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국의 ‘두 대통령과 함께 한 전략적 글쓰기’를 마치며

오늘로 연재를 마치게 되었습니다.
연재된 글과 함께 더 좋은 글들이 모여 책이 나올 것으로 기대합니다.

스스로가 1인 뉴스룸이 되어야 하는 시대입니다.
전문적 글쓰기에 대한 연구와 기록은 우리 사회의 중요한 자산이기도 합니다.

강원국 전 청와대 연설비서관의 글은 그런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하겠습니다.
아무도 설명하고 기록하지 않았던 영역을 세상에 드러내었고, 스피치라이팅이라는 전문 세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친구가 되었습니다.
특히 청와대와 두 대통령의 글이라는 소재에 접근할 수 있다는 것은 굉장한 사례입니다.

또 강원국이라는 이름 옆에 붙은 ‘라이팅 컨설턴트’라는 직업 또한 반드시 필요한 직업이라고 판단합니다.

그동안 특별하고 좋은 글 보내주신 강원국 전 비서관께 깊은 감사드립니다.
함께 해주신 독자 여러분들에게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2013.12.31 에이케이스 운영진 드림

두 대통령과 함께한 전략적 글쓰기 시리즈

0. 연재를 시작하며 링크

1. 글쓰기에 대한, 내 인생 세 번의 질문 링크

2. 명문의 욕심없이, 내용에 집중하라 링크

3. 생각의 숙성기간을 가져라 링크

4. 뺄 것이 없을 때까지 줄여라 링크

5. 음주 글쓰기는 피하라 링크

6. 글을 시작하는 12가지 방법 링크

7. 글을 여러 사람에게 보여라 링크

8. 대통령 연설문 준비과정에서 보는 글쓰기 순서 링크

9. 글쓰기의 원천, 독서 링크

10. 말을 하고 글을 쓰며 이에 대해 책임지는 자, 그것이 리더다 링크

11. 긴장의 연속이었던 청와대 연설비서실 생활 링크

12. 좋은 글을 위해선 집중하고 몰입하라 링크

13. 독자를 의식하고 그들과 교감하라 링크

14. 인수위원회 시절, 2개의 연설문 링크

15. 적자생존 – 적는 자가 살아남는다 링크

16. ‘대통령 스피치라이터’란 자리 링크

17. 시간과 노력을 들여라 링크

18. 같기도, 다르기도 했던 두 대통령의 연설문 링크

19. 글의 마지막 인상 ‘맺음말’ 링크

20. 먼저 ‘핵심메시지’를 생각하라 링크

21. 퇴고를 통해 글이 완성된다 링크

22. 애드리브를 어떻게 볼 것인가? 링크

23. 단단한 뼈대에서 좋은 글이 나온다 링크

24. 어떤 글의 형식을 택할 것인가? 링크

25. 용기를 필요로 하는 그 이름, 글의 양념 ‘유머’ 링크

26. 독자의 입장에서, 최대한 쉽게 링크

27. 대통령이 강조했던 글쓰기 지침 링크

28. 진정성이 부르는 그 것, 감동 링크

29. 그 글 어떤 글이야? 기조 잡기의 중요성 링크

30. 조어와 카피의 천재, 대통령의 수사법 링크

31. 자기만의 글을 쓰기 위한 전략 네 가지 링크

[두 대통령과 함께한 전략적 글쓰기 31] 자기만의 글을 쓰기 위한 전략 네 가지

고유의 관점과 스타일이 있어야 한다.
– 자기만의 글을 쓰자

김대중 대통령에게 가장 많이 들은 말

“무엇이 되느냐 보다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하다. 모든 사람이 인생의 사업에서 성공할 수는 없다. 하지만 원칙을 가지고 가치 있게 살면 성공한 인생이고, 이런 점에서 우리 모두는 성공한 인생을 살 수 있다.”

이것을 ‘글’에 대비하여 얘기해보자.

“글을 잘 쓰려고 하기 보다는 자기만의 글을 쓰는 것이 중요하다. 모든 사람이 글을 잘 쓸 수는 없다. 하지만 자기만의 스타일과 콘텐츠로 쓰면 되고, 이런 점에서 우리 모두는 성공적인 글쓰기를 할 수 있다.”

생각과 스타일에 우열이 있을 수는 없다.
자신감을 갖고 자기 글을 쓰자.

그럼 자기 글이란 어떤 글인가?

첫째, 자기만의 관점이 있어야 한다.
자신의 관점 없이 이 사람 저 사람의 생각을 옮겨서 짜깁기를 하다 보면 흥부 옷처럼 정체불명의 총천연색 누더기 글이 된다.
나만의 소리, 자기 세계가 있어야 한다.
자기 세계가 관점을 만들고, 관점이 있어야 훌륭한 글이 된다.

언론에도 논조라는 게 있다.
똑같은 사실을 전해도 신문마다 해석은 다르다.
영화감독들에게도 각기 다른 경향이 있다.
각기 세상을 보는 시각, 각자의 세계관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노무현 대통령 말은 맞다.
“글은 자신의 가치관, 세계관대로 쓰는 것이다. 타당성만 있다면 튀는 것을 주저하거나 개의할 일이 아니다.”
노 대통령은 공직자를 기용할 때도 그가 쓴 글을 가져와 보라고 했다.
과거에 쓴 글을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고 했다.
저서나 신문 기고 글을 찾아보고 판단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정치인들에게 이런 당부를 했다고 한다.
“정치인에게는 그 사람 하면 떠오르는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첫째는 정책적 전문성이 필요하고, 두 번째는 정치적 정체성이 필요하다.”
이것이 바로 글의 논조다.

이어서 김 대통령은 자기 말을 하고, 자기 글을 써야 한다고 일침을 가한다.
“야당은 야당답게, 여당은 여당답게 일할 줄 알아야 한다. 그렇게 할 경우 자연히 상대로부터 비판의 대상이 되고, 심지어 비난과 모욕을 당하는 수가 있다. 그러나 이것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반대를 두려워해서 자기가 할 말을 못하는 리더, 모두로부터 좋은 말만 들으려고 하는 리더는 설사 좋은 사람이라는 소리는 들을지는 몰라도 결코 성공하는 리더가 되기는 어렵다.”

자기 글의 두 번째 조건은 자기 스타일대로 쓰는 것이다.
노 대통령은 본인이 구술해준 내용으로 글을 작성하여 보고해도 어느 때는 ‘이건 내 글이 아니네.’라며 다시 쓸 것을 주문하곤 했다.
‘노무현 문체’가 아닌 것이다.

‘불후의 명곡’이란 프로그램이 있다.
유명 가수의 인기가요를 후배 가수들이 부른다.
같은 노래인데, 전혀 다른 노래처럼 들린다.
편곡을 해서 자기 스타일로 부르기 때문이다.

화가도 문인도 그림과 글만 보고 그것이 누구의 작품인지 알 수 있는 경우가 많다.
화풍과 문체 때문이다.
뭐라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노무현에게도 노무현의 색깔이 있다.

관점과 스타일보다는 작은 얘기지만, 자기만의 느낌도 필요하다.
이것이 자기 글의 세 번째 조건이다.
같은 사물을 봐도 느낌은 각자 다르다.
일반적으로 얘기되는 것 말고, 자기만의 인상을 찾아내야 자기 글이 된다.
그런 포인트를 짚어내야 한다.
그게 없으면 그저 그런 글, 주인 없는 글이 되고 만다.
99%의 노력과 1%의 영감 중에 갈수록 1%의 영감이 더 중요해지는 까닭과 같다.
그것이 남과 나를 차별화하고 차이를 만드니까 그렇다.

누구나 아는 얘기지만, 자기만의 인상을 찾아내는 몇 가지 방법이 있다.

1. 의문을 갖는 것이다.
궁금하지 않으면 느낌도 없다.
의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것이 자기만의 느낌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2. 고정관념과 관성, 상투성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독일 극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 (Bertolt Brecht)의 소격효과(거리 두기)와 유사한 ‘낯설게 하기’, 역발상의 ‘뒤집어 보기’가 필요하다.
귀스타브 플로베르(Gustave Flaubert)가 주장한 ‘일물일어설(一物一語說)’에서도 벗어나는 게 좋다.
그 사물에 꼭 어울리는 말을 찾다보면 누구나 쓰는 상투적인 표현이 나올 수밖에 없다.

3. 통합적 사고이다.
A와 B를 합해서 새로운 C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4. 유연한 사고이다.
다른 사람의 것을 내 것으로 받아들일 줄 아는 개방적인 태도와 융통성이 있어야 한다.

결론적으로 얘기하면, 내가 중요하다.
내가 세상을 보는 방식, 나의 시선, 내 시각이 중요하다.
남의 눈치 볼 것 없다.
내 나름의 것이면 된다.
좀 건방져 보이더라도 확실하게 자신을 드러내자.
그리고 뻔뻔하게 우기자.
이게 내 생각인데 어쩔 거냐고. 끝.

강원국 (라이팅 컨설턴트, 객원 필진)

[두 대통령과 함께한 전략적 글쓰기 30] 조어와 카피의 천재, 대통령의 수사법

“인생은 아름답고 역사는 전진한다.”
– 수사법

미국 레이건 행정부 출범에 관여한 정치학자 월러 R. 뉴웰은 그의 책 <대통령의 조건>에서 대통령에게 필요한 10가지 자질 중의 하나로 ‘감동적인 수사법’을 들었다.
단, 조건이 붙었다.
적당히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김대중 대통령의 연설은 감동이 있다.
‘주옥같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왜 그럴까.
그의 말은 행동하는 삶에서 우려낸 것이다.
말의 성찬이 아니다.
그래서 같은 말도 감동이 있다.

“우리는 전진해야 할 때 주저하지 말며, 인내해야 할 때 초조해하지 말며, 후회해야 할 때 낙심하지 말아야 한다.”

“논리의 검증을 거치지 않은 경험은 잡담이며, 경험의 검증을 거치지 않는 논리는 공론이다.”

또한 김 대통령의 수사는 조리가 있다.
논리정연하다.
듣고 있으면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두렵지 않기 때문에 나서는 것이 아닙니다. 두렵지만, 나서야 하기 때문에 나서는 것입니다. 그것이 참된 용기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아무리 약해도 강합니다.”

“국민이 언제나 현명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민심은 마지막에 가장 현명하다. 국민이 언제나 승리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마지막 승리자는 국민이다.”

“역사는 우리에게 진실만을 말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역사는 시간 앞에 무릎을 꿇는다. 시간이 지나면 역사의 진실을 알게 될 것이다.”

또한 눈에 보이듯이 그려지고, 연상이 됐다.

“부산에서 출발한 열차가 서울을 거치고 평양을 지나 시베리아를 횡단해 파리와 런던까지 가는 날이 하루속히 와야 합니다.”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고 자유가 들꽃처럼 만발하며 통일에의 희망이 무지개처럼 피어오르는 나라를 만들고 싶다.”

노무현 대통령의 언어는 유쾌하다.
들으면 입가에 웃음이 번진다.

“혀는 짧은데 침은 길게 내뱉고 싶다.”
“초소에서 자는 놈들은 걸리는데, 아예 빠진 놈들은 걸리지도 않는다.”

누군가 그랬다.
노 대통령의 말은 갓 잡아 올린 생선 같다고.

“사진 찍으러 미국 가지 않겠다.”
“그럼 아내를 버리란 말입니까?”
“편지 100통을 써도 배달부가 전달을 안 한다.” (* 배달부는 언론 지칭)

그는 화려한 수사를 좋아하지 않았다.
담백한 것을 좋아했다.

“수사는 간결하고 공감대가 분명한 경우에만 효과가 있습니다. 알맹이 없는 의례적인 수사는 오히려 연설의 품위를 깎을 수 있습니다.”
<2006년 5월 몽골 대통령 만찬사에 대한 코멘트>

“좀 더 차분, 소박하게 다듬어 주시기 바랍니다.”
<2006년 6월 6.25전쟁 참전용사 위로연 연설문에 대한 코멘트>

반전이 있는 돌려 치는 수사도 자주 썼다.

2006년 5월 아랍에미리트 순방 시 경제인 오찬간담회
“비행기에서 끝없이 펼쳐진 사막을 보며 이 땅이 ‘신이 버린 땅’이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순간 경직되었던 좌중이 대통령의 다음 말로 환하게 미소 짓는다.
“하지만 내려와서 몇 시간이 안 돼 제 짐작이 틀렸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신은 이 나라에 석유를 주고, 이를 활용할 지도자를 주고, 지도자에게 지혜와 용기를 주었습니다.”

“세계질서가 어디로 가게 될지는 모릅니다. 그러나 어디로 가야 할지는 분명합니다.”

“선거를 의식해서 정책을 급조하지도 않겠지만, 선거 때문에 해야 할 일을 미루지도 않겠다.”

두 대통령이 공통적으로 주문한 것이 있다.
이해하기 쉽게 쓰라는 것.
비유법 같은 수사법도 이를 위해 필요하다는 것이다.

“정치가는 망원경처럼 사물을 멀리 넓게 봐야 하고, 동시에 현미경처럼 세밀하고 깊이 보기도 해야 합니다.”
<김대중 대통령>

“정책이 상품이면 정치는 생산설비입니다.”
<노무현 대통령>

두 대통령은 조어와 카피의 천재이기도 했다.

‘행동하는 양심’
‘철의 실크로드’
‘햇볕정책’
‘북방경제’
‘한반도시대’
<김대중 대통령>

‘사람 사는 세상, 깨어 있는 시민’
‘권력은 시장으로 넘어갔다.’
‘강물은 바다를 포기하지 않는다.’
‘농부는 밭을 탓하지 않는다.’
<노무현 대통령>

고대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수사학>에서 누군가를 설득하려면 에토스(ethos, 인간적 신뢰), 파토스(pathos, 감성적 호소력), 로고스(logos, 논리적 적합성)가 필요하다고 했다.
두 대통령이 남긴 말에서 이 세 가지를 한꺼번에 본다.

“인생은 아름답고 역사는 전진한다.”
<김대중 대통령>

“너무 슬퍼하지 마라.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는가?
미안해하지 마라.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
운명이다.”
<노무현 대통령>

강원국 (라이팅 컨설턴트, 객원 필진)

[두 대통령과 함께한 전략적 글쓰기 29] 그 글 어떤 글이야? 기조 잡기의 중요성

비장함이야, 축제 분위기야?
– 기조 잡기

무엇을 쓸 것인가, 즉 핵심메시지가 정해지면 그 다음에 해야 할 일은 글의 기조를 잡는 것이다.
기조를 설명하기는 쉽지 않은데, 글의 분위기라고 해야 하나?
예를 들면 광고에서 말하는 톤&매너(Tone&Manner), 영화나 연극에서 얘기하는 무드(mood), 패션에서의 스타일, 음악의 음조, 회화의 색조 같은 것이다.

속된 말로 쉽게 설명하면 이렇다.
“이번 경찰의 날 연설문은 띄워주는 거야, 조지는 거야?”
“돌아오는 광복절 연설문은 밝게 갈 거야, 무겁게 갈 거야?”
“무역의 날 연설은 비장함이야? 축제 분위기야?”
이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이 기조 잡기이다.

다시 언급하고 싶지 않은 일이지만, 김선일 씨가 피납되었을 때 대통령 담화문의 기조를 잡는 일은 쉽지 않았다.
아직 생사가 확인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테러행위에 대해 강도 높게 비난하면 피납자의 안전이 염려됐다.
그렇다고 납치행위에 굴복하는 듯한 뉘앙스를 담을 수도 없는 일이었다.
피납자가 선교를 위해 그것에 갔던 터라, 당시 국내에서는 기독교 신자와 비신자 간에 피납 사태를 보는 느낌이 서로 달랐다.
이 또한 기조를 잡는 데 있어 어려움을 가중시켰다.
이러한 상황에서 담화문의 기조를 단호함으로 갈 것인지, 절절한 호소로 할 것인지, 차분한 설득으로 할 것인지 정해야 했다.

광복절 경축사나 3.1절 기념사를 작성하는 경우에도 마찬가지 어려움에 부딪힌다.
바로 일본에 관한 언급 수위이다.
당시 한일관계 등을 고려하여 강경하게 갈 것인지, 담담하게 갈 것인지를 정한다.

기조는 크게 보면 논리적 접근과 정서적 접근이라는 둘로 나뉘기도 한다.
대개 지도자들은 논리적 접근을 좋아한다.
정서적인 부분은 양념 정도로 생각한다.
그런데 부처에서 올라온 연설문 초안을 보면 정서적인 접근을 한 것이 많다.
2차 남북정상회담의 통일부 초안이 그랬다.
정서적으로 호소하는 글이었는데, 언뜻 보았을 때 마음을 움직였다.
하지만 결국 단 한 줄도 쓰지 못했다.
대통령은 콘텐츠를 전하려고 하기 때문에 논리적인 기조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정서적인 접근으로 점수를 따야 할 때도 없는 것은 아니다.

기조를 잡는데 있어 중요한 것은 글 쓰는 사람의 목표, 혹은 목적의식이다.
글 쓰는 목적이 주장인지, 설득인지, 설명인지, 호소인지, 당부인지, 반박인지, 질타인지, 제안인지, 사과인지에 따라 기조가 바뀐다.
목적이 ‘설명’에 있다면 객관적으로 담담하게 써내려가야 한다.
하지만 ‘주장’이 글을 쓰는 목적이라면 주관적으로 자신의 단호한 입장을 밝히는 게 중요하다.

또는 글 쓰는 이유가 무엇인지에 따라서도 기조를 달리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글을 쓰는 이유가 지식을 전달하기 위함인지, 감동을 주기 위해서인지, 아니면 행동을 유발하기 위함인지, 단지 재미를 주거나 칭찬, 격려하기 위해서인지를 명확하게 할 필요가 있다.

경향신문 이승철 논설위원에 따르면, 신문 사설도 설명형, 비판형, 설득형, 칭찬형으로 나뉘며, 해당 이슈의 성격에 따라 각각에 맞는 흐름을 쓴다고 한다.

기조에 따라 전달 형식이 달라지기도 한다.
대통령이 담화문을 발표할 것인지, 기자회견을 통해 전달할 것인지, 연설을 할 것인지, 아니면 편지 형식으로 부드럽게 전달할 것인지를 결정하게 된다.
한미 FTA 체결과 관련해서도 기조가 설명인지, 설득인지, 호소인지, 아니면 반박인지에 따라 발표하는 형식이 달라졌다.

기조에 따라 문체도 결정된다.
강건체와 우유체, 간결체과 만연체, 건조체와 화려체 중에 적합한 문체를 고르게 되어 있다.

기조는 가급적 일관성 있게 유지하는 게 좋다.
글의 흐름은 그것을 쓴 사람의 고유한 스타일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어떤 사안에 대한 기조는 그 사안에 대한 그 사람의 입장이 되기 때문에 기조가 자주 바뀌면 곤란하다.

기조를 잡는 데 있어 고려해야 할 사항들은 많다.
대상이 전 국민인가, 지지 세력인가.
거대담론 형식으로 가져갈 것인가, 현안 중심으로 작게 가져갈 것인가.
차분하게 설명할 것인지, 각을 세워 도발적으로 반론할 것인지.
대외문제로 접근할 것인가, 대내문제에 국한할 것인가.
미래 얘기에 중점을 둘 것인가, 당면 과제에 초점을 맞출 것인가.
낮게 겸손하게 갈 것인가, 당당하게 갈 것인가.

김대중 대통령이 임기를 일 년여 남겨둔 2001년 신년사
벤처 비리가 불거져 국민정서가 좋지 않았다.
대통령이 어느 수위로 국민에게 사과를 표명할 것인지를 두고 고민이 많았다.
사과하는 표현에도 수위가 다양하다.
‘유감이다’에서부터 ‘사과한다’, ‘송구하다’, ‘면목 없다’. ‘죄송하다’, ‘사죄 드린다’, ‘참담한 심정이다’에 이르기까지.

기조가 잡혔다고 해서 기조에만 매몰되어선 안 된다.
모든 사안에는 이해 당사자가 많다.
대표적으로 임금이나 근로조건과 관련한 얘기를 할 때에는 노동자와 사용자 모두를 고려해야 한다.
어느 일방을 칭찬한 결과가 다른 일방에게는 큰 상처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어떤 경우 엄하게 질책하는 쪽으로 분위기를 정했다 할지라도 시종일관 그쪽으로 몰고 가는 것은 문제가 있다.
칭찬 쪽으로 정한 경우에도 일방적으로 칭찬만 하면 오히려 의례적인 칭찬으로 들릴 수 있다.
그러므로 주된 기조로 80%, 그렇지 않은 쪽으로도 20% 정도는 안배를 하는 게 좋다.
이에 대해 노무현 대통령은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모든 진실에는 흑백이 없다.’

글에만 기조가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사람에게도 기조란 게 있다.
성격일 수도 있고, 성향일 수도 있다.
“그 사람 어떤 사람이야?”라고 물었을 때, ‘어떤’에 해당하는 게 기조가 아닐까 싶다.
그런데 한 마디로 답하기가 쉽지 않다.
그만큼 기조 잡기는 어려운 것이다.

강원국 (라이팅 컨설턴트, 객원 필진)

[두 대통령과 함께한 전략적 글쓰기 28] 진정성이 부르는 그 것, 감동

진짜, 진실, 실천
– 진정성으로 승부하라.

나실 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기르실 제 밤낮으로 애쓰는 마음…
어버이날에 부르는 노래.
어머니를 향한 마음이 진심으로 느껴지는 노래.
음정 박자 틀렸다고 문제가 되겠는가.

말과 글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진실한 모든 말과 글은 훌륭하다.
진정성이다.
말과 글의 감동은 진정성에서 나온다.

진정성을 뜻하는 영어 ‘authenticity’는 ‘authentikos’(진짜)라는 그리스어에서 기원했다고 한다.
그렇다.
진짜가 진정성의 첫째 조건이다.
솔직하고 정직해야 한다.
그것이 기본이다.

2003년 3월, 국회 국정연설을 준비하기 위해 저녁 시간에 관저로 올라갔다.
그곳에 안희정(현 충남도지사)이 있었다.
대통령이 얘기했다.
“희정 씨, 이번 국정연설에서 나라종금 건을 다 밝히고 갔으면 해요.”
대통령은 연설문에 담으라며 구술했다.
“정치자금 문제와 관련하여 최근 저의 참모가 관련된 것으로 알려진 이른바 ‘나라종금 사건’에 대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저는 이미 검찰에 이 사건을 정치적 고려 없이 조사해 줄 것을 요청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철저히 수사를 해도 그 결과를 놓고 또 다른 의구심이 제기될 것이 분명합니다. 그에 따라 소모적인 정쟁이 지속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는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무엇보다 사실 규명이 우선되어야 합니다. 만일 ‘나라종금 사건’에 저의 참모가 관련되어 있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저의 책임이 될 것입니다. 저를 위해 일했던 사람의 잘못은 곧 제 잘못입니다. 그리고 그 모든 책임이 저에게 있습니다.
다만 저는 지금 대통령의 신분인 만큼, 저의 임기 중에는 형사소추가 유보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만일 제가 법적으로 책임질 일이 있으면 임기를 마치는 대로 기꺼이 그 책임을 질 것입니다.”

이 문안은 참모들의 만류로 결국 연설문에 들어가지 못했다.
무엇보다 당사자인 안희정이 완강하게 말렸다.

대통령은 얼마 후 법무부 업무보고 자리에서 지시했다.
“나라종금 건은 나와 관련이 있다 해도 개의치 말고 수사해 주십시오.”

진정성의 두 번째 조건은 진실한 것이다.
이것은 솔직한 것과는 좀 다르다.
진실하다는 것은 단지 감추지 않고 속이지 않는 것이 아니다.
그것보다 한 단계 더 나아간 것이다.
진심이 담기지 않은 솔직함도 있다.
외교적 수사가 그렇다.

김대중 대통령은 진심으로 대하는 것을 대화의 제1원칙으로 삼았다.
대통령은 이렇게 얘기한다.
“모든 대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적 신뢰를 쌓는 것이다. 입장이나 의견 차이가 없을 수는 없다. 하지만 진심으로 대하면 신뢰가 생기고, 신뢰가 쌓이면 모든 문제는 풀 수 있다. 진정성이 상대의 마음을 움직인다. 진정성 있는 대화는 시작은 힘들지만, 한 번 시작되면 쉽게 깨지지 않는다.”

김 대통령은 이런 원칙을 갖고 많은 정상과 지도자들을 만났다.
국민들 앞이라도 해야 할 쓴 소리는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지도자의 용기이고 도리라고 했다.

김 대통령을 정치 9단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그것이 ‘술수’나 ‘꼼수’를 말하는 것이라면 틀렸다.
대통령은 늘 진실한 태도로 임했다.
양심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모든 사안을 진지하게 대했다.
그가 정치 9단이라면 진정성의 결과일 뿐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탄핵 이후에 ‘정치 10단’이란 소리를 들었다.
개헌을 제안했을 때도 술수가 있을 것이라고들 얘기했다.
이처럼 개헌 제안에 대해 진정성 논란이 일자, 2007년 1월 지방언론과의 간담회 자리에서 이렇게 얘기했다.
“나에게 진정성을 따지지 마십시오. 그것은 증명할 수 없는 것입니다. 객관적으로 그 말이 옳은지 그른지 따지는 것이 중요한 것이지, 진정으로 하면 어떻고 안 진정으로 하면 어떻습니까? 정치인이 진정으로 안 하는 말이 어디 있고, 또 진정으로 하는 말이 어디 있습니까?”
오죽 했으면 이런 말까지 했겠는가.
노 대통령은 ‘꼼수’나 ‘잔머리’를 쓰지 않아 늘 문제가 되었다.
대연정 제안 때도 그랬다.

이종석 당시 국가안전보장회의 사무차장의 증언이다.
“2004년 2월 초 북한이 6자회담 재개에 동의해 왔다. 대통령에게 건의했다. 아직은 보안사항이지만, 기자들에게 ‘6자회담 전망이 밝아지는 것 같다고 말씀해 주십시오. 며칠 후 북한의 복귀 사실이 공표되면 정부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인정할 것입니다.’ 보고를 받은 대통령은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한마디 했다.”
“하지 맙시다.”

속셈이나 저의가 없는 것, 겉과 속이 같은 것이 진실한 것이다.
지나치게 계산되거나 수위를 조절한 메시지는 진정성 면에서 힘을 잃는다.

국민, 대중, 청중은 안다.
진실한 것인지 아닌지, 진정성이 있는지 없는지.
심지어 소비자들도 진심으로 말하는 기업의 제품을 산다.

진정성의 세 번째 조건은 행동과 실천이다.
말로만 해서는 진정성을 얻을 수 없다.

김대중 대통령은 행동으로 진정성을 보여줬다.
박해와 시련, 죽음의 고비에서도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을 버리지 않았다.
일관되게 남북관계 발전을 위해 매진했다.
평생 화해하고 용서하는 삶을 실천했다.
그를 죽이려했던 사람들과도 화해를 시도하고 용서했다.
민주주의, 남북관계, 용서와 화해에 관한 그의 메시지에 힘이 실리는 이유이다.

노무현 대통령을 봐도 진정성은 그 사람의 행적으로 평가받는다는 게 사실이다.
1995년 부산시장 선거에서 낙선하고 이렇게 말했다.
“결코 굽히지 않는, 결코 굴복하지 않는, 결코 타협하지 않는 살아 있는 영혼이 이 정치판에서 살아남는 증거를 보여줘 우리 아이들에게 결코 불의와 타협하지 않아도 성공할 수 있다는 하나의 증거를 꼭 남기고 싶었습니다.”
여기서 그쳤으면 진정성이라 할 수 없다.
1998년 종로 국회의원에 당선되고서도, 2000년에 또 부산에 도전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보’라는 별명을 얻었고, 지역주의 극복에 관한 진정성을 누구도 의심하지 않게 된 것이다.

진정성을 말할 때 놓쳐서는 안 될 게 하나 있다.
자기가 빠지면 안 된다는 것이다.
남의 핑계 대면 안 된다.
사돈 남 말하듯 하는 것은 진정성이 없는 것이다.
자기희생을 전제해야 한다.

또한, 진정성은 선한 뜻만으로 평가되는 것은 아니다.
취지가 좋으니까, 나는 이런 선한 동기를 갖고 한 일이니 진정성을 인정해 달라는 것은 곤란하다.
진정성은 자기 행위의 결과에 대해서도 책임을 지는 것이다.
그것이 막스 베버가 <직업으로서의 정치>에서 말한 책임윤리이고, 진정성이다.

2003년 10월 긴급 기자회견 모두연설
“최도술 씨는 약 20년 가까이 저를 보좌해 왔습니다. 그의 행위에 대해서 제가 모른다 할 수가 없습니다. 입이 열 개라도 그에게 잘못이 있다면 거기에 대해서는 제가 책임을 져야 합니다. 우선 이와 같은 불미스러운 일이 생긴 데 대해서 국민여러분께 깊이 사죄드립니다.
아울러 책임을 지려고 합니다. 수사가 끝나면 그 결과가 무엇이든 간에 이 문제를 포함해서 그동안에 축적된 여러 가지 국민들의 불신에 대해서 국민들에게 재신임을 묻겠습니다.”

2004년 3월, 대선자금과 관련한 특별기자회견을 하루 앞두고 회의가 있었다.
대통령과 민정수석실, 연설비서실이 관저에서 하는 기자회견 모두연설 준비회의였다.
나는 준비한 초안을 보고했다.
대통령은 한마디만 했다.
“됐습니다. 내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다음날 대통령은 직접 메모한 내용을 갖고 연설했다.
“죄송합니다. 부끄럽고 난감하기 짝이 없습니다. 거듭 머리 숙여 사과드립니다. 번번이 하는 사과, 말로 끝나는 사과, 그 뒤엔 다시 달라지지 않는 정치 등 국민 여러분들은 사과받기에 지치고 짜증이 나는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오늘 사과를 다르게 하겠습니다. 책임지겠다고 약속드린 바와 같이 앞으로도 책임지겠습니다. 그리고 진지한 자세로 책임을 이행하겠습니다. 같은 일로 다시 사과하는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측근 문제에 대해서도 얘기했다.
“최도술 씨는 20년 가까이 일을 맡았고, 안희정 씨는 15년 가까이 됐습니다. 제가 감독하고 관리할 범위 안에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이들의 잘못은 제가 책임져야 합니다. 거듭, 거듭 사과드립니다. 이들이 조달하고 사용한 대선자금은 저의 손발로서 한 것입니다. 법적인 처벌은 그들이 받되 정치적 비난은 저에게 하기 바랍니다.”

두 대통령은 자기 내면의 소리를 들었다.
그것을 행동으로 옮겼다.
그것이 서거 이후에 더 많은 사람에게 애틋한 기억과 존경의 대상으로 남아 있는 이유이다.
바로 진정성의 힘이다.

강원국 (라이팅 컨설턴트, 객원 필진)

[두 대통령과 함께한 전략적 글쓰기 27] 대통령이 강조했던 글쓰기 지침

관저 식탁에서의 2시간 강의
– 노무현 대통령의 글쓰기 지침

2003년 3월 중순, 대통령이 4월에 있을 국회 연설문을 준비할 사람을 찾았다.
노무현 대통령은 늘 ‘직접 쓸 사람’을 보자고 했다.
윤태영 연설비서관과 함께 관저로 올라갔다.

김대중 대통령을 모실 때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대통령과 독대하다시피 하면서 저녁식사를 같이 하다니.
이전 대통령은 비서실장 혹은 공보수석과 얘기하고, 그 지시내용을 비서실장이 수석에게, 수석은 비서관에게, 비서관은 행정관에게 줄줄이 내려 보내면, 그 내용을 들은 행정관이 연설문 초안을 작성했다.

그에 반해 노무현 대통령은 단도직입적이었다고나 할까?
아무튼 일을 효율적으로 하기를 원했다.
“앞으로 자네와 연설문 작업을 해야 한다 이거지? 당신 고생 좀 하겠네. 연설문에 관한한 내가 좀 눈이 높거든.”

식사까지 하면서 2시간 가까이 ‘연설문을 어떻게 써야 하는가?’ 특강이 이어졌다.
밥이 입으로 넘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몰랐다.
열심히 받아쓰기를 했다.
이후에도 연설문 관련 회의 도중에 간간이 글쓰기에 관한 지침을 줬다.

다음은 그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1. 자네 글이 아닌 내 글을 써주게. 나만의 표현방식이 있네. 그걸 존중해주게. 그런 표현방식은 차차 알게 될 걸세.
2. 자신 없고 힘이 빠지는 말투는 싫네.
‘~ 같다’는 표현은 삼가 해주게.
3. ‘부족한 제가’와 같이 형식적이고 과도한 겸양도 예의가 아니네.
4. 굳이 다 말하려고 할 필요 없네. 경우에 따라서는 질문을 던지는 것으로도 연설문이 될 수 있네.
5. 비유는 너무 많아도 좋지 않네.
6. 쉽고 친근하게 쓰게.
7. 글의 목적이 무엇인지 잘 생각해보고 쓰게. 설득인지, 설명인지, 반박인지, 감동인지
8. 연설문에는 ‘~등’이란 표현은 쓰지 말게. 연설의 힘을 떨어뜨리네.
9. 때로는 같은 말을 되풀이하는 것도 방법이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는 킹 목사의 연설처럼.
10. 짧고 간결하게 쓰게. 군더더기야말로 글쓰기의 최대 적이네.
11. 수식어는 최대한 줄이게. 진정성을 해칠 수 있네.
12. 기왕이면 스케일 크게 그리게.
13. 일반론은 싫네. 누구나 하는 얘기 말고 내 얘기를 하고 싶네.
14. 추켜세울 일이 있으면 아낌없이 추켜세우게. 돈 드는 거 아니네.
15. 문장은 자를 수 있으면 최대한 잘라서 단문으로 써주게.
탁탁 치고 가야 힘이 있네.
16. 접속사를 꼭 넣어야 된다고 생각하지 말게.
없어도 사람들은 전체 흐름으로 이해하네.
17. 통계 수치는 글을 신뢰를 높일 수 있네.
18. 상징적이고 압축적으로 머리에 콕 박히는 말을 찾아보게.
19. 글은 자연스러운 게 좋네. 인위적으로 고치려고 하지 말게.
20. 중언부언하는 것은 절대 용납 못하네.
21. 반복은 좋지만 중복은 안 되네.
22. 책임질 수 없는 말은 넣지 말게.
23. 중요한 것을 앞에 배치하게. 뒤는 잘 안 보네. 문단의 맨 앞에 명제를 던지고, 그 뒤에 설명하는 식으로 서술하는 것을 좋아하네.
24. 사례는 많이 들어도 상관없네.
25. 한 문장 안에서는 한 가지 사실만을 언급해주게. 헷갈리네.
26. 나열을 하는 것도 방법이네. ‘북핵 문제, 이라크 파병, 대선자금 수사…’ 나열만으로도 당시 상황의 어려움을 전달할 수 있지 않나?
27. 같은 메시지는 한 곳으로 몰아주게. 이곳저곳에 출몰하지 않도록
28. 백화점식 나열보다는 강조할 것은 강조하고 줄일 것은 과감히 줄여서 입체적으로 구성했으면 좋겠네.
29. 평소에 우리가 쓰는 말이 쓰는 것이 좋네. 영토 보다는 땅, 치하 보다는 칭찬이 낫지 않을까?
30. 글은 논리가 기본이네. 좋은 쓰려다가 논리가 틀어지면 아무 것도 안 되네.
31. 이전에 한 말들과 일관성을 유지해야 하네.
32. 여러 가지로 해석될 수 있는 표현은 쓰지 말게. 모호한 것은 때로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지금 이 시대가 가는 방향과 맞지 않네.;
33. 단 한 줄로 표현할 수 있는 주제가 생각나지 않으면, 그 글은 써서는 안 되는 글이네.

대통령은 생각나는 대로 얘기했지만, 이 얘기 속에 글쓰기의 모든 답이 들어있다.
지금 봐도 놀라울 따름이다.

언젠가는 음식에 비유해서 글쓰기에 대해 얘기한 적이 있다.

1. 요리사는 자신감이 있어야 해. 너무 욕심 부려서도 안 되겠지만.
글 쓰는 사람도 마찬가지야.
2. 맛있는 음식을 만들려면 무엇보다 재료가 좋아야 하지. 싱싱하고 색다르고 풍성할수록 좋지. 글쓰기도 재료가 좋아야 해.
3. 먹지도 않는 음식이 상만 채우지 않도록 군더더기는 다 빼도록 하게.
4. 글의 시작은 에피타이저, 글의 끝은 디저트에 해당하지. 이게 중요해.
5. 핵심 요리는 앞에 나와야 해. 두괄식으로 써야 한단 말이지. 다른 요리로 미리 배를 불려놓으면 정작 메인 요리는 맛있게 못 먹는 법이거든.
6. 메인요리는 일품요리가 되어야 해. 해장국이면 해장국, 아구찜이면 아구찜. 한정식 같이 이것저것 다 나오는 게 아니라 하나의 메시지에 집중해서 써야 하지.
7. 양념이 많이 들어가면 느끼하잖아. 과다한 수식어나 현학적 표현은 피하는 게 좋지.
8. 음식 서빙에도 순서가 있잖아. 글도 오락가락, 중구난방으로 쓰면 안 돼. 다 순서가 있지.
9. 음식 먹으러 갈 때 식당 분위기 파악이 필수이듯이, 그 글의 대상에 대해 잘 파악해야 해. 사람들이 일식당인줄 알고 갔는데 짜장면이 나오면 얼마나 황당하겠어.
10 요리마다 다른 요리법이 있듯이 글마다 다른 전개방식이 있는 법이지.
11. 요리사가 장식이나 기교로 승부하려고 하면 곤란하지. 글도 진정성 있는 내용으로 승부해야 해.
12. 간이 맞는지 보는 게 글로 치면 퇴고의 과정이라 할 수 있지.
13. 어머니가 해주는 집밥이 최고지 않나? 글도 그렇게 편안하고 자연스러워야 해.

이날 대통령의 얘기를 들으면서 눈앞이 캄캄했다.
이런 분을 어떻게 모시나.
실제로 대통령은 대단히 높은 수준의 글을 요구했다.
대통령은 또한 스스로 그런 글을 써서 모범답안을 보여주었다.

나는 마음을 비우고 다짐했다.
대통령을 보좌하는 참모가 아니라 대통령에게 배우는 학생이 되겠다고.
대통령은 깐깐한 선생님처럼 임기 5년 동안 단 한 번도 연설비서실에서 쓴 초안에 대해 단번에 오케이 한 적이 없다.

강원국 (라이팅 컨설턴트, 객원 필진)

[두 대통령과 함께한 전략적 글쓰기 26] 독자의 입장에서, 최대한 쉽게

읽는 사람이 갑이다.
– 쉽게 쓰자

‘포지셔닝’이란 개념을 처음 정립한 잭 트라우트(Jack Trout)가 이런 말을 했다.
‘제품은 공장에서 만들지만, 브랜드는 소비자의 마음속에서 만들어진다.’

이 내용을 글에 대비해 보면 이렇다.
‘글은 쓰는 사람이 쓰지만, 글을 받아들이고 느끼는 것은 보는 사람의 몫이다.’

쓰는 사람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읽는 사람이 잘 이해할까?
말하는 사람의 의도를 듣는 사람이 잘 알아차릴까?
김대중 대통령의 대답은 ‘아니올시다’다.

“상대방이 내 말을 쉽게 이해할 것이라고 착각하지 않는 것으로부터 글쓰기는 시작되어야 한다.
그러니 무조건 알아듣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글을 쓰는 것이 좋다.”
김 대통령의 충고다.

김대중 대통령은 최대한 쉬운 표현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그래서 김 대통령의 연설문에는 비유나 속담이 많이 등장한다.
햇볕정책을 설명하는 데는 이솝 우화가 동원됐다.
“바람과 해가 나그네의 옷을 누가 먼저 벗기나 내기를 했습니다. 바람은 강제로 벗기려하나 실패했습니다. 해는 따뜻한 햇볕을 쬐어 나그네가 스스로 옷을 벗게 합니다. 햇볕정책이 그렇게 하자는 것입니다.”
이처럼 아무리 어려운 내용도 대통령의 손을 거치면 쉽고 명쾌한 내용으로 바뀌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여기서 한 발짝 더 나아간다.
“글이라는 건 중학교 1, 2학년 정도면 다 알아들을 수 있게 써야 한다.”
실제로 중학교에서 배우는 수준이 어디쯤인지 알고 싶다고 중학교 교과서를 가져와 보라고 한 적이 있다고 한다.

역사의 진보에 대한 노 대통령의 정의, 즉 소수가 누리던 것을 보다 많은 사람에게까지 확산하는 것.
그런 시각에서 보면 선택된 소수가 아니라 누구든지 이해할 수 있는 쉬운 글을 쓰는 것이야말로 역사 발전에 일조하는 길이다.

글쓰기는 나와 남을 연결하는 일이다.
그 글을 봐 주는 사람이 이해 못하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무슨 말인지 알아듣게 하고 제대로 이해시킬 책임은 쓰는 사람에게 있다.
좀 심하게 얘기하면 글이나 말은 듣는 사람, 읽는 사람 입에 떠 넣어줘야 한다.
손에 확 잡히도록 쥐어줘야 하는 것이다.

어떻게 해야 하나?
첫째, 당연히 쉬운 말로 써야 한다.
전문용어에 돼먹지 않은 아는 체는 자제해야 한다.

둘째, 명확하게 짚어줘야 한다.
‘내가 하려고 하는 얘기의 요점은 이것, 이것, 이것이다’라고.
그래서 읽는 사람이 척 보면 알 수 있어야 한다.

셋째, 사례를 들고 비유를 하여 이해를 도와야 한다.
여행 갔을 때, 가이드가 그 나라 국토 면적을 몇 제곱킬로미터라고 하면 이해가 쉽든가?
한반도의 몇 배다, 이렇게 설명해줘야 쉽지 않든가.

넷째, 반복해줘야 한다.
세 번 정도는 반복해줘야 전달이 분명하게 된다고 한다.
글의 서두에 내가 할 얘기는 이것이다. (한 번)
이런 얘기를 하는 배경은 이것이다. (두 번)
내 얘기의 결론은 이것이다. (세 번)
단, 이런 반복이 ‘강조’로 들리지 않고,
한 얘기 또 하고 또 하는 횡설수설로 들리면 곤란하다.

김대중 대통령도 반복할 것을 주문했다.
다 알아 듣는 것 같아도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말하는 사람은 여러 번 해도 듣는 사람은 한 번이라고 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전국에서 10개 경기장이 순차적으로 개장 행사를 가졌고, 대통령은 매번 참석했다.
이때 월드컵 개최의 의미와 파급효과에 대해 모든 연설문을 똑같이 썼다.
연설비서실에서는 좀 다르게 바꿔 봤지만, 대통령은 항상 같은 내용으로 다시 원위치시켰다.
그러면서 아래와 같은 코멘트도 함께 내려 보냈다.
“나는 같은 말을 반복하지만 듣는 사람은 처음 듣는 것입니다. 설사 같은 말을 다시 듣는 사람이 있다 할지라도 상관없습니다. 한 번 말해서는 머릿속에 잘 기억되지를 않습니다. 그러니 반복하세요.”

김 대통령은 예를 들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 해박한 분이 항상 같은 예시를 들었다.
우리 민족의 우수한 독창성을 얘기할 때는 “중국으로부터 불교를 받아들이면 해동불교로 발전시켰고, 유교를 받아들이면 조선유학으로 발전시켰다.”고 되풀이했다.
다른 예가 없어서가 아니다.
이것저것 사례를 들면 헷갈릴 것을 염려해서다.

1984년 미국 대선에서 공화당 레이건이 민주당 몬데일을 이긴 이유도 이렇게 설명하기도 했다.
몬데일은 다양한 주제의 연설로 언론의 주목을 받았지만,
레이건은 두세 가지 내용만 되풀이했다.
이에 대해 ‘레이건은 콘텐츠가 빈약하다’며 비판적인 기사가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레이건은 괘념치 않았다.
결국 몬데일이 무슨 말을 했는지는 유권자의 머릿속에 명확하게 떠오르지 않았지만, 레이건의 말은 분명하게 기억했다.

이에 반해 노무현 대통령은 반복하는 걸 싫어했다.
2007년 전국적으로 혁신도시 기공식 행사가 줄줄이 있었다.
노 대통령은 혁신도시 개발 취지를 늘 달리 설명하기를 원했다.

노 대통령은 또한 일반인 누구나 쉽게 알아먹을 수 있는 서민의 언어를 쓰고자 했다.
하지만 언론에서는 ‘대통령의 언어’를 쓰라고 옥조였다.
검사와의 대화에서 “막가자는 것이지요?”라고 했을 때, ‘못해먹겠다’고 했을 때, ‘대못질’이라는 표현을 썼을 때도 ‘대통령의 말이 경박하다’, ‘대통령의 말에 품격이 없다’고 꾸짖었다.
과거 권위주의 시대 군림하는 대통령을 경험한 국민들 사이에서도 ‘그래도 대통령인데 그런 표현을 써도 되나’, ‘대통령은 대통령답게 권위가 있어야지’ 하는 소리들이 나왔다.

하지만 대통령의 말씨는 쉬 고쳐지지 않았다.
대통령은 이렇게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대통령의 말이 따로 있는가.’
‘대통령은 이렇게 해야 한다고 누가 만들었는가.’

그래서였을까?
대통령은 깔끔하게 정제된 표현보다는, 진솔하고 투박한 표현을 좋아했다.
우리가 살면서 평소 쓰는 일상어로 우리의 삶 속에 파고들려고 했다.
“제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사회는 더불어 사는 사람 모두가 입는 것, 먹는 것, 이런 걱정 좀 안 하고, 더럽고 아니꼬운 꼬라지 좀 안 보고, 그래서 하루하루가 좀 신명 나게 이어지는 그런 세상입니다. 만일 이런 세상이 지나친 욕심이라면 적어도 살기가 힘들어서, 아니면 분하고 서러워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그런 일은 없는 세상입니다.”
<1988년 7월 국회 본회의 사회문화에 관한 질문 중>

어쨌든 글은 쉽게 써야 한다.
말과 글은 듣는 사람, 읽는 사람이 갑이다.
설득 당할 것인가, 감동할 것인가의 결정권은 듣는 사람, 읽는 사람에게 있으니까.

그렇다면 쉬운 글은 쓰기 쉬운가?
더 어렵다.
더 많은 고민을 필요로 한다.
차라리 어려운 글은 쓰기 쉽다.
그런 점에서 ‘쉽게 읽히는 글이 쓰기는 어렵다.’고 한 헤밍웨이의 말은 확실히 맞다.

강원국 (라이팅 컨설턴트, 객원 필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