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리뷰] 영국드라마 ‘디 아워’, 치열했던 저널리즘의 과거

The Hour 그리고 주인공 프레디

The Hour 그리고 주인공 프레디

“시청자 여러분, 만약 우리가 우리 사회의 문제점과 더 중요하게는 정부의 문제를 논의할 수 없다면, 우리가 우리의 지도자에게 질문할 수 없다면, 근본적으로 기만적인 행위의 정당성에 의문을 던질 수 없다면 그렇다면 우리는 자유민주주의를 산다고 할 수 없습니다.”

영국 드라마 <디 아워>(The Hour) 중 주인공 프레디의 말이다.
<디 아워>는 뉴스프로그램의 형식이 개척되던 시기의 영국 방송국의 뉴스프로그램 제작진의 이야기를 다뤘다. 당시 방송사 뉴스제작진은 냉전시기의 일촉즉발한 국제정세나 정부의 그에 대한 대응 등 뉴스에서 심도 있게 다뤄야 할 사건이 많았다. 그러나 정부의 언론제재 법안이나 방송사 간부의 제재로 뉴스 제작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디 아워>는 어쩌면 지금도 유효할 고민들과, 그 고민을 풀어나가는 방식을 매력적으로 그린 드라마다. 뉴스의 위기를 뉴스의 발전기회로 만들어버린 과거의 사건들로, 다가올 저널리즘의 미래도 점쳐볼 수 있지 않을까.

1. 발단: 1956년, 현실감 없는 뉴스.

“우리는 텔레비전 뉴스를 하면서 석고화 되어가고 있다고. 제기랄. 폴란드에서는 계엄령이 떨어지는데 우리는 왕자가 신혼여행 간 화면이나 찍고 있다니까. 그리고는 그들이 여왕이랑 만찬을 한다는 데 흥분하지. 우리는 세상 모든 일이 잘 돌아간다는 확신을 주는 역할만 하고 있는 거야. 우린 여기서 탈출해야 해.”

배경은 1956년 냉전시기, 영국의 BBC방송국이다. 현실을 제대로 보여주는 뉴스프로그램을 만들겠다는 것이 뉴스프로그램 <디 아워> 제작진의 고민이었다. 당시 제작진이 다루고자 했던 주된 이슈는 수에즈 운하를 둘러싼 나세르 이집트 대통령과 영국 정부 간의 갈등이었다. 정부는 뉴스프로그램에서 해당 이슈를 다루지 못 하도록 방송국 고위 인사를 이용해 압박을 가했다. 게다가 의회에서 논의된 사항을 14일 동안 방송할 수 없다는 이른바 <14일 법안>까지 있었다.

‘음모는 공식적으로는 감히 인정하지 못 할 정책의 수행을 위한 다수의 사람들 간의 비밀스러운 동의다.’ 디 아워 제작진은 마크 트웨인의 이 말을 인용하여 당시 정부가 하는 일을 비판했다. 기존 뉴스 형식을 탈피하는 것은 이들에게 사활을 걸어야 하는 숙제가 되어 있었다.

2. 전개: 이것을 물을 수 없다면 저것을.

“진행자가 수에즈를 언급하지 않도록 주의시키게. 14일 법안을 어기면 안 되니까. 다만 헝가리에 대해서는 말할 수 있겠지.”
“수에즈와 헝가리라. 완벽한 매치군. 상반된 배경이지만 공통의 통합적 테마로 묶였어. 억압과 반기. 같이 하면 흥미로운 빛을 내지.”

14일 법안에 따라 수에즈 운하와 관련된 영국정부의 입장을 방송할 수 없다는 문제는, 같은 맥락 상의 문제를 묻는 방식으로 해결되었다. <디 아워>는 수에즈 운하 문제를 묻는 대신 헝가리가 소련에 반기를 들고 일어난 헝가리혁명에 대해 묻기로 했다. 수에즈 운하 사건과 헝가리 혁명은 약소국이 반기를 들고 일어났다는 점에서 비슷한 사건으로 볼 수 있었다. 다만 다른 것은, 이집트가 반기를 든 것은 영국이었고, 헝가리가 반기를 듣 것은 영국과 적대적 위치에 있었던 소련이었다는 점이다. 즉, 영국은 비슷한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이집트는 억압해야 하고 헝가리는 지원해야 하는 입장에 있었던 것이다.

3. 절정: ‘Auribus tenere lupum.’ – 스튜디오를 나가다.

“마이크가 보이는 게 더 사실감을 줘요. 그게 바로 현장의 증인이 되는 매커니즘이에요. 우리가 하려고 노력하는 거요. 역사의 스치는 순간을 밝히는 일 말입니다. 지금 뉴스프로그램은 매번 책상 앞에서 이야기나 읽고 있는 사람을 보는 거잖아요. 물론 우리 모두 예능을 원하지요. 하지만 우리가 정신없이 웃고 있는 동안에 소련은 미사일을 준비하고 3차 세계대전을 노리잖습니까! 뉴스프로그램 <디 아워>는 절대로 놓쳐서는 안 될 한 시간이어야 합니다.”

“Auribus tenere lupum, 뜻은 찾아보세요.” 상부 지시를 어기지 말라는 충고에 대한 답으로 <디 아워>의 연출자는 말한다. 직역하면 ‘늑대의 귀를 잡고 있다’ 정도가 되는데, 위험한 상황에 직면해서도 그 상황이 멋대로 흘러가도록 두지 않겠다는 의미다.

결국 <디 아워> 제작진은 스튜디오를 박차고 거리로 나간다. 말로써 상황을 보여줄 수 없다면 화면으로 보여주겠다는 취지다. 현재에는 너무도 익숙한, 거리에서 직접 취재하는 방식은 이 때 시작됐다.

4. 결말: 무조건 추천.

결말을 비롯하여 이 글에 소개되지 않은 팔 할의 내용들은 직접 감상하시기를 추천한다. 언론에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더더욱 재미있을 것이다. (단, 필자처럼 계속 보다보면 주인공 프레디에 빠져버릴 위험성은 있다 ^^)

김정현

[첫문장, 끝문장] 나는 베를린 시민입니다, 존 F. 케네디 (1963년 6월 26일)

“연설가는 설득하고자 하는 사람에게 어떻게 신뢰를 줄 수 있는지의 방법과 그들의 마음을 어떻게 움직일 수 있는지의 방법을 발견해야 한다. ”
– 키케로, 수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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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50년 전 오늘 미국의 케네디 대통령은 서베를린으로 날아갑니다.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미국은 터키의 미군 기지를 포기합니다. 동베를린과 나뉘어 냉전과 직접 대처하고 있는 서베를린 시민은 안전에 대한 극단의 공포를 갖고 살아갑니다. 혹시 서베를린을 소련이 공격할 지도 모른다는, 미국이 포기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죠.

2. 80%의 서베를린 시민이 모였다고 합니다. 그들은 결국 듣고 싶은 이야기를 듣습니다. 케네디는 그들이 듣고 싶은 이야기를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연설의 초미에 등장하는 ‘나는 베를린 시민이다’는 정치인의 연설문의 백미 중 백미라 할 수 있습니다.

3. 케네디는 서베를린 시민들이 필요할 때 갔습니다. 미국을 포함한 자유국가가 그들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방어를 넘어섭니다. 그리고 불안에 떠는 시민들에게 동일체라는 정체성을 심어주었습니다. 메시지는 군더더기가 없이 명쾌하고 분명합니다. 베를린 시민은 이후 다른 대통령에 의해 ‘세계시민’으로 발전하지만 포괄적이서 오히려 집중력이 떨어집니다

4. 케네디 이후 거의 모든 미국 대통령이 서베를린/베를린을 방문해 연설을 했습니다. 훌륭한 연설도 있었지만 케네디의 연설을 넘어설 수 없었습니다. 얼마 전 오바마도 대통령이 되어서는 처음으로 베를린 연설을 했습니다. 실패했습니다. 오바마가 필요할 때 갔고, NSA 도청으로 감정이 좋을 수 없을 때 갔고, 간 이유가 명료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하늘과 땅 차이의 연설을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5. 케네디는 그 후 다섯 달 후 암살당합니다. 그러나 서베를린 시민들은 영원히 그를 잊지 못할 것입니다.

유민영

<연설 전문>

서베를린이 지닌 불굴의 정신을 세계에 알려주신 시장님의 초청으로 베를린을 방문하게 돼 영광입니다.

2000년 전 가장 훌륭한 자랑거리는 “나는 로마 시민입니다”였습니다. 이제 자유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자랑거리는 “나는 베를린 시민입니다(독일어)”입니다.

세상에는 자유진영과 공산진영 간의 중요한 문제가 무엇인지 이해를 못하거나 또는 이해를 못하겠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들에게 베를린으로 오라고 합시다. 공산주의가 미래의 흐름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들에게 베를린으로 오라고 합시다. 유럽 일부 지역에선 공산주의자와 함께 일을 도모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들에게 베를린으로 오라고 합시다. 공산주의는 나쁜 제도지만 그것이 경제를 발전시킨다고 말하는 이도 있습니다. 그들에게 베를린으로 오라고 합시다(독일어). 그들에게 베를린으로 오라고 합시다.

민주주의는 많은 장애물을 안고 있으며 완벽하지도 않지만, 우리는 결코 국민을 가두거나 국민이 떠나는 것을 막기 위해 벽을 쌓은 적이 없습니다. 미 국민은 지난 18년의 역사를 여러분과 함께한 것을 영광으로 여긴다는 것을 대서양 건너 수만 마일 떨어진 곳에 살고 있는 미 국민 정부를 대신해 말씀드립니다. 18년간 포위당하고도 서베를린처럼 활기차고 힘차게, 희망과 결의를 가지고 살아가는 도시는 없었습니다. 베를린 장벽이야말로 공산주의의 실패를 전 세계에 보여주는 명백하고 확실한 증거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여기에 만족하지 않습니다. 시장님 말씀처럼 가족을 뿔뿔이 흩어놓고, 남편과 아내, 형제와 자매를 갈라놓고, 함께 살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떼어 놓는 것은 역사와 인륜에 어긋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서베를린에서 진리인 것은 전체 독일에서도 진리이듯이, 네 명 중 한 명의 독일인이 자유인으로서의 기본권, 즉 선택의 자유를 누리지 못하는 한 유럽에서 지속적이고 진정한 평화가 이뤄질 수 없습니다. 18년간 평화와 신의를 지켜온 독일의 현 세대는 자유로울 권리, 평화롭게 가족과 조국을 통일할 권리를 얻었습니다. 말을 맺으며 여러분께 오늘의 위험을 넘어 내일의 희망을 바라보라고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베를린시나 독일만의 자유를 넘어 전 세계의 자유를 바라봅시다. 베를린 장벽 너머의 정의로운 평화의 날과 너와 나를 넘어선 전 세계 인류를 바라봅시다.

자유란 불가분의 것입니다. 단 한 명이라도 노예 상태에 있으면 모든 이가 자유롭지 못합니다. 우리는 모든 사람이 자유를 찾아 이 도시가 하나가 되고 이 나라가 하나가 되고 유럽 대륙이 하나가 돼 평화롭고 희망 가득한 세상에 살게 될 그 날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반드시 올, 그날이 오면 서베를린 시민들은 자신들이 20년 가까이 그 최전방에 있었다는 사실을 자랑스러워할 것입니다.

모든 자유인은 그들이 어디에 살더라도 베를린 시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저 역시 자유인의 한 사람으로서 자랑스럽게 말하겠습니다. “나는 베를린 시민입니다(독일어).”

사진 포함 연설전문 출처: 중앙일보,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