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문장 끝문장] 태도에 관하여, 임경선

*주: 세상에 좋은 답은 정해져있지 않다. 누군가에게 좋은 답이 다른 누군가에겐 좋은 답이 아닐 수 있다. 사람은 서로 다른 소우주이기 때문이다. 10년 간 칼럼과 방송를 통해 인생 상담을 해온 임경선 작가는 인생사에 대한 정형화된 ‘답’이 아닌 각자가 자신만의 답에 도달할 수 있는 ‘태도’를 추천한다. 그리고 ‘좋은 태도들’에 대해 이 책을 통해 감히 논해본다. 하지만 자신이 선택한 태도들을 강요하는 말투는 아니다.
그녀는 말한다. ‘살아가는 태도들에 대한 글을 쓰면서 내가 나 자신과 기쁘게 맺는 약속들이다.’

첫문장: 흔히들 내가 무엇을 진심으로 원하는지 알려면 자기 자신과 깊은 대화를 나누라고 한다. 나의 육체는 항상 나와 함께하기에 대화를 나누는 것은 언제라도 가능하다. 바로 그 점 때문에 나는 스스로를 소외시키며 내 안에 담긴 생각은 화석처럼 굳어 있다. 나의 생각을 끄집어내거나 마주하는 일은 어색하고 쑥스럽다. 그래서 책에서 발견한 좋은 글귀를 옮겨 써보기도 하고 자극을 받기 위해 강연을 들으러 가기도 한다. 조금 더 투자한다면 홀로 멀리 여행을 떠날 수도 있겠다. 몰랐던 나의 진심을 낯선 환경에서는 알 수 있을 것만 같다.

끝문장: 친구 관계뿐만이 아니라 연애에 있어서도 거절을 잘할 줄 아는 것이 상대를 도와주는 것이다. 내 마음을 줄 수 없을 때 상대에게 희망고문을 하지 않는 것, 나에게 마음을 주는 것에 기분이 우쭐해져 나도 모르게 상대에게 여지를 주고 있지 않는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당장에는 단칼에 잘라버린 그 상대의 잔인함에 치를 떨어도 속마음을 파악할 수 없는 태도로 오락가락 애매하게 구는 그 사람이 훨씬 더 고약한 것이다. 아니다 싶으면 서로 확실히 NO를 말하고 오로지 내가 기꺼이 책임을 질 수 있는 것에 대해서만 YES를 하는 것. 어른으로서 꼭 갖추고 싶은 습성이다

임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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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문장 끝문장] 뉴스의 시대, 알랭 드 보통

뉴스의시대

 

* ‘뉴스에 대해 우리가 알아야 할 모든 것’이라는 부제가 붙은 책이다. 왜 뉴스일까를 생각지도 않고 알랭드보통을 유행으로 탐닉하고, 또 책을 사고 있다. 책의 뒷면에는 “뉴스는 겁먹고 동요하고 괴로워하는 대중을 간절히 필요로 한다!”가 커다랗게 써 있다. 그것은 맞다.

시에서 뉴스를 얻기는
어렵다
하지만 사람들은 날마다 비참하게 죽는다
시가 발견한 것을 깨닫지 못하여
– 아스포델, 저 초록꽃, 윌리엄 카를로스 윌리엄스, 1955

첫문장
프롤로그
1
이 일은 사용설명서가 필요 없다. 왜냐하면 세상에서 가장 평범하고 쉽고 뻔한데다 특별한 구석이라고는 없는 활동이기 때문이다. 마치 숨쉬기나 눈을 깜빡이는 것과 같다.
보통 하루 이내의 간력을 두고(이따금 그 주기는 훨씬 짧아지기도 한다. 특히 불안한 상태라면 고작 십 분이나 십오 분이 될 수도 있다) 우리가 뭘 하고 있었던 간에 뉴스를 확인하기 위해 하던 일을 멈춘다. 앞서 마지막으로 뉴스를 일별한 이후 이 행성 곳곳에서 일어난 인류의 엄청난 성취, 재난, 범죄, 전염병, 복잡한 연애사에 관한 결정적 정보를 잇달아 투여받겠다는 기대를 품고 일상을 잠시 멈춘다.
이제부터 하게 될 일은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이 익숙한 습관을 지금보다 훨씬 더 이상하면서도 조금은 위태롭게 보이도록 해보려는 연습이다.
2
뉴스는 세상에서 가장 별나고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일이라면 그게 무엇이건 우리 앞에 제시하는 데 전념한다. 열대지방에 내린 눈, 대통령의 사생아, 접착쌍둥이에 관한 뉴스 같은 것이 그렇다. 그런데 온갖 이례적인 사건들을 이처럼 단호히 추적함에도 불구하고 뉴스가 교모히 눈길을 회피하는 딱 한가지가 있다. 그런 바로 뉴스 자신, 그리고 뉴스가 우리 삶에서 점하고 있는 지배적인 위치다. ‘인류의 절반이 매일 뉴스에 넋이 나가 있다’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언론을 통해 결코 접할 수 없는 헤드라인이다. 그 밖의 놀랍고 주목할 만하거나 부패하고 추격적인 일들은 무엇이든 드러내려고 닦달하면서 말이다.
… …

끝문장
결론
6
우리는 우리 주위를 둘러싼, 딱히 달변은 아닌 종들이 내건 훨씬 낯설고 보다 경이로운 헤드라인에 주목하기 위해 가끔 뉴스를 포기하고 지내야 한다. 황조롱이와 흰기러기, 거미딱정벌레와 까만 얼굴의 멸구, 여우원숭이와 어린아이들, 우리의 멜로드라마에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는 이 모든 생명체들은 우리의 불안과 자치도취를 상쇄한다.
뉴스가 더이상 우리에게 가르쳐줄 독창적이거나 중요한 무언가가를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아챌 때 삶은 풍요료워진다. 그때 우리는 타자와 상상 속에서만 연결되는 것을 거부할 것이다. 타자를 정복하고 망가뜨리고 만들거나 없애는 일을 그만둘 것이다. 아직 우리에게는 할당된 짧은 시간 속에서 견지해야 할 자신만의 목적이 있음을 자각하면서 말이다.

출처 : 뉴스의 시대, 알랭드보통, 문학동네, 2014년

[이달의 책] “커뮤니티 디자인” – 사람과 사람을 잇는 디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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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크15와 에이케이스는 다달이 ‘이달의 책’을 골라 함께 읽고 소감을 나누고 토론하고 있습니다. 이달엔 “커뮤니티 디자인(야마자키 료 지음, 민경욱 옮김, 안그라픽스, 2012)”을 읽었습니다.

1. 만드는 디자인에서 만들지 않는 디자인으로.

‘커뮤니티 디자인’이란 간단히 말해 사람과 사람 사이의 교류를 이끌어내는 디자인이다. 이 책의 저자 야마자키 료는 건축가, 랜드스케이프 디자이너로 활동하며 주택과 공원 등 하드웨어를 설계하고 디자인해왔다. 기존 공간을 허물어 대규모 뉴타운을 짓고, 그 곁에 공원을 만드는 도시화 과정은 살기에 편리할지는 몰라도 사람들 사이의 교류는 눈에 띄게 줄었다. 최근 50년간 일본은 ‘무연고 사회화’가 빠르게 진행되어 우울증, 자살, 고독사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떠올랐다. 이는 비단 도시만의 문제가 아니다. 농·어촌·산간 마을에도 인구가 줄면서 비슷한 문제를 겪는다. 야마자키 료는 이런 상황에선 무언가를 만드는 일에서 벗어나 ‘인간관계의 교류를 디자인해야 하는 건 아닐까?’ 하는 물음으로 여러 가지 시도를 했다. 이 책은 그 시도를 다양한 사례로 보여준다.

2. 지역 커뮤니티를 만들어 공원을 조성하고 운영한다.

공원은 하드웨어만 잘 갖추었다고 사람이 지속해서 찾지 않는다. 효고 현에 있는 아리마후지 공원은 지역 커뮤니티를 활성화해 해마다 비약적으로 방문객이 늘고 있다. 연을 만들어 날리는 커뮤니티, 늪지 식물을 관찰하는 커뮤니티, 놀이와 자연관찰 커뮤니티, 공원 센터 안에서 컴퓨터 교실이나 연주회도 진행한다. 활동하는 커뮤니티 숫자도 계속 늘어나고 있으며 이들이 입장객을 맞이하고 함께 즐기는 공원이 되었다.

오사카에 있는 이즈미사노 구릉 녹지는 공원 조성 단계에서부터 주민이 참여하고 있다. 공원 예정지인 황폐해진 뒷산에 들어가 마음에 드는 장소를 좋은 공간으로 바꾸고, 그곳에서 하고 싶은 활동을 전개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 일을 할 ‘파크레인저’를 양성하기 위해 해마다 지역 주민 가운데 40명을 뽑아 총 11회 강좌를 실시한다. 이를 수료한 사람이 파크레인저로 활동한다. 공원의 하드웨어 정비를 기존의 20%로 줄이고 나머지 80% 자원을 소프트웨어에 투입해 만들어가는 방식이다. 커뮤니티를 이용해 공원을 만들고, 완성된 공원을 운영하는 담당자를 디자인하게 된다.

3. 지역 주민의 이야기를 듣는 것에서 출발한다.

오사카의 요노 강 댐 건설이 중단되자 주민들은 몹시 반발했다. 홍수 예방과 모아둔 물의 활용 모두를 검토한 결과, 미래에 꼭 필요하지 않다는 타당한 판단이었지만 자신들의 터전을 내놓으며 희생한 주민들은 쉽게 이해할 수 없었다. 지역 피해 보상으로 제시한 건설 사업도 중단 위기다. 국토교통성과 지역 주민을 중재하기 위해 대학생들을 투입한다. 대학생들은 먼저 마을의 부녀자들과 만나 친교를 맺는다. ‘아줌마 네트워크’를 강화해 지역의 특색을 공유하고, 지역의 미래를 이야기하는 가운데 댐 사업과 제반 사업이 정말 필요한지를 다시 생각해 보는 계기를 만드는 것이다. 현지답사와 조사한 내용을 모아 자료집을 만들어 주민들에게 보고회를 열고, 지역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며 지지를 이끌어낸다.

지역에 직접 들어가 주민들과 만나고 얘기를 듣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이 책을 읽는 내내 느꼈다. 야마자키 료는 커뮤니티 디자인에 필요한 것은 ‘발군의 미소와 커뮤니케이션 능력’이라고 말한다.

4. 협력을 위한 워크숍 기술

책에 실린 사례마다 다양한 ‘워크숍’이 나온다. 지역 주민의 얘기를 듣거나 의견을 나누는 과정, 교육 과정, 아이디어를 만드는 과정 모두가 여럿이 함께하는 ‘워크숍’ 형식이다. 책상머리에서 혼자 하는 디자인이 아닌 협업이 필수인 일이라 그럴 터이다.

7개 섬으로 이루어진 가사오카 제도의 종합진흥계획을 세울 때 어떻게 워크숍을 활용했는지 간단히 살펴보자. 7개 섬이 저마다 이해관계가 달라 협력해서 종합진흥계획을 세우기 쉽지 않자, 섬의 어린이들이 어른들에게 종합진흥계획을 제안하는 방식을 택한다. 섬의 인구는 점점 줄고 어린이 수도 준다. 해가 갈수록 섬의 미래가 어두운데도 어른들은 행동하지 않는다. 7개 섬 5학년 이상 아이들 13명을 모아 4회에 걸쳐 워크숍을 시작한다.

1) 모두가 한마음으로 한팀이 되도록 게임 진행 2) 섬의 미래를 생각하는 일의 의미 전달 3) 섬의 특징과 과제 함께 찾기 4) 섬을 더욱 깊이 알기 위해 현지 조사 5) 마음에 드는 장소 사진으로 남기기 6) 10년 뒤의 이상적인 섬의 모습 생각하고 이야기하기 7) 섬 어른들 인터뷰 8) 전국의 마을 만들기 사례 조사

이 과정을 거쳐 ‘어린이 가사오카 제도 진흥계획’이 나왔다. 이 계획은 가사오카 시의 낙도진흥계획을 책정할 때 중요한 자료와 행정적 지침이 된다. 7개 섬 주민을 모은 발표회에서 어린이들은 연극형식으로 제안을 발표했다. 빈틈없이 꼼꼼하다. 그리고 흥미진진한 과정이다.

5. 좋은 아이디어는 ‘아니오.’라고 말하지 않는 데서 나온다.

이 책을 읽기 전인 지난 5월. 디자인문화진흥원에서 주최한 야마자키 료의 강연을 우연히 들었다. 강연 내용도 인상적이었지만, 마지막에 아이디어를 발전시키는 방법을 체험한 것이 기억에 남는다. 갑자기 무대에서 청중 사이로 내려온 야마자키 료가 옆 사람과 둘씩 짝을 짓게 했다. 모르는 사람과 둘이서 아이디어를 제안하고 발전시키는 과정이었다. 처음엔 한 사람이 무엇이든 좋으니 제안을 하고 다른 한 사람은 무조건 ‘아니오’라고 말하며 거듭 거절·부정하게 했다. 나중엔 상대의 제안에 자신의 제안을 덧붙여 아이디어를 만들도록 했다. 야마자키 료의 결론은 이랬다. ‘아니오’라고 말한 순간 상대는 마음을 닫고 말할 의욕을 잃게 된다. 터무니없는 얘기라도 거기에 다른 생각을 덧붙이다 보면 멋진 아이디어로 발전한다. 절대 ‘아니오.’라고 말하지 말 것!

내 옆자리 짝은 ‘이 강연 끝나고 친구와 함께 청계산에 가기로 했다. 청계산이 참 좋다는데 같이 갈 생각이 있느냐?’는 제안을 했다. 나는 끝나면 ‘딴 데 갈 데가 있다’고 거절하고, ‘청계산 이미 가봤다. 굳이 또 갈 생각 없다’며 재차 거절했다. 그다음 거절하지 않고 아이디어를 덧붙일 땐 ‘그럼 내가 볼일을 마치려면 두세 시간이 걸리는데 시간을 좀 늦추어 같이 출발할 수 있겠느냐’고 제안했고 상대가 제안을 받아들였다. 물론 우리는 야마자키 료가 시키는 대로 충실히 따라 했을 뿐이다. 강연이 끝나고 ‘약속(?)’과는 다르게 가벼운 인사를 나누고 헤어졌지만, 만약 실습 시간이 길어서 상대와 더 많은 얘기를 나누었다면 어찌 됐을지 모를 일이다. 사람 사이의 교류는 우선 얼굴을 맞대고 만나는 데서 출발하는 건 틀림없는 것 같다.

서채홍

책 사진: 박혜림

[이달의 책] Listen : 5분 경청의 힘 – 나쁜 청자(聽者)이십니까?

*주 : 피크15와 에이케이스는 매달 ‘이달의 책’을 선정하여 읽고 함께 모여 소감을 나누고 토론하고 있습니다. 지난 2월에는 피터 힌센이 쓴 ‘뉴 노멀’이었고 3월의 책은 바로 ‘리슨’이었습니다. 오늘 책에 대해서 대화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소감은 다양했고 고민은 비슷했습니다. 책의 효과일까요? 주의깊게 귀를 기울이고 대화하는 시간이었습니다.

 

1. “비즈니스의 오진은 정확한 정보를 획득하지 못해서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필요한 정보를 충분히 입수할 수 있는 상황에서도 정보를 찾아낼 줄 몰라서, 혹은 눈 앞에 있는 정보를 보지 못해서 사람들은 그것을 놓치곤 한다. 그 이유는 바로 그가 형편없는 청자이기 때문이다”

 

2. 버나드 페라리가 쓴 <Listen: 5분 경청의 힘>은 CEO를 대상으로 비즈니스 의사결정에서 듣는 일의 중요성을 사례를 들어 설명하고 경청의 노하우를 담은 책입니다. 존스홉킨스 경영대학 학장인 저자는 외과의사, 변호사 출신으로 맥킨지앤컴퍼니에서 20년간 경영컨설턴트로 활동하고 기업의 조직전략 컨설팅 회사 CEO라고 합니다. 그가 살아온 이력답게 책에서 소개되는 사례는 조직의 리더들이고 책은 고위직 경영자들의 통찰력과 리더십을 위해 쓰여졌습니다.

 

Listen : 5분 경청의 힘

Listen : 5분 경청의 힘

 

 

3. 의사 출신답게 먼저 진단 도구로서 6가지 나쁜 청자의 유형을 소개하는데요. 조직 경영인이 아니더라도 자신을 살펴볼 수 있고 주위의 사람들에 대입할 수 있어 인상적이었습니다.

 

4. ‘들어 봐’로 말을 시작하고 ‘맞지?’로 끝내는 <고집쟁이형>, ‘터무니없는 소리하고 있군. 당신은 바보야’ 속으로 상대방의 생각이 틀렸다고 확신하는 <심술쟁이형>, 장황한 서론과 삐딱한 질문을 늘어놓으며 자신이 의도한 대로 바라는 대답을 이끌어내는 일방적 커뮤니케이터인 <긴 서론형>, 상대방의 말에 아랑곳하지 않고 같은 말을 끝없이 되풀이하고 대화에 열중하는 것처럼 보이나 자신의 생각에 집착하고 강박적으로 매달리는 <돌림노래형>, 문제가 무엇인지 합의도 되기 전에 자신이 제일 똑똑한 사람이 되어야 직성이 풀리는 욕심 많은 어린아이처럼 문제가 생긴 즉시, 질문을 받는 즉시 해답 내놓으려는 헛똑똑이 <정답맨형>, 회의 시간에 정중한 태도로 상대의 말을 들어주는 것처럼 보이나 뛰어난 연기일 뿐 상대에게 좋은 인상을 남기는 것이 목적이고 회의 때 오고간 정보를 충분히 활용하지 못해 결국 잘못된 결정을 내리는 <가식형>.

 

5. 이 책은 3장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첫 번째 챕터인 ‘귀를 기울여라’는 경청의 기본적인 태도와 방해요소에 대한 툴을 제시하고 두 번째 ‘생각을 정리하라’는 경청을 통해 얻는 기본적인 정보를 바탕으로 중요한 정보를 분류해내고 효과적인 의사결정을 위해 질문의 노하우를 전합니다. 마지막 ‘마음을 움직여라’는 경청이 현명한 판단을 이르게 하는 길임을 다시 강조하고 경청의 문화를 조직에 스며들게 하는 방법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6. 경청이란 수동적인 행위가 아니라 고도의 집중력과 훈련을 요하는 어려운 일(hard work)라 합니다. 그냥 듣는 행위는 쉽지만 잘 듣는 건 지난한 일입니다. 경험상 동상이몽 회의 사례는 일상적이죠.

 

7. 동전의 양면처럼 듣기 위해선 말하는 상대가 있어야 합니다. 상대를 존중하고 제대로 듣기 위해선 질문의 노하우가 필수이며 이를 통해 상대가 알고 있는 정보와 아이디어를 끌어내는 일, 그것이 경청의 핵심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정재홍

[첫문장, 끝문장] 삼십세, 잉게보르크 바하만

삼십세

삼십세

‘또 하루 멀어져 간다
내뿜은 담배 연기처럼
작기 만한 내 기억 속에
무얼 채워 살고 있는지
점점 더 멀어져 간다
머물러 있는 청춘인 줄 알았는데
비어가는 내 가슴 속엔
더 아무 것도 찾을 수 없네’ -김광석 서른즈음에-

‘서른’이란 나이는 20대 젊은이들에겐 막연한 무게감과 공포감을 주는
29세의 12월을 보내고 있는 이에겐 씁쓸한 체념을 선사하는
30대를 지난 중장년층에겐 지난 날의 추억이 되는 묘한 인생 기점인 것 같습니다.

오늘은 독일 여류작가 잉게보르크 바하만의 산문집을 엮은 ‘삼십세’를 소개합니다.
이 책은 총 7개 단편 중 ‘삼십세’란 단편을 대표 제목으로 하고 있습니다.
작가는 29세 생일부터 30세에 이르는 일년간의 내적 갈등과 고뇌를 그리고 있습니다. 소설 속 화자는 안간힘을 쓰며 하루하루를 버텨나갑니다. 한없이 좌절하기도, 여기에서 벗어나려 몸부림치기도, 마지막엔 희망을 품어보기도 합니다.
6개 단편들의 주인공들도 서른이란 나이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흥미로운 구조이기도 합니다.

이는 그녀의 인생에서 서른이란 나이가 특별한 순간이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녀는 원래 시인이었습니다. 꼭 서른이 되던 해 그녀는 두번째 시집 <대웅좌의 부름>을 통해 촉망받는 대시인으로 평가받지만, 이때를 기점으로 ‘시의 침묵기’에 접어들고 맙니다. 단 한편의 시집도 펴내지 못합니다. 이후 그녀는 산문 작가로 전향해 작품 활동을 이어나갑니다. 그녀에게 ‘삼십세’는 절박함으로 가득했던 시기였습니다.

‘어떠한 기회에 부딪혀도 그는 긍정을 했던 것이다. 우정에도, 사랑에도, 무리한 요구에도. 하지만 이 모든 것이 항상 일종의 실험으로서, 또한 몇 번이고 거듭될 수 있는 것으로서였다. 그에겐 세계라는 것이 취소가 가능한 것으로 보였고 자기 자신까지 취소가 가능한 존재로 여겨졌던 것이다.

그는 지금처럼 자신에게 30세의 해의 막이 오르리라고는, 판에 박힌 문구가 자신에게도 적용되리라고는, 또한 어느 날엔가는 자신도 무엇을 진정 생각하고, 무엇을 진정 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어야 하리라는 것을, 그리고 자신에게 진실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고백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한순간도 걱정해본 적이 없었다. 천 한 개의 가능성 중에서 천의 가능성은 이미 사라지고 시기를 놓쳤다고는 – 혹은 자기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가능성은 단 하나뿐이니까 나머지 천은 놓칠 수밖에 없다는 것을 한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그는 이제껏 한번도 의혹에 빠져본 적이 없었다… 그는 이제껏 무엇 하나 겁내본 적이 없었다. 지금에야 그는 자신도 함정에 빠져 있음을 깨닫고 있는 것이다.’ -17, 18페이지-

그녀가 바라본 서른입니다.
여러분에게 이때는 어떤 시기였나요?
그녀처럼 고뇌 속에서도 작은 희망을 품어보는 시기였나요?

첫문장: 30세에 접어들었다고 해서 어느 누구도 그를 보고 젊다고 부르는 것을 그치지는 않으리라. 하지만 그 자신은 일신상 아무런 변화를 찾아낼 수 없다 하더라도, 무엇인가 불안정해져간다. 스스로를 젊다고 내세우는 것이 어색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아마도 곧 잊어버리게 될 어느 날 아침, 그는 잠에서 깨어난다. 그리고는 문득 몸을 일으키지 못하고 그 자리에 그대로 누워 있는 것이다. 잔인한 햇빛을 받으며, 새로운 날을 위한 무기와 용기를 몽땅 빼앗긴 채. 자신을 가다듬으려고 눈을 감으면, 살아온 모든 순간과 함께, 그는 다시금 가라앉아 허탈의 경지로 떠내려간다. 그는 가라앉고 또 가라앉는다. 고함을 쳐도 소리가 되어 나오지 않는다. (고함 역시 그는 빼앗긴 것이다. 일체를 그는 빼앗긴 것이다!) 그리고는 바닥없는 심연으로 굴러 떨어진다. 마침내 그의 감각은 사라지고 그가 자신이라고 믿었던 모든 것이 해체되고 소멸되어 무(無)로 환원해버린다.

끝문장: 그는 생기에 넘쳐 닥쳐올 것과 손을 잡았다. 그리고 일을 생각하며 저 밑 병실 문을 어서 나갈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불행한 사람들, 병약한 사람들, 빈사의 사람들 곁은 떠나서. 내 그대에게 말하노니 – 일어서서 걸으라. 그대의 뼈는 결코 부러지지 않았으니.

이현동

출처: 문예출판사, 1997년 중쇄

[첫문장, 끝문장] 이탈로 칼비노, 왜 고전을 읽는가

이탈로 칼비노

*주: 밖에는 칼바람에 우산이 뒤집히고, 따뜻한 전기장판을 틀어 놓은 침대로만 파고들고 싶은 날씨입니다. 이불 안에서 심장을 짜릿하게 하는 고전 한 편 읽으시는 것은 어떠신가요?

이탈로 칼비노는 고전을 예찬한 이탈리아 문학가입니다. 많은 고전들은 스스로의 작품에 녹아든 자양분이 되었습니다. 그는 고전에 대한 기고글을 많이 썼는데, 그 내용이 모여 <왜 고전을 읽는가>로 완성되었습니다. 그는 서문에 고전을 14가지로 정의했습니다. 여러분은 고전을 어떻게 정의하시는지요? 잠시 생각해보신 후 아래 발췌한 글을 읽어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 왜 고전을 읽는가.

고전을 왜 읽는지를 알려면 고전의 정의를 알아야 한다.

1. ‘고전이란 사람들이 ’나는 000을 다시 읽고 있어.‘라고 말하지 ’나는 지금 000을 읽고 있어‘라고 말하지 않는 책이다.

동사 ‘읽다’ 앞에 붙은 ‘다시’라는 말은 유명 저작을 아직 읽지 않았음을 부끄러워하는 궁색한 변명에 해당한다. 그들을 안심시킬 수 있는 말을 하자면, 아무리 폭넓게 책을 읽어왔다고 해도 읽지 못한 책이 아주 많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한 예로 프랑스 문학가 미셸 뷔토르는 미국에서 문학을 강의하는 수 년 동안 사람들이 자꾸만 자신이 한 번도 읽은 적이 없는 에밀 졸라에 대해 질문해오는 통에 지쳐버렸다고 한다. 이 때문에 뷔토르는 <루공마카르 총서>를 통독하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그 책이 자신이 상상하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작품임을 깨닫게 되었다고 한다. <루공마카르 총서>는 신화적인 인물의 계보학과 우주 기원론을 다룬 너무나 멋진 책이었던 것이다. 뷔토르는 자신의 이러한 발견을 이를 주제로 한 훌륭한 논문으로 남겼다.

이러한 사례를 통해 우리는 위대한 작품을 처음 읽을 때 매우 독특한 즐거움을 느낄 수 있으며 그러한 즐거움에는 어린 시절 읽을 때 느낀 것과는 매우 다른 기쁨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모든 경험이 그러하겠지만 어린 시절에는 읽는 책 모두에 독특한 흥미와 중요성을 부여하게 마련이다. 반면 성인이 되어 읽으면 세밀한 부분과 다양한 면모 또 그 의미를 감상하게 된다. 따라서 다음과 같은 또 다른 정의를 내려볼 수 있다.

2. 고전이란 그것을 읽고 좋아하게 된 독자들에게는 소중한 경험을 선사하는 책이다. 

그러나 가장 좋은 조건에서 즐겁게 읽을 수 있는 기회를 얻은 사람만이 그러한 풍부한 경험을 할 수 있다. 어린 시절에는 인내심도 부족하고 집중력도 약한 데다 읽는 방법도 서툴고 경험도 부족하기 때문에 큰 가치를 얻지 못 할 수도 있다. 이러한 독서가 큰 의미를 주는 것은 어린 시절의 독서가 우리가 생각의 틀을 형성하는 데 기여했을 때다.

기억에서 사라졌을지라도 성인이 되어 책을 다시 읽으면서 우리는 내면에 자리 잡고 있는 핵심을 발견하게 된다. 여기에서 다시 고전을 정의할 수 있다.

3. 고전이란 특별한 영향을 미치는 책들이다.

그러한 작품은 우리에 각인될 때나 집단의 무의식에 있을 때 특별한 영향력을 발휘한다. 그래서 우리는 성인이 되어도 어린 시절 인상 깊게 읽었던 작품에 대한 재발견을 반드시 하게 된다. 작품은 그대로이지만 우리 자신이 작품 자체를 바꿔놓기도 한다. 또 작품을 다시 읽을 때마다 그 작품을 새로운 것으로 받아들이기도 한다. 따라서 읽는다고 말하느냐, 다시 읽는다고 말하느냐는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여기서 고전을 다시 정의내릴 수 있다.

4. 고전이란 다시 읽을 때마다 처음 읽는 것처럼 뭔가를 발견한다는 느낌을 갖게 되는 책이다. 

5. 고전이란 우리가 처음 읽을 때조차 우리가 다시 읽는다는 느낌을 주는 책이다.

6. 고전이란 독자에게 들려줄 것이 무궁무진한 책이다.

7. 고전이란 이전에 행해졌던 해석과 함께 찾아오는 법이며 그것이 한 문화 혹은 여러 다른 문화들에 남긴 과거의 흔적들을 우리 눈앞에 다시 끌어오는 책이다.

이러한 정의는 고대와 현대의 고전 모두에 해당된다. 오디세이아를 다시 읽는다면 나는 분명 호메로스의 글을 읽는 것이겠지만 오디세우스의 모험이 수 세기 동안 사람들에 의미했던 모든 것을 떠올리게 된다. 또한 원전이 그러한 의미를 함의하고 있는지 찾아보게 될 것이다.

카프카를 다시 읽는다면 많은 사람들이 형용사로 쓰는 ‘카프카적인’의 의미에 동의하는지 아닌지를 작품 속에서 찾을 것이다.

뚜르게네프의 <아버지와 아들>이나 도스토예프스키의 <악령>을 읽는다면 나는 책 속의 인물이 우리 시대에 어떠한 유형으로 끊임없이 부활하고 있는지 생각할 것이다. 고전을 읽을 때마다 우리는 이전에 생각했던 이미지와 비교해보면서 새삼 놀라게 된다. 이것이 고전에 대한 2차 서적이나 해석본을 피하고 원전을 직접 읽으라고 계속해서 충고해야 한다. 2차 서적들을 읽지 않을 때 고전에서 얻을 수 있는 것들을, 수많은 서문 비평문 참고 서적들은 연막처럼 차단한다. 여기에서 도출될 수 있는 정의는 다음과 같다.

8. 고전이란 그것을 둘러싼 비평담론이라는 구름을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작품이다. 그리고 그러한 비평의 구름들은 언제나 스스로 소멸한다.

고전이라고 해서 반드시 우리가 미처 알지 못 하는 것들을 가르쳐줄 필요는 없다. 고전은 때때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어떤 것을 혹은 우리가 잘 안다고 믿는 사실을 발견하기도 하는데 고전 작품이 그것을 처음 알려줬다는 사실을 혹은 그것이 다른 작품과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는 못 한다. 잘 아는 사실을 고전에서 발견할 때 우리는 놀라워하면서도 큰 만족감을 느낀다. 우리가 그러한 사실의 원천을 발견하거나 다른 작품과 맺는 관계를 알게 될 때 어떤 저자가 그런 이야기를 처음 했는지를 알게 될 때 말이다.

9. 고전이란 사람들로부터 이런 저런 얘기를 들어 알고 있다고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실제로 그 책을 읽었을 때 더욱 독창적이고 예상치 못한 생각들을, 창의적인 생각들을 발견하게 되는 책이다.

물론 이러한 일들은 고전작품이 독자와 개인적인 관계를 맺을 때 일어난다. 작품을 읽을 때 아무런 불꽃이 일지 않는다면 독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의무감이나 무조건적인 경외의 관점에서 읽는 것은 소용이 없다. 오직 그 작품이 좋아서 읽어야 한다. 학교에서 읽는 경우를 제외하고 말이다. 좋아하든 좋아하지 않든 일정한 고전을 습득하도록 하는 것은 학교 교육이 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작품들 가운데서 우리는 나중에 나만의 고전을 발견하게 된다. 학교는 기본적인 틀을 가르쳐줄 뿐이다. 자유롭게 읽는 때에야 우리는 자신만의 책을 발견할 수 있다.

내가 아는 뛰어난 미술사가 한 명은, 많은 책 중에서도 피크위크문서를 특히 아끼는 책으로 꼽는다. 그는 항상 디킨스의 작품에 나오는 이야기를 인용하면서 자기 삶의 모든 부분을 이 책에 등장하는 에피소드와 연관시키곤 했다. 그가 보는 우주며 세계를 보는 철학은 조금씩 전체적인 동일화 과정을 거치더니 피크위크문서 그 자체가 되어갔다.

10. 고전이란 고대 전통사회의 부적처럼 우주 전체를 드러내는 모든 책에 부치는 이름이다.

그러나 고전은 개인과 일치되는 관계뿐만 아니라 반대의 관계를 정립하기도 한다. 나는 장 자크 루소가 행하고 생각했던 것을 모두 마음에 간직하고는 있지만 한편으론 그것을 반박하고 비판하며 맞붙어 논쟁하고픈 열망을 시시때때로 느낀다. 물론 이는 그와 나의 기질이 달라서일 수도 있다. 그러나 여기에서 멈춘다면 나는 단지 그의 작품을 읽지 않으면 그만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를 역시 나의 작가로 인정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나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11. 고전이란 우리와 무관하게 존재할 수 없으며 그의 작품과 맺는 관계 안에서 마침내는 그의 작품과 대결하는 관계 안에서 우리가 스스로를 규정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책이다.

여기서 고전이라는 단어를 예스러운 것이나 어떤 양식 혹은 그것이 지닌 권위에 따라 구별하지 않고 있음을 굳이 증명할 필요는 없으리라 믿는다. 여기서 내가 고전을 구분하는 기준은 어떤 문화 안에서 고유의 자리를 확보하고 있는 작품. 옛날 책이든 당대의 책이든 상관없이 그 작품이 우리에게 미치는 반향의 효과뿐이다. 따라서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을 것이다.

12. 고전이란 그것들 사이에 존재하는 일련의 위계 속에 속하는 작품이다.

다른 고전을 많이 읽은 사람은 고전의 계보에서 하나의 작품이 차지하는 지위를 쉽게 알아차린다.

동시대를 잘 이해하게 해주는 다른 책들을 제쳐두고 왜 굳이 고전을 읽어야 하는가? 여기에 다음과 같은 질문이 이어질 수 있다. 고전을 읽기 위해서는 그것을 어떤 관점에서 읽을지 설정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작품도, 독자도 무시간적인 구름 속에서 길을 잃고 말 것이다. 고전을 읽으면서 최대한의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동시대에 쏟아지는 글들은 적절한 분량만큼 섭취해가며 읽어야 한다.

이상적인 상황은 한 고전작품 속에서 잘 울리는 음악을 따라가면서 현재에 관한 모든 것들은 창밖의 자동차 소음, 날씨의 변화와 같은 저 바깥의 잡음처럼 인식하는 것이다. 그런데 실제로 사람들은 이와는 반대로 행동하기 일쑤다. 사람들은 고전의 실체를 먼 메아리처럼 인식한다. 지금 발생한 일들에 관한 소식은 텔레비전 소리처럼 쩌렁쩌렁 듣고 고전은 저 바깥에서 들려오는 머나먼 메아리처럼 인식하는 것이다. 따라서 다음과 같은 정의를 덧붙여야 한다.

13. 고전이란 현실을 다루는 모든 글을 배경 소음처럼 물러나게 만드는 글이다.

그렇다고 해서 고전이 이 소음들을 다 없앨 수 있는 것은 아니다.

14. 고전이란 배경 소음처럼 존속해서 남는 작품이며 이는 고전과 가장 거리가 먼 현재에 관한 글들이 그 주변을 에워싸고 있을 때도 마찬가지다. 

이제 나는 지금까지 쓴 글을 다시 써야 할 것 같다.

고전이란 우리가 누구이며 우리가 어디에서 왔는지를 이해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라고. 그리하여 이탈리아의 고전이 이탈리아인들이 자신의 문화 속 고전작품들을 다른 외국의 고전들과 비교하는 데 필수적이며 외국의 고전 또한 우리가 이탈리아 문학을 가늠하는 데 필수적이라는 것 또한 보다 명확하게 지적하고 싶다. 그러고 나서 이 글을 진정으로 다시 써야 할 것이다.

고전은 무언가에 유용하기 때문에 읽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고. 우리가 인정할 수 있는 단 한 가지 사실은 고전은 읽지 않는 것보다 읽는 것이 낫다는 것이다. 혹여 누군가가 고전을 구태여 읽어야 하냐고 반문한다면 나는 에밀 씨오랑의 다음 글을 인용할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독약이 준비되는 동안 피리로 음악 한 소절을 연습하고 있었다. “대체 지금 그게 무슨 소용이오!” 누군가가 이렇게 묻자 소크라테스는 다음과 같이 답했다. “그래도 죽기 전에 음악 한 소절은 배우지 않겠는가.”

[첫문장, 끝문장] 알랭 드 보통의 영혼의 미술관, 알랭 드 보통 (2013년작)

알랭 드 보통의 영혼의 미술관

알랭 드 보통의 영혼의 미술관

에이케이스에선 ‘[디자인 커뮤니케이션] 미술관은 우리의 깊은 내면을 위한 ‘약국’이다 – 알랭 드 보통이 생각하는 미술관의 의미와 커뮤니케이션 방식’이란 글을 소개했었다. (링크: https://acase.co.kr/2013/10/14/designcomm15/) 그는 미술품이 우리 내면을 힐링하는 ‘도구적 역할’을 해야 하며, 이를 위해 학술적, 역사적인 분류로 나뉜 미술관 전시 방식도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그의 생각이 담긴 ‘알랭 드 보통의 영혼의 미술관’이 국내 출판되었다.

‘이 책은 (디자인, 건축, 공예를 포함한) 예술이 관람자를 인도하고, 독려하고, 위로하여 보다 나은 존재 형태가 되도록 이끌 수 있는 치유 매개라고 제언한다. 도구는 소망을 이룰 수 있게 해주는 신체의 연장물로, 우리에게 주어진 신체 구조상의 취약점 때문에 필요가 발생한다. 예술의 목적을 발견하려면 우리는 어떤 문제들이 우리의 마음과 감정을 다스리는 데 필요하면서도 우리에게 곤란함을 안겨주는지 물어야 한다. 예술은 어떤 심리적 취약점에 도움이 될 수 있는가? 지금까지 일곱 개의 취약점이 확인되었고, 그러므로 예술에는 일곱 가지 기능이 있다고 볼 수 있다.’ -머리말-

예술의 일곱 가지 기능뿐 아니라 사랑, 자연, 돈, 정치 등에 대한 그의 생각을 그림을 통해 드러낸다. 스스로 엄선해 수록한 140여 미술품은 훌륭한 조미료로 쓰인다. 미술관에 대한 왠지 모를 부담을 느끼거나, 치유가 필요한 사람이면 꼭 일독을 권한다. 물론 그의 팬들도 좋아할 것이다. 특유의 통찰과 세련된 문체가 어김없이 배어있다. 그가 생각한, 예술의 손길이 필요한 심리적 취약점 7개를 다룬 본문 일부를 발췌, 소개한다. 때론 글보다, 한 장의 그림이 묵직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1. 희망

우리는 거의 항상 장밋빛의 감상적인 눈으로 세상을 보기는커녕 과도한 우울로 고생한다. 우리는 세계의 문제와 부당함을 잘 알고 있지만, 단지 그 앞에서 작아지고 약해지고 초라해질 뿐이다. 유쾌함은 멋진 성과이고, 희망은 축하할 일이다. 낙천주의가 중요하다면, 이는 우리가 낙천적이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는가에 따라 많은 결과들이 좌우되기 때문이다. 이 노력은 성공의 중요한 요인이다. 우리의 운명은 재능의 부족이 아니라 희망의 부재가 결정할 수 있다.

앙리 마티스, 춤 2, 1910년

앙리 마티스, 춤 2, 1910년

마티스의 그림에서 춤을 추는 사람들은 이 행성이 고민거리로 가득하다는 사실을 부인하지 않지만, 우리와 현실의 관계가 껄끄러우며 그런 관계가 일상적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그들의 태도는 우리에게 용기를 줄 수 있다. 그들은 세상에서 어쩔 수 없이 마주치게 되는 거절과 굴욕에 대처할 줄 아는 우리 자신의 유쾌하고 무사태평한 능력을 일깨워준다. 희망은 이런 모습일 수도 있는 것이다.

2. 균형 회복

예술의 한 역할이 우리의 정서적 균형을 회복시켜주는 데 있다는 생각은, 왜 사람들의 미학적 취향이 그렇게 다른가라는 곤란한 질문에도 답이 되어줄 법하다. 왜 어떤 사람은 미니멀리즘 건축에 이끌리고, 어떤 사람은 바로크 건축에 이끌릴까? 이런저런 종류를 더 좋아하는 성향은 사람들의 다양한 심리적 차이를 반영한다. 우리는 자신의 내적인 나약함을 보완해줌으로써 우리를 생존의 평균치로 되돌려놓는 예술작품을 갈망한다. … 삶에서 사라지고 있는 것을 보완하기 위해 예술을 이용할 수 있는 주체는 개인뿐만이 아니다. 인간 집단, 더 나아가 사회 전체도 우리의 삶을 균형 있게 잡아주기 위해 예술에 의존할 수 있다.

조선왕조, 백자 달항아리, 17-18세기

조선왕조, 백자 달항아리, 17-18세기

도덕적 메시지, 보다 나은 자아로 거듭나라는 메시지는 애초에 우리에게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 듯 보이는 예술작품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한국의 백자 달항아리가 있다. 이 항아리는 쓸모 있는 도구였다는 점 외에도, 겸손의 미덕에 최상의 경의를 표하는 작품이다. … 가마 속으로 뜻하지 않게 불순물이 들어가 표면 전체에 얼룩이 무작위로 퍼졌다. 이 항아리가 겸손한 이유는 그런 것들을 전혀 개의치 않는 듯 보여서다. 그 결함들은 항아리가 신분 상승을 향한 경주에 무관심하다고 시인할 뿐이다. 거기엔 자신을 과도하게 특별한 존재로 생각해달라고 유구하지 않는 지혜가 담겨 있다. 항아리는 궁색한 것이 아니라 지금의 존재에 만족할 뿐이다. 세속의 지위 때문에 오만하거나 불안해하는 사람에게 또는 이런저런 집단에서 인정받고자 안달하는 사람에게, 이런 항아리를 보는 경험은 용기는 물론이고 강렬한 감동을 줄 수 있다.

3. 자기 이해

우리는 자기 자신을 투명하게 알지 못한다. 우리에겐 직관, 의혹, 육감, 모호한 공상, 이상하게 뒤섞인 감정이 있으며, 이 모두는 단순 명료한 판단을 방해한다. 여러 기분을 느끼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 그러다가 이따금 예전에 느꼈지만 명확히 알지 못했던 어떤 것을 정확히 파악한 듯 보이는 예술작품들과 우연히 마주한다.

사이 툼블리, 파노라마, 1957년

사이 툼블리, 파노라마, 1957년

사이 툼블리가 만든 검고, 긁힌 자국이 있는, 암시적인 표면을 찬찬히 살펴보면 내가 지금까지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나 자신의 일면을 비춰주는 거울 앞에 선 느낌이 든다. 단, 지금 거울에 비춰볼 것은 어금니가 아니라 내면의 경험이다. 당혹스러우리만치 포착하기 어려운 기분 또는 심리(또는 영혼)의 상태를 경험할 때가 있다. 우리는 그런 상태를 자주 경험하지만, 그것을 따로 떼어 확인하거나 들여다보지는 못한다. 톰블리의 작품은 내면의 삶의 한 부분을 보여주기 위해 특수 제작한 거울과 같다. 내면에 집중함으로써 자아를 더 분명하고 더 쉽게 확인할 수 있도록 의도적으로 제작되었다. 이 작품은 우리가 어떤 것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거의 알 듯하면서도 아직 그 실마리가 조금 부족할 때의 기분에 집중하고 있다. 우리는 곧 이해할 듯하면서도 아직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이 알쏭달쏭한 순간이 중요한 까닭은 성찰이 우리의 기대에 못 미치기 때문이다. 우리는 성찰의 과정을 포기한다. 우리는 사랑, 정의 또는 성공의 개인적 의미를 대부분 결정하지 못한 채 다른 것으로 넘어간다. 툼블리의 그림을 보는 동안 우리는 중대한 생각에 도달할 수 있다. ‘중요한 문제들에 대해 생각하다 결국 혼란에 빠지고 만 나를 충분히 인식하지 못했구나. 그 부분에 제대로 주목하지 못했구나. 하지만 지금 나는 예술이라는 거울에 비친 나의 바로 그런 모습을 보고 있다. 이제 나는 이런 내 모습을 더 소중히 여길 수 있게 됐어.’

이현동

출처: 알랭 드 보통, <알랭 드 보통의 영혼의 미술관>, 문학동네, 2013년 초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