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커뮤니케이션] 대통령의 언어, 협상의 언어, 반박의 언어, 언론의 편집 – 한 국가의 역사와 전략으로서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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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기록의 산물이다. 우리가 역사책을 읽는 것은 기록 속에 담긴 정서와 의미를 간접 체험하는 행위다. 역사는 승리한 자의 기록이라고 역사학자 E.H 카는 말했다. 하지만, 우리가 남겨야 하는 건 승자의 기록만은 아니다. ’현재의 우리‘가 사라지고 난 다음 후손들은 우리가 남긴 기록에서 ’현재의 우리‘를 어렴풋이 짐작할 것이기 때문이다.’

– 2007 남북정상회담 공동취재단 : 2007 남북정상회담 취재기 <50년 금단의 선을 걸어서 넘다> 발간사 중에서

1. 노무현 전 대통령

노무현 전 대통령은 회담을 기록하고 문서로 남길 것을 지시했다. 대화록이 공개될 것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기록을 남겼던 것은 후대에게 ‘사실’을 ‘전달’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후속 정권이 남북정상회담 혹은 남북관계를 해결하는 데 있어 참조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전략이 달라도 반드시 참고해야 하는 자료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언론에 자신의 말이 리크(leak)가 되었을 경우, 자신이 한 말이 정확하다면 한 번도 유출된 것에 대해서는 나무라지 않았다. 잘못된 전달에 대해 질책했던 적은 있다. 노 전 대통령은 정상회담의 기록을 그대로 기록할 것을 지시했을 때 이미 공개될 것으로 예견했다고 볼 수 있다. 그것을 외교의 전략과 국가정보로 활용하기를 바란, 전임 대통령의 의무라고 봤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때 기록은 정치가 아니라 정보다.

2. 국가정보원

국가정보원은 국가의 정보를 지키는 곳이다. 국내외의 수많은 정보와 관계를 다루는 국가 최고 정보관리 기관인 국정원은 고도의 전략적 판단과 기술을 담보해 일하는 곳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2007남북정상회담 발췌문의 공개는 부적절했다. 결정적으로 핵심요소에 대한 가치관리를 간과했다. 대내적으로는 최고급 정보가 언제, 어디서, 누구를 위해 관리되고 사용되어야 하는 것에 대한 실패라고 볼 수 있으며 대외적으로는 국가 최고급 정보를 만천하에 노출시키는 실수를 국정원이 주도한 것이라 볼 수 있다. 그것이 최대의 패착이다. 공개의 이유로 국가안위를 강조한 군인 출신 남재준 국가정보원장은 외교의 ‘전략적 모호성’과 ‘한국 이니셔티브’를 이해하고 있을까 하는 걱정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최고급 정보는 함부로 남에게 주는 것이 아니다. 국가이익이 모든 것에 우선하는 외교 전쟁에서는 더욱 그렇다. 국정원 댓글 사건이 이념의 이슈로 가려질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심각한 오해다. 위기는 그렇게 가려지지 않는다.

3. 박근혜 대통령

박근혜 대통령은 정파의 수장이 아니다. 정부의 대표다. 국가를 대표해서 외교를 관장하는 최종책임자다. 그런 점에서 이번 메시지 관리는 아쉽다. 정부의 연속선상에서 외교•국방•안보의 최고관리자라는 점을 놓쳤다. 박 대통령의 지지도가 상승곡선을 그리고 유지되고 있는 것은 정부의 대표이며 국가의 위기관리자로서의 일관성과 안정성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아니었다. 아마도 타협할 수 없는 신념의 문제로 접근한 것이다. 그래서 국가 외교 수장으로서의 스텐스를 잃게 된 것이다. 대한민국 외교는 스스로 최고급 정보를 유출한 것에 대한 후속 위기를 겪게 될 것이다.

대통령은 정보를 다룰 때 정권의 신념으로 다루기보다는 정부의 원칙으로 다루는 것이 맞다.

박 대통령의 외교는 정통파 우완 투수를 연상시킨다. 클래식 외교다. 그런데 자신의 철학과 스타일이 그렇다고 해도 전임 대통령의 생각과 같을 수는 없다. 특히 외교가 밀고 당기기, 타협과 협박이 상존하는 ‘협상의 언어’가 통용되는 영역이라면 더욱 그렇다.

그리고 국정원은 국가 최고 기밀을 다루는 특수기관이다. 국정원이 발췌본을 공개한 이 상황을 청와대 관계자가 ‘몰랐다’고 설명하는 것은 국정 관리의 공백을 의미하는 것이라는 명심해야 할 것이다.

4. 야권

야권은 반대하는 사람이 아니라 새로운 대안을 내놓는 사람들이다. 야권은 반대하고 저항하는 곳이라는 구체제의 명제는 수정되어야 한다. 사실 공개와 비공개의 논쟁은 부차적이었다. 이미 NLL에 대한 노 전 대통령의 언급과 진의는 남북정상회담을 전후해 이미 공개되어 있었다. 그렇다면 내용에 먼저 접근했어야 한다. 대선 때는 아예 NLL발언 자체가 없었다고 부인했다. 박선원 전 국가안보전략 비서관이 경향신문에 정상회담 전과 후 준비와 평가의 복기를 통해 회담 내용에 접근하기 전까지는 형식 논리만이 득세했다. 첫 단추가 잘못 끼워진 것이다. 남북정상회담의 결과물인 ‘남북관계 발전과 평화번영을 위한 선언(10.4선언)’ 5.항에는 ‘남과 북은 해주지역과 주변해역을 포괄하는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를 설치하고 공동어로구역과 평화수역 설정, 경제특구건설과 해주항 활용, 민간선박의 해주직항로 통과, 한강하구 공동이용 등을 적극 추진해 나가기로 하였다’고 되어 있다. 이것이 이 논쟁의 핵심이었다. 방어하는 프레임은 결코 성공하지 못한다.

5. 언론

`마지막으로 일부 보수 언론은 치사한 플레이를 했다. 몇 몇 언론의 동일한 제목은 차치하고, 위원장‘님’이라는 제목을 통해 마치 노 대통령이 김정일 위원장을 모시는 것처럼 표현한 것은 과장이다. 일부러 의도한 것이다. 형식의 측면에서, 대면해서 서로에게 존대하지 않은 회담이란 없다. ‘보고’라는 말의 주체도 노 전 대통령이 아니었다. 물론 비판할 수 있다. 그렇다면 정상회담 초기 부분 대화에서의 노 전 대통령의 파격적 언사에 대해 오히려 보수적으로 접근해야 설득력이 생기는 법이다. 사실 보다 논쟁에 집중한 결과다.

위기는 그저 소모되고 있다. 위기전략은 내부의 논쟁과 외부의 관계를 철저히 구분한다. 기본 중의 기본이다. 정파의 논쟁 앞에서 국익은 훼손되었다.

이 과정을 통해 모두가 소중한 교훈을 얻었기를 기대해 본다.

유민영 커뮤니케이션 컨설턴트

[RT] 강천석 칼럼, ‘기억에 대한 禮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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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와 기억에 관한 훌륭한 칼럼입니다. 비오는 월요일 오후에 읽기 좋습니다.[강천석 칼럼] ‘기억에 대한 禮儀’ 입력 : 2013.05.24 23:14역사는 기억의 곳간이다. 역사가는 창고 안에 뒤죽박죽 흩어진 기억과 체험의 뭉치에 저마다의 의미를 찾아줘 질서를 세운다. 정치가들은 나라 진로를 재설정(再設定)할 때마다 기억의 곳간 속 묵은 과거를 꺼내 먼지를 털고 자신의 정치 목표를 합리화하는 수단으로 동원한다. 역사 사용법 수준의 높낮이에 따라 한 나라와 한 개인의 기품(氣品) 차이가 드러나기도 하고 들키고 싶지 않은 속내가 폭로되기도 한다.1992년 6월 28일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이 발칸전쟁의 한복판 세르비아 수도 사라예보를 불시(不時)에 방문했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선 세르비아와 크로아티아가 ‘인종 청소’ ‘종교 청소’라는 구역질 나는 명분을 내걸고 벌이는 살육극(殺戮劇)의 포성(砲聲)이 울리고 있었다. 암(癌)과 투병하던 일흔여섯의 노(老)대통령은 세계 여론을 움직여 대량 학살의 참극(慘劇)에 브레이크를 걸어보려 했다. TV로 이 뉴스를 지켜보던 역사가 에릭 홉스봄의 입에선 ‘아…, 6월 28일…’하는 신음 같은 탄식이 새나왔다.

그때로부터 78년 전인 1914년 6월 28일 사라예보 네거리에서 벌어진 오스트리아 황태자 암살 사건을 떠올린 것이다. 이 암살사건은 몇 주일을 굴러가다 유럽 전체를 수천만명의 목숨을 앗아간 제1차 세계대전의 구렁으로 떠밀었다. 미테랑보다 한 살 아래 홉스봄은 “우리 또래 교육받은 유럽인이라면 누구나 ‘6월 28일 사라예보’보다 정치적 오판(誤判)의 비극적 교훈을 세계인이 되새기도록 할 더 좋은 무대가 달리 없다는 데 동의할 것”이라 했다. ‘6월 28일’을 방문 일로 고른 미테랑의 식견(識見) 덕분에 프랑스 품격도 그만큼 높아졌다.

얼마 전 아베(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항공자위대 훈련기 조종석에 앉아 의기양양하게 엄지손가락을 치켜든 모습이 공개됐다. 항공기 몸체엔 아베의 얼굴보다 큰 글씨로 ‘731’이란 숫자가, 그 위엔 작은 영문 글자로 ‘지도자 아베(leader S. ABE)’라고 적혀 있었다. ‘731’이란 숫자와 마주치면 모든 한국인과 중국인, 상당수 몽골인·러시아인·일본인은 물론이고 적지 않은 미국인도 자동적으로 일본군 생체(生體) 실험부대 ‘731부대’를 떠올린다. 타민족을 실험용 쥐 다루듯 세균을 주사하고 산 채로 얼리는 실험 대상으로 삼던 부대다.

‘지도자 아베’도 뒷맛이 고약하다. 나치 두목 히틀러의 공식 호칭이 ‘지도자(F�hrer)’라는 건 상식이다. 메르켈 독일 총리보고 그런 단어가 쓰인 독일군 항공기에 타보라고 권했다면 혼비백산(魂飛魄散)하거나 당장 지휘관을 문책했을 것이다. 헌법 96조를 개정하겠다며 ’96’이란 배번(背番)을 단 유니폼을 입고 야구장에 나타나는 아베 총리다. 그가 ‘731’과 ‘지도자 아베’라고 쓰인 항공기에 무심코 올랐을까. 아우슈비츠 유대인 수용소의 생존자인 어느 이탈리아 소설가는 나치 치하의 독일이 ‘아는 사람은 말하지 않고, 모르는 사람은 질문하지 않으며, 질문받은 사람은 대답하지 않던 나라’라고 했다. 일본이 다시 그런 시대로 떠내려가는 걸까.

미테랑이 방문했던 발칸전쟁에서 교전(交戰) 상대 세르비아와 크로아티아는 상대방의 도서관과 박물관을 집중 포격해 파괴하는 데 병적(病的)으로 집착했다. 도서관과 박물관은 승패의 갈림길과 관계없는 기억의 저장소일 뿐이다. 그런데 왜 그랬을까. 한국인이 가장 좋아한다는 작가 밀란 쿤데라는 ‘웃음과 망각의 책’에서 “상대를 말살하려면 그들의 기억을 지워 버려야 한다. 책과 역사를 파괴하고 누군가를 시켜 새 역사를 쓰게 하라. 그러면 자신의 과거와 현재를 망각하고 사라질 것”이라고 했다. 한때 유고연방이란 한 울타리 안의 두 가족이던 세르비아와 크로아티아가 상대의 기억을 말살하는 데 그토록 매달렸던 것도 같은 이유다.

우리는 우여곡절(迂餘曲折)을 돌고 또 돌아 오늘을 산다. 우리 달력엔 성한 달이 드물다. ‘3·1’ ‘3·15’ ‘4·3’ ‘4·19’ ‘5·16’ ‘5·18’ ‘6·3’ ‘6·10’ ‘6·25”6·29’ ‘7·27’ ‘8·15’ ‘8·29′ ’10·26′ ’11·3’ ’12·12’라는 숫자에는 ‘독립과 자유를 향한 거친 숨소리’ ‘분단의 아픔’ ‘동족상잔의 피 냄새’ ‘독재의 가슴앓이’ ‘망국(亡國)의 설움’이 범벅돼 있다. 수레바퀴가 돌아갈 때마다 갇힌 사람은 풀려나고 가둔 사람이 거꾸로 갇히는 게 역사다. 우리 수레바퀴는 몇 번을 돌고 돌았다.

사람은 은혜를 물결 위에 새기고 원한은 바위에 새긴다. 극단주의는 상대의 기억에 대한 예의(禮儀)를 팽개치고 서로 상처를 후벼 파 원한을 키운다. 아무리 튼튼한 공동체도 극단주의에 발목 잡히는 순간 무너지기 시작한다. 통일은 민족 전체의 ‘기억의 공동체’를 복원(復元)하는 일이다. 모든 형태의 극단주의를 배격하면서 상대의 기억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익히는 것이 통일로 나아가는 첫걸음이다.

출처: 조선일보 2013/05/24, 링크
사진 출처: 1992년 6월 28일, 사라예보를 방문한 미테랑 대통령,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