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리뷰] 프로듀사, 프로듀서가 좀 더 잘해주길

프로듀사 1,2화가 나가고 KBS가 야심차게 준비한 드라마를 본 사람들의 호불호가 갈리는 평들이 올라왔다. 최고 주가를 달리는 스타들과 스타 제작진이 만드는 드라마에 대한 사람들의 기대가 꽤 높았나 보다. 나도 그 중 한 명이었다. 물론 나는 드라마보다 까메오로 나온다는 유희열을 보기 위해 티비를 튼 것이지만 1,2화에 그는 나오지 않았다. 어쨌든 결론만 말하면 1,2화만 가지고 말할 수는 없지만 프로듀사는 프로듀서가 좀 더 잘할 수 있는 드라마,라는 게 나의 평이다. 그리고 유희열이 등장할 때까지는 계속 지켜볼 심산이다.

1. 리얼리티를 위한 페이크 다큐
올라온 평 중 드라마의 기본 형식인 페이크 다큐 형식에 대한 호불호가 가장 컸다. 이는 페이크 다큐라는 형식에 대한 생소함 때문이 아니다. 최근 꽤 많은 한국 드라마가 극 중간에 등장인물의 인터뷰를 삽입하며 페이크다 다큐 형식을 사용했다. 문제는 드라마의 다큐화가 가진 리얼리티를 가중시키려는 의도가 오히려 극에 대한 몰입을 방해하지는 않는지, 이거다. 페이크 다큐 형식을 성공적으로 사용한 드라마는 미드 ‘오피스’다. 프로듀사와의 차이라면 오피스는 드라마의 기본 요소들 극본, 카메라워크, 배우들의 연기까지 모두 다큐를 중심으로 하는 반면, 프로듀사는 드라마조차 페이크 다큐 형식에 몰입하고 있는 것 같지 않은 인상을 받았다. 적어도 극 중 인물들이 자신을 카메라가 찍고 있다는 사실을 의식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인터뷰를 할 때 덜 어색할텐데, 전형적인 한국드라마의 카메라 워크와 배우의 연기가 계속되다 갑자기 극중 인물에게 인터뷰를 시키니까 리얼하기 보다 이게 무슨 상황인지 의아하다. KBS는 다큐 3일도 찍으면서, 다큐가 뭔지 모르는 걸까.

2. 까메오들
이미 프로듀사에는 윤여정, 금보라, 현영, 황신혜, 태티서 등 많은 까메오들이 출연했고, 훨씬 많은 수의 실제 연예인들이 출연 예정되어 있다. 이것이 드라마에 독인지 득인지는 회가 거듭나야 실감할 수 있겠지만, 아직까지는 화제를 모으는 데에 성공했다. 나부터도 까메오를 보기 위해 티비를 켰으니까. 피디와 출연자들의 관계를 보여주는 첫 에피소드도 까메오인 윤여정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현재까지 대부분의 까메오들은 실제 모습 그대로 나왔는데, 차라리 리얼을 보여줄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 같다. KBS라서 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3. 야근은 일상, 밤샘은 옵션, 눈치와 체력으로 무장한 KBS 예능국 고스펙 허당들의 순도 100% 리얼 예능드라마 ‘프로듀사’
리뷰를 쓰기 전에 관련 기사를 검색해 보았는데, 거의 모든 기사에 위의 설명이 포함되어 있었다. 실감나는 예능국 이야기를 풀기 위해 연출을 맡은 서수민 CP는 “박지은 작가가 예능국 이야기를 하자고 했을 때, 뻔하지 않을까 했다. 접근 방식을 다르게 하자고 했다. 그래서 고학력, 고스펙 허당 이야기”라고 드라마를 설명했다. 문제는 이 고스펙 허당들의 이야기가 딱히 새롭지 않다는 점이다. 이유는 등장인물들이 겪는 문제가 고스펙 허당이든 저스펙 허당이든 어쨌든 피디라서 겪는 일들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피디가 주인공인 다른 드라마와 별 차이랄 게 없다. 출연자와의 긴장관계나 사내정치 등 방송국 이야기를 다룬 다른 드라마의 장면들이  어쩔 수 없이 겹쳐지는 것도 새로운 접근이라는 말을 반증한다. 뭔가 다른 리얼 예능드라마를 보여주고 싶다면 더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 예능의 트렌드가 리얼이다 보니, 예능피디가 연출하는 드라마도 리얼로 가는 듯하다. 리얼 이전에 드라마로서 새로운 존재감을 보여주기 위한 고민이 필요하다.

박지윤

[미디어리뷰] 마리텔, 심야 콘텐츠 전쟁의 최종 승리자는 누구인가?

MBC에서 오랜만에 볼만한 심야 예능 프로그램이 나왔다. 마이리틀텔레비전(이하 마리텔)이다. 우연히 파일럿 방송부터 보기 시작했는데, 토요일 밤 별 일 없는 나 같은 사람들에게 딱 적당한 프로그램이다. 볼 거리로 경쟁하는 프로그램이기 때문이다. 좀더 심한 잉여들을 위해서는 휴일 오후 생방송으로도 여러 가지 볼거리를 제공한다. 마리텔은 한동안 인기를 끌던 인터넷 생방송 프로그램에서 포멧을 가져왔다. 포멧은 새롭지 않은데 티비에서 연예인들이 비제이 역할을 하니까 새로웠다. 마리텔의 채팅방에서 볼 수 있는 것은 두 가지다. 흥미로운 컨텐츠와 흥미로운 컨텐츠를 보여주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출연자들의 모습. 실제로 시청률이 안 나온 출연자들은 다음 회에서 볼 수 없었다. 볼만한 컨텐츠를 만들고, 그 컨텐츠를 제대로 보여주는 자들만이 살아남는다.

1. 그 놈의 소통
첫 회 초기에 가장 높은 시청률을 기록한 출연자는 초아다. 왜냐하면 그녀는 AOA 초아이기 때문이다. 초아를 보려고 접속한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을 정도로 초아의 인기는 대단했다. 초아도 열심히 했다. 애교도 보여주고 춤도 춰줬다. 나도 넋 놓고 사뿐사뿐을 봤다. 문제는 초아가 혼자 열심히 했다는 거다. 인터넷 생방송의 가장 큰 특징은 시청자와 출연자 간의 실시간 소통이다. 티비와의 가장 큰 차이점이기도 하다. 아무튼 초아는 사뿐사뿐을 보여주기 위해 의상을 갈아입느라 방을 비웠고, 빈 방만 나오는 화면을 보는 사람들은 어리둥절해 했다. 또 초아에게 나름대로의 요구사항을 전하던 사람들도 지쳐 채팅창에는 ‘소통 좀 해달라’는 불평이 쏟아져 나왔다. 게다가 초아가 보여준 컨텐츠, 화장하기, 요구르트 만들기는 초아 방송의 주 시청자들인 남성팬들은 전혀 관심없는 주제였다. ‘어머니 화장해 드려야 하냐’는 말도 나왔다. 컨텐츠도 대화가 필요하다.

2. 라디오와 텔레비전
첫 회 출연자 중에 정준일이 있었다. 정준일이 누구냐 하면 밴드 메이트의 보컬이자 싱어송라이터이다. 라디오를 듣는 사람들이라면 꽤 귀에 익은 이름일 것이다. 제작진들도 라디오에서의 명성을 듣고 섭외했다는 설명이 나왔다. 결과적으로 미스캐스팅이었다. 왜냐하면 정준일이 팬들을 제외한 방에 들어온 모든 사람들에게 위와 같이 자기 소개를 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뭐 낯선 사람이 뭔가 재밌는 것을 보여준다면야, 안 볼 이유는 없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정준일은 음악으로 승부했다. 키보드를 감미롭게 연주하고, 떨리는 목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나중에는 소수정예의 팬들만이 오붓한 분위기를 즐겼다. 티비와 라디오는 다르다. 마이리틀’텔레비전’에서는 보여줘야 한다.

3. 노잼! 노잼!
나는 개그맨으로서의 김영철을 좋아한다. 김영철의 억척스러운 입담과 성대모사는 어느 프로그램에 나와도 제 몫을 한다. 그런데 마리텔에서는 아니었나 보다. 첫 회에서 김영철의 ‘뻔뻔한 영어’는 시청자들에게 유용한 영어 표현을 쉽게 가르쳐주려는 의도로 시작했지만, 급락하는 시청률 때문에 막바지엔 성대모사 남발과 그나마 방에 남은 시청자들의 노잼 폭격으로 끝나버렸다. 그날 시청률도 꼴찌를 기록했다. 김영철이 꼴찌라니. 하지만 방송을 본 사람으로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내가 왜 예능프로에서 exactly를 어떻게 쓰는지 배워야 하나, 난 그저 티비나 보면서 웃고 싶을 뿐인데. 그러니까 시청자들이 원하는 것은 유익함 이전에 재미있는 컨텐츠다.

4. 컨텐츠 전쟁에서 승리하려면?
현재 마리텔에서 부동의 1위는 백주부, 백종원이다. 백종원은 실제 집에서 할 수 있는 고급진 레시피들을 알려준다. 자신이 직접 해본, 자신의 이야기가 있는(주로 아내와) 레시피들이다. 실제로 집에서 해본 적은 없지만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럽다. 아무리 쿡방이 대세라도 백종원이 레시피만 충실히 전달했다면 1위는 무리였을 거다. 의외로 백종원은 입담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 입담은 혼자 말하는 것이 아니라 시청자들과의 대화에서 나온 입담이었다. 예를 들면, 백종원의 레시피에는 설탕이 상당히 많이 들어가는데 사람들이 설탕이 너무 많다고 비난하자, 설탕과 당뇨는 상관이 없다고 변명한다. 이제 그는 슈가보이로 불린다. 믹서기가 잘 안갈려서 불평을 하다 사람들이 믹서기 회사 사장님을 걱정하니까, 사장님한테 사과 영상 편지도 쓴다. 백종원이 앞으로도 1위를 지킬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그가 프로그램이 요구하는 PD와 진행자의 역할을 아직까지 가장 잘하고 있는 것은 확실하다. 좋은 컨텐츠를 만들고, 잘 전달하는 것, 이 두 가지가 심야의 컨텐츠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어쩌면 자명한 비법이다.

박지윤

[미디어리뷰] 헝거게임에서 프로파간다를 보다.

헝거게임

헝거게임을 봤다. 미국의 스윗하트 제니퍼 로렌스가 나오는 바로 그 영화인데, 만약 이 영화에서 본격적인 ‘치고 박기’를 기대했다면 그 기대는 충족되지 않을 것이다. 나는 1편과 2편을 건너뛰고 최근 개봉된 3편을 봤다. 일말의 기대도 하지 않고 봤고, 그 덕분인지 재밌었다. 특히 이번 편에서 다룬 ‘프로파간다’가 재밌었다.

헝거게임을 모르시는 분을 위해 설명하자면, 헝거게임에서 대립구도는 크게 두 갈래로 나뉜다. 정부군과 반란군. 제니퍼 로렌스를 비롯한 ‘우리 편’은 반란군이다. 영화에서 정부군은 악인의 특성을 가지고 있다. 고문하고, 죽이고, 괴롭힌다. 자연스레 반란군은 선한 역할로 포지션된다. 나쁜 정부군을 물리치려는 정의로운 편.

이번에 개봉한 영화에서는, 반란군에 속한 사람들을 고취시키고 한 데 모으고, 그로 인해 효과적으로 정부군에 대항할 수 있게 하는 ‘프로파간다’ 제작을 주로 다루고 있다. 주인공인 제니퍼 로렌스가 주인공이 되어 프로파간다용 선전영상을 찍는다. 영화스토리상으로 ‘우연적 요소’에 의해 효과적인 영상이 만들어진다. 한 번 더 생각하면, 영화 제작진이 프로파간다의 핵심을 꿰고 있다는 것을 눈치 챌 수 있다.

영화에 나오는 프로파간다의 핵심은 ‘대중의 마음을 울리는 것’이다. 그리고 그 것은 다음 세 가지로 나타났다.

1. 표식

반란군의 표식은 손동작으로 나타낼 수 있다. 손가락 검지, 중지, 약지를 세운 손에 입 맞춘 후 상대방에게 보이는 것이다. ‘내가 당신과 같은 편이다’라는 것을 보여주는 데 필요한 것은 손가락 세 개뿐이다. 말 한 마디도 필요하지 않다. 사람이 몇 명이 있든 마찬가지다. 군중이 모여 있을 때 이 표식의 효과는 더 극대화 된다.

2. 슬로건

“IF WE BURN, YOU BURN WITH US!”
(우리가 죽게 된다면, 혼자 죽지는 않아!)

제니퍼 로렌스는 무고한 시민들을 폭격한 정부군에 분노하며 이렇게 소리친다. 이 말 말고도 많은 말을 했지만, 프로파간다용으로 적절했던 것은 바로 이 문구였다. 라임이 쫙쫙 맞고, 기억하기도 쉽다. 즉, 사람들이 외우고 사용하기 좋다. 프로파간다의 핵심은 대중이 사용하게 하는 것이니까. 그 측면에서 훌륭한 전략이었다.

3. 노래

제니퍼 로렌스가 우연한 기회에 (사실 좀 뜬금없이) 노래를 부르고, 그 영상은 또 한 번 반란군 사회를 강타한다. 이미 유명했던 노래에 가사가 바뀐 형태였는데, 대중이 이미 알고 있었던 노래였기 때문에 외우기 좋았고, 가사가 전쟁 상황의 마음을 울리기에 충분했기 때문에 널리 사용됐다. 정부군을 공격할 때 사람들은 함께 노래를 부르며 행진했다. 노래를 함께 부름으로써 무서움을 이겨낼 수 있었을 것이다.

4. 영화 밖의 프로파간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헝거게임의 구도는 선과 악으로 나뉜다. 이는 프로파간다에 있어 핵심적이다. 실제로 ‘그린피스’가 글로벌석유기업 ‘쉘’에 대항할 때도 이와 같은 구도를 응용한다. 그린피스는 ‘국제환경보호단체’로 대변되는 만큼, 환경에 관한 한 ‘선’의 역할을 담당한다. 그렇다면 그들이 대항하는 쪽은 ‘악’의 역할을 자연스레 맡게 된다.
실제로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는 이와 같은 방법으로 국제정유사 쉘을 압박하는 데 성공하기도 했다. 그린피스는 선악구도를 만드는 데 천부적이다. 비판할 기업의 가장 지독한 예들을 사용해서 대중에 어필한다. 이목을 끌기 위해 그린피스는 자체 포토그래퍼와 영상크루들을 통해 보도한다. 그리고 이를 단순하고 반복적으로 어필한다. 최근에도 그린피스는 레고를 활용한 영상으로 쉘을 공격해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김정현

[미디어리뷰] 뉴스룸과 보스턴마라톤테러: 보도해야 할 것과 보도하지 말아야 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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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 시즌3이 시작했다. 나도 팬인지라 찾아봤다. 이번 시즌 1편에서는 지난 2013년 일어난 보스턴마라톤테러의 보도를 다뤘다. 위기상황 시 보도가 어떻게 이뤄져야 하는지 생각해볼 수 있었다. 세월호 참사 당시 보도윤리로 물의를 빚었던 것을 기억한다면, 더 깊게 와 닿을 것이다.

1. 보도하지 말아야 할 것.

1-1 트윗

모든 테러가 그렇지만, 보스턴마라톤테러 역시 누구도 예측하지 못 했다. 사건이 벌어졌을 때, 누가 했는지, 왜 했는지, 어떻게 했는지 아는 사람은 없었다. 적어도 공식적인 라인에서는 없었다. 테러의 정보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곳은 트위터였다. 그것도 과하게 활발히 이뤄지고 있었다. 공식적 정보는 없었지만 이미 사실인 것 같은 이야기를, 많은 사람이 이야기하고 있었다.

한 기자는 말한다.
“트윗을 봤는데 결승선 지점에서 폭발이 두 번 있었대. 무려 트윗 2221개가 그렇게 이야기하고 있어. 대체 (이걸 보도 안 하고) 뭘 기다리는 거야?”

윌 맥어보이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TV쇼를 하는 게 아니야. 뉴스를 하는 거지.”
(“We don’t do good TV, We do the news.”)

이 때 맥어보이가 말한 TV쇼의 의미는 오직 시청률만을 신경 쓰는 프로그램이라는 뜻일 것이다. 이 때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듣고 싶어 하는 이야기’를 해주는 것이다. 그게 진실이고 아니고는 나중 문제다.
‘뉴스’의 의미는 반대다. 늦게 보도하게 되더라도 정확한 사실, 정확한 진실을 말하자는 것이다. 이 측면에서 트윗은 아무런 소스가 될 수 없다. 같은 말을 하고 있는 트윗이 2천 개든 2만 개든 마찬가지다. 트윗의 수는 ‘진실성’과는 큰 관계가 없다. 단 한 개의 트윗도 순식간에 퍼질 수 있기 때문이다.

1-2 다른 미디어

“증명해내. 나는 다른 미디어 퍼다 나르는 거 딱 질색이야.”
(“Prove it. I don’t like media covers media.”)

맥켄지는 무엇을 보도해야 할지를 이야기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미디어의 파급력은 엄청나다. 미디어가 합쳐졌을 때의 파급력은 훨씬 더 그렇다. 사안의 신빙성을 따질 때 ‘어떤 언론사가 말했느냐’는 중요한 지표가 되기 때문에 그렇다. 조선일보가 홀로 말하는 것과 조선일보와 한겨레가 같은 것을 말하는 것이 다른 것과 같다. 반신반의하던 것도 많은 언론에서 그렇게 이야기한다면 믿을 수밖에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맥켄지의 이 말은 중요하다. 세월호 참사 오보가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것처럼 ‘언론의 무비판적인 받아쓰기’가 초래할 수 있는 결과는 생각보다 크다.

2. 보도해야 할 것.

2-1 공식적 소스, 그리고 사람이 아닌 기계에 담긴 정보.

맥켄지 프로듀서와 윌 맥어보이 앵커 등 임원진은 ‘공식적인 소스’가 없으면 보도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들고, 이 원칙은 끝까지 지켜진다.

그들이 보도한 것은 공식적인 소스, 그리고 반박이 불가능한 영상뿐이었다.
폭발이 일어난 곳에서 생중계하고 있었던 방송영상에 담긴 내용을 처음 보도했다. 백악관이나 경찰 측에서 제시한 자료도 보도했다. 결승선 부근에서 사람들이 찍고 있던 영상으로 종합한 FBI의 자료도 보도했다.

2-2 잘못된 보도를 바로잡는 보도

“이 지면에 가방을 맨 모습이 찍힌 두 명은 용의자가 아닙니다.”

재난 상황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언론의 기능은 잘못된 보도를 바로잡는 것이다. 위의 보도지침이 지켜지지 않았을 때 (정확하지 않은 소스를 무분별하게 사용했을 때) 벌어질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은 ‘용의자를 잘못 짚는 것’이다.

실제로 보스턴마라톤 테러 당시 뉴욕포스트의 오보로 17세 소년이 용의자로 지목된 바 있었다. 뉴스공유사이트 레딧에서는 또 다른 애꿎은 사람을 테러용의자로 지목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 사람은 중압감을 이기지 못했다. 언론의 잘못된 보도가 마녀사냥을 한 셈이고, 애꿎은 생명이 희생됐다.

3. ‘좋은 뉴스’의 슬픈 단상

“이제 TV는 필요 없는 듯.”
(“We don’t need TV anymore”)

TV보다 발 빠르게 테러 관련 정보를 퍼 나른 트위터에 대한 찬사다.
뉴스보다 빠른 소식통(트위터)이 있기 때문에 TV가 더 이상 필요하지 않게 됐다는 의미다. 이 드라마에서 말한 것처럼, 트윗이 진실하지 않은 정보를 전달할 위험이 크다는 사실이 보스턴마라톤테러 사태에서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이렇게 평했다.

트위터의 선기능이 있었던 것은 분명하다. 경찰이 트위터로 사건진행상황을 발 빠르게 전달했던 측면을 생각하자면 더욱 그렇다. 하지만 트위터의 부작용을 크게 염두에 두지 않고, 뉴스의 선기능을 평가 절하한다는 점은 문제가 될 만하다.

드라마에서도 이 부분이 뼈아프게 지적됐다. 맥어보이와 맥켄지의 뉴스는 ‘좋은 뉴스’였으나 좋은 TV쇼가 아니었기 때문에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 못 했던 것이다. 극중 뉴스는 시청률 측면에서 좋지 않은 성과를 거뒀다. 이 결과를 받아든 윌 맥어보이는 말한다.

“4위라고? 우리는 전부 다 올바르게 했는데! 전부 다 맞게 했다고!”

좋은 뉴스를 만들었지만 시청률은 저조한 현실. 이 때문에 뉴스룸은 다음에 닥칠 재난상황에 어떤 보도방식을 선택할 것인지 더욱 고민하게 될 것이다. 자극적인 뉴스가 사람들의 관심을 더 끌 수밖에 없고, 단기적인 관점에서 뉴스제작진은 좋은 뉴스보다 잘 팔리는 뉴스를 만들려는 유혹에 빠지기 쉽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은 시민의식이다. 좋은 뉴스를 골라내고 그 뉴스를 지지해줄 수 있는 시민의식만이 좋은 뉴스를 살려낼 수 있다.

김정현

[미디어 프리뷰] ‘그녀’의 마음을 가진 월-E: 지보. 현실로 나오다.

*주: 영화 <그녀>의 사만다를 보셨는지? 사만다는 소프트웨어로, 사람과 대화하고 교감하면서 그 사람에 꼭 맞는 아이덴티티를 가진 소프트웨어로 변화해나갔다. 또, 애니메이션 <월-E>를 기억하시는지? 예쁜 ‘마음’을 가진 로봇이 주인공으로 나왔다. 사만다와 월-E를 둘 다 아시는 분이라면, 아니 아시는 분이 아니라도 흥미로워할 로봇이 나왔다. 월-E의 생김새를 가진, 사만다의 마음을 가진 로봇이다. 지보는 크라우드 소싱을 통해 사전주문을 받았는데, 목표금액이었던 10만 달러를 4시간 만에 달성했다. 현재는 매진된 상태다. 사생활침해 혹은 해킹 우려를 잠시 제쳐둔다면, 흥미롭지 않을 수 없다. digitalhealthpost.com의 글을 번역했다.

1. 지보가 나오기까지

MIT에서 미디어기술 및 과학 분야 부교수로 있는 신시아 박사는 지능로봇을 개발하는 데 수십 년을 바쳐왔다. 박사논문을 쓰면서 만들었던 ‘키스멧’은 소셜지능 소프트웨어 시스템으로 전세계적인 유명세를 얻었다. 키스멧은 얼굴표정과 동작, 그리고 목소리로 감정을 표현해냈다.
그 후 ‘레오나르도’를 제작했는데, 레오나르도는 모터와 센서, 그리고 카메라가 장착돼, 그것을 통해 인간의 표현을 배우는 소셜로봇이었다. 이들은 심리학 이론에 기반해 프로그래밍되어 있었는데, 배우고, 협동하고, 반응하는 것이 좀 더 자연스러웠다.

2. 월-E와 ‘그녀’ 사이

‘지보’는 신시아 박사의 가장 최근 프로젝트로, 미리 주문한 사람들에 한해 보급됐다. 지보의 생김새는 흡사 픽사 애니메이션 캐릭터 ‘월-E’ 같다. 소프트웨어는 영화 <그녀>의 사만다에 한 발짝 가까워졌다. 지보는 자기 주변의 음성과 얼굴인식기능을 이용해 상황을 파악한다. 또 인터액티브기능이 있기 때문에 배우고, 가르치고 또 사람들과 협동할 수 있다. 지보가 누구와 어떤 대화를 나누느냐에 따라 그 사람에 ‘맞춤형’으로 바뀌게 된다. 지보는 스케줄이 꼬일라 치면 알려주기도 하고 삼촌 마중하러 공항에 가야한다고 상기시켜주기도 한다. 미리 파악한 선호도에 근거해 레스토랑이나 취미활동을 추천해주기도 한다. 360도 회전하는 머리, 쉽게 들고 다닐 수 있을 정도로 가벼운 몸 덕분에 지보를 쉽게 여기 저기 데리고 다닐 수 있다. 또, 당신의 홈-기기나 모바일기기와 연동할 수도 있다.

3. 게다가 비싸지도 않다

기술이나 디자인 못지않게 놀라운 것은 가격이다. 소셜펀딩 목표금액이었던 10만 달러는 우스울 정도로 많은 금액이 모였고, 예치금 99달러를 내고 예약구매하는 것 역시 매진됐다. 지보는 이미 사람들의 마음뿐만 아니라 돈도 얻었다. (프로모션 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3N1Q8oFpX1Y)
MIT 미디어랩의 디렉터 조이는 최근 테드강연에서, ‘어떻게 이렇게 적은 금액으로 혁신을 일으켰는지’ 말했다. 그는 젊은 세대가 인터넷이 생기면서, 웹사이트와 소셜채널을 잘 사용해서 얼마나 우리의 일상에 혁신을 가져왔는지 이야기했다. 그리고 이제는 소프트웨어가 아니라 하드웨어를 가지고도 일상에 혁신을 일으킬 수 있다고 말했다. 아주 적은 비용을 들이고도 말이다.
신시아 박사는 생각했다. 사람들이 가지고 놀고, 배우며, 대화하고, 조각조각난 세상을 간소화할 수 있는 로봇을 적은 돈으로도 만들 수 있겠다고 말이다. 500달러가 싼 것은 아니지만, 아이폰도 500달러는 한다. 그리고 지보가 당신의 자녀들과의, 부모님과의 그리고 할머니 할아버지와의 연결을 쉽게 해준다는 가치를 생각하면 비싼 것도 아니다.

출처: http://digitalhealthpost.com/2014/07/18/jibo-home-efficiency-social-robot/

[미디어 리뷰] 칸딘스키를 영상에 담는 단 하나의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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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상을 우연한 기회에 보고 소름 돋는 경험을 했다.
칸딘스키 그림에 대한 영상인데, 예술작품을, 그것도 추상화를 이렇게 한 큐에 설명할 수도 있구나 생각했다. http://vimeo.com/22220131 꼭 보시라.

나의 미술에 대한 지식은, 문과 고등학생의 상대성이론에 대한 지식만큼이나 얕기 때문에, 이 영상에 내가 전율했던 이유는 한 문장이면 족하다.

“칸딘스키 추상화 탄생과정을 영상에 담았다.”

구체적으로 말하기 위해, 영상을 글로써 묘사해보겠다.
‘영상은, 칸딘스키의 가장 유명한 <구성8>의 구성요소 하나하나를 보여주면서 시작한다. 그 요소 하나하나는 경쾌하게, 자신의 교유한 떨림대로 흔들린다. 경쾌한, 그렇지만 의미는 알 수 없는 깨끗한 음악이 BGM으로 깔린다. 동그라미들은 비누방울처럼 부드럽고 천천히 떠오르고, 세모는 자기 자리에서 지글지글 움직인다. 물결무늬는 물결처럼 물결친다.’

내가 알고 있는 칸딘스키 예술작품 탄생과정은 다음과 같다.
“칸딘스키는 “미술은 자연의 모방이 아니라 색채와 선의 효과만으로 더욱 순수해지지 않을까? 실제 대상을 지니지는 않았지만 음악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하고 생각했다. 그는 시각적인 것과 청각적인 것이 하나로 융합되어 감상자의 영혼과 교감하는 ‘총체적 예술’을 추구했다.”
(유현영, <칸딘스키, 음악과의 아날로지>)

즉, 칸딘스키 예술의 절정은 음악을 빼놓고서는 설명할 수 없다. 그는 개별로서 아무 의미도 없는 음표들의 집합이 아름다운 선율을 만들어낸다는 것에 탄복한 듯한데, 그 ‘탄복’을 미술에 끌어들였다. 즉, 개별로서 아무 의미도 없는 선, 면, 동그라미, 네모, 세모 등이 적절하게 모여서 아름다움 자체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보았던 것이다.

다음의 묘사도 보자. 위 묘사에서 이어진다.
‘북이 둥둥 울리는 것 같은 음이 들리면 배경이 우주로 바뀐다. 그래, 이건 우주를 표현한 것인가 봐. 그러면, 지금껏 없었던 중력이 일시에 생긴 것처럼 땅으로 떨어진다. 네모들은 얼음틀 안에 얼려진 얼음들처럼 모서리를 맞대고 꼭 붙어 있다가, 땅에 닿는 순간 와르르 해방된다.’

칸딘스키가 해당 그림을 그렸던 시기에 그는 ‘신비적이고 환상적인 우주’를 화폭에 담아내려고 의도했다. 물론 점과 선, 도형들로 말이다. 그것을 표현하는 방식으로, 영상의 배경은 우주로 바뀌게 되는 것이다.

이런 순간도 있다.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들릴 때마다, 동그라미가 큰 원이었다가 작은 원 두 개로 나뉘고, 다시 뭉쳤다가 두 개로 나뉜다. 그럴 때는 높고 청명한 소리가 줄곧 들리다가, 낮고 울림이 깊은 음성이 들리며 네모가 끝없이 가라앉는다. 물 컵에 빠진 발포비타민처럼 조그마한 공기들을 위로 물 밖으로 올려 보내며.’

동그라미가 포커싱될 때, 네모가 움직일 때, 곡선이 물결칠 때, BGM은 각각 고유한 소리를 낸다. 각각이 어떤 음표를 상징하고 있을 것이기에, 칸딘스키가 그림을 그릴 때 칸딘스키의 뇌를 울리고 있었을 음악을 상상한 것이다.

추상화만큼이나 영상이 아름다울 수도 있다.

김정현

[미디어 리뷰] 드라마 을 바라보는 취준생의 시선

미생2

드라마 <미생>이 화제다.

웹툰 <미생>이 대박 난 전력이 있으니 당연한 거 아니냐고 할 사람도 있겠으나 tvN드라마 <미생>의 조짐은 그것 이상이다. 다음에서 웹드라마로 먼저 제작된 바 있었으나 소리 소문 없이 묻혔던 전력을 생각해보면, 드라마 <미생>은 단순히 웹툰 <미생>에 얹혀 가는 드라마는 아니다.
나만 이렇게 느끼는 건 아닌 것 같다. 취준생(취업준비생) 게시판에서도 미생의 인기를 심심치 않게 느낄 수 있다. 별 거 없는 인턴(나부랭이)인 주인공 ‘장그래’와 다를 바 없는 취준생들 입장에서 <미생>의 현실이 더 뼈아프게 느껴졌을 것이다.
그래서 써보려고 한다. 취준생이 <미생>을 보는 시선을.

1. 노력이란, 남들도 다 할 수 있는 것.

장그래는 할 줄 아는 외국어도, 학벌도, 스펙도 뭣도 없는 ‘요새 보기 드문’ 청년이다. 컴퓨터활용능력자격증 2급이 있다고 하지만, 그건 냉면에 얹어진 배 같은 존재다. 냉면이나 육수가 준비된 다음에야, ‘있으면 좋고, 없으면 할 수 없는’ 성격의 것이지, 그것만 가지고 배를 채울 수는 없다.

그래서 장그래에게 남은 것은 ‘노력’ 뿐이다.

장그래는 생각한다.
‘나의 무엇. 내게 남은 단 하나의 무엇.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무엇.’이 무엇인지에 대해.

그리고 답한다.
“노력이요,
전 지금까지 제 노력을 쓰지 않았으니까, 제 노력은 쌔빠진 신상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노력’은 변별력이 없다는 거다. 남들도 다 하는 게 노력이다. 그래서 장그래도 덧붙인다.

“제 노력은 다릅니다. 질이요. 양도요.”

청년실업 100만의 시대에, ‘뽑아만 주신다면 제 한 몸 바쳐’ 일할 각오가 되어 있는 ‘고스펙자들’도 쌔고 쌨다. 그 가운데 장그래는 어떤 노력을 할 수 있을 것인가.
나는 여기서 아득함을 느꼈다.

2. 최선의 노력이 부정될 때.

장그래가 처음으로 ‘남들과 다른’ 노력을 선보일 수 있었던 기회는 파일을 정리하는 일이었다.
장그래는 스스로 밝히지는 않았지만 바둑을 두던 전력이 있는데, 결국 실패로 끝난 그 경험이 파일을 정리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기뻐한다. 장그래가 공언한 것처럼 ‘질이 다른’ 노력을 보여줄 수 있게 됐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기존에 만들어져 있는 폴더트리가 모든 파일을 포괄하지 못 한다는 문제점을 발견하고, 장그래는 폴더트리 전체를 다시 만든다.

그리고는 과장에게 의기양양하게 말한다.
“기존 폴더트리로는 애매한 파일이 있어서 다시 만들어봤습니다. 이렇게 하면 될까요?”

과장은 말한다.
“아니.”
“너 친구 없지? 혼자 쓰는 일기 보는 느낌이다.”

그리고 장그래의 옆을 스쳐지나가며 덧붙인다.
“크게 기대한 건 아니었어.”

최선을 다하지 않았을 때 부정적인 평가를 듣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다음에 더 열심히 하면 되지. 라고 생각하면 되니까. 개선의 여지가 있으니까.
그런데 최선을 다했을 때, “크게 기대한 건 아니었어”라는 말을 듣는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아무리 생각해도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더 잘 할 수가 없는데 그 결과물이 멸시받는다면, 그는 쓸모없는 인간이 될 수밖에는 없다.

나는 이 장면이 참 슬펐다.

미생1

3. 질로 승부 볼 수 없다면, 남은 것은 양밖에는 없다.

장그래는 자신이 만든 ‘폴더트리’가 거부당하자 ‘질적으로 다른 노력’을 보여줄 수 없다고 체념한 듯 보이기도 했다. 그 대신 남들과 ‘양적으로 다른 노력’을 선보인다. 그 중 하나는 오징어젓갈이 담긴 드럼통 수십 개를 일일이 뒤져 꼴뚜기를 찾아낸 것이다. 다른 인턴들이 불평할 때 장그래는 불평 한 마디 없이, 어머니가 사주신 새 양복을 입고 오징어젓갈에 손을 담근다.

장그래의 ‘양적인 노력’을 보여준 장면은 또 있다. 오징어젓갈범벅이 된 장그래는 과장 및 인턴들과의 술자리를 뒤로 하고 회사로 향한다. 앞서 멸시받은 폴더트리를 고쳐놓기 위해서다. 만신창이가 된 그래의 몰골을 본 과장은 만류하지만 그래는 말한다.

“잘못 해놨으니까 다시 해두겠습니다.
아닙니다. 내일 출근하시면 보실 수 있도록 해놓겠습니다.”

양적인 노력은 다른 인턴들의 무시를 받았고 (“그렇게 계속 열심히‘만’ 하세요~ㅋㅋ”)
과장의 동정을 받았지만 (야, 그거 내일 해도 돼.)
그것밖에 남지 않은 사람에게는 필사적인 무기인 것이다.

4. 저건 별로다 싶은 면이 없는 건 아니다.

장그래에 이입한 덕분에 울고 웃으며 드라마를 봤지만, 모든 부분이 다 좋았던 것은 아니다.
청소년드라마에 나오는 학교가 내가 다닌 학교와 다른 것처럼 <미생>에 나온 회사의 모습과 <미생>에 나온 인턴들의 행동은 실제 상황과는 거리가 있어 보였다.
능력자 인턴인 안영이는 극중 상대회사의 CEO를 설득해 계약을 성사시키는데 8할의 공헌을 한다. 그러나 실제 회사에서 인턴은 그럴 역량이 있는지 여부는 둘째 치더라도 그럴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 제3, 제4 외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직원들도 저렇게 많을 리 없다. 장그래를 티나게 ‘왕따시키는’ 행위도 진짜 회사였다면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나중에 인사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니까. 아니꼬운 동료가 있다면 무시하면 그뿐이다.

5. 장그래도 되지 못한 자

장그래는 흡사 패배자처럼 나오지만, 곰곰이 훑어보면 우월하다.
첫째, 회사 인턴에 넣어줄 만큼 소위 ‘빽’이 있고, 둘째, 어마어마하게 잘생겼으며, 셋째, 직업용어사전을 나흘 만에 통째로 외워버릴 만큼 머리가 좋다.

그래서 다시 나를 돌아보게 되는 것이다.
장그래에 감정이입을 해야 하는가, 혹은 부러워해야 하는 것은 아닌가?

김정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