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시지는 말한다 1] 김성근 감독이 한국사회에 던진 한 마디

선수들에게 바꾸라고 요구하면 못 따라온다.

내가 변해서 아이들 속에 들어가야 바뀌더라.
소중한 배움이었다.
– 김성근 전 고양 원더스 감독, SBS 인터뷰 중에서

그는 야구를 운명이라 했다.

2014년 9월11일,
우리 야구사의 새로운 행성이었던 고양 원더스 해체가 전격 발표되었다.

김 감독만큼 적과 팬이 극적으로 갈리는 사람도 없다.
그러나 그가 일구이무(一球二無)의 정신으로 야구 하나만의 인생을 살아온 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1.
삶이 곧 야구인 그의 말이 한국 사회 리더십을 상기하게 하는 묵직한 이유다.

2.
그의 말하기는 일본 말의 꼬투리가 묻어 있다.
일흔 두 해의 흔적으로 인해 집중해서 들어야 한 번에 알아들을 수 있다.

3.
화법은 거친 직구다.
관계와 정치를 위해 우회하지 않는다.
정확성은 거기서 발현된다.

한국 스포츠에서는 드물게 그는 데이터에 기반해 야구 전략을 짠다.
그가 지난 해 스포츠 채널에 나와 각 구단의 상황을 신랄하게 설명한 것은 ‘현재의 문제’를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 지를 보여주는 교과서다.

직구의 화법은 데이터에서 나온다.

4.
메시지는 송곳이다.
다변에도 불구하고 위험하지 않다.

데이터와 더불어 그를 이해하는 또 하나의 키워드는 집중이다.
투호를 하는 제갈공명이 매번 화살을 항아리에 집어넣는 것은 순간집중의 결과다.
김 감독의 집중은 평생 하나만 생각하고 실천해 온 결과다.
숙소에서 홀로 밥을 먹을 때도 비디오를 틀어놓고 야구 하나만 생각한 결과다.

데이터에 기반한 그의 집중력은 그래서 다변(多辯)이라는 위험천만한 실체를 넘어선다.
정확한 다변, 그것을 우리는 쉽게 오를 수 없는 특별한 경지라 부른다.

5
그는 스스로 전략이 된다.
메신저와 전략이 한 몸인 것이다.
그가 신생팀 NC 다이노스의 초대 감독이 되지 않은 것은 그의 전략과 NC의 전략이 달랐기 때문이다.

그의 말과 행동은 1cm를 벗어나지 않는다.
야신(野神)은 모르겠다. 그러나 그는 꼭 필요한 일을 한다.
야전사령관이며 전략가다.

데이터 분석가, 의사결정자, 위기관리자, 의사소통자라는 네 가지의 지휘를 그대로 이해한 전략 사령관이 그가 얻어야 할 호칭이다.

6.
그의 말은 냉정한 전략과 가족의 언어를 동시에 포용한다.
전략을 운용할 때는 지극히 차갑고 정확한 것을 선호한다.
그런데 사람을 향할 때는 ‘아이’가 뛰쳐나온다.
그는 전략을 위해 데이터를 읽지만, 사람도 안는다.
아홉 명이 서로의 포지션을 넘지 않는 것이 야구다.
데이터란 결국 사람의 상태가 아닌가.
사람데이터가 야구다.

그의 궁극은 결국 야구를 하는 사람이다.
사람을 부르는 호칭, 그 가장 천진한 말이 그것을 증명한다.

7.
“리더는 사람을 버리지 않는다.”
2013년 출간한 그의 책 제목이다.
제자들이 쓴 본문 앞에 프롤로그에는 이렇게 써 있다.
“끝까지 선수를 포기하지 않고 살리는 것, 그게 리더다.”
그는 고양 원더스를 떠나는 시점에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내가 변해서 아이들 속에 들어가야 바뀌더라.”

리더십과 팔로우십의 말장난 같은 야릇한 경계를 그는 넘어선다.
야구 리더서로만 40여년을 살았다고 했다.
감독이라는 위치를 다른 요소에 의해 조정하거나 거래하지 않았다.

연줄 없는 한국이라는 체제 안에서 아웃사이더가 되어버린 한국 나이 일흔 셋의 그가 다시 광야에 섰다.
구체제 안의 새로운 체제였던 그가 ‘영원한 현역’이기를 바란다.

유민영

[CEO를 위한 메모 20] 가치를 기준으로 전략에 투자하라 – NC다이노스가 전략적 인재를 쓰는 법

연말에 만난 NC 다이노스 관계자는 “좋은 사람이 좋은 야구도 할 수 있다”고 했다.
창단 이후 ‘가치’와 ‘실적’의 조화를 이뤄온 자신감을 느낄 수 있었다

NC 다이노스는 지난 달 22일 작년에 이어 김경문 감독과 재계약했다.
3년 계약에 17억원으로 ‘파격’이라는 단어가 붙었다.
올 시즌 계약이 남은 잔여기간 중에 선제적으로 계약을 했다.
배석현 단장은 김 감독의 ‘선수단 장악 능력’, ‘선수 발굴 및 운용’을 꼽았다.

지난 해 창단한 NC 다이노스가 김성근 감독이 아니라 김경문 감독을 뽑은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NC 다이노스의 모토는 ‘정의, 명예, 존중’이다.
치어리더들은 야릇한 치마를 입지 못한다.
우리 야구사에는 드문 가치 공략이고 선점이다.

이것이 NC가 야구를 하는 이유다.
NC는 게임업체다.
그런데 게임은 언제나 여론에 의해 ‘악마의 영역’에 속할 수 있는 산업이다.

즐거움의 확장과 평판 관리-리포지셔닝을 통해 얻고 싶은 것.
즐거움과 기쁨을 주는 야구를 통해 게임의 NC를 확장하는 것이다.
최소한 즐거운 가치에 투자하는 품위있는 기업 이미지를 갖는 것이다.
그래서 ‘승수’ 보다 중요한 ‘좋은 가치 추구’라는 전략이 나온다.
한국 최고의 덕장이라는 불리는 김경문 감독이 NC 다이노스에 필요한 이유다.

유민영

[김봉수의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비즈니스 프렌들리 베이스볼 – 야구 광고와 대부업 이야기

김마컴

1. 현대적인 야구 규칙이 정립된 시점은 1845년이라고 한다. 세계 최초의 라디오 프로그램이 1906년에 방송되었다고 하니 방송광고와 궁합을 잘 맞추어 프로 스포츠로서 꼭 확보해야 할 수익성에 일조하겠다는 전략적이고 원대한 계획 하에 야구 규칙이 성립되었을 리는 만무하다.

2. 그럼에도 야구는 정말 광고를 위해 태어난 스포츠란 생각이 든다. 하나의 경기를 9이닝으로 만들어 놓았다. 또 한 개의 이닝은 두 개로 나뉘어 진다. 공격과 수비가 전환될 때마다 광고를 내보낼 수 있다. 여기에 투수교체 타이밍까지 감안하면 실제 경기에서 광고를 내보낼 수 있는 기회가 적게 잡아도 대략 20번 이상은 된다.

3. 기본적으로 야구는 대단히 정적인 스포츠다. 투수와 타자를 제외한 야수들은 긴장감 속에서 가만히 자신의 포지션을 지키고 있다. 투수의 볼을 타자의 방망이가 맞추는 순간에 잠시 동적으로 전환되어 빠르게 전개되지만 곧 다시 정적인 긴장 모드로 전환되곤 한다. 결국 야구의 반복적인 패턴은 관람객의 눈이 어디로 향하게 될 지를 미리 예측할 수 있게 만들었고 그 흐름이 포착되는 순간과 공간에는 어김없이 광고가 붙어있다.

4. 2010년 1월에 가상광고의 허용을 골자로 하는 방송법과 방송법시행령이 통과되면서 야구 광고는 또 다른 전기를 맞는다. 선수들의 실망스러운 플레이 직후 감독의 답답한 표정을 보여주는 장면에선 ‘한 대 피우시고 싶으시죠?’라는 텍스트와 함께 금연 보조제 광고가 튀어나온다. 이외에도 갑자기 스마트폰이 등장하거나 타이어가 그라운드에 등장하는 모습은 이제 TV 중계에서 그다지 낯선 모습이 아니다.

5. 어느 종목보다 촘촘하게 광고를 끌어들여 ‘산업화’한 프로야구가 광고에 대해 더 고민해야 할 부분은 없을까? 광고를 통해 프로야구팬을 프로파일링 해보면 아마도 ‘대부업체에서 돈을 빌려 자동차를 사는 사람’ 정도가 될 것 같다. (대부업과 자동차, 자동차 관련 용품의 광고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다.) 프로 스포츠가 특정 산업 또는 브랜드와 강하게 결합되는 것에 왈가왈부할 수는 없겠으나 많고 많은 산업중에서 ‘대부업’과 결합되어 인식되는 것은 바람직해 보이지 않는다. 광고 판매에 까지 KBO가 직접적인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사안은 아니겠으나 현재처럼 중간 광고가 대부업에 편중되어 있는 상황에는 직간접적인 개입이 필요해 보인다. 당장의 수익에 다소 차질이 생긴다 하더라도 장기적인 관점으로 접근해야 할 문제다.

6. 90년대까지는 FMCG(Fast-moving Consumer Goods)라 불리우는 화장품이나 식음료 등의 소비재 품목 중심으로 광고가 전개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향후 급격하게 IT(이통사, 핸드폰->스마트폰)와 금융 서비스로 광고의 중심부가 이동했다. 공중파를 통한 광고가 여의치 않은 ‘대부업’은 프로야구 중계를 포함한 캐이블 TV를 중심으로 위세를 떨치고 있다. 동시대의 광고를 잘 살펴보면 어떤 산업이 규모있는 수익을 올리고 있는지 대충 감을 잡을 수 있다. 그리고 해당산업은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를 규정하기도 한다. 우리는 2000년대 이후 IT의 세계에 살고있고 최근엔 모바일의 세계에 살고 있으며 우리 중 일부는 돈을 빌려야만 살 수 있는 세계에 살고 있다. ‘돈 빌려주기’가 우리 시대의 부를 ‘창출’하는 주요산업이 되었다는 사실은 여러모로 슬프다.

김봉수

[말과 글] 안태영, “프로에서 한 타석만 서 봤으면 소원이 없겠다고 생각했어요.” “나중에는 방망이가 보기조차 싫어질 정도로 휘두르고 또 휘둘렀어요.”

안태영

안태영이라는 넥센히어로즈의 선수가 있다.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했으나 1군에 한 번도 올라가지 못했다.
군대에 다녀왔고 사회생활을 했다.
그러나 야구를 잊을 수 없었다. 선수 선발 트라이아웃에 참여해 고양원더스에 입단을 했다.
죽도록 야구했다.
결국 넥센에 입단을 했고, 2군에서 1군, 후보 선수에서 지난 주 출전을 했다.
방출당한 삼성을 향해 홈런과 안타를 뿜어냈다.
두 경기에서 홈런을 포함해 7타수 6안타를 쳤다.
어느 기자는 그가 ‘10년을 방황했고 6년을 공을 놓았다’고 썼다.
안 선수는 “김성근 감독님 말씀 중 가슴에 새긴게 ‘일구이무(一球二無)다. 간절함을 배웠고 공 하나하나에 집중했다.”고 했다.

운이 좋아서 삼성과의 경기에서 홈런을 친 장면을 봤다.
염경엽 감독에게는 앞서다가 12회 말에 무너진 회한의 경기이지만 안태영 선수에게는 새로운 세계의 시작이었다. 소식을 들은 김성근 감독은 지인들과의 자리에서 눈물을 보였다고 한다.

카메라에 잡힌 그의 순박한 얼굴을 보자, 왜 그랬는지 눈물이 났다.

수요일이다. 우리는 얼마가 간절하고 치열한가?
오늘 아침에는 그의 말을 그냥 한 번 읽어보자.

글은 그의 인생 시간대로 정렬했다.

“처음에는 그냥 ‘그런가보다’라고 무덤덤하게 생각했다”며 “하지만 시간이 지날 수록 말로 표현하지 못할 자괴감이 나를 덮쳤다. 정말 창피했고, 야구가 점점 싫어졌다”고 밝혔다. 그리고 “일단 모든 것을 내려놓고 군대에 다녀오자는 생각을 했다. 군복무 기간 동안 단 한 번도 야구를 생각한 적이 없었다”

“야구에 대한 걸 다 놓고 싶었어요. 그래서 갖고 있던 유니폼이든 도구든 다 사람들 주고이제 야구 그만 하고 군대 가야되겠다 싶어가지고 그때는 다 놔버렸어요.”

“정말 고민 많이 했다. 하지만 야구에 대한 열정을 숨길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이번 한 번만 해보고 안되면 정말 포기하자’는 심정으로 트라이아웃에 응했다”

“그 동안 몸도 제대로 만들고 해서 자신이 있었어요. 그런데 공을 치면 타구가 외야로 날아가기는 커녕 다 내야에서 머무르는 거예요. 외야로 안 날아가는 것을 보고 ‘아 이대로 끝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뽑힐거라고 기대도 못했어요.”

“정말 기대하지 못했는데 뽑혀서 깜짝 놀랐다. ‘하늘이 아직 나를 버리지 않았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양 원더스에서) “훈련 강도가 센 편이었다. 운동하다가 온 선수들이었지만 체력적으로 따라하기 힘들었다. 나도 지치고 힘들어 ‘오늘만 하고 그만두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그 생각으로 몇 개월이 갔다. 그러다 나중에 감독님이 직접 지도를 해주시니 그만 두자는 마음이 악착같은 마음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가르쳐 주신 대로 하다보니 실력이 늘었다. 기술적으로도 늘었지만 멘탈이 바뀐 시간이었다. 생각이 바뀌니 많은 게 따라서 바뀌었다.”

“그렇죠. 여기 오니까 그렇게 됐어요. (연습을) 안 하면 불안해요.
금방 괜찮아질 거예요. 밥 먹으면 괜찮아질 거예요.“
“어제 또 만졌어요. (손이 다친 상태) 방망이 치고 싶어서 죽는 줄 알았어요. 죽겠어요.
혼자 펜스 뒤에 들어가서 방망이 돌려보고 볼 줍고 오고 죽겠어요. 아주 그냥 하고 싶어서“

“하루하루 최선을 다했다. 김성근 감독님에게서 간절함을 배웠다. 공 한 개에 집중했고 유니폼을 입는 것 자체에 감사했다. 열심히 그리고 절박한 마음으로 하다보니 자신의 타석을 아끼게 됐고 운도 많이 따라왔다.”

“정말 많은 관심을 받았다. 강병식 코치님은 어깨도 안 좋은데 매일 공을 던져 주며 ‘할 수 있다’고 자신감을 심어주었다. 감독님과 함께 코치님이 ‘늘 할 수 있다’고 하니 나도 모르게 자신감이 몸에 배었다. 1군에 올라가는 날 차를 타는 순간까지 ‘밸런스가 좋아졌으니 걱정하지 말고 열심히 하라’고 힘을 주셨다. 그리고 ‘이제 가면 내려오지 마라’며 응원을 아끼지 않았다‘”

“운이 좋았다. 내가 복을 받았다”

“타고난 재능은 없다. 나는 스스로 단 한 번도 재능이 있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 재능이 없으니 그만큼 열심히 했다.”

“그 친구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었다. 나같이 운동을 오래 쉰 사람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내가 하는걸 봤다면 포기하지 말고 희망을 가졌으면 한다.”

“신경쓰지 않는다. 야구는 확률게임이다. 타격은 잘 될 때와 안 될 때 사이클이 있다. 안 맞아도 최대한 스트레스를 받지 않겠다. 공 하나에 최선을 다하면 후회하지 않는다”

“하루에 안타 1~2개씩이라도 꾸준히 치고 싶어요. 1군에 계속 머무르고 싶은 마음은 당연하고요.”

“제 뒤를 이어 계속해서 프로로 진출하는 선수들이 나왔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되려면 먼저 프로에 진출한 선수들이 잘해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도 내년 시즌 1군 진입을 목표를 이뤄 고양 선수들에 대한 좋은 인상을 심어줄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사진 출처: 엠엘비파크, 링크

[말과 글 사전] 김성근. 고수는 부끄러움을 모른다

김성근감독

 

김성근의 야구가 계속 화제다.
그러나 여전히 ‘이기는 야구’를 위해 ‘재미없는 야구’가 되는 것은 누가 책임질 것인가 싶기도 하다.
신문 인터뷰를 보다가 이 대목에서는 숙연해졌다.
자신이 하는 일을 위해, 제자를 위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는 사람.
최소한 작은 사람은 아니다.

‘1996년 김성근(71)이 쌍방울레이더스 감독 할 때, 롯데자이언츠 감독을 지낸 박영길이 운동장에 들렀다. 둘은 한때 OB베어스와 삼성라이온즈 감독으로 붙었던 사이다. 김성근이 불쑥 물었다. “4번 타자가 공 칠 때 자꾸 머리가 돌아가요. 어떻게 고쳐야죠?”
박영길이 “야구하면서 그런 일은 평생 처음이었다”고 했다. “감독이 다른 감독에게 모르는 거 묻기 쉽지 않아요. 그 양반은 묻더라고. ‘김성근 오래가겠다’ 했어요.”
박영길(72)은 타격 지도의 일인자로 꼽힌다. 그는 김성근의 롱런 비결을 두 가지로 압축했다. “적장에게도 물어보는 열정, 제자를 키우려고 무슨 일이든 하는 자세. 고수는 부끄러움을 모릅니다. 자신 있거든.”’
– 김성근 고양원더스 감독, 7월19일 조선일보 인터뷰 중에서

출처: 조선일보, 2013/07/19, 야구, 야구, 야구밖에 모르는 ‘야구바보’… “동네 게임도 작전 짤 사람”, 김수혜 기자, 링크
사진출처: 오센

[RT] 야구장에선 투수가 시를 쓰네

야구와시

긴 인생에서 어떻게 피하려고 해도 어쩔 수 없이 지나가야 하는 길이 있다. 그럴 때는 아무 말 없이 그냥 걸어가라. 잔소리나 나약한 말을 뱉으면 안된다. 묵묵히 그냥 가라. 눈물을 보이면 안된다. 그 길을 걸어갈 때 인간으로서 생명의 뿌리가 깊어진다.
– 김성근 야구감독

한국 프로야구 소식과 메이저리그 류현진의 활약으로 야구가 부쩍 삶에 다가온 듯하다. 연일 들려오는 경기결과 뉴스에서 살짝 고개를 돌려보자. 야구와 시의 어울림에 대한 좋은 칼럼이 있어 전문(全文)소개한다.

* [박해현의 문학산책] 야구장에선 투수가 詩를 쓰네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가 그 어느 때보다 가깝게 느껴진다. 류현진과 추신수가 메이저리거로 활약하다 보니 미국 야구를 TV로 지켜보는 날이 잦아졌다. 19세기 미국의 국민 시인 월트 휘트먼은 “나는 야구에서 위대함을 본다. 그것은 우리 미국인의 게임”이라고 칭송했다. 미국이 야구의 종주국이다 보니 미국 문학에선 야구를 노래한 시, ‘베이스볼 포엠’이 적지 않다. 시속 160㎞가 넘는 강속구의 투수 놀란 라이언을 높이 기린 시도 있다. ‘그는 하얀 강낭콩을 던졌네/ 빠르게 더 빠르게 가장 빠르게/ 이쑤시개로 그 강낭콩을 치려고 해보렴/ 빠르고 더 빠르고 가장 빠른 공을 때리는 게 어떤 것인지 알게 되리.’

숱한 야구 문학 중에서도 시인 로버트 프랜시스(1901~1987)의 시 ‘투수’가 미국인들 사이에선 널리 사랑받는다. 시인을 투수에 비유한 시다. 겉으론 투수의 기교를 읊었지만 속으론 시인의 예술을 일깨워 준다. 이 시의 첫 연은 이렇게 열린다. ‘그의 기교는 기발하지, 그의 노림수는 노리는 척하면서 과녁을 맞히지 않는 것/ 그의 열정은 뻔한 것을 에둘러가기/ 그의 기술은 다양한 에둘러가기.’

훌륭한 투수는 당연히 스트라이크를 잡으려 하되 스트라이크 존을 아슬아슬하게 걸치는 공을 잘 던진다. 투수가 정직한 직구를 던지지 않으면서 타자를 유혹하듯이 시인은 상투어와 직설법을 피해서 애매모호한 이미지로 에둘러 말한다. 김광균 시인이 ‘눈이 내린다’고 쓰지 않고 ‘먼 곳에 여인의 옷벗는 소리’라고 노래한 식이다. 흔히 투수에게 ‘스트라이크 같은 볼’을 던지라고들 한다. 엄밀하게 말해서 모순된 말이지만 투수는 그런 공을 지향한다. 시인도 마찬가지다. 유치환 시인이 바람에 펄럭이는 깃발을 가리켜 ‘소리없는 아우성’이라며 모순어법을 쓰지 않았는가.

로버트 프랜시스의 시 ‘투수’는 일상의 대화와 시학(詩學)의 소통이 다르다고 했다. ‘남들은 이해받으려고 던지지만 그(투수)는 순간의 오해를 위해 던진다/(중략)/ 소통하지 않으려 하면서도 소통하기에 타자는 너무 늦게 이해한다’고 했다. 투수는 직구처럼 날아가다 타자 앞에서 뚝 떨어지거나 옆으로 휘는 변화구를 잘 던진다. 타자는 헛스윙하고 나서야 뒤늦게 깨닫는다. 시에선 역설과 반어가 변화구 노릇을 해 독자를 잠시 헷갈리게 하다가 뒤늦은 깨달음을 가져다준다.

류현진이 메이저 리그에 진출해서 첫 완봉승을 거두자 ‘아티스트’란 소리를 들었다. 빠른 공뿐 아니라 슬라이더와 체인지업, 커브까지 골고루 던져 타자를 농락하는 게 예술의 경지에 이르렀다는 얘기다. 투수는 야구공의 솔기를 눌러 잡는 방법을 달리해서 다양한 구종을 구사한다. 야구공을 묶은 실밥은 마치 상처를 꿰맨 자국 같기도 하다. 미국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는 “시는 후회와 향수(鄕愁), 실연의 아픔이 목구멍에 치밀어 오를 때 나온다”고 했다. 투수가 솔기를 손가락 끝으로 더듬듯 시인은 마음의 상처를 어루만진다. 투수의 날카로운 슬라이더는 감정의 일렁임을, 완만한 체인지업은 정열의 추스름을 노래한 시를 떠올리게 한다.

일본 소설가 다카하시 겐이치로는 장편 ‘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 야구’에서 야구에 담긴 심오한 뜻을 재기 발랄하게 그려냈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 중 투수는 야구를 통해 ‘겸손’을 배웠다고 한다. 그는 변화구의 주체는 투수가 아니라 공의 내적(內的) 원리라며 서양 철학을 들먹인다. ‘투수는 단지 계기를 만들어 줄 뿐이고 공이 공기의 저항 탓으로 제멋대로 움직인다’고 한다. 우리 문학에서도 야구를 통해 깨달음을 찾은 시인이 있다. 여태천 시인은 시집 ‘스윙’에서 야구를 통해 마음의 내밀한 풍경을 그려냈다. ‘플라이볼의 실재는/ 볼에 있는 걸까, 플라이에 있는 걸까/ 비어 있는 궁리(窮理)에 있는 걸까’라며 선사(禪師)의 화두 같은 질문을 독자에게 던지기도 했다. ‘도무지 아무 생각이 나지 않을 때/ 국자를 들고 우아하게 스윙을 한다’고도 했다. 일상의 공간인 부엌에서 마음을 비우고 야구장을 상상하면서 국자로 스윙을 한다는 시인이다. 그렇게 야구는 때때로 생각의 물꼬를 터준다. 시가 때때로 마음의 숨통을 열어주듯이.

투수는 공을 던진 뒤 새 공을 던지기에 앞서 포수 사인을 보며 머리를 흔든다. 시인은 말과 말, 행과 행 사이에서 머리를 쥐어짠다. “야구는 90%가 마음으로 하고, 10%를 몸으로 한다”는 말이 있다. 야구는 투수와 타자의 심리전이란 얘기다. 그렇게 따지면 문학은 사람과 언어 사이의 심리전이다. 문학과 야구의 이러한 유사성을 청소년을 위한 문학 교육에 활용해봄 직하다. 야구를 노래한 시와 소설을 아이들에게 읽혀서 문학의 재미를 일깨워주고 싶다. 그렇게 아이들이 문학을 읽다 보면 야구의 재미도 더 깊이 알게 될 터이다. 이야말로 인성 교육과 신체 교육의 상생(相生)이 아닌가.

출처: 조선일보, 2013/06/11, [박해현의 문학산책] 야구장에선 투수가 詩를 쓰네, 박해현 논설위원,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3/06/10/2013061003169.html?editorialTX

[커뮤니케이션 포인트] 준비 되어있지 않다면 말을 아껴라

‘얼굴이 너무 까매서 마운드에서 웃을 때 하얀 이와 공이 겹쳐보여서 진짜 치기 힘들다. 그래서 당한 경우가 많다’

‘가장 까다로운 투수가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한화 4번 타자 김태균이 롯데의 외국인 투수 유먼을 꼽으며 한 말이다. 이 말은 곧바로 인종 차별 발언이라는 비판에 직면한다. 스타 플레이어는 팀의 핵심 커뮤니케이터다. 한화는 6월 10일 현재 16승 1무 34패로 꼴찌다. 신생구단 NC에게도 4 게임차로 뒤지고 있는 참담한 성적이다. 구단이 어려운 상황에서 핵심 커뮤니케이터의 발언은 보수적이고 진중해야 한다. 김태균은 한화의 간판 선수이니 만큼 그의 메시지 하나하나는 현재 구단의 상황과 오버랩되면서 팬들에게 전달되고 반향을 일으킨다. 그의 메시지는 안그래도 어려운 팀 상황을 더 어렵게 만들었다.
한화 이글스 김태균 (이미지 출처: 한화 이글스 공식 홈페이지)

김태균은 한화의 간판 선수다.  (이미지 출처: 한화 이글스 공식 홈페이지 메인 이미지)

1. 200개가 넘는 별명을 지닌 사나이
2013년 6월 11일 현재 위키피디아에 소개된 김태균의 별명은 무려 48개다. 2009년에는 200개가 넘는 그의 별명이 프린트된 티셔츠까지 판매가 되었다고 하니 가히 ‘별명왕’이다. 대체로 많은 별명은 좋게 해석될 수 있다. 야구 실력이 뛰어나지 않은 무명 선수에게 이런 많은 별명이 있을리가 없다. 팬들의 많은 사랑과 지지를 받지 않는 이상 이런 수많은 별명이 생산될 수도 없다. 아울러 일반적인 야구선수와 다른 어떤 독특한 개성이 김태균에게 존재한다는 증거이기도 할 것이다.

2. 2011년 ‘김도망’이라는 별명이 생긴 이유
2011년 김태균에게 매우 부정적인 별명이 하나 추가된다. ‘김도망’이 바로 그것이다. 2010년 일본에 진출한 김태균은 2011년 시즌 중 일본 지바 마린스와의 계약을 중도해지하고 귀국하게 된다. 당시 인터뷰에서 김태균은 중도귀국의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국내에서 통원 치료를 받는 기간이 너무 길어졌다. 후반기가 시작되는 시점인데 운동을 너무 오래 쉬었다. 돌아가도 팀에 별 도움이 되지 못할 것 같아서 계약을 포기하기로 했다.””현 상황으로는 내년에도 팀에 큰 보탬이 될 것 같지 않았다. 나에게도 변화가 필요했다.”

인터뷰는 여기서 담백하게 끝냈어야 한다. 자신의 실패를 인정하고 중도 퇴단에 대해 구단과 팬들에게 양해를 구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그렇게 담백하게 끝내고 다시 시작하는 것이 필요했다. 그러나 김태균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하지 말았어야 할 말이 덧붙는다.

“동일본 대지진 후 솔직히 충격을 많이 받았다. 한국에 있는 가족들도 걱정을 많이 했다.””일본 2년째를 맞아 의욕적으로 올 시즌을 준비했다. 그러나 일본 대지진 이후 심적으로 많이 흔들렸고, 야구도 욕심처럼 되지 않았다. 그러다 부상과 부진이 겹쳐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고액 연봉을 받는 외국인 선수로서 많이 미안했다.”

동일본 대지진이 그의 2011년 전반기 부진한 성적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해서는 알 길이 없다. 실제 충격과 고통도 컸으리라 짐작하지만 이 부분은 그가 어쩔 수 없이 삼켜야 했던 말이다. 그는 삼켰어야 할 말을 뱉음으로 인해 일본에 계속 살아가야 할 사람들과 함께 했던 선수들에게 의도치 않은 폭력적 메시지를 던지게 되었다. 단지 현지의 일본인들에게만 상처가 되었을까? 전설적인 재일 야구인 장훈의 인터뷰를 보자.

(표정이 어두워지며) 일본 야구계의 한국 선수들에 대한 평가가 아주 떨어졌어요. 이승엽(오릭스)이 부진하고, 금년엔 지바롯데 마린스에서 뛰던 김태균이 갑작스럽게 퇴단했습니다. (한숨을 길게 토해내며) 참, 부끄럽습니다. 확실한 이유가 뭔지 모르겠지만, 김태균이 ‘지진이 무섭다’든가 ‘가족이 일본에서 뛰는 걸 반대한다’고 해서 한국으로 돌아간 것으로 압니다. 물론 타당한 이유일 수 있어요. 하지만, 많은 연봉을 받는 조건으로 일본에 진출하지 않았습니까. 여기다 선수라면 가족도 가족이지만, 운명을 함께하고, 동고동락하는 팀과 팀원들도 생각할 줄 알아야 해요.(비장한 표정으로) 대한민국 남자로서 정말 부끄러웠습니다. 밖에 나가면 일본 사람들이 저한테 뭐라고 해요. 물론 전 변명은 하지 않습니다. 그저 “죄송하다”는 말만 합니다.

담백하게 인정하고 양해를 구하면서 끝냈어야 좋았을 메시지에 필요없는 살이 붙음으로 인해 김태균은 많은 사람들(일본인, 재일한국인)에게 상처를 주고 자신은 ‘김도망’이라는 명예스럽지 못한 별명을 얻게 되었다.

3. 준비된 커뮤니케이터가 아니라면 말을 아껴라
유먼의 케이스에서도 같은 실패가 반복되었다. ‘독특한 투구폼 때문에 유먼을 상대하기 어렵다’ 정도로 끝났으면 좋았을 답변에 김태균 특유의 입담은 살을 붙였고 사태는 일파만파 커져버렸다. ‘입담이 좋다’, ‘말을 재미있게 한다’와 공중 영역의 커뮤니케이션 능력은 완전히 별개의 것이다. ‘입담’과 ‘재미있는 말’은 종종 세상에 통용되는 보편적 가치 기준을 전복시키거나 비웃으면서 힘을 얻는다. 공중영역의 커뮤니케이션은 완전히 다르다. 보편적 가치 기준을 충실히 수용하면서 자신의 메시지를 차별화하고 부각시켜야 한다. 공중영역에서 커뮤니케이션이 익숙치 못하다면 말을 삼가는 것이 좋다. 준비되지 못한 입담은 설화(舌禍)를 불러온다.

사족: 다문화 시대, 인종차별에 대한 불감증을 돌아보는 계기
우리사회의 인종차별에 대한 감수성을 고려할 때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 입장의 감수성) 사태는 유야무야 마무리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한화 구단을 통해 배포된 사과 메시지 역시 ‘농담이 와전되었다’는 식의 변명을 넘어서지 못했다. 실제 문제가 된 방송에서도 진행자들은 웃으면서 즐겁게 문제의 발언을 전달했다. 김태균을 통해 불거졌으나 사실 이번 문제는 인종차별에 대한 사회전반의 낮은 인식수준이 반영된 결과다.
KBO나 선수협 차원에서 다문화 시대에 걸맞는 캠페인이나 프로그램을 운영해 보는 것은 어떨까 싶다. 우리사회의 어두운 단면 하나를 재빨리 가리고 덮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전반의 고질적 병폐를 야구계가 앞장 서서 치유하는 계기로 삼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 과정에 김태균이 자신의 역할을 했으면 한다. 김태균에게 ‘김차별’이라는 새로운 별명 대신 ‘김평등’같은 별명이 생기길 기원한다.

by green

참고
일간스포츠, 2011/07/27, 김태균 “퇴단을 결정한 이유..日 대지진에 충격”, 김식 기자, 링크
박동희 컬럼, 2011/09/05, 장훈의 진심 “한국 남자로서 부끄러웠다.”, 박동희 기자, 링크
위키피디아, 김태균 (1982),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