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태영의 글쓰기 심화를 위한 노트를 마치며

2014년9월15일부터 시작된 ‘기록’의 저자 윤태영 전 청와대 대변인의 글쓰기 노트 두번째 시즌이 마무리되었습니다.

Acase를 통해 지난 6월23일까지 46회에 걸쳐 연재된 지난 시즌과 마찬가지로

두번째 시즌이었던 [윤태영의 글쓰기 심화를 위한 노트] 역시 많은 분들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서른 꼭지의 글을 완성해서 함께 보내주신 윤태영 작가에게 감사드리며, 항상 Acase와 함께 해주시는 분들에게도 깊은 우정을 전합니다.

 

더불어 그간 연재되었던  [윤태영의 글쓰기 심화를 위한 노트] 를 모아보았습니다.

찬찬히 목록을 보시면서 마음이 가는 꼭지부터 다시 시작해보셔도 좋을 것입니다.

 

1. 감성이 담긴 글을 쓰자. 메시지를 부드럽게 전달하자.

https://acase.co.kr/2014/09/15/deepwriting01/

 

2. 시작이 중요하다. 첫 문장으로 독자를 긴장시키자.

https://acase.co.kr/2014/09/16/deepwriting02/

 

3. ‘눈물’이란 표현이 독자를 슬프게 만드는 것은 아니다.

https://acase.co.kr/2014/09/17/deepwriting03/

 

4. 하나의 장면을 한 꼭지의 글로 만드는 연습을 하자.

https://acase.co.kr/2014/09/18/deepwriting04/

 

5. 캐릭터를 당당하게 드러내자. 단점도 강점으로 승화된다.

https://acase.co.kr/2014/09/19/deepwriting05/

 

6. 하찮은 것까지도 기록하자. 입체적인 글을 만들 수 있다.

https://acase.co.kr/2014/09/22/deepwriting06/

 

7. 기승전결, 완벽하지 않아도 좋다. 구성으로 커버하자.

https://acase.co.kr/2014/09/23/deepwriting07/

 

8. 시간순 서술은 대체로 진부한 느낌을 준다. 구성에 변화를 주자.

https://acase.co.kr/2014/09/24/deepwriting08/

 

9. 핵심을 묘사하는 데 집중하자. 의미 없는 설명은 과감히 생략하자.

https://acase.co.kr/2014/09/25/deepwriting09/

 

10. 만담이 아닌 대화를 살리자. 핵심 메시지를 담아보자

https://acase.co.kr/2014/09/26/deepwriting10/.

 

11. 솔직하게 쓴다. 의도적 과장은 역효과를 낸다.

https://acase.co.kr/2014/09/29/deepwriting11/

 

12. 가급적이면 객관적인 3인칭 관찰자 시점을 유지하자.

https://acase.co.kr/2014/09/30/deepwriting12/

 

13. 까다로운 마무리, 여운을 남기는 방법도 좋다.

https://acase.co.kr/2014/10/01/deepwriting13/

 

14. 모든 것을 설명하지 말자. 욕심이 글을 지루하게 만든다.

https://acase.co.kr/2014/10/02/deepwriting14/

 

15. 이야기를 풀어가는 한마디를 생각하자. 키워드를 만들자.

https://acase.co.kr/2014/10/06/deepwriting15/

 

16. 메시지를 강요하지 말자. 담담한 묘사로도 전달이 가능하다.

https://acase.co.kr/2014/10/07/deepwriting16/

 

17. 쉽게 쓰자. 글은 생각을 다수에게 전달하는 수단이다.

https://acase.co.kr/2014/10/08/deepwriting17/

 

18. 명문에 집착하지 말라. 쓰다보면 명문이 나온다.

https://acase.co.kr/2014/10/10/deepwriting18/

 

19. 한 편의 글에서는 한 가지 메시지만을 전달하자. 욕심내지 말자.

https://acase.co.kr/2014/10/13/deepwriting19/

 

20. 인물의 생생한 워딩은 최대한 살리자. 현실감이 풍부해진다.

https://acase.co.kr/2014/10/14/deepwriting20/

 

21. 사물의 양면성을 잘 관찰하자. 글 쓸 재료가 풍부해진다.

https://acase.co.kr/2014/10/15/deepwriting21/

 

22. 기억이 가물가물해도 대충 쓰지 말자. 최대한 정확한 팩트를 찾자.

https://acase.co.kr/2014/10/16/deepwriting22/

 

23. 결말이 알려진 이야기는 과정을 묘사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https://acase.co.kr/2014/10/17/deepwriting23/

 

24. 반문(反問)을 효과적으로 활용하자. 독자를 깨어있게 하자.

https://acase.co.kr/2014/10/20/deepwriting24/

 

25. Fade-in & Fade-out, 새로운 단락으로 부드럽게 넘어가자.

https://acase.co.kr/2014/10/21/deepwriting25/

 

26. 가정과 전제를 남발하지 말자, 주장이 불투명해진다.

https://acase.co.kr/2014/10/22/deepwriting26/

 

27. 글에도 양념이 필요하다. 재밌는 이야깃거리를 발굴하라.

https://acase.co.kr/2014/10/23/deepwriting27/

 

28. 주장글에서는 예화를 적극 활용하자. 인물에 관한 글은 예외다.

https://acase.co.kr/2014/10/24/deepwriting28/

 

29. 얼마나 과감히 삭제하느냐에 따라 글의 품질이 결정된다.

https://acase.co.kr/2014/10/27/deepwriting29/

 

30. 타깃을 분명히 하자. 독자가 앞에 있다고 생각하자.

https://acase.co.kr/2014/10/28/deepwriting30/

 

[윤태영의 글쓰기 심화를 위한 노트 23] 결말이 알려진 이야기는 과정을 묘사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얼마 전 영화 ‘명량’이 큰 인기를 얻었다.
역사물은 다른 주제에 비해 한계가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결론을 알고 있다는 점이다.
이순신 장군이 명량해전에서 대승을 거둔다는 것,
나중에 노량해전에서 전사한다는 사실도 안다.
결론이 알려져 있는 만큼 다른 방식으로
관객들이 긴장의 끈을 놓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면에서 갈등이나 흥미를 제공할 요소를 찾아야 한다.
과거의 인물을 다룬 역사소설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인물의 후일담을 잘 알고 있다.
스토리만 갖고는 긴장감을 줄 수 없다.
창의성이 필요한 대목이다.
그 반대의 측면도 고려해야 한다.
이미 알려진 이야기들을 새삼스레 길게 묘사할 필요는 없다.
새로운 이야기가 특별히 없다면
최대한 압축해서 전달하는 게 좋다.
다음은 <기록>의 마지막 꼭지, 마지막 대목이다.
대통령이 사저를 떠나는 모습이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기 때문에
최대한으로 압축하여 묘사했다.

그날 보석으로 풀려날 것으로 기대했던 강금원 회장은 끝내 풀려나지 못했다. 보석심리는 최종결정이 다시 연기되었다. 시간은 운명의 주말을 향해 가고 있었다. 어느 날 저녁, 그는 사저를 찾아온 이웃의 친구인 이재우와 술 한 잔을 나누었다. 그는 힘겨움을 토로했다. 자신에게 들이닥친,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심적 고통에서 비롯된 힘겨움이 아니었다. 자신 때문에 주변 사람들이 겪고 있을 고통을 헤아리는 데서 비롯된 힘겨움이었다. 그는 언제나, 자신을 만나지 않았다면 그들에게 지금과 같은 고통이 들이닥치지 않았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의 머릿속에서 모든 불행의 시작은 자신에게 있었다. 그는 그렇게 스스로를 원죄의 굴레 속에 가두어두고 있었다. 낮에 담배를 얻어 피울 요량으로 들렀던 비서실에서 한참동안 비서들이 일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그의 마음도 그러한 생각의 연장선 위에 있었다. 그의 귀향을 계기로 서울에서 봉하마을로 주거를 옮긴 비서진들이었다. 그리고 5월 23일 토요일 새벽.

침실과 붙어있는 내실 공간의 북쪽 한 귀퉁이에 자리한 컴퓨터에서 그는 글을 남기고 있었다. 창 바깥의 마당에는 홍매화의 잎이 어느 새 무성해져 있었지만 이 봄은 그에게 그것을 쳐다볼 겨를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마지막 남길 글을 바탕화면에 저장한 그는 내실을 나섰다. 문이 유난스레 큰 소리를 내며 닫혔다. 그는 경호팀에 인터폰을 했다.

검찰에 출두하던 날 이후 오랜만에 나서보는 대문이었다. 바깥에서 기다리고 있던 경호관이 꾸벅 인사를 했다. 그는 앞장서서 걷기 시작했다. 담장 아래를 따라 듬성듬성 잡초가 자라나 있었다. 그는 잠시 웅크리고 앉아 풀을 뽑았다. 농부가 되어버린 노무현의 본능이었을까? 아니면 마지막 떠나는 길에 불현듯 뜨거워지는 눈시울을 감추기 위한 것이었을까? 다시 일어선 그는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을 길을 따라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가 사랑했던 사람들, 그를 사랑했던 사람들, 그리고 그가 사랑했던 나라가 그의 발걸음을 지켜보며 슬픈 모습으로 남아있었다.

윤태영

[윤태영의 글쓰기 심화를 위한 노트 21] 사물의 양면성을 잘 관찰하자. 글 쓸 재료가 풍부해진다.

새옹지마라는 말이 있다.
인생사 길흉화복은 변화가 많아 예측하기 어렵다는 의미다.
좋은 일은 나쁜 일을 잉태하고 있고,
나쁜 일은 오히려 좋은 일로 바뀌기도 한다.
세상의 많은 일들은 이렇듯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접하는 에피소드도 다르지 않다.
자세히 살펴보면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
나중에 글을 쓰기 위해서 다양한 일화를 기록할 때에도
그 의미를 한 가지로 특정할 필요는 없다.

재임 중 노무현 대통령은 참모들이나 장관들의 질문에
성의껏 자신의 생각과 입장을 대답해 주었다.
자신이 철학이 국정운영에 반영되도록 하려는 노력이었다.
필자는 대통령의 이러한 모습을 묘사하여
‘답이 있는 정치인’이라는 글을 쓰기도 했다.
그런데 이 이야기는 또 다른 측면을 가지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재임 중 자신의 권력을 나누려 했다.
이른바 분권형 국정운영이다.
장관들에게 그만큼의 권한을 주고 책임도 묻는 것이다.
그럼에도 몇몇 장관들은 답을 찾기 곤란한 문제가 생기면
청와대를 찾아와 대통령의 의중을 묻곤 했다.
물론 대통령은 판단이 가능한 범위 내에서 의견을 제시했다.
이 경우, 만일 그렇게 결정한 정책에 문제가 생기면
장관은 책임을 대통령에게 전가하게 될 수도 있다.
결국 대통령이 모든 물음에 답을 제시하는 것은
분권형 국정운영에 역행하는 결과가 될 수도 있다.
심하면 만기친람이라는 비난을 듣게 될지도 모른다.

동일한 일화이지만 이렇게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이처럼 사물이나 사안의 양면성을 파악하는 습관을 들이자.
글을 쓸 재료가 무척 풍부해질 것이다.

 

윤태영

[글쓰기 심화를 위한 노트 06] 하찮은 것까지도 기록하자. 입체적인 글을 만들 수 있다.

 

글을 쓰기 위해 어떤 상황을 기록해야 할 때가 있다.
특별한 장면을 글로 재현하기 위해 취재하는 경우도 있다.
물론 주제를 이루는 큰 흐름을 파악하는 데 충실해야 한다.
핵심이 밀도 있게 서술되어야 제대로 된 글이기 때문이다.
다만 큰 흐름에만 매몰되어서는 안 된다.
주변 정황도 빠짐없이 기록하는 게 좋다.
날씨의 변화는 물론, 먹는 음식과 음료로부터
주인공의 작은 인상과 손동작까지 적어놓을 필요가 있다.
비오는 날은 특이해서 기록을 해놓을 수도 있지만
맑은 날은 맑다고 그냥 무시해버릴 가능성이 높다.
기록하는 순간에는 이 모든 게 하찮아 보일 수도 있다.
‘꼭 이런 것까지 기록할 필요가 있을까?’
‘이런 게 글 쓰는 데 무슨 소용이 될까?’
의문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겠지만
나중에는 의외로 중요한 역할을 할 수도 있다.
주변의 작은 소품들이 글을 입체적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나중에 글을 쓸 때를 생각해 보자.
‘하늘은 파랗고 날은 화창했다. 감색 양복을 차려입은 대통령이 아침식사를 위해 식당에 들어섰다. 상은 조촐했다. 미역국에 고등어구이였다. 눈이 부신 듯 그는 오른손을 이마에 올려 얼굴에 그늘을 만들었다. 식탁에 앉자 총리가 이야기를 꺼냈다.’
단순히 ‘이날 아침 대통령은 총리와 식탁에 마주앉았다.’고 서술하는 것보다
훨씬 입체감이 있고 사실적으로 보인다.
다음은 날씨를 기록한 내용을 토대로 쓴 글의 일부이다.

대통령선거가 치러진 이튿날인 12월 20일의 아침, 그의 표정은 담담했다. 지난밤 약간의 눈이 내렸지만 아침에는 그 대부분이 녹아내렸다. 청와대 녹지원 근처에는 곧 사라지게 될 참여정부의 흔적처럼 군데군데 눈이 쌓여 있었다. 예상은 한 것이었지만 생각보다 표차가 컸다. (<기록> 24. 퇴임에서 인용)

윤태영

[커뮤니케이션 단신] 지도로 커뮤니케이션 하다ㅡ얼굴 없는 증언의 기록

Kenya_Wordmap_Ushahidi

우샤히디를 아십니까?
우샤히디는 전세계의 위기상황을 지도 위에 펼쳐서 한 눈에 보여주는 플랫폼이다. 시위, 지진, 부정선거 등 위기상황을 현지의 시민들이 우샤히디에 문자메시지로 보내고 문자메시지에 담긴 정보는 지도상에서 깔끔하게 정리된다. 우샤히디는 스와힐리어로 증언, 목격을 뜻한다.

어제, 시청역 스페이스노아에서 우샤히디의 프로그램개발자 브라이언 허버트를 만났다.

1. 뉴스가 사라졌다고? 그런 건 문제도 아니지.

없는 것이 무엇인가?
그리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이 두 가지를 인지하는 것에서 우샤히디는 시작했다.

“항상 평온해보이던 케냐사람들이 격분하는 모습에 깜짝 놀랐습니다.”
2008년 케냐에 대대적 시위가 있었다. 나라를 뒤흔들었던 시위는 언론에 보도조차 되지 않았다.

* ‘언론’이 없었다. ‘기록’도 없었다. 케냐시민들의 ‘증언’ 역시 없었다. 원활한 인터넷 기반이 없었다. (브라이언은 케냐에서 이메일을 확인하는 데만 15분이 걸렸다고 말했다)
* 대신 시위를 알리고자 하는 케냐시민들의 욕구가 있었다. 높은 휴대폰 보급률이 있었다. 그리고 그 우샤히디(증언)를 지도 위에 구현하려는 사람들이 있었다.

‘시민들의 증언을 기록하고 알리자’는 목적을 달성하는 방법은 어찌보면 명확했다. 문자메시지로 시위에 대한 정보를 보내면 그 정보를 지도에 구현한다는 솔루션이었다. 언론에 기대지 않고 시민들이 직접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릴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든 것이다.

2. 우샤히디가 맘에 안 든다고? 그런 건 문제도 아니지.

“사실, 우샤히디 첫 버전은 하루 만에 만든 겁니다.”
현재의 우샤히디와 비슷한 형태를 띠긴 했지만 완벽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지금은 볼 수 없으므로 확인할 방법은 없다)
우샤히디는 소스를 무료로 공개했고, 자유롭게 변용할 수 있도록 했다. 집단적 증언이 우샤히디 플랫폼을 가능하게 했던 것처럼 프로그램의 진보도 집단의 힘으로 가능할 것으로 봤다.

우샤히디의 이 정신은 크라우드맵(http://crowdmap.com/)에서도 구현됐다. 크라우드맵은 지도로 공유할 수 있는 정보를 대폭 확대했다. ‘나만의 지도’를 만드는 것도 가능하다. 오픈소스를 변용해서 플랫폼 자체를 수정하는 것 역시 가능하다.

개인적으로 버거맵(http://burgermap.org/)이 탐난다. 맛있는 햄버거가 어디에 있는지 한 눈에 파악할 수 있다.

3. 익명성이 보장되지 않을까 무섭다고? 그런 건 문제도 아니지.

NSA에 고객정보를 넘긴다는 ‘증언’으로 비난받았던 구글이며 페이스북 등에 반해 우샤히디는 좀더 믿을 만하다. 빚지지 않으면 된다.

“우리는 정부기관의 지원은 안 받습니다. 예를 들어 이란에 있는 사람이 우샤히디에 제보를 했는데, 미국정부에서 그 사람의 정보를 요구한다면, 지원을 받았다는 전제 하에 우리는 정보를 넘겨줄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되면 이란 사람의 신변이 노출되어 비밀스럽게 처형당할 위험이 있습니다.”

대신 정부기관이 아닌 단체와, 개인의 후원을 받는다. (후원자에게는 예쁜 지도포맷을 제공한다고 하니, 관심 있으신 분들은 참고하시길 바란다)

4. 홍보? 이것도 문제 없지.

TV방송에서 뉴스를 금한다면? 라디오를 이용하면 된다. 블로그에 게시하는 방법도 있다.
우샤히디의 설립자 중 네 명이 동아프리카에서 유명한 블로거였다. 블로그를 통한 홍보와 그 사람들의 라디오 방송으로 문제없이 문자메시지를 받을 수 있었다는 후문.

김정현

[대통령의 커뮤니케이션] 대통령의 언어, 협상의 언어, 반박의 언어, 언론의 편집 – 한 국가의 역사와 전략으로서의 기록

국정원01수정

‘역사는 기록의 산물이다. 우리가 역사책을 읽는 것은 기록 속에 담긴 정서와 의미를 간접 체험하는 행위다. 역사는 승리한 자의 기록이라고 역사학자 E.H 카는 말했다. 하지만, 우리가 남겨야 하는 건 승자의 기록만은 아니다. ’현재의 우리‘가 사라지고 난 다음 후손들은 우리가 남긴 기록에서 ’현재의 우리‘를 어렴풋이 짐작할 것이기 때문이다.’

– 2007 남북정상회담 공동취재단 : 2007 남북정상회담 취재기 <50년 금단의 선을 걸어서 넘다> 발간사 중에서

1. 노무현 전 대통령

노무현 전 대통령은 회담을 기록하고 문서로 남길 것을 지시했다. 대화록이 공개될 것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기록을 남겼던 것은 후대에게 ‘사실’을 ‘전달’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후속 정권이 남북정상회담 혹은 남북관계를 해결하는 데 있어 참조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전략이 달라도 반드시 참고해야 하는 자료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언론에 자신의 말이 리크(leak)가 되었을 경우, 자신이 한 말이 정확하다면 한 번도 유출된 것에 대해서는 나무라지 않았다. 잘못된 전달에 대해 질책했던 적은 있다. 노 전 대통령은 정상회담의 기록을 그대로 기록할 것을 지시했을 때 이미 공개될 것으로 예견했다고 볼 수 있다. 그것을 외교의 전략과 국가정보로 활용하기를 바란, 전임 대통령의 의무라고 봤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때 기록은 정치가 아니라 정보다.

2. 국가정보원

국가정보원은 국가의 정보를 지키는 곳이다. 국내외의 수많은 정보와 관계를 다루는 국가 최고 정보관리 기관인 국정원은 고도의 전략적 판단과 기술을 담보해 일하는 곳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2007남북정상회담 발췌문의 공개는 부적절했다. 결정적으로 핵심요소에 대한 가치관리를 간과했다. 대내적으로는 최고급 정보가 언제, 어디서, 누구를 위해 관리되고 사용되어야 하는 것에 대한 실패라고 볼 수 있으며 대외적으로는 국가 최고급 정보를 만천하에 노출시키는 실수를 국정원이 주도한 것이라 볼 수 있다. 그것이 최대의 패착이다. 공개의 이유로 국가안위를 강조한 군인 출신 남재준 국가정보원장은 외교의 ‘전략적 모호성’과 ‘한국 이니셔티브’를 이해하고 있을까 하는 걱정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최고급 정보는 함부로 남에게 주는 것이 아니다. 국가이익이 모든 것에 우선하는 외교 전쟁에서는 더욱 그렇다. 국정원 댓글 사건이 이념의 이슈로 가려질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심각한 오해다. 위기는 그렇게 가려지지 않는다.

3. 박근혜 대통령

박근혜 대통령은 정파의 수장이 아니다. 정부의 대표다. 국가를 대표해서 외교를 관장하는 최종책임자다. 그런 점에서 이번 메시지 관리는 아쉽다. 정부의 연속선상에서 외교•국방•안보의 최고관리자라는 점을 놓쳤다. 박 대통령의 지지도가 상승곡선을 그리고 유지되고 있는 것은 정부의 대표이며 국가의 위기관리자로서의 일관성과 안정성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아니었다. 아마도 타협할 수 없는 신념의 문제로 접근한 것이다. 그래서 국가 외교 수장으로서의 스텐스를 잃게 된 것이다. 대한민국 외교는 스스로 최고급 정보를 유출한 것에 대한 후속 위기를 겪게 될 것이다.

대통령은 정보를 다룰 때 정권의 신념으로 다루기보다는 정부의 원칙으로 다루는 것이 맞다.

박 대통령의 외교는 정통파 우완 투수를 연상시킨다. 클래식 외교다. 그런데 자신의 철학과 스타일이 그렇다고 해도 전임 대통령의 생각과 같을 수는 없다. 특히 외교가 밀고 당기기, 타협과 협박이 상존하는 ‘협상의 언어’가 통용되는 영역이라면 더욱 그렇다.

그리고 국정원은 국가 최고 기밀을 다루는 특수기관이다. 국정원이 발췌본을 공개한 이 상황을 청와대 관계자가 ‘몰랐다’고 설명하는 것은 국정 관리의 공백을 의미하는 것이라는 명심해야 할 것이다.

4. 야권

야권은 반대하는 사람이 아니라 새로운 대안을 내놓는 사람들이다. 야권은 반대하고 저항하는 곳이라는 구체제의 명제는 수정되어야 한다. 사실 공개와 비공개의 논쟁은 부차적이었다. 이미 NLL에 대한 노 전 대통령의 언급과 진의는 남북정상회담을 전후해 이미 공개되어 있었다. 그렇다면 내용에 먼저 접근했어야 한다. 대선 때는 아예 NLL발언 자체가 없었다고 부인했다. 박선원 전 국가안보전략 비서관이 경향신문에 정상회담 전과 후 준비와 평가의 복기를 통해 회담 내용에 접근하기 전까지는 형식 논리만이 득세했다. 첫 단추가 잘못 끼워진 것이다. 남북정상회담의 결과물인 ‘남북관계 발전과 평화번영을 위한 선언(10.4선언)’ 5.항에는 ‘남과 북은 해주지역과 주변해역을 포괄하는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를 설치하고 공동어로구역과 평화수역 설정, 경제특구건설과 해주항 활용, 민간선박의 해주직항로 통과, 한강하구 공동이용 등을 적극 추진해 나가기로 하였다’고 되어 있다. 이것이 이 논쟁의 핵심이었다. 방어하는 프레임은 결코 성공하지 못한다.

5. 언론

`마지막으로 일부 보수 언론은 치사한 플레이를 했다. 몇 몇 언론의 동일한 제목은 차치하고, 위원장‘님’이라는 제목을 통해 마치 노 대통령이 김정일 위원장을 모시는 것처럼 표현한 것은 과장이다. 일부러 의도한 것이다. 형식의 측면에서, 대면해서 서로에게 존대하지 않은 회담이란 없다. ‘보고’라는 말의 주체도 노 전 대통령이 아니었다. 물론 비판할 수 있다. 그렇다면 정상회담 초기 부분 대화에서의 노 전 대통령의 파격적 언사에 대해 오히려 보수적으로 접근해야 설득력이 생기는 법이다. 사실 보다 논쟁에 집중한 결과다.

위기는 그저 소모되고 있다. 위기전략은 내부의 논쟁과 외부의 관계를 철저히 구분한다. 기본 중의 기본이다. 정파의 논쟁 앞에서 국익은 훼손되었다.

이 과정을 통해 모두가 소중한 교훈을 얻었기를 기대해 본다.

유민영 커뮤니케이션 컨설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