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커뮤니케이션] Clinton이라는 이름의 정치 브랜드, 어떻게 변화해 왔나?

주) 23년 세월의 클린턴 브랜드
지난 10월 3일은 빌 클린턴이 대통령 출마선언을 한지 23년째 되는 날이었다. 미국의 정치 전문 저널인 폴리티코(Politico)에서는 클린턴이라는 정치 브랜드가 23년의 시간을 거쳐 라이벌들과의 경쟁 속에서 살아남으며, 정치인으로써 대중들에게 어필하는 주요 요소들이 어떻게 변해 왔는지 비교하는 흥미로운 기사를 게재했다. 주요 내용을 번역했다.

캡처

1. 클린턴 브랜드의 변화
폴리티코에 따르면 지난 23년간 클린턴 브랜드에는 3가지 중요 요소인 1)새로운 아이디어, 2)대중적 연결, 3)세대교체에 대한 희망이 사라지거나 희미해졌다. 참신한 등장과 동시에 남은 시간은 점차 진부해질 수 밖에 없는 운명이라는 점에서 모든 정치인은 같은 입장일 것이다. 그럼에도 오랜 시간을 두고 강력한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는 클린턴 브랜드의 힘이 무엇인지 살펴보고자 한다.

‘새로운 아이디어’(new ideas): 92년도의 클린턴은 새로운 아이디어의 상징이었다. 한쪽에 치우지지 않고 중도적 입장에서 개혁적 아이디어를 들고 나타난 클린턴 캠페인에는 새로운 정책에 대한 제안이 넘쳤다. 그러나 8년의 상원의원과 4년간의 국무장관을 역임하고 백악관 이후 2권의 책을 집필한 관록 있는 정치인 힐러리에게서 신선한 아이디어나 새로운 정책 제안을 기대하긴 어렵다.

‘대중들과의 연결'(an authentic populist connection): 92년도 클린턴은 편안함으로 대중적 어필에 성공했다. 선거기간 동안 불거진 스캔들과 병역기피 의혹은 아이러니하게도 평범한 유권자들의 사도로서의 그의 신임을 더욱 공고히 해주었다. 힐러리도 미국 백인 중산층 출신이라는 배경을 갖고 있다. 그러나 권력 속에서 보낸 수십 년 세월 속에서 전용 제트기를 타고 다니는 특권계층의 삶은 클린턴 브랜드와 대중적 연계를 약화시켰다. 또한 클린턴 가문의 샛별인 외동딸 첼시 클린턴은 단지 클린턴가의 일원이라는 이유로 여느 유명인사 못지 않은 주목을 받으며 미국식 신 귀족의 모습을 보여준다.

‘세대 교체론'(the idea of generational change): 세대교체 이슈는 클린턴 브랜드에서 가장 큰 변화이다. 새로운 변화의 강력한 상징이었던 빌 클리턴은 45세에 출마하여 46세에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물론 70세가 넘어서도 대통령직을 수행한 로널드 레이건 처럼 고령의 정치인도 극적 변화의 상징이 될 수는 있다. 그럼에도 이미 2008년 더 젊은 세대를 선택하고자 하는 유권자들을 경험한 60대의 힐러리에게는 쉽지 않은 도전이 될 것이다.

2. 오래되었지만 ‘더욱’ 훌륭한

폴리티코의 지적만 보자면 클린턴 브랜드는 92년도 장점을 모두 잃어버린 듯 하다. 하지만 오늘날 클린턴이 갖는 위상은 더욱 강력해졌다. 왜냐하면 시간이 주는 장점을 극대화하여 시간이 갈수록 브랜드 가치를 올리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첫째, 힐러리에게는 신선하지는 않지만 여전히 훌륭한 아이디어가 있다. 오랜 정치 경험으로 견고해진 국제적 감각과 정치력, 판단력을 비롯해 일관되게 지지하는 여성, 소수권자에 대한 권익보호는 오래되었지만 훌륭한 식견에 대한 신뢰를 강화시켰다.

둘째, 더 이상 서민적이지 않은 클린턴 가문은 미국 사회의 이상적인 로열 패밀리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들은 ‘클린턴 재단’을 통해 국제 사회의 여성, 아동, 빈곤의 문제에 적극 참여하며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는 이미지를 확고히 했다. 자수성가로 부과 권력을 가지고 있으면서 그에 걸맞는 고상한 헌신이 뒤따르는 클린턴 브랜드에 대해 대중은 거부감을 느끼기 보다는 첼시의 일거수 일투족에 열광하는 반응을 보인다.

셋째, 힐러리는 최초의 여성 대통령 탄생이라는 강력한 요소가 있다. 유리 천정을 뚫고 권력의 정점에 서는 최초의 여성이 된다는 것은 어떤 세대교체론보다 개혁적이고 새로운 도전이다. 핵심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는 힐러리는 부드럽고도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하며 가장 강력한 대선주자로 떠오르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대선 출마에 대해서는 언제나 모호한 입장을 취하며 자신에 대한 대중의 기대감을 더욱 높이고 있다. 이러한 것이 클린턴 브랜드가 참신함을 잃고 23년을 견뎌오면서도 대중성과 충성도를 확보할 수 있었던 비결이 아닐까 한다. 폴리티코도 경험많은 최초의 여성 대통령에 대한 기대와 경제 이슈만큼이나 비중있는 여성 이슈, 여전히 유효한 중산층 출신배경 등을 꼽으며 클린턴 브랜드의 밝은 미래를 전망한다.

* 마지막으로 시간이 지나도 클린턴 브랜드에서 변치 않고 유지되는 요소가 추가되어야 하지 않을까? 바로 권력에 대한 진정한 사랑이다.

관련기사: <Politico>, 2014/10/02, “Clinton Brand: Centrist populism to celebrity”, By John F. Harris and Maggie Haberman, http://www.politico.com/story/2014/10/hillary-clinton-bill-clinton-elections-111528.html

[정치 커뮤니케이션] 여기 마지막까지 뜨거웠던 한 사람이 있다 – 영국의 정치인 토니 벤이 남기고 간 것들

한 노신사가 있다.

그는 마이클 무어 감독의 ‘식코(Sicko)’에서 민주주의와 현대사회의 모순에 대해 거침없이 이야기를 한다.

“인류의 상위 1%가 세계의 80%의 부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기가 막힐 노릇은 사람들이 그것을 참는다는 겁니다. 그들은 가난하고 어지럽고 겁을 먹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의 최선이란, 시키는 대로 일하며 소박한 꿈이나 꾸고 사는 것이라고 믿고 살아갑니다.”

영국의 원로 정치가 토니 벤(Tony Benn)이 사망했다. 가족들은 그가 3월 14일 자택에서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88세의 일기로 숨을 거두었다고 발표했다. 우리에게는 다소 생소한 인물이지만 그는 영국 정치사의 기념비적인 존재이자 드라마틱한 인생 스토리의 주인공이다. 귀족 명문가 출신으로 자작의 신분을 물려받아 상원의원이 될 수도 있었지만, 귀족지위 승계를 거부하고 평생을 평민의회인 하원에서 보낸 것으로 유명하다. 귀족지위 개혁운동을 펼쳐 법적으로 귀족 신분을 상실한 첫 번째 사례가 되어 권위와 구체제 세습 타파를 온몸으로 실천한 것이다. 이후 산업부 장관과 노동당 당수 등을 지내며 영국 좌파의 상징, 서민들의 대변자, 위대한 작가, 연설가로 불리게 되었다.

그의 사망 소식이 알려지자 영국의 주요 언론은 추모와 애도의 글을 쏟아내며 고인의 업적을 기리고 있다. 특히 영국판 허핑톤포스트의 Mehdi Hasan, Nigel Costley을 비롯하여 수많은 기고가들이 그를 가리켜 영감을 주는 사람(“He inspired me”)이라는 표현을 빠트리지 않는다. 80대의 원로 정치인이 어떻게 젊은 세대에게 영감의 원천으로 칭송 받을 수 있었던 것일까? 그 비결은 세상을 다르게 보는 자유로운 그의 관점에 찾을 수 있다. 그는 ‘자유시장이 강요하는 대로 세상을 보지 않는 것이야 말로 개인적 자유의 기초’라고 말한다. 실제로 그의 삶은 기득권으로부터의 자유 그 자체였다. 보수적 신분제를 거부하고, 자본주의의 폐해와 권력자들의 이기심을 고발하는데 주저하지 않았으며, 전쟁과 파괴를 중단하고 평화로 나아갈 것을 주장한 그의 외침은 수많은 어록으로 남겨져 기존 질서에 익숙한 우리들의 등짝을 후려친다. 이념을 떠나 자신의 신념을 걸고 평생을 살아간 한 사람의 삶이 그렇다.

가디언 지는 토니 벤을 추모하여 독자들이 뽑은 그의 명언 베스트 10을 소개했다. 대중들에게 깊이 각인된 구절들을 통해 그가 우리에게 남기고 간 정신적 유산을 느껴보자.

1. “우리에게 사람을 죽일 수 있는 돈이 있다면, 그 사람을 도울 돈도 있는 것이다.”
(이와 비슷하게 1945년에는 “독일인을 죽여서 완전고용에 달성할 수 있다면, 병원을 짓고, 학교를 지어서도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이다.”라고도 했다.)
– ‘식코(Sicko)’인터뷰

2. 권력자들에 대한 5가지 질문:
“나는 일생 동안 민주주의에 관한 5개의 질문을 연구해 왔다. 권력자(예를 들면, 히틀러, 스탈린, 빌 게이츠)를 만나게 된다면 다음의 5개의 질문을 해야 한다.
① 당신에게 어떤 권력이 있는가?
② 그 권력은 어디에서 얻게된 것인가?
③ 당신은 누구의 이익을 위해 노력하는가?
④ 당신은 누구에게 책임을 져야 하는가?
⑤ 우리는 어떻게 하면 당신을 제거할 수 있는가? 당신이 당신의 지배자를 제거할 수 없다면 당신은 민주적 체제에서 사는 것이 아니다.”
-하원에서의 마지막 연설

3. “나는 가능한 모든 실수를 저질렀다. 그러나 실수를 하는 과정이란 우리가 배우는 과정이다.”
– 최근의 라디오 인터뷰

4. “나는 정치와 자유를 위해 더 많이 헌신하길 원한다.”
-하원의원 은퇴 선언 후 귀족의회인 상원에서 자리를 맡을 생각이 없는지 묻자 “바보 같은 소리 하지 말라”고 대답하면서

5. “영국 상원의회는 은퇴한 정치인들을 위한 영국판 외몽골 지방이다”
– 1962년 뉴욕타임즈

6. “사람들을 조종하는 두가지 방식이 있다. 첫째는 사람들을 겁주는 것이고, 둘째는 혼란스럽게 만드는 것이다 (…)빚에 찌든 사람들은 희망을 잃게 되고, 희망을 잃은 사람들은 투표하지 않게 된다. 교육받고, 건강하고 자신감 있는 국민들은 통치하기가 어려운 법이다.”
– ‘식코(Sicko)’인터뷰

7. “희망은 진보를 위한 연료가 되고, 공포는 당신을 스스로를 가두어 놓는 감옥이 된다.”

8. “우리는 자본주의를 운영하기 위해서만 여기 있는 것이 아니다. 사회를 변화시키고 더 건강한 가치를 정의하기 위해 있는 것이다.”
-1980년대 대중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노동당 노선에 대한 논쟁이 뜨거워졌을 때 토니 벤이 노동당의 지나친 우향우를 경계하며

9. “이라크에서 이루어졌던 일들은 분명 전쟁범죄이다. 스텔스기 폭격과 자살특공대의 테러 사이에는 아무런 도덕적 차이가 없다. 둘 다 정치적 이유로 사람들을 죽이는 것이다.”
– 은퇴 후 ‘전쟁 중단을 위한 연합’(the Stop the War coalition)의 대표로 BBC 시사프로에서 미 공화당의 존 볼튼과 토론하면서.

10. “신념(faith)이란 당신이 그것을 위해 죽을 수 있는 것이고, 정책(doctrine)이란 그것 때문에 당신이 사람을 죽이게 되는 것이다. 둘은 큰 차이가 있다.”

 

김성은

 

출처: The Guardian, 2014/03/15, ’10 of the best Tony Benn’, James Walsh, http://www.theguardian.com/politics/2014/mar/15/10-of-the-best-tony-benn-quotes-as-picked-by-our-readers

[정치 커뮤니케이션] 케네디 대통령 재임기의 침묵을 떠올리자 – 대통령의 연설에 대한 케네디의 생각

케네디 대통령의 믿음

케네디 대통령의 믿음

0. 11월 22일이면 존 F. 케네디 서거 50주기다. 미국에서는 케네디 암살의 미스터리를 다룬 뉴스들이 올해도 어김없이 보도되고 케네디와 그의 통치를 조명한 서적들이 출간되는 등 분주한 모습이다. 클린턴 전 대통령의 스피치라이터였던 제프 셰솔(Jeff Shesol)이 케네디와 관련한 글을 뉴요커에 기고했다. 자신의 말에 책임을 지는 정치인에 대한 갈증은 한국이나 미국이나 비슷한 것 같다.

1. 1962년 8월 케네디 재임기, 뉴욕타임즈는 75명 역사학자들이 평가한 역대 대통령들의 평가 결과를 보도했다. 케네디는 기사를 읽고 “놀라움을 표했다.” 우드로 윌슨과 테오도르 루즈벨트의 높은 순위 때문이었다. 그는 윌슨이 적어도 멕시코에 대한 내정 개입, 제1차 세계대전 개입 결정등 적어도 두가지 재앙에 대해 책임이 있다고 생각했다. 흥미로웠던 점은 그의 평가 기준이 ‘정치적 교화’보다 ‘확실한 성취’에 있었다는 점이다. 목표에 대한 성취 없이 교화에 힘쓰는 윌슨, 루즈벨트는 제임스 포크, 해리 트루먼같은 실질적 성취를 이룬 이들보다 낮게 평가되어야 한다고 본 것이다.

2. “말은 많았으나 성취한 것은 적다.” 흥미로운 역설은 이런 그의 비판이 그의 재임기에 대한 비판과 정확히 일치한다는 점이다. 이는 분명히 잘못된 사실이다. 케네디의 업적은 내부적(미국 평화봉사단, 우주개발 프로그램)으로도 외부적(핵전쟁 위기 탈출)으로도 명확했고, 종교적인 관용부터 공공영역 전반의 공적인 사고방식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점은 과소평가 될 수도, 되어서도 안 된다. 하지만 그의 사후 50주기, 그는 그의 성취보다 그의 말로 기억되고 있다. 케네디 스피치라이터였던 테드 쇠렌센(Ted Sorensen)은 전후 냉전기, 어떤 인물의 단어와 경구들도 케네디의 것만큼 강한 국가적 기억을 남길 순 없었다고 평가했다. 그의 지적은 상징적이다. 케네디에 비할만한 유일한 커뮤니케이터로 평가받는 로널드 레이건의 스피치라이터들은 그들이 작성한 문구에 대해서도 같은 평가를 요구할 지 모른다. 하지만 레이건의 사상은 오래 지속되었지만, 그의 문구들은 ‘단명’했음을 부정할 수 없다.

3. 우연히 이뤄지는 건 없다. 케네디는 정치 입문 초기 명연설가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의 초기 스피치라이터 중 한 명은 “케네디가 어떤 원고라도 그 생명과 리듬을 말려 죽여버린다.”고 불평했을 정도다.) 하지만 그는 10년 이상 부지런히 노력했다. 윈스턴 처칠의 연설을 분석했고, 보이스 코치의 컨설팅을 받았다. 그는 연설에 대한 가르침들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였다. 쇠렌센이 그에게 준 많은 명연설문들을 모두 읽고, 활용을 위해 인상적인 구절을 적곤 했다. 정치적 연설의 힘은 그에게 자명한 것이었다.

4. 하지만 그에게 연설은 내재되었다가 주문에 의해 발현되는 힘이 아니었다. 케네디는 연설이 ‘올바른 단어들을 이용해 물을 와인으로 바꿀 수 있는 연금술’과 같다는 생각을 믿지 않았다. 대신 연설이 ‘실천의 선도자’라는 확고한 믿음을 갖고 있었다. 그는 어떤 일을 행할 때까지 무엇이라도 말하는 데 싫증내지 않았다. 그렇지 않다면, 이는 ‘수다’에 불과할 뿐이었다. 이는 대중을 지루하게 할 뿐 아니라 그에 대한 의심을 키울 것이라고 생각했다. “단어 그 자체론 충분치 않습니다.” 케네디는 암살로 인해, 연설할 기회를 갖지 못했던 댈러스에서의 연설에서 이를 말할 예정이었다.

5. 오늘 날 케네디는 고대 유물처럼 보인다. 최근의 대통령들은 루즈벨트처럼 너무 많이 말한다. 그들은 연설하고, 트윗하고, 국제 회담, 의회의 협상, 문화 행사, 국가 기념일 등에 대해 하루도 빠짐없이 논평한다. 2011년 10월, 오바마 대통령은 1985년 슈퍼볼 챔피언 시카고 베어스와 2011년 NCAA 여자농구 챔피언 텍사스 A&M Aggies를 찬양했고, 스티브 잡스와 무하마드 카다피의 죽음에 대한 논평을 했고, 레이프 에릭슨 데이(Leif Erikson Day)와 미국 캐릭터 기념주간(National Character Counts Week)을 다시 한 번 선언했다. 그리고 투나잇쇼(The Tonight Show)에 출현했다. 이 모든 것이 ‘얘기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은’ 많은 예들 일부다. 이는 현 대통령을 힐난하기 위함이 아니다. 내가 연설문을 작성했던 빌 클린턴과 케네디의 연간 연설문 양을 비교해 보자. 1962년 케네디는 목차와 어펜딕스를 제외하고 903페이지를 채웠다. 1994년 이는 두배가 되었다. 무려 2159페이지에 달했다. 물론 클린턴은 오바마처럼 24시간, 7일 체제에서 재임했다. 케네디는 8시간, 5일 근무의 이점을 누렸다. 대통령들에게 침묵을 지키는 것은 사치다. 만약 그랬다간 반대파가 그의 공백을 차지할 것이다.

6. 우리는 연설과 실천의 연결을 약화시켜 왔다. 역사학자 아서 슐레신저(Arthur Schlesinger)는 내게 “정치 연설은 ‘저급 수사학’의 형태가 되었다.”고 말했다. 그의 의도는 연설의 질이 케네디 시대보다 떨어졌다는 것이 아니었다. 대통령들의 말이 많아지며 역설적으로, 그들의 말의 무게가 떨어졌음을 의미했다. 11월 22일은 케네디의 서거일이다. “케네디가는 울지 않는다.”라고 그의 일가가 말했었던 것 같이 우리도 울지 말자. 대신 그 시대의 다른 어떤 것을 불러일으키자. 케네디의 억양과 명문대신 의미있는 순간, 잠시 침묵을 지킴으로써 실질적 성취 위에 놓여있는 진정한 ‘통치의 생각’에 다가서자.

이현동

출처: 뉴요커 링크

[정치 커뮤니케이션] 선거의 판도를 바꾼 드 블라시오의 TV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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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9월 10일(현지시간) 민주당 뉴욕시장 예비선거가 치러졌다. 99% 개표가 완료된 상황에서 드 블라시오(De Blasio)가 40.2%의 득표율을 얻어 26.2%의 빌 톰슨(Bill Thompson)을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빌 톰슨이 ‘완벽한 개표’를 요구하며 후보 확정은 미뤄졌다. (참고: 민주당 경선은 1위 후보가 40% 이상의 득표율을 얻지 못했을 때, 1,2위 후보 간 결선 투표를 치르게 되어있다.) 결선 투표의 희망을 버리지 않던 그가 16일(현지시간) 결국 패배를 인정하며, 드 블라시오는 결선 투표 없이 민주당 뉴욕시장 후보로 최종 낙점되었다. 그는 선거 초반 거의 주목 받지 못했다. 하지만 그의 아들 단테(Dante)가 출현한 선거 광고 한 편이 분위기 반전의 ‘히든카드’가 되었다. 어떤 광고였을까? 광고와 함께, 이에 대한 뉴욕타임즈의 분석도 발췌 소개한다.

1. 미국의 정치인들은 드 블라시오가 어떻게 혜성처럼 떠올랐는지 알기 위해 그의 캠페인을 살펴볼 것이다. 한 가지 중요한 요인은 그의 아들 15살 소년 단테가 출연한 ‘TV광고’였다. 그 광고에서 단테는 교육, 주거 등 여러 이슈들에 대한 아버지의 입장을 이야기 한다. 영국 더 타임즈의 마이클 바바로(Michael Barbaro)는 선거 후 분석에서, 이를 ‘시장 선거의 판도를 뒤흔든 광고’로 꼽는다.

2. 시청자들이 드 블라시오의 광고에 대해 기억하는 점은 후보의 주택 정책이 아니라, 그의 가족이 인종적으로 섞여있다는 점이다. 그는 백인이고, 그의 아내는 흑인이다. 단테는 엔젤라 데이비스(Angela Davis: 교수이자 배우로, 1979년 레닌평화상 수상자)이래 가장 인상적인 아프리카계 미국인이다. 이 점이 현 시장 마이클 블룸버그(Michael Bloomberg)가 뉴욕 매거진과의 인터뷰에서 드 블라시오 캠페인을 ‘인종차별주의적’이라고 부른 이유이다. 또한 그는 “이는 제가 유대인들의 표를 끌어올 수 있는 유대인이라는 점을 일깨워주는 것 같아요.”라고 비유를 덧붙였다. 그는 초점을 잘못 맞췄다. 단테가 등장한 광고의 핵심은 후보자가 아프리카계 미국인인 부인을 가짐으로써 흑인 유권자층을 끌어들인다는 게 아니었다. 광고가 ‘인종간 조화’를 향한 갈망을 드러내는 수단이었다는 게 중요한 부분이다. 드 블라시오의 가족은 매우 행복해 보인다. 그들이 함께 웃고 있는 모습은 사람들에게 얼마나 갈 길이 먼지, 우리가 지향하는 것은 무엇인지 잘 보여준다. 이는 버락 오바마가 그의 배경에 대해 얘기했을 때 미국에 미친 효과와 일맥상통한다. 오바마가 태어났을 때 10%도 못 미치는 미국인들만이 다른 인종간 결혼을 괜찮다고 생각했다.

3. 드 블라시오는 여전히 자신이 경쟁력 있는 후보임을 입증해야만 할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최소한 그를, 보고 있으면 기분 좋은 ‘세련된’ 광고를 만든 사람으로 기억할 것이다. 그는 이제 11월 공화당 조셉 로타(Joseph J. Lhota) 뉴욕시장 후보와의 본선을 앞두고 있다.

이현동

출처: http://www.nytimes.com/2013/09/12/opinion/collins-new-york-has-a-message.html?hp

* 관련글
– [정치 캠페인 3] ‘모던 패밀리’ 스타일 캠페인을 보여주다 – 뉴욕시장 민주당 후보 드 블라시오의 선거 캠페인http://wp.me/p3kx22-PE
– [정치 캠페인 4] 미국 뉴욕시장 선거 사례 연구 – 드 블라시오의 돌풍, 지지율 40% 고지를 넘어서다 http://wp.me/p3kx22-TZ

[대통령의 커뮤니케이션] 대통령의 언어, 협상의 언어, 반박의 언어, 언론의 편집 – 한 국가의 역사와 전략으로서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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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기록의 산물이다. 우리가 역사책을 읽는 것은 기록 속에 담긴 정서와 의미를 간접 체험하는 행위다. 역사는 승리한 자의 기록이라고 역사학자 E.H 카는 말했다. 하지만, 우리가 남겨야 하는 건 승자의 기록만은 아니다. ’현재의 우리‘가 사라지고 난 다음 후손들은 우리가 남긴 기록에서 ’현재의 우리‘를 어렴풋이 짐작할 것이기 때문이다.’

– 2007 남북정상회담 공동취재단 : 2007 남북정상회담 취재기 <50년 금단의 선을 걸어서 넘다> 발간사 중에서

1. 노무현 전 대통령

노무현 전 대통령은 회담을 기록하고 문서로 남길 것을 지시했다. 대화록이 공개될 것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기록을 남겼던 것은 후대에게 ‘사실’을 ‘전달’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후속 정권이 남북정상회담 혹은 남북관계를 해결하는 데 있어 참조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전략이 달라도 반드시 참고해야 하는 자료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언론에 자신의 말이 리크(leak)가 되었을 경우, 자신이 한 말이 정확하다면 한 번도 유출된 것에 대해서는 나무라지 않았다. 잘못된 전달에 대해 질책했던 적은 있다. 노 전 대통령은 정상회담의 기록을 그대로 기록할 것을 지시했을 때 이미 공개될 것으로 예견했다고 볼 수 있다. 그것을 외교의 전략과 국가정보로 활용하기를 바란, 전임 대통령의 의무라고 봤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때 기록은 정치가 아니라 정보다.

2. 국가정보원

국가정보원은 국가의 정보를 지키는 곳이다. 국내외의 수많은 정보와 관계를 다루는 국가 최고 정보관리 기관인 국정원은 고도의 전략적 판단과 기술을 담보해 일하는 곳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2007남북정상회담 발췌문의 공개는 부적절했다. 결정적으로 핵심요소에 대한 가치관리를 간과했다. 대내적으로는 최고급 정보가 언제, 어디서, 누구를 위해 관리되고 사용되어야 하는 것에 대한 실패라고 볼 수 있으며 대외적으로는 국가 최고급 정보를 만천하에 노출시키는 실수를 국정원이 주도한 것이라 볼 수 있다. 그것이 최대의 패착이다. 공개의 이유로 국가안위를 강조한 군인 출신 남재준 국가정보원장은 외교의 ‘전략적 모호성’과 ‘한국 이니셔티브’를 이해하고 있을까 하는 걱정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최고급 정보는 함부로 남에게 주는 것이 아니다. 국가이익이 모든 것에 우선하는 외교 전쟁에서는 더욱 그렇다. 국정원 댓글 사건이 이념의 이슈로 가려질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심각한 오해다. 위기는 그렇게 가려지지 않는다.

3. 박근혜 대통령

박근혜 대통령은 정파의 수장이 아니다. 정부의 대표다. 국가를 대표해서 외교를 관장하는 최종책임자다. 그런 점에서 이번 메시지 관리는 아쉽다. 정부의 연속선상에서 외교•국방•안보의 최고관리자라는 점을 놓쳤다. 박 대통령의 지지도가 상승곡선을 그리고 유지되고 있는 것은 정부의 대표이며 국가의 위기관리자로서의 일관성과 안정성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아니었다. 아마도 타협할 수 없는 신념의 문제로 접근한 것이다. 그래서 국가 외교 수장으로서의 스텐스를 잃게 된 것이다. 대한민국 외교는 스스로 최고급 정보를 유출한 것에 대한 후속 위기를 겪게 될 것이다.

대통령은 정보를 다룰 때 정권의 신념으로 다루기보다는 정부의 원칙으로 다루는 것이 맞다.

박 대통령의 외교는 정통파 우완 투수를 연상시킨다. 클래식 외교다. 그런데 자신의 철학과 스타일이 그렇다고 해도 전임 대통령의 생각과 같을 수는 없다. 특히 외교가 밀고 당기기, 타협과 협박이 상존하는 ‘협상의 언어’가 통용되는 영역이라면 더욱 그렇다.

그리고 국정원은 국가 최고 기밀을 다루는 특수기관이다. 국정원이 발췌본을 공개한 이 상황을 청와대 관계자가 ‘몰랐다’고 설명하는 것은 국정 관리의 공백을 의미하는 것이라는 명심해야 할 것이다.

4. 야권

야권은 반대하는 사람이 아니라 새로운 대안을 내놓는 사람들이다. 야권은 반대하고 저항하는 곳이라는 구체제의 명제는 수정되어야 한다. 사실 공개와 비공개의 논쟁은 부차적이었다. 이미 NLL에 대한 노 전 대통령의 언급과 진의는 남북정상회담을 전후해 이미 공개되어 있었다. 그렇다면 내용에 먼저 접근했어야 한다. 대선 때는 아예 NLL발언 자체가 없었다고 부인했다. 박선원 전 국가안보전략 비서관이 경향신문에 정상회담 전과 후 준비와 평가의 복기를 통해 회담 내용에 접근하기 전까지는 형식 논리만이 득세했다. 첫 단추가 잘못 끼워진 것이다. 남북정상회담의 결과물인 ‘남북관계 발전과 평화번영을 위한 선언(10.4선언)’ 5.항에는 ‘남과 북은 해주지역과 주변해역을 포괄하는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를 설치하고 공동어로구역과 평화수역 설정, 경제특구건설과 해주항 활용, 민간선박의 해주직항로 통과, 한강하구 공동이용 등을 적극 추진해 나가기로 하였다’고 되어 있다. 이것이 이 논쟁의 핵심이었다. 방어하는 프레임은 결코 성공하지 못한다.

5. 언론

`마지막으로 일부 보수 언론은 치사한 플레이를 했다. 몇 몇 언론의 동일한 제목은 차치하고, 위원장‘님’이라는 제목을 통해 마치 노 대통령이 김정일 위원장을 모시는 것처럼 표현한 것은 과장이다. 일부러 의도한 것이다. 형식의 측면에서, 대면해서 서로에게 존대하지 않은 회담이란 없다. ‘보고’라는 말의 주체도 노 전 대통령이 아니었다. 물론 비판할 수 있다. 그렇다면 정상회담 초기 부분 대화에서의 노 전 대통령의 파격적 언사에 대해 오히려 보수적으로 접근해야 설득력이 생기는 법이다. 사실 보다 논쟁에 집중한 결과다.

위기는 그저 소모되고 있다. 위기전략은 내부의 논쟁과 외부의 관계를 철저히 구분한다. 기본 중의 기본이다. 정파의 논쟁 앞에서 국익은 훼손되었다.

이 과정을 통해 모두가 소중한 교훈을 얻었기를 기대해 본다.

유민영 커뮤니케이션 컨설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