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리뷰 – ‘언노운노운’리뷰上] 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몰랐던 것, ’언노운노운’이 초래할 비극의 크기

20140919

 

“우리가 아는 것에는 네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안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 (Known knowns)
둘째, 모르고 있다는 것을 아는 것 (Known unknowns)
셋째, 모르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것 (Unknown unknowns)
그리고 또 하나, 안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이 있죠. (Unknown knowns)
다시 말해, 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몰랐던 것입니다.“

 

럼스펠드(전 미국 국방부 장관)의 말이다. 그는 ‘네오콘’으로 분류되는 극우파의 수장 격이었다. 그가 기록한 내용을 다룬 다큐멘터리가 최근 EIDF(EBS국제다큐영화제)에서 호평을 받았다. IS를 향한 전쟁이 일어나려고 하는 이 때, ‘언노운노운’이 초래한 비극의 크기를 함께 생각해보면 어떨까 한다.

1. 미국의 전쟁은 곧 세계의 전쟁이 된다.

미국의 전쟁은 곧 세계의 전쟁이 된다. 미국이 각국에 지원군을 요청할 것이고, 규모는 차치하더라도, 상당수는 그 요청을 받아들일 것이기 때문이다. 최근 바로 그 세계전쟁이 시작되고 있다. 전쟁을 그렇게 끝내고 싶어 하던 오바마 대통령이 최근 전쟁을 선포했기 때문이다. IS가 미국인을 참수하는 동영상을 배포하면서 전쟁은 필연적인 것이 됐다.

비슷한 일이 지난 2001년에도 있었다. 9.11테러 당시 미국은 격분했고 세계는 동조하지 않을 수 없었다. 부시 전 대통령은 알카에다의 본거지인 아프가니스탄 침공을 결정했다. 그러나 오사마 빈 라덴은 잡히지 않았다. 그리고 전쟁은 이라크로 번졌다. 이라크 대통령이었던 사담 후세인이 알카에다와 관련이 있다는 의심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당시 국방부 장관은 럼스펠드였다.

2. 럼스펠드, 모든 것을 기록한 사람

그는 다큐에서 말한다.

“나만큼 많은 메모를 쓰는 공인이 앞으로도 있을까요? 없을 겁니다.
난 중요한 것을 기록하는 게 버릇이 된 것 같습니다. 일기나 일지가 아니라 거의 다 공식적인 문서였어요. 국방부에 있던 마지막 6년 동안 2만 장을 썼다고 하니, 전부 수백만 장은 되겠죠.”

럼스펠드는 모든 것을 기록했다. 당시 느낀 것을 그 당시의 생각과 심정으로 썼다. 적어도 그 당시에 그 기록에 적힌 생각들은 진실이었을 것이다. 아니, 진실이라고 진심으로 믿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진실은 시간이 지나며 빛이 바랬다. 럼스펠드조차 왜곡된 기억을 갖게 됐다.

3. 이라크에 대해 그가 기억하는 것: 현재시점

다큐에서 그는 말한다.

“내가 이라크에 대해 걱정이 많았던 것은 4성장군에게 이런 말을 들을까봐였죠.
‘장관님, 큰일 났습니다. 현재 매일 이라크의 북부와 남부지역으로 보내는 영국군과 저의군의 정찰기가 격추당하고 있습니다.’
내일이든 다음 달이든 내년이든, 언제든지 우리 비행기가 추격당해 조종자가 군인들이 죽거나 포로가 될지 모릅니다.
고민이 되죠. 우리는 대체 무엇 때문에 전투기를 보내나? 그 정도로 잃어도 될 만큼 우리나라가 얻는 게 뭔가? 그래서 이런 말이 나옵니다. 대통령의 관심을 촉구해봐야겠군. 우리 정찰기가 총격을 받고 있고 지금까지 이라크에 관한 다른 정책이 없으니, 다른 길도 생각해보라고 권유해봐야겠어.”

그는 후세인이 있는 이라크와 전쟁하는 것에 대해 방어적으로 생각했었다고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이런 대답도 한다.

다큐감독: 빈 라덴이 도주하며 혼란이 일기 시작했어요. 사람들은 사담 후세인이 알카에다와 911사태에도 연관이 있다고 생각했죠.

럼스펠드: 아니에요(I don’t think so). 의심의 여지가 없었어요. 9.11사태를 계획한 것은 오사마 빈 라덴과 아프간의 알카에다였어요. 미국 국민들은 그 사실을 분명히 알고 있었습니다.

다큐감독: 2003, 워싱턴포스트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직접 가담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응답한 사람이 69%나 됩니다.

럼스펠드: 내 기억으로는 부시 행정부에서 그런 말이 나온 적은 없었고 아무도 그렇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4.  기억은 틀렸다.

럼스펠트가 이라크와의 전쟁을 결정할 당시 했던 발언은 그의 현재 생각과 달랐다. 그는 10년 전(2003.02) 영상에서 이렇게 말한다.

기자: 장관님 오늘 사담 후세인이 방송 인터뷰 중 이런 말을 했는데요, “진실은 하나다. 이라크에는 그 어떤 대량살상무기가 없다.” 그리고 이런 말도 했습니다. “우리는 알카에다와 어떤 관계도 없다는 것을 확실히 밝힌다.”

럼스펠드: 링컨이 난쟁이었다고는 안 하던가요?

기자: 사담 후세인의 오늘 발언에 대해 하실 말씀은 없으십니까?

럼스펠드: (썩은 미소 두 번 짓는다) 제가, 그런 말에 뭐라고 하겠습니까? 늘 반복되는 일인데요. 유명한 거짓말쟁이가 또 입을 열었는데 그 말을 전하는 사람들이 한 가지 잊은 게 있죠. 그건 바로, 그 거짓말쟁이는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5. 럼스펠드는 거짓말쟁이가 아니고, 진실을 말하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그는 다큐가 제작된 2013년과, 이라크와 전쟁을 결정하려 하던 2003년에 모두 진실을 말했다. 아니, 진실이라고 생각한 것을 말했다. 그는 거짓말쟁이가 아니고, 진실을 말하지 않은 것도 아닌 것이다. 단지 그가 아는 진실이 ‘언노운노운’이었던 것이다.

이런 상황이 실제로 일어났고 미국은 이라크와의 전쟁을 시작했다. 그리고 그 전쟁은 여전히 미국의 발목을 잡고 있다. 이 전쟁을 끝내고 싶어 했던 오바마 대통령은 또 다른 전쟁을 하게 됐다. 그리고 그 전쟁에 한국 역시 협조할 것이다.

물론 이라크의 9.11테러 관련성과 IS의 미국인참수 관련성을 비교할 수는 없다. 이라크의 관련성은 당시에도 논란이 많았던 반면 IS의 참수는 명확한 증거가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노운노운에 대해 한 번 생각해볼 시점이 아닐까.

김정현

[CEO를 위한 메모 16] 또 다른 43번, 가끔 예상치 못한 편지를 쓰세요. – 메시지가 미디어다.

지난 해 연말에 국제면 기사 하나를 잘라두었다.
‘조지 W 부시는 인간적이다’는 평판을 위한 증거물.

반전의 카드, 부시의 편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은 직접 펜을 들어 짧은 편지를 썼다.
상대는 미국 최고의 스포츠 미식축구 대학 챔피언전 4강 전에서 천추의 실수를 한 키커 케이드 포스터다.
그의 킥 실수로 포스터의 앨라바마대학은 오번대에 34대28로 졌고 팬들은 저주와 야유를 퍼부었다.
그때 편지가 도착한 것이다.
포스터는 트위터에 부시의 편지를 올렸다.
부시가 알린 것이 아니라 포스터가 자신의 트위터에 올렸다.
삽시간에 여론은 반전되었고 응원의 메시지가 몰려들었다.

“살아가다 보면 좌절할 때도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당신은 더욱 강한 사람이 돼 있을 것”
“최선을 다하길 바란다”

“또 다른 43번이”
마지막 구절이 더 없이 멋지다.
포스터의 등번호는 43번이고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은 미국 제43대 대통령이다.
동질감의 극대화.

포스터는 위기에서 탈출했고 부시는 인간적인 전직 대통령이 되었다.

시의적절한 메시지는 스스로 미디어를 만들어간다.
부시는 현명했고 포스터는 영리했다.

미디어는 그 자체로 선하거나 악하지 않다. 메시지는 그 자체로 선하거나 악하다.
진정성, 그것을 명심하라.

유민영

[커뮤니케이션 단신] 이 아저씨들과 할아버지는 왜 집단으로 머리를 깎았을까요? 가운데 휠체어를 탄 할아버지는 누구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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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두 살 난 아이 패트릭은 백혈병 진단을 받았습니다. 패트릭은 치료를 하기 위해 머리를 깎아야 했습니다.

2. 패트릭은 어느 경호원의 아들입니다. 이 경호원의 경호를 받는 사람은 자신이 패트릭을 응원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패트릭처럼 자신의 머리를 깎았습니다. 경호원의 동료들도 동참했습니다.

3. 사진 중앙에 휠체어를 타고 있는 사람은 조지 H. W. 부시 전 미국대통령입니다. 흔히 ‘아버지 부시’라고 불리죠.

참고: 버즈피드, 링크

[커뮤니케이션 단신] 미국 대통령들의 TV 연설 변천사 – 무엇이, 왜 바뀌었나?

1. 공중파 황금시간대에 편성된 정규 프로그램을 중단하고 화면에 등장하는 한 사람이 있다. 국기와 사진들을 등뒤에 두고 자신의 집무실 책상 의자에 앉아 카메라를 정면으로 응시하며, 양팔로 제스처를 취해가면서 말을 한다. 그는 미국 대통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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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미국 대통령이 공중파를 통해서 국민들과 커뮤니케이션을 한 역사는 TV 의 역사와 일치한다. TV 로 연설을 한 첫번째 대통령은 트루먼 대통령이었다. 1947년 당시 미국에는 겨우 TV 가 4만 4천대 밖에 없었다. 트루먼 대통령은 그의 첫번째 TV 연설로 미국 국민들에게 세계 2차 대전이 막 끝난 유럽을 도울 수 있도록 음식을 절약하자는 연설을 했다. 1950년 전체 가구의 9% 만이 TV 를 가지고 있었지만 1960년에는 87% 로 급증했다. 사람들의 통념과 달리, 당시 대통령이었던 아이젠하워가 “첫번째 TV 대통령” 이었다는 평가도 있다. (케네디가 아니라) 아이젠하워는 1957년, 미국 남부 아칸소주 리틀록에서 백인들만 다니던 고등학교에 흑인 고등학생 9명이 같이 다닐 수 있도록 하는 조치를 취하면서 치안유지를 위해 군대를 파견했다. 그리고 왜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와 자신이 이 결정에 대해 얼마나 단호한 입장을 취하고 있는지 국민들에게 더 직접적으로 다가가기 위해서 TV 연설을 한다고 밝힌 바 있다. 그 후 미국 역대 대통령 중 가장 훌륭한 ‘TV 커뮤니케이터’ 였던 레이건은 8년 재임기간 중 29번이나 TV 연설을 했고 TV 를 싫어했던 닉슨도 5년 동안 22번이나 연설을 했다.

3. 그런데 2000년대 이후 미국이 맞이한 두 명의 대통령, 부시와 오바마는 모두 집무실에서 진행하는 TV 연설을 잘 사용하지 않는다. 부시는 8년동안 겨우 5번만 집무실 TV 연설을 했고 오바마가 마지막으로 한 것은 3년 전이었다.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 답은 인터넷/IT 기술이 가져온 혁명, TV 와 미디어 환경의 변화에 있다. 20세기 후반 TV 가 지배하던 시절에는 대통령이 TV 에 등장하면 전국민이 행동을 멈추고 대통령의 메시지를 들었다. 베이비부머 세대 미국인들은 역사의 중요한 분기점마다 대통령의 TV 연설이 등장했다는 점을 기억한다. 하지만 이제는 모든 것이 달라졌다. 미국인들은 TV 공중파 이외에 수많은 정보수집 채널을 갖게 되었다. 방송국 역시 대통령에게 황금시간대에 방송 분량을 주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리고 대통령 역시 집무실 책상 의자에 앉아 홀로 카메라만 바라보면서 연설하는 방식에 결코 편안해 하지 않는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4. 월등한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가진 오바마 대통령이 TV 를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에 대해 최측근들 역시 의견이 갈린다. 백악관 전 대변인 로버트 깁스는 “집무실에 앉아서 TV 연설을 한다는 것은 국가에서 가장 중요하고 가장 커다란 의사결정을 발표한다는 상징적 의미가 있다” 고 주장하며 선임 전략가인 Dan Pfeiffer 는 “TV 연설은 레이건 시대, 80년대 아이디어다. 확신하건대 오바마 다음 대통령들은 TV 연설을 더욱 더 적게 하게 될 것이다. 미디어 환경이 지금과 같은 추세로 계속 변할 것이기 때문이다.” 라고 폄하할 따름이다. 오바마는 집무실 TV 연설 대신에 붉은 카펫이 깔린 백악관 복도를 걸어와서 East Room 입구에 서서 연설을 하는 무대형 방식을 더 선호한다. 2011년 오사마 빈 라덴 사살을 발표하던 순간처럼 말이다. 또는 메시지 내용과 연결된 장소를 찾아서 효과를 극대화하는 연설을 하는 것도 좋아한다. 오바마가 아프가니스탄 정책을 발표한 곳은 미국 군사학교 웨스트포인트였다.

5. 그러나 이런 변화에 대해 미국 ABC 방송국 워싱턴 지국에서 20년간 근무한 Robin Sproul 은 씁쓸한 평가를 내 놓는다. 대통령의 TV 커뮤니케이션이 불러일으키던 “미국은 하나의 국가라는 공동체 의식”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6. 문득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들의 TV 커뮤니케이션에 대해 돌이켜보게 된다. 아직까지 박근혜 대통령은 3월4일 대국민 담화로 TV에 나선 것이 유일하다.

박소령

참고: 뉴욕타임스, 링크

[유민영의 위기전략] 자사의 항공기 사고를 대하는 아시아나의 자세 1 – 사고 상황과 국내 대응을 중심으로

한국시간으로 7월 6일 오후 4시 45분 인천공항을 출발한 아시아나 항공기 214편이 7월 7일 새벽 3시 27분 미국 샌프란시스코 공항에 착륙하던 중 사고가 발생했다. 방파제에 꼬리 부분이 부딪힌 후 꼬리 부분이 잘려 나갔고 착륙 직후 화재가 발생했다. 두 명이 사망했고 수십 명이 크게 부상당했다. 사고 발생 대응, 그리고 첫 번째 사과, 후속 관리에 이르기까지의 아시아나 항공의 대응을 살펴봤다. 아시아나의 인명사고를 포함한 첫 번째 대형 사고는 1993년 7월 발생했다. 20년 만이다.

아시아나의 대응에 대한 정보는 아직 제한적이다. 미국 현지의 공항과 병원의 상황을 다 체크할 수 없는 상황도 아시아나의 대응에 어려움을 주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승객과 승무원 들은 최선을 다해 더 큰 참사를 막았고 예상보다 사상자도 크지 않은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그러나 외신들은 일제히 사고 당시 조종을 했던 기장이 해당 기종 B777기에 대해 43시간 만을 운항했다는 것을 일제히 보도하고 있다. 아시아나는 기장 4명이 비행 1만시간 전후의 베테랑이라고 설명했다. 기체결함이 아니라면, 기장들 간의 커뮤니케이션을 포함해 많은 숙제들이 여기에 걸린다. 그러나 근본적인 문제는 아직 답을 알 수 없다. 시간이 걸릴 것이다.

아시아나의 초기대응은 훌륭한 점도 있고, 아쉬운 점도 몇 가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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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위기의 순간, 무엇보다 상황에 집중하라
승무원들의 헌신이 현장의 극단적 위기를 막는 데 기여했으며, 이후 수습의 위기관리 과정에서 훌륭한 방어 기제의 역할을 수행할 것이다.

“오히려 머리가 명료해지면서 무슨 일을 할지 몸이 움직였다”,
“항공기에 불이 붙었을 때도 ‘나 어떡하지’라는 생각 보다는 빨리 꺼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로지 생각은 승객들을 탈출시키자는 목표 하나에만 집중했다. 몇 명을 탈출시켰는지, 얼마나 걸렸는지는 기억나지 않고 한 분이라도 더 탈출시켜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 7월 7일 (현지시각) 오후, 이윤혜 사무장, 샌프란시스코 현지 기자회견

1-1 승무원들의 침착하고 헌신적인 대처가 화제다. 항공기에 탑승한 최고참, 18년 경력의 이윤혜 사무장은 꼬리뼈를 다친 것도 모르고 승객을 구조했다고 한다. 그녀는 항공기에서 마지막으로 탈출했다. 윤영두 사장은 두 번째 기자회견에서 기자들로부터 우호적 질문을 받았다. “아시아나 항공 승무원들의 적절한 대처가 인명피해를 최소화한 것으로 보이는데, 사고 발생 시 아시아나 항공의 대처 매뉴얼은 무엇인가?”

1-2 이윤혜 사무장은 샌프란시스코 현지에서 기자회견을 가졌다. 위기의 상황에 아시아나는 언론과 여론의 호감을 얻는 내부의 ‘화이트 스피커’를 갖게 되었다.

1-3 위기의 상황은 벌어진 일이다. 그러나 훈련되고 경험이 많은 승무원들은 상황을 최소화할 수 있다.

1-4 그렇다고 완벽하게 안전한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어려운 뒷칸을 책임졌던 태국인 승무원은 위독한 것으로 전해졌다. 우리가 기내의 모든 사실을 다 알 수는 없다.

2. 최대한 신속하게 대처하라. 초기 신뢰를 형성하라.
CEO의 움직임은 눈에 보여야 한다. 위기 상황에 맞서 온몸으로 맞서야 하고 진두지휘해야 한다. 피해자 가족과 언론, 여론은 그것을 기대하고 기억한다.

“금번 사고로 인해 탑승객 및 가족분들을 비롯한 국민 여러분들게 커다란 심려를 끼쳐드려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 머리 숙여 사과드립니다.”
– 7월 7일 오후 3시, 사건 발생 12시간 후, 윤영두 대표이사 1차 기자회견, 아시아나 항공 본사

2-1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과 윤영두 아시아나 사장은 사고 발생 시 중국 웨이하이에서 개최된 계열사 금호타이어 주최 골프대회에 참석했다가 급히 귀국했다. 사건 당일인 7일 오후 1시 중국 동방항공을 통해 귀국을 했다면 최대한 빨리 귀국한 것으로 보인다. 타사 항공기를 이용했다면 그만큼 급박하게 움직인 것의 방증이라 하겠다. 잘한 일이다.

2-2 아쉬운 점도 있다. 사고 발생 12시간 만에 기자회견을 한 것이다. CEO가 중국에 있어 최초 대처가 어려운 점은 이해가 되지만, 7일 아침 7시 47분 아시아나 홈페이지에 배포된 [1차 보도자료-OZ214편 관련 보도자료]에는 상황 설명만 있다 ‘현재 상황에서 확인된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로 시작해 기본 정보만 정리되어 있고 ‘가능한 한 빨리 추가적인 사항을 공표하겠다.’로 끝난다. 중국에서도 충분히 지휘할 수 있었다. 최소한 최초 자료에 오후 3시 기자회견문의 내용이 들어갔어야 한다. CEO의 이름과 함께. 기자들과 카메라는 신속히 인천공항에 도착했고 임원 중 누군가가 브리핑을 대처할 수도 있었다. 아무리 급했다고 해도 첫 번째 보도자료에는 사과와 CEO의 이름이 빠져있다. 피해자 가족에 대한 신속대응 전화번호도 빠졌다. 너무 건조했다.

2-3 박삼구 회장이 윤 사장과 함께 귀국했고 보고와 대처방안이 정리되었을 것이다. 그리고는 시야에서 사라졌다. 이 점도 아쉽다. 물론 최종 사과의 과정이 있을 것이므로 그룹 회장이 대처할지 여부는 그때 판단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박 회장이 이 상황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처하고 상황을 지휘하는 것은 한국의 오너체제에서 타당한 일이다. 그렇다면 콘트롤타워로서 그의 역할은 노출되고 설명되어야 한다. 그것이 금호아시아나그룹이 겪을 수 있는 최대의 위기에 대처하는 최종 책임자의 자세다. 각별한 대처는 사후 위기수습과정에서도 매우 중요하다.

2-4 8일 윤영두 사장이 두 번째 기자회견을 열었다. 윤 사장이 직접 나와서 설명하고 브리핑했다. 기자들의 질문에도 충실하게 성의껏 대답했다. 답할 수 없는 정보는 왜 그러한 지에 대해서도 성실하게 답변했다. 한 번의 사과와 브리핑이 결코 모든 것을 말해주지 않는다. 위기의 전개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임원에게 자신의 역할을 대신 맡기지 않는 윤 사장의 태도는 훌륭하다. (7월 8일, 2차 기자회견, 프레스 센터)

3. 언론과 소셜미디어에 확인할 수 있는 최대한의 정보를 투명하게 제공하라.
‘신속’과 ‘대처’의 언어는 공식적으로 담백하게, ‘염려’와 ‘걱정’의 언어는 인간적으로 따뜻하게 해야 한다.

‘어제 오후 인천공항을 출발하여 샌프란시스코를 향하던 OZ214편이 착륙 중 사고가 발생하였습니다. 아시아나항공은 인명피해 및 정확한 사고 원인에 대해서 파악 중으로, 이후 확인되는 사항은 추가로 안내 드리겠습니다.’
– 7월 7일 오전 8시 50분 경, 아시아나 트위터 (한국 시간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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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외신과 한국 언론에는 이미 두 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는 기사가 제공되었다. 아시아나는 사건 이튿날까지 인명피해 및 정확한 사고 원인에 대해 파악중 이라고 밝히고 있다. 현재까지 (7월 8일 오후 6시 기준) 홈페이지와 트위터에 제공된 세 건의 보도자료에는 사망에 대한 언급이 없다. 후속 브리핑이나 확인 과정에서 언론에 대해 설명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사실은 가능하면 빠르고 정확하게, 그리고 담백하게 전달되어야 한다. 사망자에 대한 언급은 그래서 중요한 것인데 빠뜨린 것이다.

3-2 경황중이라 그렇겠지만 아시아나의 트위터는 답답하리 만큼 의례적이다. 중간 중간 확인할 수 있는 내용도 공개하지 않고 있다. 1차 보도자료 내용은 올라가지도 않았다. 긴급 상황이라 우리말/영어도 동시에 쓰는 것이 좋은데 그렇지 못하다. 무엇보다 내용이 너무 부실하다.

3-3 물론 여기서 승무원들의 미담을 써서는 안 된다. 그것은 오버다. 그렇지만 상황의 전개와 피해자를 걱정하는 염려와 안타까움의 마음은 전달해야 한다. 현지 병원 상황에 대한 정보의 부재는 인정할 수 있지만 빈도나 내용으로 보면 아시아나의 트위터는 매우 일상적인 상황이다. 140자의 한계라고 하기에는 성의 부족이다.

3-4 현장에서 신속하게 상황을 전달하는 언론에 신경을 쓰는 것은 당연하다. 그와 마찬가지로 순간순간 여론을 움직이는 소셜미디어도 비슷하게 신경을 써야 한다. 서로 협조를 구해야 하고 설명이 더 필요한 것이 아니라면, 소셜미디어에도 정보를 동일하게 제공하는 것이 좋다. 소셜미디어는 나쁜 뉴스만을 전파하지 않는다. 훌륭한 대처도 함께 전파한다.

4. 피해자 중심의 위기관리가 필요하다- 당사자에게는 연락할 수 없다. 가족과 대리인에게 연락할 방도가 없다.

‘[아시아나항공 OZ214편 탑승자 안내센터 전용 연락처 안내] 금일 발생한 OZ214편 관련, 한국 02-2669-4015, 미국 800-227-4262로 연락하신 후, 탑승자 성명, 생년월일을 알려주시면 탑승여부를 안내 드립니다.’
– 7월 7일 오후 2시 21분 경, 아시아나 트위터 (한국시간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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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공 사고는 자신이 피해자가 된다. 그렇다면 가족과 대리인에게 알릴 방도가 있어야 한다. 항공기 티켓을 사려는 사람에게 아시아나는 이름, 탑승자생년월일, 개인의 휴대폰번호와 이메일을 요구한다. 대한항공도 이름, 연락처, 도착지 연락처, 이메일을 요구한다. 가족과 대리인이 없다. 미국은 비자 서류심사 때 한국 및 미국 현지의 연락가능한 사람의 이름, 전화번호, 주소, 관계, 소속 정보를 요구한다. 무비자의 경우는 미국내 현지 체류 주소만 적는다. 그러나 이것은 미국 정부의 데이터베이스다.

결국 피해자의 가족들은 먼저 연락을 받지 못했다. 촌음을 다투는 시간에 그들은 정보를 제공받지 못한다. 당사자와 연락이 안 된 피해자의 가족들 몇몇은 인천공항으로 달려오기도 했으나 뾰족한 정보를 얻지 못했다. 사고를 대비한 데이터의 확보, 그것도 위기관리의 중요한 요소다. 위기는 상황 후에도 지속되기 때문이다. 항공사의 근본적 대책이 있어야 하겠다. 피해자 가족에게 항공사가 먼저 전화할 수 있다면 가족은 첫 과정에서부터 항공사의 정보와 의지를 신뢰하게 될 것이다. 위기대처와 매뉴얼에 빠져있는 상황이다.

* 위기 상황에 직면한 리더들의 훌륭한 대응사례 두가지를 소개한다.

에피소드 1: 오바마 대통령의 위기대응 사례 

2011년 9월 대형 허리케인 ‘아이린’이 뉴욕 지역을 포함해 미 동부로 북상하는 긴급 상황이 발생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휴가지 매사추세츠주 마서스 비니어드 섬에서 즉각 대국민 담화를 발표했다. 이어 휴가 일정을 단축해 아이린이 워싱턴에 도착하기 전에 복귀해 ‘연방재난관리청’을 방문해 근무자들을 격려하는 등 위기를 전방위로 관리했다. 이는 대통령 부재 중 발생한 위기에 대해 휴가지와 근무지를 넘나들며 대처한 훌륭한 사례다. ‘과정 관리’의 모범이다. 2005년 부시 대통령이 허리케인 카트리나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해 여론의 뭇매를 받았던 사례를 의식했던 것이다. 뉴욕시의 경우 최악의 상황에 대비해 1/3에 해당하는 지역주민에게 소개령을 내렸던 아이린은 큰 사고 없이 지나갔다.

“허리케인이 지나갈 경로에 있는 주민은 지금 당장 대비하십시오. 기다리지 말고 늦어서도 안됩니다. 최선을 바라지만 최악을 대비해야만 합니다.”
(If you are in the projected path of this hurricane you have to take precautions now. Don”t wait, don”t delay. We all hope for best but have to be prepared for the worst.)
– 오바마 대통령

에피소드 2: 현대카드 정태영 CEO 의 위기대응 사례  

2011년 4월 현대카드의 고객 데이터베이스가 해킹되어 고객의 데이터베이스가 유출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당시 현대캐피탈 정태영 사장은 노르웨이에 출장 중이었다. 언론은 정 사장이 현지에서 사건을 인지한 후 직원들과 대책을 마련하고 즉각 조치를 취했다고 보도했다. 경찰과 충분히 상의한 다음, 해킹 사실을 먼저 고객에게 해킹 사실을 공개하고(언론에 보도되지 않은 상황) 언론에도 상세하게 설명을 했다. 상황을 투명하게 선제적으로 자발적으로 공개한 것이다.
선 대응 과정을 거친 후 바로 귀국한 정 사장은 사과기자회견을 열고 충심을 다해 사과했다. 즉각 대처, 투명한 대응, 정직한 방법으로 ‘고객 정보 유출’이 확산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대처한 훌륭한 사례다. 2011년 동일한 사건이 발생한 농협이 상황 공개를 미루고 ‘곧 해결될 것이다’ 했고 미봉책으로 대처하려다 상황을 더 키웠다. 한심한 것은 사과회견에 나선 최원병 회장이 “나도 몰랐다”, “(나도)기자들이랑 똑같이 당한 것”이다 등 변명으로 일관했다는 것이다. 반면 정 사장은 “고객에게 죄송하고 수치스럽다.”며 몸을 한껏 낮췄다.

“고객으로 구체적으로 알리고 숨기지 마라. 추후 피해배상을 걱정하지 말고 최대한 고객 정보 보호에 최선을 다하라.”
– 정태영 CEO

유민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