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심화를 위한 노트 16] 메시지를 강요하지 말자. 담담한 묘사로도 전달이 가능하다.

자신의 주장을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글을 가끔 접한다.
주장엔 공감하지만 글의 전개방식이 못마땅하다.
나중에는 주장에 공감하는 것조차 부담스러워진다.
설득은 독자와 공감하는 과정이다.
자신의 주장만 일방적으로 되풀이하면 공감을 얻을 수 없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차분하게 논리를 전개해야 한다.
수필이나 서정적인 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런 글일수록 오히려 더 조심스럽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핵심을 정형화된 문구로 만들어 드러내기보다는,
담담하게 인물, 장면, 대화를 묘사하다 보면
의도한 메시지를 자연스럽게 전달할 수 있다.
다음은 노 대통령 재임 중에 쓴 국정일기,
‘파격과 변화로 혁신, 또 혁신’에서 인용한 대목이다.
대통령의 이야기를 열거하면서 그의 캐릭터와 생각을 드러내고 있다.

대통령은 오늘도 끊임없이 사고의 전환을 역설한다. 특히 수도권 중심 사고를 벗어나 지방이 스스로 운명을 개척해 나가야 한다는, 사고의 전환을 거듭거듭 이야기하고 있다. 낙후지역 개발 문제를 다룬 15일 국정과제회의에서도, 그 다음날 포항에서 열린 지역혁신협의회 회의에서도 대통령은 참여정부 균형발전 전략의 토대가 되고 있는 혁신의 철학을 진솔하게 표현했다.

“자원을 투입할 때에는 성공이 확신되는 쪽에 투자를 집중하겠다.”
“기존 사업도 성과가 검증되지 않으면 돈을 쓰지 않는다. 불용액으로 남는 한이 있어도 성과 있는 것에만 지원하겠다.”
“이제는 지방이 주도하고 중앙이 지원하는 체계로 간다.”
“옛날에는 대통령이 이렇게 내려오면 지시를 내리고 지역사회에 선물을 주었지만, 이제는 지역혁신협의회가 어떻게 토론하고 논의하는가가 더 중요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과 그 지역 스스로의 노력이다.”
“더 이상 수도권을 쳐다보지 말고, 지방발전의 창의적 전략을 제출해 달라.”
“창을 열고 크게 바라보자.”
이렇듯 대통령은 쉼 없이 파격 또는 새로운 변화에 앞장서고 있다. 며칠 전 한·일정상회담 준비상황을 보고받는 자리에서의 일이다. 준비 팀이 보고하기를 이번 회담은 전 행사가 노타이로 진행된다고 했다. 대통령은 특유의 애드리브로 다시 한 번 좌중을 웃겼다.
“난 넥타이를 안 매면 인물이 죽는데….”

윤태영

[글쓰기 심화를 위한 노트 13] 까다로운 마무리, 여운을 남기는 방법도 좋다.

 

먼저 예문으로 시작하자.

자이툰 방문을 마친 대통령 일행은 쿠웨이트 무바라크 공항으로 돌아온 후 기자들의 기사 송고를 위해 한 시간 더 그곳에 머물렀다. 이 행사를 끝으로 그는 라오스와 유럽 3개국 순방 일정을 마무리하고 귀국길에 올랐다. 서울공항에 도착한 것이 12월 9일 새벽 4시 40분. 귀국해 보니 여론이 바뀌어 있었다. 대통령에 대한 칭찬이 여기저기서 쏟아져 나왔다. 보수언론까지도 칭찬 일색이었다. 더불어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도 급상승했다. 그를 만나는 사람들은 모두 이구동성으로 ‘감동’을 이야기했다. 그는 멋쩍은 반응을 보였다.
“나는 그렇게까지 기대를 한 것이 아니었는데……”
(<기록> ‘20. 자이툰 부대 방문’에서 인용)

대통령의 말로 한 편의 글을 마무리했다.
여러 가지 아쉬움과 회한이 섞인 한 마디였다.
자이툰 부대 방문으로 지지도가 급격히 상승하자
상념에 젖은 대통령이 했던 말이다.
자이툰 부대를 방문하게 된 과정도 중요하지만,
지지도에 대한 대통령의 시각도 중요하다는 판단으로
이 한마디를 글의 끄트머리에 배치했다.
물론 글의 주된 흐름은 자이툰 부대 방문이다.
지지도에 대한 생각은 부차적인 주제일 수밖에 없다.
그런 만큼 이 문제는 깊이 파고들어갈 이유가 없다.
다만 이런 계기에 고민의 실마리를 던진다는 생각으로
마지막 대목에 여운을 남기듯 소개했다.

이처럼 글의 주된 흐름에서는 벗어나지만,
고민이 필요하거나 생각해봐야 할 문제를
여운을 남기듯 던지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 생각한다.
다만 생각의 단초를 던지는 데 그치는 게 좋을 듯싶다.
지나치게 단정하는 표현으로 마무리를 한다면
독자에게 생각의 계기를 제공하기보다
오히려 부담감을 줄 수 있다.
그런 점을 감안한다면 마무리 문장은 글쓴이의 지문보다
위와 같은 대화체가 더 적절하다는 판단이다.

[글쓰기 심화를 위한 노트 10] 만담이 아닌 대화를 살리자. 핵심 메시지를 담아보자.

대화체는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살아있는 언어들이 생동감을 준다.
다만 긴 대사는 곤란하다.
만담처럼 느껴질 뿐 아니라 요점도 잘 전달되지 않는다.
이야기가 길어지면 차라리 지문으로 처리하는 게 좋다.
가끔은 짧은 대사들이 구성된 긴 대화로
핵심메시지를 전달하려고 시도해보자.
길게 설명하는 대신 다음의 사례를 소개한다.

노무현 후보는 하나하나의 질문에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또박또박 대답을 했다.“좋아하시는 영화는요?”
“’엘시드’, ‘라이언스 도터’, 그래, ‘오발탄’도 재밌었지.”
“좋아하시는 연예인은?”
“텔레비전에 나오면 그냥 다 좋던데!”
“즐겨보는 TV프로그램은 있나요?”
“뉴스는 직업이 그래서, 그리고 도전 1000곡!”
멋있고 근엄하게 보이려는 노력은 아예 포기한 것일까?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속에 있는 생각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나온다.
“아내 외에 다른 여성에게 끌린 적은 몇 번입니까?”
“비밀이다!”
“보신탕을 먹어본 적 있습니까?”
“물론 있지!”
“정치가가 아니라면 하고 싶은 일은 무엇입니까?”
“로비스트! 건강한 로비 문화를 만들고 싶다.”
“겨울엔 내복 입으십니까?”
“안 입고 살았는데 올해는 귀하신 몸이 되어서 입었다.”
“외모 중 가장 자신 있는 곳과 못마땅한 곳은 무엇입니까?”
“자신 있는 곳도 없고, 자신 없는 곳도 없다. 다만 머리카락 다듬기가 어렵다.”
“대통령이 되면 잃을 것 같은 3가지는?”
“자유, 시간, 돈.”
“대통령 의전차량이 외제차인데, 대통령이 되면 국산차로 바꿀 용의는 없습니까?”
“무슨 이유가 있겠지. 있는 것 그냥 쓰지 뭘!”
(2001년 필자의 칼럼 <너무나 솔직담백한, 그래서 존경스러운>에서 인용)

윤태영

[글쓰기 심화를 위한 노트 05] 캐릭터를 당당하게 드러내자. 단점도 강점으로 승화된다.

특정 인물을 묘사하는 글을 써야 할 때가 있다.
그 특정 인물이 바로 자기 자신인 경우도 있다.
다른 누군가든 자기 자신이든,
인물을 묘사할 때면 캐릭터를 드러내는 게 중요하다.
다른 사람과 분명한 차별화를 시도해야 한다.
물론 객관적인 묘사가 필요하다.
일방적으로 강점을 과장되게 묘사하기보다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솔직하고 담담하게 서술하면 좋다.
관찰자나 기록자가 장단점을 가려 전달하지 말고
독자의 몫으로 남겨두자는 것이다.
사실을 담백하게 전달하는 과정에서
단점이나 약점도 오히려 장점이나 강점으로 바뀔 수 있다.
의도적으로 강점만 전달하려다 보면
거부감을 주거나 역효과를 낼 수 있다.
자기소개서를 쓸 때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단점을 억지로 숨기려고 할 필요는 없다.
단점이 함께 설명이 되어야
강점이 더 크게 부각되어 보이게 된다.
다음의 사례는 퇴임 이후 노대통령의 휴가 장면을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묘사해낸 장면이다.

대통령은 사람들의 무리를 우회하는 일도 없고, 내미는 손길을 거절하는 법도 모릅니다. 그럴수록 경호팀의 긴장은 두 배 이상 늘어나기 마련입니다. 때로는 비서들이 지나치다 싶어 만류하기도 하지만 오히려 대통령이 비서들을 설득합니다. 어린이들에게는 더욱 애정과 관심을 가지고 작은 격려를 아끼지 않습니다.
“구경 잘 했어?”(자생식물원에서 어린이 관람객에게)
“그래, 이리 와서 손 한번 잡아봐라.”(청령포에서 대통령앞에서 수줍어하는 어린이에게)
“나중에 이 사진 보면서 나보고 아빠라고 하지 마라. 하하.”(자생식물원 관람 도중 엄마와 두 어린이만 온 가족과 사진을 찍으며)(봉하일기, <대통령의 여름휴가(2008, 8.4)>에서 인용)

윤태영

[글쓰기 심화를 위한 노트 04] 하나의 장면을 한 꼭지의 글로 만드는 연습을 하자.

2005년 5월 중순, 노무현 대통령은 러시아와 우즈베키스탄을 순방했다. 우즈베키스탄에는 스탈린 시절에 강제 이주된 고려인의 후손들이 많이 살고 있었다. 그는 그들이 살아온 힘겨운 세월과 고통에 대해 익히 알고 있었다. 그래서 꼭 한번 방문하고 싶었던 곳이 우즈베키스탄이었다. 영빈관의 응접실에서 그는 고려인들을 맞이했다. 통역이 필요했다. 대부분 2세와 3세들이기 때문이었다. 이주 고려인 1세에 해당하는 고령의 할머니가 있었다. 할머니는 그들 1세가 낯선 땅에서 겪어야 했던 고초와 고난의 시간들에 대해 설명했다. 이야기를 듣던 그가 갑자기 손에 든 말씀자료로 눈길을 떨어뜨렸다. 해야 할 무슨 말을 찾으려는 듯이 보였지만 그것이 아니었다. 고개를 숙인 채 메모카드를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시선 둘 곳을 찾지 못하는 대통령. 그는 한참 동안 고개를 숙인 채 할머니의 이야기를 듣기만 했다. 작은 물방울 하나가 떨어져 메모카드를 적시었다. 눈치를 챈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는 손수건을 꺼내 얼굴을 닦았다. 그리고 한참 후에야 고개를 들어 할머니를 응시했다. 그의 눈은 안타까움과 연민으로 벌겋게 충혈이 되어 있었다. 인간 노무현의 눈물이었다.(<기록>에서 인용)

중앙아시아 이주 고려인들에 대해
대통령이 가지고 있는 미안함의 감정이 충분히 그려졌다.
하나의 장면을 하나의 글로 만들기 위해서는
앞뒤의 과정과 결과를 충분히 취재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짧은 시간이 갖는 의미를 풍부하게 전달할 수 있다.
말이나 동작이 아닌 분위기도 세밀하게 묘사하면 더 좋다.
그래야 주인공의 짧은 언행이 부각되고
독자의 시선이 집중될 수 있다.
다음의 사례도 그 가운데 하나이다.

대통령에게 자연보다 더 소중한 존재는 바로 그 속에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 사람들이 휴가중인 대통령의 모습과 마주치자 각양각색의 표현으로 반가움을 전했습니다. 일정이 예정된 곳이나, 갑작스레 모습을 보인 길거리에서나 반가움의 반응들은 한결같았습니다. 핸드폰 카메라를 높이 드는 사람, 대통령의 출현 소식을 친구에게 전하러 뛰어가는 사람, 사인받을 종이와 펜을 찾으러 집으로 들어가는 사람. 어떤 작은 마을에서는 주민 전부가 나와 대통령을 맞았습니다. 무더운 뙤약볕의 강릉 선교장에서도, 굵은 빗줄기가 하염없이 내리는 영월의 청령포에서도, 사람들은 퇴임한 대통령의 친구 같은 출현에 환호와 박수를 보냈습니다. 스스럼없이 대중 앞에 설 수 있는 대통령의 소탈한 당당함, 그리고 이제는 전직 대통령을 거리낌 없이 이웃처럼 대할 수 있는 사람들의 여유가 빚어낸 아름다운 장면들입니다.(봉하일기, <대통령의 여름휴가(2008. 8.4)>에서 인용)

 

윤태영

[글쓰기 심화를 위한 노트 03] ‘눈물’이란 표현이 독자를 슬프게 만드는 것은 아니다.

영화에서 가장 슬픈 장면이 있다.

주인공이 처한 현실이 참담하기 그지없을 만큼 슬픈데,
정작 주인공은 울음을 참고 있는 모습이다.
충분히 일리 있는 분석이다.
통곡해야 마땅한 상황임에도 울지 않는 모습이 더 슬픈 법이다.
글에서도 마찬가지다.
‘슬프다.’, ‘울고 싶었다.’, ‘가슴이 미어졌다.’…
이런 표현을 동원해야만 독자를 울리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분위기를 차분하게 묘사하는 게 중요하다.
누군가 기뻐하는 장면도 다르지 않다.
단순히 ‘그는 기뻐했다.’라고 하지 말고
분위기를 여러 가지 방식으로 묘사해보자.
이런 서술은 어떨까?
“그는 평소와 달랐다. 눈에 생기가 돌았다. 공연히 히죽히죽 웃기도 했고, 옆의 친구를 그냥 툭툭 건드리며 장난을 쳤다.”
주변 분위기만 잘 그려내도
주인공의 슬픔을 어느 정도 묘사할 수 있다.
다음의 글을 보자.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 직전, 사저의 분위기를 묘사한 것이다.

“4월 중순, 대통령의 사저는 생기를 잃어가면서 때로는 적막감마저 휘감고 돌았다. 그 안에 선 대통령은 유난히 머리가 희여 보였다. 사저를 둘러싸고 형형색색들의 꽃들이 피어나 울적한 대통령을 위로하려 했지만, 대통령의 시야에 드는 것조차 힘겨워 보였다.”(<대통령의 외로웠던 봄>, 2009년 5월)

윤태영

[두 대통령과 함께한 전략적 글쓰기 27] 대통령이 강조했던 글쓰기 지침

관저 식탁에서의 2시간 강의
– 노무현 대통령의 글쓰기 지침

2003년 3월 중순, 대통령이 4월에 있을 국회 연설문을 준비할 사람을 찾았다.
노무현 대통령은 늘 ‘직접 쓸 사람’을 보자고 했다.
윤태영 연설비서관과 함께 관저로 올라갔다.

김대중 대통령을 모실 때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대통령과 독대하다시피 하면서 저녁식사를 같이 하다니.
이전 대통령은 비서실장 혹은 공보수석과 얘기하고, 그 지시내용을 비서실장이 수석에게, 수석은 비서관에게, 비서관은 행정관에게 줄줄이 내려 보내면, 그 내용을 들은 행정관이 연설문 초안을 작성했다.

그에 반해 노무현 대통령은 단도직입적이었다고나 할까?
아무튼 일을 효율적으로 하기를 원했다.
“앞으로 자네와 연설문 작업을 해야 한다 이거지? 당신 고생 좀 하겠네. 연설문에 관한한 내가 좀 눈이 높거든.”

식사까지 하면서 2시간 가까이 ‘연설문을 어떻게 써야 하는가?’ 특강이 이어졌다.
밥이 입으로 넘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몰랐다.
열심히 받아쓰기를 했다.
이후에도 연설문 관련 회의 도중에 간간이 글쓰기에 관한 지침을 줬다.

다음은 그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1. 자네 글이 아닌 내 글을 써주게. 나만의 표현방식이 있네. 그걸 존중해주게. 그런 표현방식은 차차 알게 될 걸세.
2. 자신 없고 힘이 빠지는 말투는 싫네.
‘~ 같다’는 표현은 삼가 해주게.
3. ‘부족한 제가’와 같이 형식적이고 과도한 겸양도 예의가 아니네.
4. 굳이 다 말하려고 할 필요 없네. 경우에 따라서는 질문을 던지는 것으로도 연설문이 될 수 있네.
5. 비유는 너무 많아도 좋지 않네.
6. 쉽고 친근하게 쓰게.
7. 글의 목적이 무엇인지 잘 생각해보고 쓰게. 설득인지, 설명인지, 반박인지, 감동인지
8. 연설문에는 ‘~등’이란 표현은 쓰지 말게. 연설의 힘을 떨어뜨리네.
9. 때로는 같은 말을 되풀이하는 것도 방법이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는 킹 목사의 연설처럼.
10. 짧고 간결하게 쓰게. 군더더기야말로 글쓰기의 최대 적이네.
11. 수식어는 최대한 줄이게. 진정성을 해칠 수 있네.
12. 기왕이면 스케일 크게 그리게.
13. 일반론은 싫네. 누구나 하는 얘기 말고 내 얘기를 하고 싶네.
14. 추켜세울 일이 있으면 아낌없이 추켜세우게. 돈 드는 거 아니네.
15. 문장은 자를 수 있으면 최대한 잘라서 단문으로 써주게.
탁탁 치고 가야 힘이 있네.
16. 접속사를 꼭 넣어야 된다고 생각하지 말게.
없어도 사람들은 전체 흐름으로 이해하네.
17. 통계 수치는 글을 신뢰를 높일 수 있네.
18. 상징적이고 압축적으로 머리에 콕 박히는 말을 찾아보게.
19. 글은 자연스러운 게 좋네. 인위적으로 고치려고 하지 말게.
20. 중언부언하는 것은 절대 용납 못하네.
21. 반복은 좋지만 중복은 안 되네.
22. 책임질 수 없는 말은 넣지 말게.
23. 중요한 것을 앞에 배치하게. 뒤는 잘 안 보네. 문단의 맨 앞에 명제를 던지고, 그 뒤에 설명하는 식으로 서술하는 것을 좋아하네.
24. 사례는 많이 들어도 상관없네.
25. 한 문장 안에서는 한 가지 사실만을 언급해주게. 헷갈리네.
26. 나열을 하는 것도 방법이네. ‘북핵 문제, 이라크 파병, 대선자금 수사…’ 나열만으로도 당시 상황의 어려움을 전달할 수 있지 않나?
27. 같은 메시지는 한 곳으로 몰아주게. 이곳저곳에 출몰하지 않도록
28. 백화점식 나열보다는 강조할 것은 강조하고 줄일 것은 과감히 줄여서 입체적으로 구성했으면 좋겠네.
29. 평소에 우리가 쓰는 말이 쓰는 것이 좋네. 영토 보다는 땅, 치하 보다는 칭찬이 낫지 않을까?
30. 글은 논리가 기본이네. 좋은 쓰려다가 논리가 틀어지면 아무 것도 안 되네.
31. 이전에 한 말들과 일관성을 유지해야 하네.
32. 여러 가지로 해석될 수 있는 표현은 쓰지 말게. 모호한 것은 때로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지금 이 시대가 가는 방향과 맞지 않네.;
33. 단 한 줄로 표현할 수 있는 주제가 생각나지 않으면, 그 글은 써서는 안 되는 글이네.

대통령은 생각나는 대로 얘기했지만, 이 얘기 속에 글쓰기의 모든 답이 들어있다.
지금 봐도 놀라울 따름이다.

언젠가는 음식에 비유해서 글쓰기에 대해 얘기한 적이 있다.

1. 요리사는 자신감이 있어야 해. 너무 욕심 부려서도 안 되겠지만.
글 쓰는 사람도 마찬가지야.
2. 맛있는 음식을 만들려면 무엇보다 재료가 좋아야 하지. 싱싱하고 색다르고 풍성할수록 좋지. 글쓰기도 재료가 좋아야 해.
3. 먹지도 않는 음식이 상만 채우지 않도록 군더더기는 다 빼도록 하게.
4. 글의 시작은 에피타이저, 글의 끝은 디저트에 해당하지. 이게 중요해.
5. 핵심 요리는 앞에 나와야 해. 두괄식으로 써야 한단 말이지. 다른 요리로 미리 배를 불려놓으면 정작 메인 요리는 맛있게 못 먹는 법이거든.
6. 메인요리는 일품요리가 되어야 해. 해장국이면 해장국, 아구찜이면 아구찜. 한정식 같이 이것저것 다 나오는 게 아니라 하나의 메시지에 집중해서 써야 하지.
7. 양념이 많이 들어가면 느끼하잖아. 과다한 수식어나 현학적 표현은 피하는 게 좋지.
8. 음식 서빙에도 순서가 있잖아. 글도 오락가락, 중구난방으로 쓰면 안 돼. 다 순서가 있지.
9. 음식 먹으러 갈 때 식당 분위기 파악이 필수이듯이, 그 글의 대상에 대해 잘 파악해야 해. 사람들이 일식당인줄 알고 갔는데 짜장면이 나오면 얼마나 황당하겠어.
10 요리마다 다른 요리법이 있듯이 글마다 다른 전개방식이 있는 법이지.
11. 요리사가 장식이나 기교로 승부하려고 하면 곤란하지. 글도 진정성 있는 내용으로 승부해야 해.
12. 간이 맞는지 보는 게 글로 치면 퇴고의 과정이라 할 수 있지.
13. 어머니가 해주는 집밥이 최고지 않나? 글도 그렇게 편안하고 자연스러워야 해.

이날 대통령의 얘기를 들으면서 눈앞이 캄캄했다.
이런 분을 어떻게 모시나.
실제로 대통령은 대단히 높은 수준의 글을 요구했다.
대통령은 또한 스스로 그런 글을 써서 모범답안을 보여주었다.

나는 마음을 비우고 다짐했다.
대통령을 보좌하는 참모가 아니라 대통령에게 배우는 학생이 되겠다고.
대통령은 깐깐한 선생님처럼 임기 5년 동안 단 한 번도 연설비서실에서 쓴 초안에 대해 단번에 오케이 한 적이 없다.

강원국 (라이팅 컨설턴트, 객원 필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