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리뷰] 휴먼스오브뉴욕, 300만이 좋아하는 뉴욕의 얼굴

hony

1. 300백만 명이 좋아하는 페이지가 있다. 뉴욕으로 갓 입성한 스무 살 소년 브랜든이 3년 만에 만들어냈다. 엄청난 기술이 있는 것도, 깜짝 놀랄 만한 비밀이 있는 것도 아니다. 소년이 할 수 있었던 것은, 또 하고 싶었던 것은 단지 사진을 찍는 일이었다. 매일 거리에서 마주친 사람을 찍었고 블로그와 SNS에 성실히 올렸다. 그가 가진 것은 작은 아이디어와 끈기였다.

2. 브랜든이 600명의 사진을 모았을 때만 해도 잠잠하던 반응은 서서히 폭발하기 시작했다. 2010년 여름 시작한 HONY는 이제 300만 명이 구독하는 페이스북페이지와 텀블러, 그리고 블로그로 성장했다.

3. 뉴욕에 사는 모든 사람들을 사진으로 남기겠다는 그의 목표는 약간의 변화를 겪었다. “사진 찍힌 한 명 한 명이 생각보다 다양한 캐릭터를 가지고 있다”는 점을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낯선 이의 사진을 담던 것에서 그의 목소리와 스토리까지 담는 것으로 HONY는 발전했다.

4. HONY의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뉴욕’이라는 장소가 가진 특수성이 강하게 느껴진다. 매일매일 개성 넘치는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는 장소의 매력이 진하게 풍긴다. 누군가 서울을 찍는다면 어떤 모습들이 포착될지 궁금하다.

김정현

참고: 휴먼스오브뉴욕, https://www.facebook.com/humansofnewyork

[도시커뮤니케이션] 뉴욕을 넘어 세계로, 억만장자의 올바른 지구 만들기 – 블룸버그의 원대한 꿈

블룸버그의 도전

블룸버그의 도전

0. 71세 마이클 블룸버그는 2002년부터 세 번 연속 뉴욕 시장으로 당선되었다. 무려 12년간 세계 최고 도시의 수장이었던 것이다. 그는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정책들과 공공 캠페인을 시행해왔고 뉴욕의 많은 부분을 바꿔왔다. 이제 민주당 빌 드 블라시오가 차기 뉴욕 시장으로 결정되었고, 그는 올해 12월 31일을 끝으로 뉴욕 시장의 자리에서 물러나게 된다. 그는 추후 어떤 행보를 걸을까? 바빴던 일상에서 벗어나 노년의 여유로움을 만끽할까? 그렇진 않을 것 같다. 그는 뉴욕을 넘어 미국 전체, 전세계를 바꾸는 것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세계 대통령 좀 더 정확하게는 ‘선도부’가 올바른 비유일까? 이에 대한 TIME지의 기사를 발췌, 소개한다.

1. 세계 13번째 거부 마이클 블룸버그(Michael Bloomberg)는 현재 임기가 얼마 안 남은 뉴욕 시장이다. 그는 미국이 여전히 지구 온난화의 심각성, 어떻게 그의 前처가 자신의 최고 친한 친구로 남아있는지, 너무 겉만 번드르르하기에 파리의 유명 음식점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자신의 말 등을 믿지 않는다며 대화를 시작했다. “콜레스테롤은 당신의 혈관을 따라 곧바로 퍼질 겁니다.” 그가 경고했다. 건강 문제는 그가 신경 쓰고 있는 분야다. 뉴욕 시장으로서 그는 레스토랑의 트랜스지방 금지, 각 체인들의 칼로리 계산용 포스터 부착, 16온스(약 470㎖) 대용량 탄산음료 판매 금지 등을 위해 노력했다.

2. 블룸버그는 흡연에도 관심이 많다. 담배 제조사 카멜의 캐릭터 존 카멜, 말보로의 말보로 맨이 ‘슈퍼히어로’로 그들을 어필했다면, 오늘 그와 모인 WHO, 아동흡연 방지를 위한 캠페인(Campaign for Tobacco-Free Kids) 그리고 여타 금연 관련 국제 조직의 리더들로 이루어진 그룹은 ‘죽음의 군대’ 일 것이다. 블룸버그는 이곳의 명예 손님이자 자금 지원자다. 그는 숫자를 안다. “만약 우리가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면 담배는 이번 세기 약 10억명의 사람을 죽일 것이다.” 그가 말했다. 화면 속, 2007년 이후 그가 금연 운동에 들인 돈을 나타내는 꺾은 선 그래프는 정원을 향해 나있는 창을 넘어 하늘로 향했다. 그는 61개국, 556개 기관에 약 1억천만불을 썼다. 이에 더해 그는 뉴욕시에서 공공장소 흡연 금지 정책을 통과시켰다. 전세계 대비 뉴욕의 성인 흡연률은 두 배나 빠른 속도로 급락했고, 기대수명도 10년간 3배 이상 늘었다. “캘리포니아는 뉴욕보다 먼저 흡연 금지 법안을 통과시켰다. 하지만 누구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그 무엇도 담배 제품의 사용을 규제하는 것만큼 많은 생명을 구할 순 없다.” 그가 자랑스럽게 말했다.

3. 블룸버그는 다른 많은 분야의 십자군 역할도 하고 있다. 다행히 그는 혼자가 아니다. 지난 30년간 세계는 지구화, 기술의 발전에 의해 많이 바뀌었고 이 과정에서 덕을 본 새로운 억만장자 들이 출현했다. 그들 중 일부는 정책과 정치를 통해서 세계를 새롭게 만드는 것에 관심을 돌렸다. 록펠러, 멜론, 그리고 카네기 시대로의 복귀였다. 그들의 세상이고 우린 그 안에서 투표했을 뿐이다. 그들이 뭉친 예는 많다. 페이스북의 마크 주커버그(Mark Zuckerberg)는 뉴왁시 공공 학교에 대한 법들을 개정하는 데 약 1억불을 기부했다. 그리고 정치 TV광고들에 대해선 수백만불을 더 썼다. 그리고 의회로 날아가 이민법 개정을 요구했다. 조지 소로스(George Soros)와 피터 루이스(Peter Lewis)의 자금이 없었다면 많은 주에서 마리화나 합법화는 큰 진전을 보이지 못했을 것이다. 블룸버그, 빌 게이츠(Bill Gates), 엘리 브로드(Eli Broad)와 짐 왈튼(Jim Walton)이 없었다면 K-12(미국 정보교육 프로젝트)에서 현재 일어나고 있는 혁명들은 예정보다 수년 뒤에 일어났을 것이다. 20세기 이후, 어떤 개인도 우리의 삶을 바꾸는데 강력한 힘을 발휘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세상이 바뀌었다. 이는 블룸버그가 ‘사회, 정치 분야의 엔지니어’로서 그의 유산을 정의하려는데 배경이 되는 사실이다.

4. 블룸버그는 그의 열정에 대해 어떤 비밀도 없다. “나는 아무도 하지 않는 많은 일들을 하고 싶다.” 그는 말했다. 그는 여전히 뉴욕 시장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하지만 이미 그의 다음 삶을 준비하고 있다. “나는 골프나 치러 다니진 않을 것이다.” 또한 그의 회사(경제지 블룸버그 등)를 경영하는데 돌아가지는 않으리라는 것도 밝혔다. 그는 사재를 털어 유럽 공모전(European competition)을 시작했다. 이는 지방 통치의 질을 높이는,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가진 유럽 도시들에 5백만불의 상금을 제시하는 계획이다. 이는 2012년 미국에서 그가 열었던 공모전의 유럽 버전이다. 미국의 우승자는 로드 아일랜드 주였다. 그들은 도시 저소득층 아이들이 매일 노출되는 단어들을 추적하고자 작은 디지털 녹음기를 이용했고, 가난한 아이들이 더 제한적인 단어를 구사하는 상태로 학교에 입학한다는 것을 증명했다. 프로젝트의 목표는 저소득층 부모들에게 그들의 아이들과 더 많이 의사소통 할 수 있는 도구들을 제공하는 것이다.

또 개발도상국에서 오토바이 주행 시 헬멧을 의무화, 도시 안전 계획 리뷰, 봉사정신을 증진시키기 위한 여러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투표로 선출된 많은 정부들은 논쟁적인 이슈들에 두려워한다. 나는 이런 분야를 바로 세우려는 의지를 가진 것에 큰 자부심을 갖고 있다.” 블룸버그의 돈은 복잡한 비영리 재단의 그물망을 통해 퍼져나가고 있다. 그는 지방 정부에 투자해왔고 말라리아를 뿌리뽑고자, ‘좋은’ 모기를 만들기 위해 연구하는 유전공학자들에게 1억불 이상을 투자해 왔다. 나이지리아, 파키스탄, 아프카니스탄 등에 만연한 소아마비 퇴치에 1억불 이상을 후원하기도 했다. 심지어 남태평양의 피트게언 제도의 해양 보존에도 후원하고 있다.

5. 블룸버그는 루퍼트 머독(Rupert Murdoch)과 손잡고 이민법 개정을 위해 의회에 로비하고 있고, 동성결혼 허용 법안과 낙태 허용권 등의 근본적 법안에 연계되어 있다. 총기 제한과 교육 개혁을 주장하는 후보들을 지원하는데 수백만 불 이상을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그런 사람이 되기 위해서도 많은 돈을 썼다. 뉴욕시에서 세 번 연속 선출되며, 미 선거 역사상 단일 후보가 쓴 금액으론 최고인 2억 5천만불을 사용했다. 향후 미국 정치에서 이런 투자는 더 늘어날 전망이다. “만약 당신이 총기 거래자 신원 조회를 지지한다면, 나는 당신을 지원할 것이다. 심지어 우리가 다른 이슈들에 대해선 아무런 공통점이 없더라도 말이다.” 블룸버그는 올 봄, 펜실베니아 공화당원인 보수주의자 팻 투미(Pat Toomey)에게 그가 총기 규제 지지를 결정하기 전 말했던 것을 언급했다. “우리는 각 시의회에 개혁주의자들을 더 많이 당선시킬 필요가 있다.”

6. 미국에서 발달한 사적 영역의 기부 행위에 대해 블룸버그는 말했다. “기부를 통해 공공이 적절하다고 생각하지 않거나, 관습에 어긋난다고 생각하는 것들에 많은 것을 할 수 있다. 일례로, 사적 영역의 기부자가 없었다면 인상주의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당시엔 아무도 이를 미술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오늘날 이는 그 어떤 분야보다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이런 진술은 많은 돈이 공공의 의견과 독립되게 운영되어야 함을 뜻하며 이것이 그의 철학의 핵심이다. 이는 많은 사람들이 그를 ‘혼란 유발자’로 여기게 된 이유다. 미시시피, 노스 캐롤라이나 등 두 개 주에선 ‘안티 블룸버그 법’을 통과시켰다. 이 법은 대용량 탄산음료 판매를 금지하는 그의 법에 반하는 것이다. 총기규제와 관련된 버지니아와 웨스트 버지니아의 반발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미시시피 사람들에게 미안함을 느낀다. 뉴욕시의 기대수명은 80세 이상이다. 미시시피는 60대에 머물고 있다. 여기서 내가 놓친 것은 무엇인가? 누가 맞고 누가 이겼는가? 그들은 이긴 것이 아니다.” 블룸버그의 말이다.

7. 그는 평생 민주당원이었지만, 공화당으로 당적을 옮겨 2002년 뉴욕 시장에 당선되었다. 하지만 리버럴한 정치적 사상으로 지도부와 갈등을 빚다 2007년 탈당했다. 블룸버그는 정치적 스펙트럼에서 자유주의의 끝에 앉아있다. (그의 월스트리트에 대한 옹호와 경찰 불심검문에 대한 지지는 명확히 예외적인 것들이다.) 하지만 오늘날 그는 자신을 이데올로기, 당파성의 바깥 영역에 위치시키고 있다. 그는 억만장자이자 자유주의자인 조지 소로스가 보수주의자 데이비드 코크(David Koch)의 기부에 대해 조롱한 얘기를 예로 들었다. “그들은 똑같다. 누구의 시각이 좌측이든, 우측이든 그것이 그렇게 중요한가?” 하지만 그는 대부분의 중요 이슈들에 개입되어 있다. 이는 기후 변화와 낙태, 총기 문제와 비만에까지 이른다.

8. 블룸버그는 자신을 지난 미국 호황기의 수혜자로 여긴다. 그리고 그 이전의 락펠러, 카네기, 멜론처럼 자신의 지위를 ‘전세계적 마스터’로 설명하는 것을 행복하게 여긴다. 그는 데이비드 카메론(David Cameron) 영국 수상에게 했던 얘기를 회상했다. “최악의 조합은 올바른 어떤 것을 하려고 노력하지 않는 것과 이미 가졌던 올바른 것들을 상실하는 것이다. 이런 점을 떠올린다면 당신은 잃을 것이 아무것도 없다.”

이현동

출처: October 21, 2013 TIME

[커뮤니케이션 단신] 거리의 예술가가 거리를 넘어서는 법, 뱅크시(Banksy)의 커뮤니케이션

banksy

그래피티 아티스트는 많다.
뱅크시는 한 명뿐이다.

뱅크시는 세계적인 아티스트다. 거리의 예술가라고 불리는 뱅크시는 작품이 경매에서 수억 원에 팔릴 정도로 유명하다. 거리의 수많은 무명 예술가들과 달리, 뱅크시가 거리를 훌쩍 뛰어넘을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1. 경쟁자가 많다면, 차별화하라.

최근 뉴욕에서 뱅크시의 전시가 한창이다. <밖이 안보다 낫지.>라는 제목의 전시인데, 말 그대로 바깥에서 진행된다. 뱅크시는 담벼락이나 주차된 차 등에 한 작품 한 작품 그려나가고 있다. 뱅크시는 벽의 문양이나 바닥에 난 풀, 도로에 칠해진 교통선 등을 자신의 작품에 끌어들인다. 그가 자신을 여타 그래피티 아티스트들과 차별화한 방법이다.

2. 관객의 범위를 늘려라.

뉴욕에 살지 않는 사람도 전시를 볼 수 있다. <밖이 안보다 낫지.> 전시는 작품이 만들어지는 즉시 인스타그램에 게시된다. 전시 진행 과정을 담은 영상도 유튜브에 공개한다. 뱅크시의 웹사이트(http://www.banksy.co.uk/)에서는 이런 게시물들을 종합해서 볼 수 있다.

3. 세상이 주목할 이벤트를 만들어라.

지난 10월 13일, 뱅크시는 노점을 열고 오리지널 작품을 팔았다. 작품은 각각 60달러에 판매됐다. 하루 동안 팔린 작품은 총 8개. 모두 세 명의 사람에게 팔렸다. 이 사람들은 뜻밖에 돈벼락을 맞게 됐다.
뱅크시는 이 과정을 담은 영상을 유튜브에 올렸다.
아래는 이렇게 적었다. ‘주의: 오늘 이 장소에 가셔도 노점은 없습니다.’

4. 예상을 뒤엎어라.

거리의 예술가인 뱅크시가 꼭 담벼락에만 작품을 그리는 것은 아니다. 담벼락 그림으로 유명한 스타가 다른 전시를 할 때 언론은 주목하게 마련이다. 며칠 전 뱅크시는 ‘도살장으로 가는 가축들의 트럭’을 전시했다. 이목을 끌기 위해 소리도 추가했다. 신음하는 동물소리가 나는 트럭이 도로를 활보하자 길거리의 사람들은 이 장면을 카메라에 담아댔다.

김정현

참고: 뱅크시 웹사이트, 링크

[커뮤니케이션 단신] 예술, 커뮤니케이션, 그리고 비디오게임 – “비디오게임은 커뮤니케이션의 가장 순수한 형태죠.”

테트리스

*주: 게임에 대해 각자가 가지고 있는 생각은 다를 것입니다. 누군가에게는 어릴 적 친구들과 놀았던 즐거운 추억일 수도 있겠고, 누군가에게는 내 아이의 학업을 방해하는 요물일 수도 있겠습니다. 누군가에게 이제 게임은 예술로 이해되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한 예로, 세계적인 국민 게임 ‘테트리스’는 제작 당시 기술로 구현해낸 미학적 게임이었습니다. 2차원 공간을 정사각블록 4개의 조합의 합으로 채우는 것이 최근 아름답다고 평가받고 있습니다. 기술의 발달로 게임 화면의 질은 과거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호전됐지만 아직도 테트리스나 팩맨 등 고전 게임은 예술성을 인정받고 있습니다. 그 게임으로 추억을 쌓은 사람들이 아직까지 그 게임을 사랑하고 있기 때문이죠. 게임의 가치는 어떻게 변화하고 있을까요? 최근 뉴욕현대미술관과 영국 빅토리아알버트뮤지엄에서 게임을 예술로 다루는 변화를 주도하고 있습니다. 관련 기사를 발췌 번역했습니다.

1. 비디오게임, 커뮤니케이션 디자인의 가장 순수한 형태

지난 2012년 11월, 뉴욕현대미술관에는 비디오게임 14개가 디자인 컬렉션에 포함됐다. 이를 두고 예술평론가들 사이에 논쟁도 약간 있었다. ‘어떻게 팩맨과 피카소를 같이 놓을 수가 있단 말인가?’ 같은 불만이 제기됐다. 이 기획을 담당한 큐레이터 Paola Antonelli는 이렇게 말한다. “네. 비디오게임은 뉴욕현대미술관에 전시되기에 충분해요.” 이유는 뭘까? 해당 전시에 참석했던 한 사람의 트윗을 보면 이해가 갈 만하다. “비디오게임은 커뮤니케이션 디자인의 가장 순수한 형태다.

2. 예술이 된 비디오게임 – 비디오게임의 개념을 다시 정의하다.

영국의 ‘빅토리아와 알버트 뮤지엄’에 상주 게임디자이너가 생긴다. 상주 게임디자이너가 고용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금까지 게임디자이너는 도자기나 직물 혹은 가구와 같은 것들을 다루는 전통적인 예술기관에서 찾아볼 수 없었다.

이 소식이 전해졌을 때 예술 산업 분야의 사람들은 <스페이스 워>을 떠올렸다. 스페이스 워는 1961년에 MIT에서 처음 시작된 게임인데, 말 그대로 우주에서 싸우는 게임이다. 두 명의 플레이어가 우주에서 상대방을 파괴해야 한다. 이 게임은 예술적 게임포맷의 시초다.

1980년대에 영화평론가 로저 에버트는 ‘게임은 절대 예술이 될 수 없다’고 말한 바 있다. 예술에 ‘이긴다’는 개념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라는 이유다. 그는 2005년에 이런 말도 했다. “비디오게임은 귀중한 시간의 상실을 뜻할 뿐이다. 그 시간에 다른 것을 했다면 우리는 더 예술적인 인간이 된다거나 더 문명화된 인간이 됐을 것이다.”

1960년대에 비디오게임이 만들어지고 많은 시간이 지났다. 그 동안 변화들이 있었다. 게임디자이너는 이제 기술의 제한을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새로운 게임들에는 ‘이긴다’는 개념조차 없는 경우도 많다. 진보하는 디지털 환경과 기술적 환경 때문에 ‘비디오게임’이 무엇이냐 하는 질문이 등장할 정도가 됐다. 비디오게임 디자이너의 중요성은 여기에서 나온다. 예술이 게임에 영감을 주고 게임도 예술에 영감을 준다. 궁극적으로 비디오게임은 영화나 티비프로그램이나 애니메이션과 마찬가지로 예술로 분류되어 마땅하다.

3. 미술관, 비디오게임 전시의 커뮤니케이션

뉴욕현대미술관에 따르면 비디오게임은 예술인 동시에 디자인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디자인이 단지 사람을 예쁘게 꾸미거나 어떤 물건을 아름답게 만드는 거라고 한정해버린다. 하지만 디자인은 과학, 교육, 정책 등 거의 모든 곳에 퍼져 있다. 디자인의 특성을 생각해보면 당연한 결과다. ‘사람들이 변화에 반응하도록 돕는 것’ 이것이 디자인의 주된 존재의의다. 현재 디자이너들은 인터액션과 인터페이스에 집중한다. 인터넷, 시각화, 소셜 인프라 등의 디자인을 의미한다. 게임은 커뮤니케이션 디자인의 탁월한 사례다. 게임의 시각적, 미학적 질뿐만 아니라 게임 플레이어가 게임을 작동시키는 과정에서 보여지는 디자인적인 요소 등도 강조되어야 마땅하다. 비디오게임을 한 번 플레이하는 데 너무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는 점은 비디오게임이 예술로 다뤄지는 데 문제가 될 수 있는데 이 문제는 게임 시간을 줄이는 방식으로 해결될 수 있다. 단, 게임하는 동안 쌍방 커뮤니케이션이 동일한 퀄리티로 이뤄져야 한다. 전시에서는 관람객들이 불편 없이 훌륭한 디자인의 게임을 향유할 수 있도록 디자이너와 프로그래머가 협력했다. 이번 전시에 포함된 EVE온라인이나 Dwarf Fortess같은 경우는 수 년 동안 지속됐고 몇 백만 명의 사람들이 향유했다. 그 경험까지 전달하기 위해 전시에는 투어가이드까지 포함시켰다. 복잡한 게임을 쉽게 시작할 수 있도록 말이다.

김정현

출처:
– 가디언, 링크
– 뉴욕현대미술관 페이지, 링크
– 테드 블로그, 링크

[유민영의 위기전략] 자사의 항공기 사고를 대하는 아시아나의 자세 1 – 사고 상황과 국내 대응을 중심으로

한국시간으로 7월 6일 오후 4시 45분 인천공항을 출발한 아시아나 항공기 214편이 7월 7일 새벽 3시 27분 미국 샌프란시스코 공항에 착륙하던 중 사고가 발생했다. 방파제에 꼬리 부분이 부딪힌 후 꼬리 부분이 잘려 나갔고 착륙 직후 화재가 발생했다. 두 명이 사망했고 수십 명이 크게 부상당했다. 사고 발생 대응, 그리고 첫 번째 사과, 후속 관리에 이르기까지의 아시아나 항공의 대응을 살펴봤다. 아시아나의 인명사고를 포함한 첫 번째 대형 사고는 1993년 7월 발생했다. 20년 만이다.

아시아나의 대응에 대한 정보는 아직 제한적이다. 미국 현지의 공항과 병원의 상황을 다 체크할 수 없는 상황도 아시아나의 대응에 어려움을 주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승객과 승무원 들은 최선을 다해 더 큰 참사를 막았고 예상보다 사상자도 크지 않은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그러나 외신들은 일제히 사고 당시 조종을 했던 기장이 해당 기종 B777기에 대해 43시간 만을 운항했다는 것을 일제히 보도하고 있다. 아시아나는 기장 4명이 비행 1만시간 전후의 베테랑이라고 설명했다. 기체결함이 아니라면, 기장들 간의 커뮤니케이션을 포함해 많은 숙제들이 여기에 걸린다. 그러나 근본적인 문제는 아직 답을 알 수 없다. 시간이 걸릴 것이다.

아시아나의 초기대응은 훌륭한 점도 있고, 아쉬운 점도 몇 가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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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위기의 순간, 무엇보다 상황에 집중하라
승무원들의 헌신이 현장의 극단적 위기를 막는 데 기여했으며, 이후 수습의 위기관리 과정에서 훌륭한 방어 기제의 역할을 수행할 것이다.

“오히려 머리가 명료해지면서 무슨 일을 할지 몸이 움직였다”,
“항공기에 불이 붙었을 때도 ‘나 어떡하지’라는 생각 보다는 빨리 꺼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로지 생각은 승객들을 탈출시키자는 목표 하나에만 집중했다. 몇 명을 탈출시켰는지, 얼마나 걸렸는지는 기억나지 않고 한 분이라도 더 탈출시켜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 7월 7일 (현지시각) 오후, 이윤혜 사무장, 샌프란시스코 현지 기자회견

1-1 승무원들의 침착하고 헌신적인 대처가 화제다. 항공기에 탑승한 최고참, 18년 경력의 이윤혜 사무장은 꼬리뼈를 다친 것도 모르고 승객을 구조했다고 한다. 그녀는 항공기에서 마지막으로 탈출했다. 윤영두 사장은 두 번째 기자회견에서 기자들로부터 우호적 질문을 받았다. “아시아나 항공 승무원들의 적절한 대처가 인명피해를 최소화한 것으로 보이는데, 사고 발생 시 아시아나 항공의 대처 매뉴얼은 무엇인가?”

1-2 이윤혜 사무장은 샌프란시스코 현지에서 기자회견을 가졌다. 위기의 상황에 아시아나는 언론과 여론의 호감을 얻는 내부의 ‘화이트 스피커’를 갖게 되었다.

1-3 위기의 상황은 벌어진 일이다. 그러나 훈련되고 경험이 많은 승무원들은 상황을 최소화할 수 있다.

1-4 그렇다고 완벽하게 안전한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어려운 뒷칸을 책임졌던 태국인 승무원은 위독한 것으로 전해졌다. 우리가 기내의 모든 사실을 다 알 수는 없다.

2. 최대한 신속하게 대처하라. 초기 신뢰를 형성하라.
CEO의 움직임은 눈에 보여야 한다. 위기 상황에 맞서 온몸으로 맞서야 하고 진두지휘해야 한다. 피해자 가족과 언론, 여론은 그것을 기대하고 기억한다.

“금번 사고로 인해 탑승객 및 가족분들을 비롯한 국민 여러분들게 커다란 심려를 끼쳐드려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 머리 숙여 사과드립니다.”
– 7월 7일 오후 3시, 사건 발생 12시간 후, 윤영두 대표이사 1차 기자회견, 아시아나 항공 본사

2-1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과 윤영두 아시아나 사장은 사고 발생 시 중국 웨이하이에서 개최된 계열사 금호타이어 주최 골프대회에 참석했다가 급히 귀국했다. 사건 당일인 7일 오후 1시 중국 동방항공을 통해 귀국을 했다면 최대한 빨리 귀국한 것으로 보인다. 타사 항공기를 이용했다면 그만큼 급박하게 움직인 것의 방증이라 하겠다. 잘한 일이다.

2-2 아쉬운 점도 있다. 사고 발생 12시간 만에 기자회견을 한 것이다. CEO가 중국에 있어 최초 대처가 어려운 점은 이해가 되지만, 7일 아침 7시 47분 아시아나 홈페이지에 배포된 [1차 보도자료-OZ214편 관련 보도자료]에는 상황 설명만 있다 ‘현재 상황에서 확인된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로 시작해 기본 정보만 정리되어 있고 ‘가능한 한 빨리 추가적인 사항을 공표하겠다.’로 끝난다. 중국에서도 충분히 지휘할 수 있었다. 최소한 최초 자료에 오후 3시 기자회견문의 내용이 들어갔어야 한다. CEO의 이름과 함께. 기자들과 카메라는 신속히 인천공항에 도착했고 임원 중 누군가가 브리핑을 대처할 수도 있었다. 아무리 급했다고 해도 첫 번째 보도자료에는 사과와 CEO의 이름이 빠져있다. 피해자 가족에 대한 신속대응 전화번호도 빠졌다. 너무 건조했다.

2-3 박삼구 회장이 윤 사장과 함께 귀국했고 보고와 대처방안이 정리되었을 것이다. 그리고는 시야에서 사라졌다. 이 점도 아쉽다. 물론 최종 사과의 과정이 있을 것이므로 그룹 회장이 대처할지 여부는 그때 판단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박 회장이 이 상황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처하고 상황을 지휘하는 것은 한국의 오너체제에서 타당한 일이다. 그렇다면 콘트롤타워로서 그의 역할은 노출되고 설명되어야 한다. 그것이 금호아시아나그룹이 겪을 수 있는 최대의 위기에 대처하는 최종 책임자의 자세다. 각별한 대처는 사후 위기수습과정에서도 매우 중요하다.

2-4 8일 윤영두 사장이 두 번째 기자회견을 열었다. 윤 사장이 직접 나와서 설명하고 브리핑했다. 기자들의 질문에도 충실하게 성의껏 대답했다. 답할 수 없는 정보는 왜 그러한 지에 대해서도 성실하게 답변했다. 한 번의 사과와 브리핑이 결코 모든 것을 말해주지 않는다. 위기의 전개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임원에게 자신의 역할을 대신 맡기지 않는 윤 사장의 태도는 훌륭하다. (7월 8일, 2차 기자회견, 프레스 센터)

3. 언론과 소셜미디어에 확인할 수 있는 최대한의 정보를 투명하게 제공하라.
‘신속’과 ‘대처’의 언어는 공식적으로 담백하게, ‘염려’와 ‘걱정’의 언어는 인간적으로 따뜻하게 해야 한다.

‘어제 오후 인천공항을 출발하여 샌프란시스코를 향하던 OZ214편이 착륙 중 사고가 발생하였습니다. 아시아나항공은 인명피해 및 정확한 사고 원인에 대해서 파악 중으로, 이후 확인되는 사항은 추가로 안내 드리겠습니다.’
– 7월 7일 오전 8시 50분 경, 아시아나 트위터 (한국 시간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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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외신과 한국 언론에는 이미 두 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는 기사가 제공되었다. 아시아나는 사건 이튿날까지 인명피해 및 정확한 사고 원인에 대해 파악중 이라고 밝히고 있다. 현재까지 (7월 8일 오후 6시 기준) 홈페이지와 트위터에 제공된 세 건의 보도자료에는 사망에 대한 언급이 없다. 후속 브리핑이나 확인 과정에서 언론에 대해 설명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사실은 가능하면 빠르고 정확하게, 그리고 담백하게 전달되어야 한다. 사망자에 대한 언급은 그래서 중요한 것인데 빠뜨린 것이다.

3-2 경황중이라 그렇겠지만 아시아나의 트위터는 답답하리 만큼 의례적이다. 중간 중간 확인할 수 있는 내용도 공개하지 않고 있다. 1차 보도자료 내용은 올라가지도 않았다. 긴급 상황이라 우리말/영어도 동시에 쓰는 것이 좋은데 그렇지 못하다. 무엇보다 내용이 너무 부실하다.

3-3 물론 여기서 승무원들의 미담을 써서는 안 된다. 그것은 오버다. 그렇지만 상황의 전개와 피해자를 걱정하는 염려와 안타까움의 마음은 전달해야 한다. 현지 병원 상황에 대한 정보의 부재는 인정할 수 있지만 빈도나 내용으로 보면 아시아나의 트위터는 매우 일상적인 상황이다. 140자의 한계라고 하기에는 성의 부족이다.

3-4 현장에서 신속하게 상황을 전달하는 언론에 신경을 쓰는 것은 당연하다. 그와 마찬가지로 순간순간 여론을 움직이는 소셜미디어도 비슷하게 신경을 써야 한다. 서로 협조를 구해야 하고 설명이 더 필요한 것이 아니라면, 소셜미디어에도 정보를 동일하게 제공하는 것이 좋다. 소셜미디어는 나쁜 뉴스만을 전파하지 않는다. 훌륭한 대처도 함께 전파한다.

4. 피해자 중심의 위기관리가 필요하다- 당사자에게는 연락할 수 없다. 가족과 대리인에게 연락할 방도가 없다.

‘[아시아나항공 OZ214편 탑승자 안내센터 전용 연락처 안내] 금일 발생한 OZ214편 관련, 한국 02-2669-4015, 미국 800-227-4262로 연락하신 후, 탑승자 성명, 생년월일을 알려주시면 탑승여부를 안내 드립니다.’
– 7월 7일 오후 2시 21분 경, 아시아나 트위터 (한국시간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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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공 사고는 자신이 피해자가 된다. 그렇다면 가족과 대리인에게 알릴 방도가 있어야 한다. 항공기 티켓을 사려는 사람에게 아시아나는 이름, 탑승자생년월일, 개인의 휴대폰번호와 이메일을 요구한다. 대한항공도 이름, 연락처, 도착지 연락처, 이메일을 요구한다. 가족과 대리인이 없다. 미국은 비자 서류심사 때 한국 및 미국 현지의 연락가능한 사람의 이름, 전화번호, 주소, 관계, 소속 정보를 요구한다. 무비자의 경우는 미국내 현지 체류 주소만 적는다. 그러나 이것은 미국 정부의 데이터베이스다.

결국 피해자의 가족들은 먼저 연락을 받지 못했다. 촌음을 다투는 시간에 그들은 정보를 제공받지 못한다. 당사자와 연락이 안 된 피해자의 가족들 몇몇은 인천공항으로 달려오기도 했으나 뾰족한 정보를 얻지 못했다. 사고를 대비한 데이터의 확보, 그것도 위기관리의 중요한 요소다. 위기는 상황 후에도 지속되기 때문이다. 항공사의 근본적 대책이 있어야 하겠다. 피해자 가족에게 항공사가 먼저 전화할 수 있다면 가족은 첫 과정에서부터 항공사의 정보와 의지를 신뢰하게 될 것이다. 위기대처와 매뉴얼에 빠져있는 상황이다.

* 위기 상황에 직면한 리더들의 훌륭한 대응사례 두가지를 소개한다.

에피소드 1: 오바마 대통령의 위기대응 사례 

2011년 9월 대형 허리케인 ‘아이린’이 뉴욕 지역을 포함해 미 동부로 북상하는 긴급 상황이 발생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휴가지 매사추세츠주 마서스 비니어드 섬에서 즉각 대국민 담화를 발표했다. 이어 휴가 일정을 단축해 아이린이 워싱턴에 도착하기 전에 복귀해 ‘연방재난관리청’을 방문해 근무자들을 격려하는 등 위기를 전방위로 관리했다. 이는 대통령 부재 중 발생한 위기에 대해 휴가지와 근무지를 넘나들며 대처한 훌륭한 사례다. ‘과정 관리’의 모범이다. 2005년 부시 대통령이 허리케인 카트리나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해 여론의 뭇매를 받았던 사례를 의식했던 것이다. 뉴욕시의 경우 최악의 상황에 대비해 1/3에 해당하는 지역주민에게 소개령을 내렸던 아이린은 큰 사고 없이 지나갔다.

“허리케인이 지나갈 경로에 있는 주민은 지금 당장 대비하십시오. 기다리지 말고 늦어서도 안됩니다. 최선을 바라지만 최악을 대비해야만 합니다.”
(If you are in the projected path of this hurricane you have to take precautions now. Don”t wait, don”t delay. We all hope for best but have to be prepared for the worst.)
– 오바마 대통령

에피소드 2: 현대카드 정태영 CEO 의 위기대응 사례  

2011년 4월 현대카드의 고객 데이터베이스가 해킹되어 고객의 데이터베이스가 유출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당시 현대캐피탈 정태영 사장은 노르웨이에 출장 중이었다. 언론은 정 사장이 현지에서 사건을 인지한 후 직원들과 대책을 마련하고 즉각 조치를 취했다고 보도했다. 경찰과 충분히 상의한 다음, 해킹 사실을 먼저 고객에게 해킹 사실을 공개하고(언론에 보도되지 않은 상황) 언론에도 상세하게 설명을 했다. 상황을 투명하게 선제적으로 자발적으로 공개한 것이다.
선 대응 과정을 거친 후 바로 귀국한 정 사장은 사과기자회견을 열고 충심을 다해 사과했다. 즉각 대처, 투명한 대응, 정직한 방법으로 ‘고객 정보 유출’이 확산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대처한 훌륭한 사례다. 2011년 동일한 사건이 발생한 농협이 상황 공개를 미루고 ‘곧 해결될 것이다’ 했고 미봉책으로 대처하려다 상황을 더 키웠다. 한심한 것은 사과회견에 나선 최원병 회장이 “나도 몰랐다”, “(나도)기자들이랑 똑같이 당한 것”이다 등 변명으로 일관했다는 것이다. 반면 정 사장은 “고객에게 죄송하고 수치스럽다.”며 몸을 한껏 낮췄다.

“고객으로 구체적으로 알리고 숨기지 마라. 추후 피해배상을 걱정하지 말고 최대한 고객 정보 보호에 최선을 다하라.”
– 정태영 CEO

유민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