다.
“헉! 나는 죽는 줄 알았다. 인자는 너거들이 죽을 차례다. 나는 한참 좀 쉬어야겠다.”
양정철 전 비서관의 증언이다.

그의 해학과 기지는 해외 순방에서 더 유감없이 드러났다.
윤태영 전 부속실장 증언을 중심으로 소개한다.

2004년 11월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대학 명예교수 위촉장 전달
“세계적으로 저명한 부에노스아이레스대학으로부터 명예교수 위촉장을 받아 매우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
이어 위촉장을 들고 사진 촬영을 한 후 한 마디 보탠다.
“그런데 이제 교수가 됐는데 위촉장을 읽을 수 없어 큰일입니다. 위촉장을 읽을 수 있도록 공부를 다시 하겠습니다.”

2004년 11월 브라질 방문시 룰라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대통령 표현을 빌리자면 ‘귀국해서 국민에게 자랑할 것이 한 보따리’일 만큼 많은 현안들이 해결되었다.
이에 대한 감사의 뜻을 대통령은 이렇게 표시했다.
“선물을 너무 많이 받아서 비행기가 뜰 수 있을지 걱정입니다.”

2004년 12월 폴란드 방문시 크바시니에프스키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대통령은 우리 측 참모를 소개하는 순서에서 정우성 외교보좌관의 이름이 생각나지 않았다.
“우리 외교보좌관, 이름이 뭐지요?”
다음 날 폴란드의 한국학과 교수와 학생 접견 자리
“폴란드 사람 이름은 외우기가 힘이 듭니다. 저는 매일 만나는 보좌관 이름을 기억 못해서 곤란할 때도 있습니다. 다행히 아내의 이름은 잊어먹지 않았습니다.”

2006년 12월 호주 방문 시 존 하워드 총리 주최 공식오찬 답사
대통령은 원고에 없는 얘기를 꺼내 들었다.
“불만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매년 60억 달러 적자를 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께 꼭 당부 드리고 싶습니다. 우리 한국은 배를 잘 만드니까 최소한 한국으로 석탄과 LNG를 싣고 갈 때 꼭 한국 배로 부탁드립니다. 또한 제가 여러 나라를 갔을 때, 한국 산 자동차와 휴대폰을 보면 그 나라에 무한한 친근감을 느낍니다. 내년에 또 다시 오는데 지금보다 훨씬 더 강한 친근감을 느낄 수 있게 각별히 배려해 주시기 바랍니다.”

존 하워드 호주 총리와 정상회담에서도 대통령은 수입 확대 요구라는 딱딱한 통상 문제를 유머감각을 발휘해 부드럽게 전달했다.
“호주산 철광석이 우리나라에 수입되어 자동차가 되었습니다. 이제 그 자동차들이 고향으로 가고 싶어 합니다.”

미국 대통령이 모범은 아니지만, 그들은 유머를 중시한다.
백악관에는 유머 담당 작가가 별도로 있을 정도다.
노 대통령 임기 마지막 해에 <대통령의 위트>라는 책이 출간되었다.
미국의 밥 돌 전 공화당 대통령 후보가 쓴 책이다.
여기 보면 역대 미국 대통령의 유머리스트 순위가 나온다.
1위 에이브러햄 링컨 : 가장 위대하고 가장 재미있었던 우리의 대통령
2위 로널드 레이건 : 배우로서 결코 타이밍이 어긋나는 법이 없었다.
3위 프랭클린 D. 루스벨트 : 그의 위트는 미국이 공황과 세계대전을 견뎌내는 데 도움이 됐다.

실제로 미국 대통령은 청중을 웃게 만드는 것이 대통령의 의무라도 되는 것처럼, 유머를 끊임없이 시도한다.

에이브러햄 링컨에게 정적 스티븐 더글러스 의원이 공격했다.
“당신은 두 얼굴을 가진 이중인격자요”
링컨이 받아쳤다.
“만약 내게 두 개의 얼굴이 있다면 하필 이런 중요한 자리에 이 얼굴을 가지고 나왔겠소.”
물론, 링컨이 잘 생겼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이해되지 않는 조크이다.

로널드 레이건의 조크는 위기상황에서 빛이 났다.
1981년 존 힝클리의 저격을 받고 긴급 후송되었을 당시,
간호사가 그의 몸에 손을 대자 “우리 아내에게 허락 받았나요?”
수술 집도의사에게 “당신들 모두 공화당원이겠지요?”
이러 유머가 알려지면서 지지율이 83%까지 올랐다.
하지만 다음 해 지지율이 30%까지 내려가자 참모들이 걱정했다.
“다시 한 번 총 맞으면 된다.”

영국의 처칠도 촌철살인의 유머로 유명하다.
처칠이 화장실에서 국유화를 주장하는 노동당수 애틀리와 만났다.
그의 옆자리가 비어 있었지만 처칠은 계속 기다렸다.
이를 본 애틀리가 이유를 묻자 처칠이 대답했다.
“큰 것만 보면 국유화하려고 하는 당신이 내 것을 보고 국유화하자고 달려들면 큰일 아니오.”

사실, 말이나 글에서 유머를 던지기는 쉽지 않다.
욕심나지만 두려운 게 유머와 조크다.
받아들여지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실패했을 때 감수해야 하는 썰렁함 때문이다.
그래서 유머나 조크는 용기를 필요로 한다.

그러나 쫄지 말자.
아니면 말고 정신으로 과감하게 도전해보자.
도전하면 50%의 성공 확률이 있지만, 시도하지 않으면 100% 실패뿐이다.

강원국 (라이팅 컨설턴트, 객원 필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