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문장, 끝문장]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무라카미 하루키 (2013년작)

* 3년 만에 돌아온 무라카미 하루키. 인기 팟캐스트 ‘이동진의 빨간책방’ 에서도 8월 21일, 28일에 걸쳐 이 책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지금까지 한국 언론과 딱 1번 인터뷰를 한 바 있다. 2007년 1월호 GQ 에 실린 인터뷰다. 그 중 일부를 발췌하여, 첫문장 끝문장과 함께 싣는다.

529419_416703698435663_2144231143_n

Q 그럼 대체 그 많은 돈으로는 무얼 하시나요? 
A 자유. 자유를 사고, 내 시간을 사요. 그게 가장 비싼 거죠. 인세 덕에 돈을 벌 필요는 없게 됐으니 자유를 얻게 됐고, 그래서 글 쓰는 것만 할 수 있게 됐죠. 내겐 자유가 가장 중요해요. 

Q 당신이 걸어가고 있는 그 길의 종점은 어디인가요. 
A 제 목표는 <카라마조프의 형제들> 같은 책을 쓰는 거예요. 
Q 어떤 면을 말씀하시는 거죠? 복잡하고 다양한 캐릭터와 구성?
A 물론.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에요. <카라마조프의 형제들> 안에는 전 우주가 담겨 있어요. 너무 다양한 사실들과 시스템, 세계, 스토리 가 그 안에 다 들어가 있어요. 몇 번을 읽어도 또 배울 점이 있죠. 

Q 좋아요. 그럼 예쁜 여자가 찾아 와서‘당신 같은 소설가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라고 묻는다면 어떤 대답을 해주실 건가요? 
A 글쎄요, 전 좋은 소설가가 되고 안 되고는 능력이 있고 없고가 아니라 글쓰기에 대한 본능이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라고 생각해요. 저는 단 한번도 제게 타고난 재능이 있다고는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다만 글을 쓰게 만드는 본능이 내재되어 있었던 것 같아요. 본능이 있 다면 써야만 하고 쓰게끔 되어 있는 거죠. 운명적으로.  

– 첫문장: 대학교 2학년 7월부터 다음 해 1월에 걸쳐 다자키 쓰쿠루는 거의 죽음만을 생각하며 살았다. 그사이 스무살 생일을 맞이했지만 그 기념일은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그런 나날 속에서 그는 스스로 생명을 끊는 것이 무엇보다 자연스럽고 합리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왜 마지막 한 걸음을 내딛지 못했는지, 지금도 그는 그 이유를 잘 모른다. 그때라면 삶과 죽음을 가르는 문지방을 넘어서는 일따위 날달걀 하나 들이켜는 것보다 간단했는데.

– 끝문장: 그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눈을 감고 잠들었다. 의식의 꼬리에 매달린 빛이 멀어져가는 마지막 특급 열차처럼 서서히 속도를 올리며 작아지더니 밤 가운데로 빠져들어 사라졌다. 그리고 자작나무 사이를 지나는 바람 소리만 남았다.

출처: 민음사, 양억관 역, 2013년 1판 4쇄

[여름휴가 책 추천 2] Acase 가 추천하는 여름휴가를 위한 책 7선 – 가볍게 혹은 무리없이

여름휴가 성수기 시즌이 본격 시작입니다. 휴가동안 ‘책을 실컷 읽어보자’로 계획을 세웠거나 혹은 ‘아직까지는 특별한 계획이 없다’는 분들을 위하여, Acase 가 책 7권을 골랐습니다. 첫 기획회의를 한 후 약 한달간의 고민 끝에, Acase 멤버 7명이 각자 한권씩 고른 책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7권의 순서는 글의 접수 순입니다. 책과 함께 행복한 여름휴가 보내시기를!

summer-reading-e1340140847392


1.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자유, 아무것도 하지 않을 자유>, 홍신자 (2002년작) 

세계적인 춤꾼, 전위 예술가, 라즈니쉬의 첫 한국인 제자, 자유를 갈구하는 명상가… 올해로 데뷔 40주년을 맞은 무용가 홍신자(73)씨를 수식하는 말들입니다. 직장인들에게는 ‘휴가’, 학생들에게는 ‘방학’이란 달콤한 자유가 주어지는 여름. 홍신자씨의 책에서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는 건 어떨까요?

–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자유, 아무것도 하지 않을 자유란 무슨 뜻입니까?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데 무엇이든 해야 하고,
무엇이든 하고 싶지만 정작 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습니다.
인생은 두 가지 자유를 찾아 헤매는 과정입니다.”

– 누구나 자유로운 삶을 꿈꾸는데, 대체 무엇이 자유로운 삶입니까?
“자신의 본성대로 살아가는 것이 곧 자유로운 삶입니다.우리가 태어난 그때를 생각해 보세요.자연을 닮아가는 인생, 자연스러운 자신,”내추럴 라이프’가 곧 ‘자유’라고 할 수 있습니다.”

– 춤을 추는 것과 명상을 하는 것이 자유와 무슨 상관이란 말입니까?
“춤과 명상은 둘 다 텅 빈 상태를 목표로 합니다.텅 빈 것은 아무것도 없는 상태지만모든 것을 아우르는 공존의 공간이기도 합니다.그곳에 이르면 모든 것이 가능합니다.춤이나 명상 둘 다 다른 옷을 입은 하나의 나,나의 영혼을 발견하는 도구가 되어 줍니다.”

추천자: 김재은

2. 월간 <우드플래닛 WOOD PLANET>

‘친환경 나무생활 매거진’이라고 자기를 소개하는 잡지. 나무로 만든 작은 장난감부터 가구, 건축물은 기본. 잡지 시작부터 끝까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나무로 만든 것들과 그 재료인 나무의 이야기를 보고 들을 수 있다. 아무 생각 없이 스윽 페이지를 넘겨보는 것만으로도 눈이 한없이 즐겁다. 다시 나무의 이야기를 찬찬히 읽고 들여다보면 다른 세상에 온 듯 마음이 편안해진다. “그래 내가 사는 별이 우드플래닛이었군!” 읽고 나면 내 주변을 모두 나무로 채우고 싶은 욕구를 참기 어렵다. 그것이 산 것이든 죽은 것(가공된 제품)이든 참으로 우리에겐 나무는 나무다.

추천자: 서채홍

3. <충청도의 힘>, 남덕현 (2013년작) 

근래 나온 책 중에서 우리말을 가장 잘 살린 책이 아닐까 싶다. 충청도 입말을 훌륭하게 차곡차곡 모아놓으면서도 그 안에 인생과 삶을 담았다. 읽으면서 충청도 사투리 억양이 머리 속에서 자동 재생되는 것은 물론이고 능청스러운 입담에 웃음이 난다. 슬렁슬렁 읽다보면 더위도 별 거 아니게 느껴진다.

“근디, 빠스는 뭔 지랄루다가 노상 스라는 디 안 스구 몇 바꾸 더 구르다가 스는 겨? 잉?”
“어, 시원허게 말 잘혔네. 그 지랄루다가 할 거믄 정류소는 뭔 초칠 맛으루다가 지은 겨?”
“그르니께… 그라구 빠스 바꾸가 우덜 끌구 댕기는 구루마 바꾸 보덤 월매나 더 커! 안 그려? 그 덩치루다가 몇 바꾸 더 구르믄 우덜 가랭이 찢어지라 뛰야 혀!”

추천자: 송혜원

4. <리더는 사람을 버리지 않는다>, 김성근 (2013년작) 

1) 누구나 가볍고 빠르게 읽을 수 있다.
김성근 감독이 혼자 낸 책이 아니다. 그의 제자들이 함께 쓴 책이다.  최동수, 양상문, 최정, 이진영, 류택현, 신윤호, 이한진, 김광현, 윤재국, 정대현.

2) 야구를 좋아하지만 관심 밖의 사람이었다. 그의 야구 스타일도 재미없어보였다. 그런데 근래 그의 이야기가 자꾸 옆으로 온다. 웃을 지 모르지만 때가 되면 의미심장한 책이, 사람이 내 곁으로 왔다. 그를 만날 때구나.

3) 스스로 만들어진 리더가 부족한 시대다. 현대사의 1세대 거인들이 사라진 시대다. 시대를 아는 사람이 적은 시대다. 몇 번 TV에 나온 그를 봤다. 집요하고 정확했다. 담백한 직설이었다. 무엇보다 자신의 얘기였다.

4) “끝까지 선수를 포기하지 않고 살리는 것, 그게 리더다.” 그의 주장은 가능한 것일까. 과연 그는 선수 입장에서 감독을 했을까. 그렇다고 하는데 알 수가 없어 책을 집어 들었다. 최근 책을 골랐다.

5) 김성근이라는 사람을 잘 표현해 주는 대목 같아 줄쳐 두었다.

저는 그날 유난히 경기가 안 풀렸었지요. 공을 제대로 못 던지고 내려오니 속이 많이 상했습니다. ……. 마침 전화벨이 울렸습니다. 감독님이셨어요.
“너 별일 없으면 내 방으로 좀 와라.”
저는 여러 가지 생각으로 복잡해진 채 감독님 방으로 올라갔습니다. 공을 잘 못 던졌다고 섀도피칭(빈손으로 던지는 시늉을 하는 것) 훈련을 시키시려는 걸까. 아니면 다른 할 말이 있으신 걸까 제 딴에는 복잡했지요.
탁자 위에는 감독님 식사가 차려져 있었습니다. 밥, 국, 오징어포, 김치 정도의 단촐한 식단에 반주로 맥주 서너 병이 올라와 있었습니다. 저는 잔뜩 얼어서 감독님 맞은편에 앉았습니다. 감독님 방에도 역시 TV가 켜져 있었습니다. 감독님은 TV에 시선을 고정시킨 채 저한테 말씀하셨습니다.
“저게 뭐냐?”
“예?”
“저게 뭐냐고? 영화냐 드라마냐?”
“아! 감독님. 저거 진짜에요. 미국에 잇는 쌍둥이 빌딩이 테러를 당했답니다.”
…….
“그러면, 메이저리그는 하냐?”
– 전 SK 와이번스 선수, 신윤호

추천자: 유민영

5. <1984년>, 조지 오웰 (1949년작) 

<1984년>의 매력은 핵심을 짚는 적나라한 대사에 있다. 더 큰 매력은 그 핵심 메시지를 필사적으로 숨겨야 할 인물의 입에서 대사가 나온다는 점에 있다. 가령 ‘빅브러더’를 필두로 하는 당은 그가 가진 권력을 숨기거나 포장하지 않는다. 뻔뻔스레 시인한다. ‘당이 권력을 가졌고, 권력의 목적은 권력 그 자체이기 때문에 빅브러더가 지배하는 세상을 만든 것일 뿐, 국민을 위하려는 목적은 눈곱만큼도 없다.’

애초에 숨기지 않기 때문에 폭로도 없고, 빅브러더의 위기도 없다. 반전도 없다. 독자는 오히려 여기서 전율하게 된다. “반전이 없다니. 반전인걸.”

“권력의 목적은 권력 그 자체야. 고문의 목적은 고문이고 전쟁의 목적은 전쟁인 것과 같이 절대권력의 목적은 권력 그 자체야.”
“나는 ‘당’을 통해 살아. 그래서 불멸하지. 당이 존속하는 한 죽은 게 아니야.”
“나는 마침내 빅브러더를 사랑했다.”

추천자: 김정현

6. <해변의 카프카>, 무라카미 하루키 (2002년작) 

여름 그것도 여름 휴가라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단연 해변이다. 그런만큼 하루키의 장편소설, <해변의 카프카> 는 여름 휴가와 가장 잘 어울리는 제목을 가진 작품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이 소설의 매력은, 핵심 배경으로 등장하는 ‘고무라 기념 도서관’이다. 주인공 인물들보다는 이 도서관이 사실 주인공이 아닐까? 도서관을 묘사한 장면들만 골라서 수십번을 읽었다. 여름 휴가를 하루키가 창조한 고무라 도서관에서 보낼 수 있다면? 세상에서 그보다 더 근사한 장소는 없을 것이다.

요즘 가장 핫한 작가, 하루키의 책 중에서 뭘 읽을지 고민이신 분들께, 혹은 도서관을 사랑하는 분들께 이 책을 권한다.

“다카마쓰 시 교외에, 전통있는 가문의 부자가 자기 집 서고를 개축해서 만든 사립 도서관이 있다. 진귀한 장서도 갖추고 있는데다 건축물과 정원도 한번 찾아가 볼만한 가치가 있다고 한다. 그 도서관의 사진을 잡지 <태양>에서 본 적이 있다. 오래되고 커다란 일본 가옥인데, 응접실 같은 우아한 열람실이 있고 사람들은 큼직한 소파에 앉아서 책을 읽고 있었다. 그 사진을 보았을 때 나는 이상할 정도로 강하게 끌렸다. 그리고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꼭 이 도서관을 찾아가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고무라 기념 도서관’이 그 도서관의 이름이었다.”

“책이 보관된 서고에는 마음대로 들어가도 괜찮아. 읽고 싶은 책은 그냥 열람실로 가지고 가서 읽으면 돼. 다만 빨간 스티커가 붙어 있는 귀중본은 그때마다 열람창구 카드를 써야 해. 저기 오른쪽 자료실에 카드식 색인이랑 검색용 컴퓨터가 있으니까 필요하면 마음대로 써도 되는데, 밖으로 책을 가지고 나가는 대출은 할 수 없어. 잡지와 신문은 비치되어 있지 않아. 사진 촬영은 금지. 복사도 금지. 음식은 정원 벤치에서. 폐관은 다섯 시.”

“소파에 앉아 주위를 둘러보고 있는 동안에 이 작은 방이야말로 내가 오랫동안 찾아 헤맸던 장소임을 깨닫는다. 나는 바로 이런, 세계의 움푹 파인 데와 같은 은밀한 장소를 찾고 있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그건 가공의 비밀 장소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 장소가 정말 이곳에 실제로 존재하고 있다니, 바로 눈 앞에 보고도 믿기지 않을 정도다. 눈을 감고 숨을 들이쉬자, 그것은 다정한 구름처럼 내 마음속에 자리를 잡는다. 멋진 감각이다.”

추천자: 박소령

7. <피로사회>, 한병철 (2010년작)

일단 짧다. 귀한 여름휴가에 엄청 두꺼운 책을 권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생각에 얇은 책을 골랐는데 얇다고 만만하게 보면 큰 코 다친다. 짧지만 글의 밀도가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몇줄 긴장을 놓쳐도 저자의 생각을 놓치지 않는 웬만한 책과는 차이가 크다. 매우 짧은 텍스트 안에서 큰 메시지를 담고 있다. 언어는 예리하고 구조는 완결적이어서 미학적으로 아름답다는 생각마저 든다. 자기계발과 성공에 대한 긍정적 확신이 강요되는 직장생활에 ‘균형추’가 필요하다면 [피로사회]의 정독을 권한다. 휴가는 일에 지친 심신을 회복시켜 일과 삶의 균형을 바로잡는 이벤트다.

“사회적 무의식 속에는 분명 생산을 최대화하고자 하는 열망이 숨어 있다. 생산성이 일정한 지점에 이르면 규율의 기술이나 금지라는 부정적 도식은 곧 그 한계를 드러낸다. 생산성의 향상을 위해서 규율의 패러다임은 ‘성과의 패러다임’ 내지 ‘할 수 있음’이라는 긍정의 도식으로 대체된다. 생산성이 일정한 수준에 도달하면 금지의 부정성은 그 이상의 생산성 향상을 가로막는 걸림돌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능력의 긍정성은 당위의 부정성보다 훨씬 더 효율적이다.”

추천자: 김봉수

<추천도서 종합>

1.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자유, 아무것도 하지 않을 자유>, 홍신자 (2002년작) 
2. 월간 <우드플래닛 WOOD PLANET>
3. <충청도의 힘>, 남덕현 (2013년작)
4. <리더는 사람을 버리지 않는다>, 김성근 (2013년작)
5. <1984년>, 조지 오웰 (1949년작)
6. <해변의 카프카>, 무라카미 하루키 (2002년작)
7. <피로사회>, 한병철 (2010년작)

박소령

* [여름휴가 책 추천]에 대한 이전 글들을 읽으시려면
– 여름휴가 책 추천 1 뉴욕타임스 비즈니스 전문기자 앤드류 로스 소킨의 경영/경제 추천도서 13선, 링크
* 사진출처: film misery, 링크 

[글쓰기 9] 무라카미 하루키 – 나는 소설 쓰는 방법의 많은 것을 매일 아침 길 위를 달리면서 배워왔다.

하루키문학과사상사

* 주: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가 발간되고 언론은 다시 하루키에 주목했다. 소설가 내지는 작가만으로 무라카미 하루키를 설명하는 데는 무리가 있다. 하루키는 ‘하루키 현상’ 혹은 ‘하루키 신드롬’이라는 용어를 몰고 다닌다.

어찌 됐든 하루키가 전하는 메시지에는 수많은 사람들을 빠져들게 하는 힘이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에서 하루키는 그가 하고 싶었던 말을 소설의 형식을 빌리지 않고 말한다. 그가 말하는 ‘소설’에 대한 메시지를 이 책에서 발견해서 공유한다.

“소설을 쓰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그는 이렇게 시작한다.

* 나는 소설 쓰는 방법의 많은 것을 매일 아침 길 위를 달리면서 배워왔다

1. 재능

소설가로서 인터뷰를 하다 보면, “소설가로서 가장 중요한 자질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을 받을 때가 있다. 소설가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자질은 말할 나위도 없이 재능이다. 문학적 재능이 전혀 없다면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소설가가 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것은 필요한 자질이라고 하기보다는 오히려 전제 조건이다. 연료가 전혀 없으면 아무리 좋은 자동차도 달릴 수 없다.

그러나 재능의 문제점은 대부분의 경우, 그 양이나 질을 그 소유자가 잘 컨트롤할 수 없다는 데 있다. (중략) 재능이라는 것은 당사자의 의도와는 관계없이 터져 나오고 싶을 때 저절로 분출해버리고, 나올 만큼 다 나와 고갈되면 그것으로 책 한 권이 끝나는 것이다.

2. 집중력

재능 다음으로 소설가에게 중요한 자질이 무엇인가 질문 받는다면 주저 없이 집중력을 꼽는다. 자신이 지닌 한정된 양의 재능을 필요한 한 곳에 집약해서 쏟아 붓는 능력. 그것이 없으면 중요한 일은 아무것도 달성할 수 없다. 그리고 이 힘을 유효하게 쓰면 재능의 부족이나 쏠림 현상을 어느 정도 보완할 수 있다. 나는 평소 하루에 3시간이나 4시간 아침나절에 집중해서 일을 한다. 책상에 앉아서 내가 쓰고 있는 일에만 의식을 집중한다. 다른 일은 아무것도 생각하지도, 보지도 않는다. 설사 풍부한 재능이 있더라도, 아무리 머릿속에 소설적인 아이디어가 충만해 있다고 하더라도, 예를 들어 지독한 충치의 통증이 계속된다면 그 작가는 아마 아무것도 쓸 수 없지 않을까?

3. 지속력

집중력 다음으로 필요한 것은 지속력이다. 하루에 3시간이나 4시간 의식을 집중해서 집필할 수 있었다고 해도, 일주일 동안 계속하니 피로에 지쳐버렸다고 해서는 긴 작품을 쓸 수 없다. 반년이나 1년이나 2년간 매일의 집중을 계속 유지할 수 있는 힘이, 소설가에게는 – 적어도 장편소설을 쓰는 작가에게는 – 요구된다.

집중력과 지속력은 고맙게도 재능의 경우와 달라서, 트레이닝에 따라 후천적으로 획득할 수 있고, 그 자질을 향상시켜 나갈 수도 있다.

4. 근력 – 육체능력을 남김없이 쓸 것.

장편소설을 쓴다고 하는 작업은 근본적으로는 육체노동이라고 나는 인식하고 있다. 글을 쓴다는 것 자체는 두뇌 노동이다. 그러나 한 권의 정리된 책을 완성하는 일은 오히려 육체노동에 가깝다. (중략) 세상의 많은 사람들은 겉모습만 보고 작가의 작업을 조용한 지적 서재 노동으로 간주하는 것 같다. 커피 잔을 들어올릴 정도의 힘만 있으면 소설 같은 건 쓸 수 있는 게 아닌가, 하고. 그러나 실제로 해보면 소설을 쓴다는 것이 그리 만만한 일은 아니라는 것을 바로 알 수 있다. (중략) 소설가는 ‘이야기’라고 하는 의상을 몸에 감싼 채 온몸으로 사고하고, 그 작업은 작가에 대해서 육체 능력을 남김없이 쓸 것 – 대부분의 경우 혹사할 것 -을 요구하고 있다.

재능이 풍부한 작가들은 이와 같은 작업을 거의 무의식적으로, 어떤 경우에는 자각 없이 수행해 나갈 수 있다. 특히 젊은 시절에는 어느 수준을 넘는 재능만 있다면 소설을 계속 써나가는 일이 그다지 어려운 작업은 아니다.
한편 재능이 별로 풍부하지 않다 – 고 할까, 평범한 작가들은 젊었을 때부터 자기 스스로 어떻게든 근력을 쌓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 그들은 훈련에 의해서 집중력을 기르고 지속력을 증진시켜 간다. 그래서 그와 같은 자질을 (어느 정도까지) 재능의 ‘대용품’으로 사용하지 않을 수 없다.

5. 달린다는 것

나 자신에 관해 말한다면, 나는 소설 쓰기의 많은 것을 매일 아침 길 위를 달리면서 배워왔다. 자연스럽게, 육체적으로, 그리고 실무적으로. 얼마만큼, 어디까지 나 자신을 엄격하게 몰아붙이면 좋을 것인가? 얼마만큼의 휴양이 정당하고 어디서부터가 지나친 휴식이 되는가? 어디까지가 타당한 일관성이고 어디서부터가 편협함이 되는가? 얼마만큼 외부의 풍경을 의식하지 않으면 안 되고, 얼마만큼 내부에 깊이 집중하면 좋은가? 얼마만큼 자신의 능력을 확신하고, 얼마만큼 자신을 의심하면 좋은가?

아무튼 여기까지 쉬지 않고 계속 달려온 것은 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나는 내가 지금 쓰고 있는 소설을 나 스스로도 좋아하기 때문이다. 이 다음 나 자신의 내부에서 나올 소설이 어떤 것이 될지 기다리는 그것이 낙이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불완전한 인간으로서, 한계를 끌어안은 한 사람의 작가로서, 모순투성이의 불분명한 인생의 길을 더듬어가면서 그래도 아직 그러한 마음을 품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은, 역시 하나의 성취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 다소 과장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기적’이라고 해도 좋을 것 같은 느낌마저 든다.

편집 김정현

* [글쓰기]에 대한 이전 글들을 읽으시려면
– 글쓰기 1 유홍준이 밝힌 글쓰기 비결, 열다섯 가지, 링크
– 글쓰기 2 조지 오웰의 조언. 나쁜 글을 쓰지 않기 위해 피해야 할 것들, 링크
– 글쓰기 3 윈스턴 처칠 총리가 쓴 메모 – 보고서는 간결하게, 링크
– 글쓰기 4 하버드대 조셉 나이 교수가 권하는 ‘보고서 작성을 위한 10가지 가이드라인’, 링크
– 글쓰기 5 트위터 본인소개 프로필, 어떻게 써야하나? – 트위터 프로필로 개인 브랜드를 쌓는 4가지 방법, 링크
– 글쓰기 6 파이낸셜 타임즈 – 글쓰기는 왜 중요한가?, 링크
– 글쓰기 7 배수아 작가, 작가는 어떻게 쓰는가, 링크
 글쓰기 8 윌리엄 진서, 잘쓴 글은 무엇인가, 링크

출처: 무라카미 하루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문학사상, 초판 16쇄, 2009.

[첫문장, 끝문장] 28, 정유정 (2013년작)

무라카미 하루키, 댄 브라운, 그리고 정유정. 올해 여름 한국 서점/출판계를 뒤흔드는 세 명의 인물이다. 41살 나이에 늦깎이로 문단에 데뷔한 그는 네번째 소설만에 무라카미 하루키와 댄 브라운과 나란히 이름을 올리는 소설가가 되었다. 1만부도 팔리기 어려운 출판계 불황 속에서 전작 <7년의 밤>은 30만부가 넘게 팔렸고, 신작 <28>은 출간 한달만에 10만부를 넘어섰다.

996808_401671706605529_1383863350_n
그는 아웃사이더다. 대학에서 문학을 전공하지도 않았고 간호사로, 그리고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직원으로 14년을 일했다. 그러다 35살에 회사를 그만두고 전업으로 글을 쓰기 시작한 이래 공모전에 11번을 떨어졌다.

– “내가 콤플렉스를 갖는 스타일이 아닌데 계속 떨어지니까 이게 아니다 싶었다. 그러다가도 다음 날 아침이면 ‘아니야, (작가가 되기 위한) 봉인이 아직 안 풀렸을 거야’ 하면서 다잡고, 저녁이 되면 다시 우울해지고…. 힘들었다. 하지만 사표까지 던지고 나 자신을 벼랑 끝에 세웠는데 포기할 수 없었다. 당선 연락을 받은 2007년 4월은 이번에도 떨어지면 정말 못 버티겠다 싶은 때였다. 화장실 변기 청소를 하던 중이었는데 아들이 전화를 받고 전해줬다. 평소에 ‘당선 통보가 오면 우아하게 침대에 앉아 ‘그런가요? 고마워요’ 하고 끊어야지,’ 했는데 욕실 바닥에 주저앉아 펑펑 울었다. 가장 힘들고도 가장 기뻤던 순간이었다. 기어이 하고 싶은 무언가가 있는 사람은 자신을 벼랑 끝에 세우라고 말하고 싶다”

– “아예 7년쯤 전부터는 TV를 없앴다. 드라마를 보다 보면 머리에 남아서다. 전에 봤던 영화나 소설의 에피소드 잔영들도 나도 모르는 새에 남아 있다. 초고는 영감에서 나온 게 아니라 내 안에 있는 익숙한 이야기다. 그걸 다 걷어내야 진짜 이야기가 나온다.”

– “인간의 선택과 운명, 그것이 내가 작품에서 담고자 하는 것이다. 인간이 극단적인 상황에 처했을 때 하게 되는 선택…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그 선택을 통해 인간의 본성이 드러난다. 나는 그 사람의 선택이 그 사람의 욕망이라고 생각한다.

–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재미다. 소설이 일단 재미가 있어야 뭐라도 느끼지, 재미가 없으면 뭘 느끼겠나. 끝까지 페이지를 넘겨야 작가가 던지는 마지막 질문을 확인할 수 있는 거지. (독자의 시선을 낚는) ‘낚시질’을 하든지, 어떻게든 읽게 만들도록 멱살을 잡든지(웃음), 메시지를 읽게 하기 위해선 어떻게든 다음 페이지를 넘기게 해야 한다. 독자들을 끝까지 끌고 가는 것, 그게 나의 임무다.”

– “독자들이 내 소설을 좋아한다면 그 이유는 ‘이야기’의 힘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평범하진 않지만 언제 어디서든 일어날 수 있는 이야기, 그 속에서 감정의 극한까지 치달았다가 확 놓여날 때의 서늘한 파토스(예술적 격정, 비애감)를 독자들이 느끼게 하고 싶다. 대중적, 상업적이라는 말이 두렵지 않다. 소설만이 사람들이 밤을 새우면서 눈이 벌겋게 되도록 읽을 수 있는 장르다.”

– 첫문장: <프롤로그> 베링 해가 훅, 사라졌다. 백색 어둠이 그 자리를 채웠다. 바람이 눈발을 휘몰며 불어치고 암벽 같은 빙무가 세상을 가뒀다. 성미 사나운 북극마녀, 화이트아웃이었다. 재형은 질끈, 눈을 감아버렸다.

– 끝문장: (* 주: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므로 작가의 말로 대신합니다)
호시노 미치오가 쓴 <알래스카, 바람 같은 이야기> 에는 알래스카 인디언들의 고래사냥 이야기가 나온다. 고래를 잡으면 고기를 취한 후 “내년에도 또 오너라” 고 외치면서 턱뼈를 바다에 돌려준다는 것이다. 세상이 온갖 생명체, 물과 바람까지도 영혼을 가지고 존재하며 인간을 지켜보고 있다는 세계관과 자신들을 먹여 살려주는 자연에 대한 외경심에서 비롯된 풍습이란다. 따지고 보면, 우리는 모두 자연이 빚어낸 우연의 산물들이다. 서로 빚을 지고 갚으며 살아가는 존재다. 스스로 다짐하건대 내게 남은 나날, 그 점을 잊지 않고 감사하며 살아갈 수 있기를…. 2013년 6월 광주에서, 정유정

출처: 은행나무, 2013년 1판 5쇄
참고: 동아일보, 2013/07/15, [초대석]신작 ‘28’로 서점가 돌풍… 소설가 정유정 씨, 김지영 기자,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