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로우 저널리즘 1 교황 프란치스코 5] ‘브랜드’가 ‘교황’에게 꼭 배워야 하는 세 가지

inc

*주: 작년 3월 취임한 프란체스코 교황. 기존 교황의 이미지와는 다른 파격적인 행보로 언론의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 사회적 이슈에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직접 찾아가서 이야기 나누는 그의 소탈한 면모는, 카톨릭 신자들 뿐 아니라 타종교 사람들에게도 관심과 존경을 받는 이유이다.

다양한 스타트업을 창업했던 ERIC V. HOLTZCLAW는 INC에 실린 < 당신의 브랜드가 교황에게 꼭 배워야 하는 세 가지> 칼럼에서 교황의 활동을 브랜드의 커뮤니케이션 차원에서 접근한다. 물론 교황의 정치적/종교적 관점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이 있지만, 그의 취임 후 ‘교황 열풍’이 일어나고 있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또한 교황 한 명의 행동이 가톨릭 전체에 이미지에 긍정적 영향을 주고 있다.

교황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비즈니스와 관계 없는 영역의 인물이 비즈니스적으로 매우 가치있는 활동을 해서 귀감이 되는 경우가 있다. 칼럼을 의역하여 공유한다.

1. 고객들이 있는 그 곳에서 이야기를 나누어라.

프란치스코 교황은 종종 전혀 모르는 사람이나 그에게 편지를 보낸 사람에게 전화를 걸어 그들의 종교와 종교생활에 대해 질문하였다.
전화를 받는 사람은 예상치 못한 교황의 전화에 깜짝 놀랐고, 이러한 전화가 계속 이어지자 이탈리아의 한 일간지는 “교황이 전화했을 때 응대하는 법”이라는 기사http://bit.ly/LQMsDD 를 작성하기도 하였다.

천주교의 수장(CEO)으로서 프란치스코 교황은 모든 좋은 리더들에게 꼭 필요한 활동인 고객들과의 대화를 아주 잘 하고 있다.
이를 통해 많은 사람들은 카톨릭을 보다 친근하고 현대적인 것으로 느끼게 된다.

또한 많은 브랜드와 임원들은 계속해서 소셜미디어를 지나가는 유행 정도로 무시하는 것과 달리, 교황은 소셜미디어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다.
카톨릭 신자(고객)들 뿐 아니라 다양한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전달하고 커뮤니케이션을 하는데 효율적인 도구로 트위터 계정https://twitter.com/Pontifex 등 다양한 미디어를 잘 사용하고 있다.

2. 브랜드의 살아있는 상징이 되어라.

많은 임원들이 자신들이 충분히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며 비싼 대형차나 자가용 비행기를 구매한다.
하지만 프란치스코 교황은 전통적인 교황의 행동들 대신 기존 자신이 살던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콘클라베에서 교황으로 선출된 뒤, 프란치스코 교황은 전용기사가 모는 바티칸의 리무진 대신 미니버스를 타고 콘클라베가 있었던 시스틴 채플로 이동하였다. 또한 성대한 교황의 관사 대신 바티칸 외곽에 작은 아파트에 살고 있으며, 직접 승용차를 몰고 다닌다.

교황의 지위와 그가 대표하는 카톨릭의 특징을 생각해 볼 때, 이러한 행동을 그가 대표하는 브랜드의 가치와 매우 잘 맞아떨어진다.
사람들은 본질적인 것을 따르고 싶어하기 마련이다. 조직의 리더로서 하고 있는 있는 일과 일치하는 행동한다면, 사람들은 당신에게 진정성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고 기대할 것이다.

3. 접근할 수 있는 편안한 존재가 되어라.

프란치스코 교황은 그의 자유시간의 상당부분을 관련된 안건을 다루거나 공과금을 내는 등 일상적인 활동을 하며 보낸다.
전통적인 교황의 의복을 입지 않고 다니는 그는 2013년 에스콰이어 잡지가 선정한 올해의 베스트 드레서이기도 하다.
교황은 이러한 행동들로 친근하고 진실한 이미지를 얻었는데, 이는 대중들과 친근감이 계속 유지되는데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사람들이 당신에게 접근하지 어렵도록 하는 장애물이 있거나, 당신과 스케줄을 잡기가 매우 어려운가?
그렇다면 당신을 위해 일하는 사람과 보다 쉽게 소통하고, 그들을 통해 배울 수 있는 좋은 방법을 찾아야 한다.
ERIC V. HOLTZCLAW 의 경우 조직 내 소통의 장애물을 제거하기 위해 회사에 있는 모든 직급의 사람들과 점심 식사를 함께 했다.
이는 일상 속에서 조직의 구성원들에게 배우고, 현재 무엇이 문제인지 알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손호석

출처 : INC http://www.inc.com/eric-v-holtzclaw/what-your-brand-should-learn-from-the-pope.html

[팔로우 저널리즘 1 교황 프란치스코 4] 알자지라는 프란치스코 교황을 어떻게 볼까? – 교황에 대한 다른 생각: 그는 전임 교황들과 다르지 않다

프란치스코 교황에 대한 알자지라의 생각은?

프란치스코 교황에 대한 알자지라의 생각은?

 

* 주: 프란치스코 교황은 다르다. 연일 전세계 신문에 교황의 행보, 그리고 발언들이 쏟아진다. 교황의 입지가 원래 대단한 것이라 이 정도 이슈화는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적합하지 않다. 지난 교황들 중에 프란치스코 교황만큼 ‘긍정적인’ 이슈메이커로 ‘자주’ 등장한 적은 없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확실히 다르다. 자본주의에 대한 경계, 동성애나 무신론자에 대한 접근, 현재 카톨릭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는 신도들의 행복에 대한 관심, 타 분파 포용 등에 대해 적극적이고 진취적으로 접근한다. 하지만 이를 다르게 보는 사람들도 있다. 역사적으로 끈적이는 경쟁관계를 가지고 있는 이슬람측의 생각은 어떨까? 다음 ‘알자지라’의 보도를 보면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동의할 순 없더라도 한 가지 확실한 것: 교황의 PR은 훌륭하다는 것이다.

1. 프란치스코 교황은 미국 미디어들의 극찬을 받고 있다. 사실 이는 전례 없던 일이다. “심지어 운동선수들 조차 교황을 사랑한다” 최근 CNN의 보도다. 데일리 비스트의 헤드라인은 “프란치스코 교황의 특별함” 이었다. 주간지 타임이 선정한 올해의 인물로 교황이 선정되며 이는 절정에 달했다. “나는 어떤 종교도 없지만, 아주 많이 교황을 사랑한다” 한 트위터 유저의 말은 널리 퍼져나갔다. 온라인, 오프라인 가릴 것 없었다. 그는 ‘어두운 얼굴의 교황’이란 교황의 예전 이미지 대신 생생하고 현대적인 모습으로 비춰지고 있다. 그의 최우선 염려가 ‘빈자의 보살핌’이라는 선언을 통해, 스캔들로 가득 찼던 바티칸엔 한동안 찾아보기 힘들었던 겸손과 감사함이 퍼지고 있다.

2. 프란치스코 교황의 검소(그는 중고차를 몬다!) 그리고 값비싼 의복 배제 등은 교회에 회의적이었던 전문가들이 존경을 고백하게끔 했다. 이는 그가 호화스런 교황 전용 아파트를 포기하고 방문 성직자들과 더 어울릴 수 있는 게스트하우스를 숙소로 결정했을 때 시작되었다. 언론인들도 교황에 열광했다. 그리고 11월 ‘어떤 규제도 받지 않는’ 자본주의 및 금융 시장에 대한 교황의 비판과 훈계가 이어졌다. 진보를 표방하는 미디어는 의기양양했다. MSNBC 에드 슐츠(Ed Schultz)가 열변을 토했다. “교황이 말하는 것은 역대 교황 누구도 재임기 말하지 않았던 것들이다. 그리고 이는 공화당 정치인들, 보수주의자들의 심장을 때렸다. 그들은 이를 수용할 수 없었다.” 우파 측은 프란치스코를 막시즘과 연결시켰다. 라디오 토크쇼 진행자 러시 림바흐(Rush Limbaugh)는 “이는 슬픈 일이다. 교황은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에 대해 자신이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조차 모르는 게 확실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3. 프란치스코 교황에 대한 좌파, 우파의 생각은 모두 틀렸다. 그는 자신을 신선하고 매력적인 이미지로 관리했다. 하지만 그는 ‘급진적인’ 이미지 변신을 통해 타임지 올해의 인물에 선정된 것이 아니다. 그는 제스처 그리고 상징의 미학을 마스터 함으로써 이를 이뤘다. 여기서 프란치스코의 이미지를 이해하는 중요한 요소가 있다. 그의 신학의 문제로서의 PR(Public Relation)에 접근하는, 그의 열정적인 눈이다. 전세계에서 주목 받는, 셀리브리티로의 빠른 변신은 현재 바티칸의 PR 운영의 증거라고 볼 수 있다. 이는 前 Fox뉴스 리포터 그렉 버크(Greg Burke)에 의해 운영된다. 금욕적 종교단체 오푸스 데이(Opus Dei)의 구성원으로서, 버크는 금욕과 전문적 커뮤니케이션 서비스와 일생을 함께하고 있다. 그는 Fox뉴스 이전, 타임지(당신이 예측했겠지만) 로마 특파원으로 활동했었다.

4. 프란치스코 교황의 전임자 베네딕토 16세 또한 시장 절대론에 높은 반대 목소리를 냈었다. 하지만, 불행히도 버크의 덕을 보지못했다. 그래서 베네딕토가 “규제받지 않는 금융 자본주의”로 표현된 “이기적이고 개인주의적인 시대 정신”을 비난했을 때 지금보다 훨씬 낮은 팡파르만이 있을 뿐이었다. 보수적인 가톨릭 기준들에 의해서조차, 바티칸시티의 급작스런 사회주의적 물결은 잔뜩 부풀려진 것으로 인식된다. 유명 가톨릭 작가 조지 웨이거(George Weigel)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공표들은 그의 전임자들의 가르침과 “전적인 지속성을 띈다”고 기록했다.

5. 사실, 프란치스코가 복음전파를 위한 교회에 대한 전적인 헌신에서 전임 교황들과 다른 부분은 ‘믿음이 없는 자들을 가톨릭 신자로 바꾸는 것’이다. 극찬 받았던 그의 많은 충고들은 오직 무기나 고발(j’accuse)을 부르는 것이 아니었다. 이는 가톨릭 신자들이 어떻게 ‘당대 세속주의의 맹공격’을 효과적으로 물리칠 수 있는지 또 신의 가르침을 넓힐 수 있을지에 대한 조언으로서 설계된다. 글로벌 자본주의의 약탈성에 대한 비판은 전도를 위한 하나의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 교황은 “가난한 사람들은 그들의 결핍 때문에 믿음에 대해 특별한 개방성을 가지고 있다.”고 적었다.

6. 진보주의자들이 프란치스코 교황을 포용한 주된 이유는 뜨거운 사회적 이슈인 동성애, 낙태, 여성 사제 등에서 더 내재적인 메시지인 ‘경제 정의’로 나아간 것이다. 교황은 경제적 궁핍에 대한 관심을 촉구한다. 왜냐하면 그렇게 하는 게 결국 가톨릭을 융성케 하는 것으로 이어지리라는 믿음 때문이다. 그는 자본주의를 불필요한 고통을 만들어 낸다는 이유로 비난하지 않는다. 자본주의 자체가 사회와 국가에 대해 명령하고, 가톨릭 교리의 도덕적 권한을 약화시키기 때문이다. ‘물질’에 대한 숭배가 이어진다. 다른 시각에서 교황은 더 공평한 부의 분배가 ‘신을 두려워하며 교회로 달려가는 신도들로 이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과거 교황들의 주장과 다르지 않다.

7. 버크는 정확하게 추측했다. 금욕 생황과 계속된 경제적 암울함의 시대에서 꾸밈없이 소박한 외모를 유지하는 리더가 대중의 호의를 얻을 것이라는 것을 말이다. 핵심 교리의 변화도 불필요하다. 이는 가장 오래된 트릭들 중 하나다. 前 이란 대통령 마흐무드 아흐마디네자드(Mahmoud Ahmadinejad)를 예로 들면, 좋은 페르시안 카펫들로 뒤덮였던 집무실에서 이들을 싹 걷어냈다. 몇몇 호의적인 헤드라인들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중요한 것이었고, 이는 실제로 작동했다. 버크는 지난 5월 런던의 한 강의에서 “교황이 목표를 달성했어요 그렇죠?”라며 “교황은 우리를 위해 목표들을 달성했고… 우리는 오직 이 혜택을 보면 되는겁니다.”고 밝혔다.

이현동

출처: 알자지라 링크

[팔로우 저널리즘 1 교황 프란치스코 3] ‘멸망의 예언자’에 대해 교황이 답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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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프란치스코 교황이 스스로 집필한 권고집 <복음의 기쁨>을 출간했습니다. 선출 직후부터 센세이션한 말들로 세계를 놀라게 했던 교황은 이번 저서를 출간하며 가톨릭의 구체제에 선전포고를 했습니다. 가톨릭 내부와 외부에서 일부의 반발이 예상되지만, 대개는 전율하는 분위기입니다. 100년 전통의 카톨릭 저널 <아메리카>에서 <복음의 기쁨>에 대해 이야기한 부분을 번역 소개합니다.

가톨릭, 새 비전을 제시하다.

1. 26일 프란치스코 교황이 첫 권고서적<복음의 기쁨>을 출간했다. 이를 통해 교황은 가톨릭의 새로운 비전을 제시했다. 필자는 말할 수 있다. 가톨릭 신도로서 이만큼 스스로를 전율하게 한 교황의 저작은 과거에 없었다고.

교황은 이 설교 각각이 담은 메시지를 통해 신도들에, 그리고 교황 스스로에 도전과제를 던진 것으로 보인다. 이 과제는 세 개의 질문으로 설명된다.

1) 새 관점에서 세상을 보면 어떨까?
2) 새 방법으로 문제에 접근해보면 어떨까?
3) 가톨릭이 새 비전을 가지면 어떨까?

그렇다면 교황이 제시한 가톨릭의 새로운 비전은 무엇일까?

그것은 가톨릭 신도 커뮤니티의 기쁨이다. 현대에 맞지 않는 가톨릭을 옹호해야 한다는 불편함을 느끼지 않을 기쁨이다. 변화하지 않는 가톨릭을 옹호해야 한다는 불편함을 느끼지 않을 기쁨이다. 도전하지 않는 가톨릭을 옹호해야 한다는 불편함을 느끼지 않을 기쁨이다.
이 새로운 비전을 두려워할 사람도 분명 있을 것이다. 현재 상태를 바꾸고자 하는 것에 대해 분노를 표출할 지도 모른다. 이 사람들에게 교황의 입장은 “항상 이런 식으로 해왔다”는 입장이다. 교황은 이번 저작의 부제를 이렇게 명명했다. ‘가톨릭 재개발’

2. 교황의 메시지는 분명하다. ‘복음을 전파하는 방식의 변화에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 그리고 가톨릭에 대해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이다. 사실 이러한 변화는 실천적 측면에서도 큰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혹자는 그저 ’새로운 전도방식‘이라는 문서가 작성되는 수준으로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교황이 원하는 것은 교회의 무기력한 파트의 진짜 변화를 보는 것이다.

<복음의 기쁨>은 가톨릭의 핵심적 가르침을 전복하겠다고 하는 것이 아니다. 행동방식을 변화하겠다는 것이다. 행동방식을 변화시키는 데 죄책감을 느끼지 않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실제로 교황은 여성이 가톨릭 생활의 의사결정에 참여할 권한에 대해 말하면서도, 여성은 사도가 될 수 없음을 재차 못 박았다.

교황은 현실에 안주하고 성직자의 특권에 침전하는 것이 새 비전으로 무장한 가톨릭이 저격해야 할 대상으로 인식하고 있다. 그러한 것들은 마치 부활절 없는 사순절과도 같다고 말했다.

개혁하기 어렵다는 변명이나 불평만 늘어놓는 사람 역시 타도 대상이다. 비관주의에 빠져 있는 가톨릭을 생기 넘치고 긍정적이고 희망찬 가톨릭으로 바꾸기 위함이다. 그것이 가톨릭이 세계와 소통하는 방식이라고 교황은 생각하고 있다.

<복음의 기쁨>을 요약하는 것은 대단히 힘들다. 다루고 있는 범위가 워낙 넓기 때문이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애초에 복음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했던 이 글은 세상 여러 주제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복음하는 기쁨을 말하다가 본인이 믿는 것으로 사람을 초대하려면 자신만의 언어를 개발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한다. 서로 반목하면 안 된다고 말하기 시작했다가 세상의 약자들에 대한 걱정으로 이야기를 마무리하기도 한다. 교황의 말하기 스타일이 그렇다.

교황은 세계 경제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돈에 대한 숭배’와 ‘그들만의 경제’를 비판한다. 그는 말한다. “경제와 금융에 윤리적 접근을 허해야 합니다.” 그는 약자에 대한 시혜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가난을 지체시키지 않아도 되는 사회구조가 필요함을 역설한다.

3. 교황의 말에 대해 가톨릭 내부적으로나 외부적으로나 저항이 있을 것이다.
아마 필자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복음의 기쁨>에 열광하겠지만 비판하는 사람들은 말할 것이다. 교리 하나 바꾸지 못 하면서 가톨릭에 너무 많은 변화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냐고. 일부는 비판을 나아가 교황을 두려워하기 시작했다. 변화는 어떤 사람에게는 두려움으로 인식된다.

이 사람들에 대한 필자의 조언은 이렇다. <복음의 기쁨> 내용 전체를 읽어라. 넉넉히 시간을 잡고 읽어라. 텍스트가 당신을 자극하도록 허하라. 마지막으로 “너는 두려워 말라.” 예수가 말한 것처럼, 두려워 말라.

교황은 한 대목에서 前교황 존13세를 인용했다. “항상 재앙을 예견하는 ‘멸망의 예언자’의 말은 신뢰하기 힘듭니다.”

<복음의 기쁨>은 ‘멸망의 예언자’에 대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답변이다.

가톨릭 재건설에 대한 프란치스코의 의지는 대단하다. 그는 말한다.
“진짜로 가톨릭이 바뀌었다고 내가 납득하기 전에는 누구도 링 밖으로 나갈 수 없습니다.”

김정현

출처: 아메리카 링크
사진 출처: 텔레그래프 블로그

[팔로우 저널리즘1 교황 프란치스코 2] 두 발로 땅을 밟아 서고 인터뷰하다. 그의 방식으로 표현하고 그의 방식대로 전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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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프란치스코 교황이 취임 처음으로 대대적인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카톨릭이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그 생각의 기원은 무엇인지, 자신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말했습니다.

2. 취임 직후부터 커뮤니케이션의 대가라고 평가되어온 교황은 이번 인터뷰에서도 능력을 과시했습니다. 그가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인터뷰의 형식에서부터 드러났습니다.

2-1 인터뷰는 교황의 출신회인 예수회 사제 안토니오 스파다로와 이뤄졌습니다. 안토니오는 이탈리아의 예수교 매체인 <La Civilta Cattolica>의 수석에디터입니다. 전세계의 예수교 매체는 안토니오에게 질문을 보냈고 안토니오가 그 질문들을 취합하여 최종 질문목록을 만들었습니다. 인터뷰기사가 완성되고 승인된 후에야 영어로 번역되어 역시 예수회 매체인 <아메리카 매거진>에 실렸습니다. 뉴욕타임스 등 전 매체는 이 기사를 받아쓰는 방법 외에는 인터뷰에 접근할 방도가 없었습니다. 인터뷰 전문은 발췌해서 쓸 수 있을 뿐 전문을 옮기는 것은 허용되지 않았습니다. 교황은 단번에 카톨릭 전문매체를 교황에 관심이 있는 모든 사람들이 접근해야만 하도록 만들었습니다. 교회의 권위를 중시하고 스스로가 보수적이라고 밝힌 그의 메시지가 묻어납니다.

2-2 인터뷰는 이탈리아어로 진행됐습니다. 교황은 라틴어와 이탈리아어, 스페인어와 프랑스어, 그리고 영어를 구사합니다. 교황은 아르헨티나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르헨티나에서는 스페인어를 씁니다. 영어는 전세계의 공용어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가장 많은 신도들 및 비신도들이 교황의 정확한 언어에 접근할 수 있습니다. 라틴어는 역사적으로 ‘신의 언어’였습니다. 종교개혁의 상징은 라틴어로만 쓸 수 있었던 성서를 타언어로 번역한 데에 있었습니다. 그에 상응하는 ‘인간의 언어’는 이탈리아어입니다. 단테의 신곡이 르네상스의 최고 문학이 된 이유는 이탈리아어로 신의 세계를 묘사한 데에 있었습니다. 두 땅을 밟고 신을 이해하려 하는 교황의 메시지와 닮았습니다.

2-3 인터뷰는 교황의 방에서 진행됐습니다. ‘겸손한’ 성품을 반영한다고 알려진 그 작은 방에서 교황은 자신의 신념을 말했습니다. 안토니오는 그 방이 작은 책상에 점령(Occupy)된 듯했다고 썼습니다. 책상 외에 그 방에는 성인 프란치스코의 상(像)과 아르헨티나의 아르헨티나의 성인인 Lujan의 상, 그리고 성인 요셉이 잠자는 상이 있었습니다.

3. 뉴욕타임스에서는 본 인터뷰를 발췌 소개했습니다. 에이케이스는 그 부분을 번역했습니다. 이 땅을 두 발로 밟고 선 교황을 파악하실 수 있을 듯합니다.

– 당신은 누구입니까?

저는 죄인입니다. 이게 가장 날카롭게 정의한 것이죠. 수사적이라거나 문학적 표현으로 하는 말이 아닙니다. 저는 죄인입니다.

– 왜 예수회의 교인이 되었습니까?

저를 예수회 사회로 이끈 것은 세 가지였습니다. 전도정신, 커뮤니티, 그리고 훈육이 그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좀 이상한 것인데, 저는 정말로 훈육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예수회의 훈육은 시대를 매니지하는 방법이며 저는 여기에 매혹되었던 것입니다.

– 아르헨티나에서 젊은 나이에 주교가 되었는데, 그 경험에서 무엇을 배웠습니까?

저는 권위주의적이었으며 짧은 시간 안에 결정을 내리는 특성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는 많은 문제를 일으키는 원인이 됐습니다. 그리고 저를 보수주의자로 낙인찍히게 했습니다. 제가 코도바에 있을 때 내부에 극심한 위기가 있었습니다. 분명 저는 복녀 이멜다처럼 행동하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우파처럼 행동하지도 않았습니다. 이것이 제가 결정을 내리는 권위적인 방법이었는데 이 결정이 문제들을 만들곤 했습니다.

– 이혼하고 재혼한 사람들, 그리고 동성애자들에게 교회는 어떤 말을 해야 합니까?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있을 때 저는 동성애자들에게서 편지를 받곤 했습니다. 그들은 교회가 자신들을 비난하고 있다고 느낀다고 말했는데, 이 때문에 그들은 사회적으로 고통받고 있었습니다. 리우 데 자네이루에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저는 말했습니다. 동성애자들이 선한 마음으로 신을 좇고자 한다면 저는 그들을 판단할 수 없다고 말이죠. 교회는 이렇게 하길 원하지 않았죠. 이 말을 하면서 저는 교리문답이 뭔지도 말했습니다. 종교는 신도들에게 주장을 표현할 권리를 가지지만 신은 모두를 해방시켰습니다. 개인의 영적 삶을 방해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이 동성애를 허용하는 거냐며 화가 나서 물은 적이 있습니다. 저는 대답 대신에 질문을 던졌습니다. “신이 동성애자를 만났다면 사랑으로 그 사람을 감쌌을까요, 아니면 그 사람을 비난하고 거부했을까요?” 우리는 항상 그 사람들을 생각해야 합니다.

– 당신이 꿈꾸는 교회는 어떤 것입니까?

우리가 항상 낙태이슈라든지 동성결혼 혹은 피임법의 필요성 문제만을 껴안고 있을 수는 없습니다. 불가능하죠. 제가 이에 대해 말한 적이 많지는 않습니다만 반대하는 입장에 있습니다. 하지만 이 이슈들에 대해 말할 때에는 문맥을 고려해야 합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 교회의 가르침은 분명합니다. 저는 교회의 자손이지만 그게 이 이슈에 대해 항상 말해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교회의 도덕적 가르침이나 교리가 항상 동등한 것은 아닙니다. 교회 수뇌부가 서로 모순되는 수많은 원칙들에 대응하는 것에만 집착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새로운 균형점을 찾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교회의 도덕적 상아탑은 모래성처럼 허물어질 것입니다. 교회의 가르침은 향기와 생명력을 잃을지 모릅니다. 교리는 더 단순하고 더 깊으며, 그 자체로 빛나야 합니다. 이것이 충족되어야만 결과적으로 교회의 도덕이 흘러가게 됩니다.

설교 자체와 설교의 내용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 바티칸의 많은 분파들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한다고 보십니까?

그들은 사람들에 도움을 주는 도구가 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때에 따라 잘 작동하지 않을 때가 있는데, 그럴 때면 그들은 검열기관이 되는 위험을 감수하곤 합니다. 바티칸에서 그런 위험이 나타난다는 것은 믿기 힘듭니다. 이런 경우들은 바티칸에 조력하는 지역회의에서 조사해야 한다고 봅니다. 이런 일은 특히 지역적으로 다뤄지는 것이 좋습니다. 로마는 중재하는 역할을 수행해야 합니다. 경영하려 하면 안 됩니다.

– 교회에서 여성의 역할은 무엇이라고 봅니까?

저는 어떤 솔루션이 일종의 ‘여성주의(female machismo)’가 되지 않을까 조심하고 있습니다. 여성은 남성과 다른 신체를 가졌습니다. 하지만 여성의 역할은 남성주의의 이데올로기에서 영감을 받아왔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여성들은 꼭 언급되어야 하는 질문들을 던지고 있습니다. 교회는 여성과 여성의 역할이 없다면 존재할 수 없습니다. 여성은 교회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입니다. 여성이 기사보다 중요합니다. 이 말을 하는 이유는 위엄과 기능에 대해 혼돈하지 말자는 취지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교회에서 여성의 역할에 대해 더 조사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여성의 신학적 심오함을 발전시키기 위해 더 노력해야 합니다. 이런 과정을 거쳐야만 교회와 더 잘 공존할 수 있습니다. 금 시대 과제는 이렇습니다. 교회의 권위가 있는 모든 곳에 여성의 고유한 영역이 함께 고려되어야 합니다.

– 신과 만나는 것이 여행과 같다면, 우리가 실수할 수도 있을까요?

어떤 사람이 모든 것에 대해 답할 수 있다면 그건 신이 그 사람과 함께하지 않는다는 증거입니다. 다시 말해, 그 사람은 종교를 등에 업고 거짓된 예언을 하고 있는 자입니다. 모세 같은 좋은 리더는 항상 여지를 남겨두어야 합니다. 신이 개입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둬야 하는 것이죠. 항상 겸손해야 합니다.

… 우리 삶은 오페라 리브레토처럼 미리 쓰인 대로 진행되지 않습니다. 삶은 그저 전개되고, 찾아가고, 보고, 해나가는 것입니다. … 신과 만나기 위해 우리는 항상 모험할 수밖에 없습니다. 신께도 우리를 탐색하고 경험할 기회를 드려야 합니다.

… 크리스찬들이 보수주의자들이거나 법률주의자라거나, 모든 것이 분명하고 깔끔하며 안전하게 진행되기를 바란다면 그들이 찾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을 것입니다. 과거에 대한 기억과 전통을 살펴본다면 신에 대한 새로운 영역을 찾으려는 용기를 얻을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을 훈육적으로 해결하려는 지금의 크리스찬들, 교리적인 안전만 과장하는 크리스찾들, 이제 더 이상 통하지 않는 과거의 것들만 고집스레 붙잡고 있는 크리스찬들은 안으로 잠식할 뿐입니다. 이런 식으로는 믿음이 이데올로기로 변할 밖에는 없습니다. 다른 이데올로기와 다를 바 없게 되는 것이죠. 저는 확신합니다. 신은 모든 사람의 삶 속에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재난을 겪었다고 할 지라도 그 삶 속에 신이 있습니다. 당신도 모두의 삶 속에서 신을 찾을 수 있습니다. 아니 찾아야만 합니다. 개인의 삶이 가시밭길 속에 뒹군다고 해도 언제나 그 곳에는 신이 뿌리내릴 공간이 있습니다. 신을 신뢰하셔야 합니다.

김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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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로우 저널리즘 1] 교황 프란치스코 2013년 7월29일 교황 프란치스코, 기내에서 기자들과 격이 없이 질의·응답을 하다., 링크

출처:
– 아메리카매거진, 링크
– 뉴욕타임스, 링크

사진 출처: 바티칸 포토갤러리, 링크

 

[팔로우 저널리즘 1] 교황 프란치스코

팔로우1교황

1. 여러 사람을 검토하던 중 근래 가장 왕성하고 파격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는 교황 프란치스코를 선정했습니다.

2. 그는 우리가 알던 현재 교회 이전의 이상을 보여줍니다. 그는 우리가 알던 교황 아닌 교황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3. 그의 행동과 메시지는 충분히 전략적이며 일관되고 순간마다 다채롭습니다.

4. 교회의 비리와 부패에 대항하는 교황, 교황청의 한계는 명백합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그를 선정한 것은 그가 ‘새로운 언어’, ‘새로운 행동’, ‘새로운 전략‘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5. 취임 이후 그는 ’가난한 자를 위한 교회‘라는 일관되고 지속적인 일정과 메시지, 행동과 태도를 통해 새로운 교황을 포지셔닝하는데 성공하고 있습니다.

6. 에이케이스는 그의 선출과 취임 과정부터 그를 지켜봤습니다. 더 이상 그를 놓치는 것은 현재 그가 보여주고 있는 중요한 케이스를 놓치는 것 같아 ‘팔로우 저널리즘’의 첫 번째 대상으로 선정하고 바로 행동을 개시합니다.

[팔로우 저널리즘 1] 교황 프란치스코 2013년 7월29일 교황 프란치스코, 기내에서 기자들과 격이 없이 질의·응답을 하다.

1. 타임지 Elizabeth Dias 기자는 교황에 대해 ‘메시지로 끊임없이 세상을 뒤흔들고 있다’ 고 보도했습니다.

2. 교황은 취임 후 첫 번째 해외 방문을 마치고 브라질에서 로마로 돌아오는 전용기 안에서 기자들과 80분 간 격의 없게 자유로운 기자회견 시간을 가졌습니다. AP 통신은 교황이 내내 솔직하고 유쾌한 태도로 단 한 가지 답변도 회피하지 않았다고 보도했습니다.

3. 저런 기자회견 혹은 인터뷰를 하는 것이 파격입니다. 저 편안한 자세는 습관의 힘입니다. 매 순간 그는 새로운 형상를 선택하고 있습니다.

4. 기자회견의 내용도 예사롭지 않습니다.
왜 교황 전용 주택이 아니라 바티칸 레지던스 중 한 곳에 살기로 했는지, 교황이 가지고 다니는 검은색 가방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 그리고 가장 중요한 메시지였던 동성애에 대한 견해까지, 어떤 질문에 대해서도 교황은 거리낌 없이 답을 이어갔습니다. 교황의 말을 몇 구절 싣습니다.

– “만약 누군가가 동성애자이고 그가 신을 추구하며 선의를 지니고 있다면, 내가 누구를 심판하겠습니까” (If someone is gay and he searches for the Lord and has good will, who am I to judge?)

– “동성애 행위는 죄라는 교회의 가르침은 맞습니다. 가톨릭교회의 교리문답은 이것을 매우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들의 성향 때문에 주변부로 밀어내서는 안 됩니다. 그들이 모두 사회에 통합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문제는 이런 성적 취향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 형제가 되어야 합니다.”

– “누군가 죄를 짓고 고해를 하면 신을 죄를 용서하실 뿐 아니라 잊어버리기도 하십니다. 우리는 죄를 잊지 않을 권리를 갖고 있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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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팔로우 저널리즘을 시작합니다, 링크

출처: 타임, 뉴욕타임스, 중앙일보, 한겨레
사진 출처: 뉴욕타임스,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