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태영의 글쓰기 심화를 위한 노트 28] 주장글에서는 예화를 적극 활용하자. 인물에 관한 글은 예외다.

학술 논문을 재미있는 글로 분류하기는 어렵다.
딱딱한 이야기가 계속되기 때문이다.
논리성을 추구하는 주장글도 마찬가지다.
너무 길어지면 흥미도 없어지고 긴장도 떨어진다.
부드러운 이야기들을 중간에 다양하게 결합시켜야 한다.
대표적인 것이 예화이다.
예화의 종류는 수없이 많다.
고사도 있고, 최근의 유사한 사례들도 있을 것이다.
다만 예화는 글 전체 분량의 30%를 넘지 않는 게 좋다.
그 이상으로 예화의 분량이 많아지면
주객이 전도되는 셈이다.

인물의 언행을 묘사하는 글은 다르다.
자서전 또는 자기소개서도 이와 같은 범주에 속한다.
인물에 대한 이야기를 서술하는 과정에서
또 다른 사람의 일화가 예화로 등장하는 것은
그다지 권장할 만한 일이 아니다.
인물에 대한 글의 경우는
주인공에게 최대한 포커스를 맞추어야 한다.
굳이 예화를 동원해야 한다면
주인공의 다른 경험을 소개하는 게 훨씬 낫다.
다음은 봉하일기 <낮은 사람 노무현의 다시 찾은 봄날>의 일부이다.
중간에 3년 전 이야기를 예화로 소개하고 있다.

뜨겁게 달구어진 솥 안에서 찻잎을 덖는 전문가의 숙달된 솜씨를 지켜본 후 대통령이 따라해 봅니다. 비비면서 말리는 과정을 거쳐 다시 건조. 하나하나 따라해 보는 대통령의 모습을 지켜보며 사람들이 술렁댑니다. 휴대폰이나 디지털카메라를 높이 들고 사진을 찍는 사람, 자기들끼리 삼삼오오 이야기하는 사람들. 이웃집 아저씨를 대하듯 스스럼없이 대통령에게 질문을 던지는 아주머니. 모두 다 임기 중에는 접하기 힘들었던 편안한 광경들입니다. 그런 대통령 앞으로 누군가가 지나가자, 설명을 하던 교수님이 어딜 앞으로 지나가냐고 야단을 칩니다. 순간, 멋쩍어지는 건 오히려 대통령입니다. 그 대통령이 밝게 웃으며 말합니다.
“괘안습니다.”

3년 전인 2005년 5월 21일, 대통령은 농산촌 관광마을 체험의 하나로 충북 단양의 한드미 마을을 찾았습니다.
“어릴 때 농토는 없고 자식은 공부시켜야 해서 고구마 순을 팔아서 학비를 댔습니다. 그래서 고구마 순을 보면 어머니 생각이 납니다.”
그 자리에서 대통령은 귀농 포부의 일단을 밝혔었습니다.
“자연과 사람이 어우러지는 삶의 모습이 좋습니다. 욕심에는 대통령 마치고 내 아이들이 찾아올 수 있는 데 가서 살면 어떨까 궁리중입니다.”
그 소박한 대통령의 꿈이 이 봄날에 조금씩 현실화되고 있었습니다.

제다과정 체험이 끝나고 장군차밭의 주인이 대통령 일행을 위해 베푼 오찬. 정성껏 준비한 장군차 비빔밥 한 그릇이 대통령을 위해 먼저 나왔습니다. 또 다시 대통령이 어색해합니다.
“제가 아직 어디 가서 어른 노릇을 못합니다. 밥그릇이 제게 먼저 오면 어색해하죠. 대통령 5년 하는 동안 그래서 고생 많이 했습니다.”

 

윤태영

[윤태영의 글쓰기 심화를 위한 노트 23] 결말이 알려진 이야기는 과정을 묘사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얼마 전 영화 ‘명량’이 큰 인기를 얻었다.
역사물은 다른 주제에 비해 한계가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결론을 알고 있다는 점이다.
이순신 장군이 명량해전에서 대승을 거둔다는 것,
나중에 노량해전에서 전사한다는 사실도 안다.
결론이 알려져 있는 만큼 다른 방식으로
관객들이 긴장의 끈을 놓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면에서 갈등이나 흥미를 제공할 요소를 찾아야 한다.
과거의 인물을 다룬 역사소설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인물의 후일담을 잘 알고 있다.
스토리만 갖고는 긴장감을 줄 수 없다.
창의성이 필요한 대목이다.
그 반대의 측면도 고려해야 한다.
이미 알려진 이야기들을 새삼스레 길게 묘사할 필요는 없다.
새로운 이야기가 특별히 없다면
최대한 압축해서 전달하는 게 좋다.
다음은 <기록>의 마지막 꼭지, 마지막 대목이다.
대통령이 사저를 떠나는 모습이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기 때문에
최대한으로 압축하여 묘사했다.

그날 보석으로 풀려날 것으로 기대했던 강금원 회장은 끝내 풀려나지 못했다. 보석심리는 최종결정이 다시 연기되었다. 시간은 운명의 주말을 향해 가고 있었다. 어느 날 저녁, 그는 사저를 찾아온 이웃의 친구인 이재우와 술 한 잔을 나누었다. 그는 힘겨움을 토로했다. 자신에게 들이닥친,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심적 고통에서 비롯된 힘겨움이 아니었다. 자신 때문에 주변 사람들이 겪고 있을 고통을 헤아리는 데서 비롯된 힘겨움이었다. 그는 언제나, 자신을 만나지 않았다면 그들에게 지금과 같은 고통이 들이닥치지 않았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의 머릿속에서 모든 불행의 시작은 자신에게 있었다. 그는 그렇게 스스로를 원죄의 굴레 속에 가두어두고 있었다. 낮에 담배를 얻어 피울 요량으로 들렀던 비서실에서 한참동안 비서들이 일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그의 마음도 그러한 생각의 연장선 위에 있었다. 그의 귀향을 계기로 서울에서 봉하마을로 주거를 옮긴 비서진들이었다. 그리고 5월 23일 토요일 새벽.

침실과 붙어있는 내실 공간의 북쪽 한 귀퉁이에 자리한 컴퓨터에서 그는 글을 남기고 있었다. 창 바깥의 마당에는 홍매화의 잎이 어느 새 무성해져 있었지만 이 봄은 그에게 그것을 쳐다볼 겨를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마지막 남길 글을 바탕화면에 저장한 그는 내실을 나섰다. 문이 유난스레 큰 소리를 내며 닫혔다. 그는 경호팀에 인터폰을 했다.

검찰에 출두하던 날 이후 오랜만에 나서보는 대문이었다. 바깥에서 기다리고 있던 경호관이 꾸벅 인사를 했다. 그는 앞장서서 걷기 시작했다. 담장 아래를 따라 듬성듬성 잡초가 자라나 있었다. 그는 잠시 웅크리고 앉아 풀을 뽑았다. 농부가 되어버린 노무현의 본능이었을까? 아니면 마지막 떠나는 길에 불현듯 뜨거워지는 눈시울을 감추기 위한 것이었을까? 다시 일어선 그는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을 길을 따라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가 사랑했던 사람들, 그를 사랑했던 사람들, 그리고 그가 사랑했던 나라가 그의 발걸음을 지켜보며 슬픈 모습으로 남아있었다.

윤태영

[윤태영의 글쓰기 심화를 위한 노트 20] 인물의 생생한 워딩은 최대한 살리자. 현실감이 풍부해진다.

 

노무현 대통령은 대통령 재임 중에도 서민적 언어를 구사했다.
‘절구통에 새알 까기.’
‘날아가는 고니 잡고 흥정한다.’
듣는 사람에 따라서는 생소한 이야기들이다.
또 어린 시절 익혔던 고향의 사투리도 수시로 사용했다.
언젠가 경남의 어느 횟집을 찾았을 때의 일이다.
매운탕을 먹으며 그는 일행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런 매운탕은 어떻게 끓이는지 아십니까?
‘고춧가루’가 아니라 ‘꼬치가루’를 넣어야 합니다.
그리고 ‘무’가 아니고 ‘무시’를 ‘삐데’ 썰어서 넣어야 합니다.“

대통령의 동정을 묘사하는 글을 쓸 때면
가급적 그 언어를 그대로 살렸다.
그러면 글에서도 감칠맛이 돌았다.
대통령이 좋은 이야깃거리를 제공해준 셈이었다.
또 지인들도 글을 보면 묘사가 생생하다는 평을 해주었다.
대통령의 언어 습관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사람마다 특이한 언어습관이 있기 마련이다.
노 대통령은 ‘한반도’라는 낱말을 읽을 때
‘한’과 ‘반도’를 띄어서 읽곤 했다.
그 밖에도 특별한 언어습관이 몇 가지 있었다.
가장 흔한 것이 ‘이상 더’라는 표현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더 이상’이라고 말하는데,
유독 대통령만은 ‘이상 더’라는 표현을 고집했다.
대중연설을 할 때에는 항상 그랬다.
대통령의 언어습관을 확인한 청와대 연설팀은
공식 연설문에서도 ‘이상 더’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인물의 말투나 표현방식은 살리는 게 좋다.
독자에게 살아있는 현장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윤태영

[글쓰기 심화를 위한 노트 16] 메시지를 강요하지 말자. 담담한 묘사로도 전달이 가능하다.

자신의 주장을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글을 가끔 접한다.
주장엔 공감하지만 글의 전개방식이 못마땅하다.
나중에는 주장에 공감하는 것조차 부담스러워진다.
설득은 독자와 공감하는 과정이다.
자신의 주장만 일방적으로 되풀이하면 공감을 얻을 수 없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차분하게 논리를 전개해야 한다.
수필이나 서정적인 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런 글일수록 오히려 더 조심스럽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핵심을 정형화된 문구로 만들어 드러내기보다는,
담담하게 인물, 장면, 대화를 묘사하다 보면
의도한 메시지를 자연스럽게 전달할 수 있다.
다음은 노 대통령 재임 중에 쓴 국정일기,
‘파격과 변화로 혁신, 또 혁신’에서 인용한 대목이다.
대통령의 이야기를 열거하면서 그의 캐릭터와 생각을 드러내고 있다.

대통령은 오늘도 끊임없이 사고의 전환을 역설한다. 특히 수도권 중심 사고를 벗어나 지방이 스스로 운명을 개척해 나가야 한다는, 사고의 전환을 거듭거듭 이야기하고 있다. 낙후지역 개발 문제를 다룬 15일 국정과제회의에서도, 그 다음날 포항에서 열린 지역혁신협의회 회의에서도 대통령은 참여정부 균형발전 전략의 토대가 되고 있는 혁신의 철학을 진솔하게 표현했다.

“자원을 투입할 때에는 성공이 확신되는 쪽에 투자를 집중하겠다.”
“기존 사업도 성과가 검증되지 않으면 돈을 쓰지 않는다. 불용액으로 남는 한이 있어도 성과 있는 것에만 지원하겠다.”
“이제는 지방이 주도하고 중앙이 지원하는 체계로 간다.”
“옛날에는 대통령이 이렇게 내려오면 지시를 내리고 지역사회에 선물을 주었지만, 이제는 지역혁신협의회가 어떻게 토론하고 논의하는가가 더 중요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과 그 지역 스스로의 노력이다.”
“더 이상 수도권을 쳐다보지 말고, 지방발전의 창의적 전략을 제출해 달라.”
“창을 열고 크게 바라보자.”
이렇듯 대통령은 쉼 없이 파격 또는 새로운 변화에 앞장서고 있다. 며칠 전 한·일정상회담 준비상황을 보고받는 자리에서의 일이다. 준비 팀이 보고하기를 이번 회담은 전 행사가 노타이로 진행된다고 했다. 대통령은 특유의 애드리브로 다시 한 번 좌중을 웃겼다.
“난 넥타이를 안 매면 인물이 죽는데….”

윤태영

[글쓰기 심화를 위한 노트 09] 핵심을 묘사하는 데 집중하자. 의미 없는 설명은 과감히 생략하자.

 

‘근계시하 초추지절(謹啓時下 初秋之節)에……’
수십 년 전 가을 청첩장의 서두에 등장하던 문구다.
어른들의 서신은 언제나 계절인사가 시작을 장식했다.
어른들만 그런 것도 아니었다.
우리 세대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여러 사람들에게 편지글을 보낼 때면
계절 언급과 안녕을 묻는 인사가 첫머리를 장식했다.
불쑥 본론을 꺼내기 어려우니 동원하는 것이 계절이었다.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
본론으로 매끄럽게 들어가면 된다.

인물화는 당연히 인물이 중심이 된다.
배경이나 주변 소품이 있다면
인물을 돋보이게 하는 장치일 것이다.
그런데 인물화에 사람의 얼굴보다 큰 꽃과 과일이 등장한다면
보는 사람의 시선은 분산될 수밖에 없다.
글쓰기에서도 마찬가지다.
특정 인물을 묘사하기 위한 글이라면
다른 인물들이나 풍광들은 조연이 되어야 한다.
주변 인물이나 풍광들에 대한 묘사는
주인공의 캐릭터를 돋보이게 하기 위한 장치로 활용되어야 한다.
거기에 그쳐야 한다.
그 선을 넘어 주변 묘사에 집착하는 경우가 있다.
초점도 흐려지고 집중도 되지 않는다.
배경과 분위기는 비교적 담담하게 서술한다.
흐름에 방해가 되면 생략하는 것도 무방하다.
꼭 해야 하는 말 같지만, 사실은 불필요하다.

윤태영

[글쓰기 심화를 위한 노트 05] 캐릭터를 당당하게 드러내자. 단점도 강점으로 승화된다.

특정 인물을 묘사하는 글을 써야 할 때가 있다.
그 특정 인물이 바로 자기 자신인 경우도 있다.
다른 누군가든 자기 자신이든,
인물을 묘사할 때면 캐릭터를 드러내는 게 중요하다.
다른 사람과 분명한 차별화를 시도해야 한다.
물론 객관적인 묘사가 필요하다.
일방적으로 강점을 과장되게 묘사하기보다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솔직하고 담담하게 서술하면 좋다.
관찰자나 기록자가 장단점을 가려 전달하지 말고
독자의 몫으로 남겨두자는 것이다.
사실을 담백하게 전달하는 과정에서
단점이나 약점도 오히려 장점이나 강점으로 바뀔 수 있다.
의도적으로 강점만 전달하려다 보면
거부감을 주거나 역효과를 낼 수 있다.
자기소개서를 쓸 때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단점을 억지로 숨기려고 할 필요는 없다.
단점이 함께 설명이 되어야
강점이 더 크게 부각되어 보이게 된다.
다음의 사례는 퇴임 이후 노대통령의 휴가 장면을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묘사해낸 장면이다.

대통령은 사람들의 무리를 우회하는 일도 없고, 내미는 손길을 거절하는 법도 모릅니다. 그럴수록 경호팀의 긴장은 두 배 이상 늘어나기 마련입니다. 때로는 비서들이 지나치다 싶어 만류하기도 하지만 오히려 대통령이 비서들을 설득합니다. 어린이들에게는 더욱 애정과 관심을 가지고 작은 격려를 아끼지 않습니다.
“구경 잘 했어?”(자생식물원에서 어린이 관람객에게)
“그래, 이리 와서 손 한번 잡아봐라.”(청령포에서 대통령앞에서 수줍어하는 어린이에게)
“나중에 이 사진 보면서 나보고 아빠라고 하지 마라. 하하.”(자생식물원 관람 도중 엄마와 두 어린이만 온 가족과 사진을 찍으며)(봉하일기, <대통령의 여름휴가(2008, 8.4)>에서 인용)

윤태영

[윤태영의 ‘나는 이렇게 쓴다’- 글쓰기의 시작을 위한 노트 40] 디테일은 최소한의 기본을 보장한다. 자신만의 사실을 만들자.

“평화 시장 앞에서 줄지어 선 가로등 중에서 동쪽으로부터 여덟 번째 등은 불이 켜져 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화신백화점 육층의 창들 중에는 세 개에서만 불빛이 나오고 있습니다.”
“서대문 버스 정류장에는 사람이 서른두 명 있는데 그 중 여자가 열일곱 명이고 어린애는 다섯 명, 젊은이는 스물한 명, 노인이 여섯 명입니다.”(중략)
“단성사 옆 골목의 첫 번째 쓰레기통에는 초콜릿 포장지가 두 장 있습니다.”
“지난 십사일 저녁 아홉시 현재입니다.”(중략)
“을지로 3가에 있는 간판 없는 술집에는 미자라는 이름을 가진 색시가 다섯 명 있는데, 그 집에 들어온 순서대로 큰미자, 둘째 미자, 셋째 미자, 넷째 미자, 막내 미자라고들 합니다.”

<서울 1964년 겨울>(김승옥)에서 ‘나’와 ‘안’의 대화 가운데, 중학생인 나에게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던 대목이다.
구체적인 묘사는 사람을 사로잡는 매력이 있다.
특히 정확한 숫자는 신뢰의 원천이 된다.
“1월 1일, 일출은 7시 37분이었다. 나는 25분 전에 일어나 해변으로 차를 몰았다.”
“이 정책으로 혜택을 받게 될 계층은 모두 전국에서 247만 5700명으로 예상됩니다.”

다시 소설로 돌아가자. 나(김형)와 안의 이야기가 계속된다.
“그렇지만 그건 다른 사람들도 알고 있겠군요. 그 술집에 들어가 본 사람은 꼭 김형 하나뿐이 아닐 테니까요.”
“아 참, 그렇군요. 난 미처 그걸 생각하지 못했는데, 난 그 중에서 큰미자와 하루저녁 같이 잤는데 그 여자는 다음날 아침 일수로 물건을 파는 여자가 왔을 때 내게 빤쯔 하나를 사주었습니다. 그런데 그 여자가 저금통으로 사용하고 있는 한 되들이 빈 술병에는 돈이 백십 원 들어있었습니다.”
“그건 얘기가 됩니다. 그 사실은 완전히 김형의 소유입니다.”
디테일은 최소한의 기본을 보장한다. 자신만의 사실을 만들자.

 

윤태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