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태영의 ‘나는 이렇게 쓴다’- 글쓰기의 시작을 위한 노트 9] 글과 그림은 통한다. 글에도 가선을 그어보자.

인물 스케치를 할 때 여러 가지 가선을 활용하게 된다.
사람 얼굴을 묘사하는 경우,
머리 한가운데에서 코를 통과하는 중심선을 세로로 그린다.
이 중심선 위에 눈, , 입이 위치할 곳에 각각 가로로 보조선을 그린다.
일종의 기준이 되는 선이다.
이 가선에 따라 눈, , , 머리카락 등을 그려 넣으면 한결 수월하다.
스케치가 완성되면 중심선이나 보조선을 지우개로 지운다.
글을 쓰는 것도 스케치와 마찬가지다.
전체 글을 관통하는 큰 흐름을 먼저 생각한다.
일종의 중심선이다.
여기에 각각의 내용을 담을 항목을 미리 정한다.
말하자면 머리카락, , , 입이 들어갈 위치를 정해두는 것이다.

지방선거 출마자의 연설문을 쓴다고 가정하자.
전체를 관통하는 흐름은 출마의 이유일 것이다.
선거 후반이 되면 공약이 키워드가 될 수도 있다.
어쨌든 이것이 얼굴로 치면 세로 중심선에 해당될 것이다.
이제 각 내용을 담을 항목을 구분해 놓는다.
1) 인사, 2) 자기소개, 3) 출마 이유, 4) 자신의 강점, 5) 지역공약, 6) 지지호소
대체로 위와 같이 될 것이다.
이렇게 구분해놓으면 내용이 뒤죽박죽 섞일 염려가 없다.
한 항목에 지나치게 많은 내용이 담기고,
다른 항목엔 내용이 부족해질 염려도 없다.
눈과 입의 크기가 서로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경우가 없어지는 것이다.
연설문이 다 완성되면
보조선을 지워 그림을 완성하듯이 항목 표시를 지워버리면 된다.
때로는 연설자의 시간 배분을 위해서 남겨둘 수도 있다.

윤태영

[두 대통령과 함께한 전략적 글쓰기 27] 대통령이 강조했던 글쓰기 지침

관저 식탁에서의 2시간 강의
– 노무현 대통령의 글쓰기 지침

2003년 3월 중순, 대통령이 4월에 있을 국회 연설문을 준비할 사람을 찾았다.
노무현 대통령은 늘 ‘직접 쓸 사람’을 보자고 했다.
윤태영 연설비서관과 함께 관저로 올라갔다.

김대중 대통령을 모실 때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대통령과 독대하다시피 하면서 저녁식사를 같이 하다니.
이전 대통령은 비서실장 혹은 공보수석과 얘기하고, 그 지시내용을 비서실장이 수석에게, 수석은 비서관에게, 비서관은 행정관에게 줄줄이 내려 보내면, 그 내용을 들은 행정관이 연설문 초안을 작성했다.

그에 반해 노무현 대통령은 단도직입적이었다고나 할까?
아무튼 일을 효율적으로 하기를 원했다.
“앞으로 자네와 연설문 작업을 해야 한다 이거지? 당신 고생 좀 하겠네. 연설문에 관한한 내가 좀 눈이 높거든.”

식사까지 하면서 2시간 가까이 ‘연설문을 어떻게 써야 하는가?’ 특강이 이어졌다.
밥이 입으로 넘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몰랐다.
열심히 받아쓰기를 했다.
이후에도 연설문 관련 회의 도중에 간간이 글쓰기에 관한 지침을 줬다.

다음은 그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1. 자네 글이 아닌 내 글을 써주게. 나만의 표현방식이 있네. 그걸 존중해주게. 그런 표현방식은 차차 알게 될 걸세.
2. 자신 없고 힘이 빠지는 말투는 싫네.
‘~ 같다’는 표현은 삼가 해주게.
3. ‘부족한 제가’와 같이 형식적이고 과도한 겸양도 예의가 아니네.
4. 굳이 다 말하려고 할 필요 없네. 경우에 따라서는 질문을 던지는 것으로도 연설문이 될 수 있네.
5. 비유는 너무 많아도 좋지 않네.
6. 쉽고 친근하게 쓰게.
7. 글의 목적이 무엇인지 잘 생각해보고 쓰게. 설득인지, 설명인지, 반박인지, 감동인지
8. 연설문에는 ‘~등’이란 표현은 쓰지 말게. 연설의 힘을 떨어뜨리네.
9. 때로는 같은 말을 되풀이하는 것도 방법이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는 킹 목사의 연설처럼.
10. 짧고 간결하게 쓰게. 군더더기야말로 글쓰기의 최대 적이네.
11. 수식어는 최대한 줄이게. 진정성을 해칠 수 있네.
12. 기왕이면 스케일 크게 그리게.
13. 일반론은 싫네. 누구나 하는 얘기 말고 내 얘기를 하고 싶네.
14. 추켜세울 일이 있으면 아낌없이 추켜세우게. 돈 드는 거 아니네.
15. 문장은 자를 수 있으면 최대한 잘라서 단문으로 써주게.
탁탁 치고 가야 힘이 있네.
16. 접속사를 꼭 넣어야 된다고 생각하지 말게.
없어도 사람들은 전체 흐름으로 이해하네.
17. 통계 수치는 글을 신뢰를 높일 수 있네.
18. 상징적이고 압축적으로 머리에 콕 박히는 말을 찾아보게.
19. 글은 자연스러운 게 좋네. 인위적으로 고치려고 하지 말게.
20. 중언부언하는 것은 절대 용납 못하네.
21. 반복은 좋지만 중복은 안 되네.
22. 책임질 수 없는 말은 넣지 말게.
23. 중요한 것을 앞에 배치하게. 뒤는 잘 안 보네. 문단의 맨 앞에 명제를 던지고, 그 뒤에 설명하는 식으로 서술하는 것을 좋아하네.
24. 사례는 많이 들어도 상관없네.
25. 한 문장 안에서는 한 가지 사실만을 언급해주게. 헷갈리네.
26. 나열을 하는 것도 방법이네. ‘북핵 문제, 이라크 파병, 대선자금 수사…’ 나열만으로도 당시 상황의 어려움을 전달할 수 있지 않나?
27. 같은 메시지는 한 곳으로 몰아주게. 이곳저곳에 출몰하지 않도록
28. 백화점식 나열보다는 강조할 것은 강조하고 줄일 것은 과감히 줄여서 입체적으로 구성했으면 좋겠네.
29. 평소에 우리가 쓰는 말이 쓰는 것이 좋네. 영토 보다는 땅, 치하 보다는 칭찬이 낫지 않을까?
30. 글은 논리가 기본이네. 좋은 쓰려다가 논리가 틀어지면 아무 것도 안 되네.
31. 이전에 한 말들과 일관성을 유지해야 하네.
32. 여러 가지로 해석될 수 있는 표현은 쓰지 말게. 모호한 것은 때로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지금 이 시대가 가는 방향과 맞지 않네.;
33. 단 한 줄로 표현할 수 있는 주제가 생각나지 않으면, 그 글은 써서는 안 되는 글이네.

대통령은 생각나는 대로 얘기했지만, 이 얘기 속에 글쓰기의 모든 답이 들어있다.
지금 봐도 놀라울 따름이다.

언젠가는 음식에 비유해서 글쓰기에 대해 얘기한 적이 있다.

1. 요리사는 자신감이 있어야 해. 너무 욕심 부려서도 안 되겠지만.
글 쓰는 사람도 마찬가지야.
2. 맛있는 음식을 만들려면 무엇보다 재료가 좋아야 하지. 싱싱하고 색다르고 풍성할수록 좋지. 글쓰기도 재료가 좋아야 해.
3. 먹지도 않는 음식이 상만 채우지 않도록 군더더기는 다 빼도록 하게.
4. 글의 시작은 에피타이저, 글의 끝은 디저트에 해당하지. 이게 중요해.
5. 핵심 요리는 앞에 나와야 해. 두괄식으로 써야 한단 말이지. 다른 요리로 미리 배를 불려놓으면 정작 메인 요리는 맛있게 못 먹는 법이거든.
6. 메인요리는 일품요리가 되어야 해. 해장국이면 해장국, 아구찜이면 아구찜. 한정식 같이 이것저것 다 나오는 게 아니라 하나의 메시지에 집중해서 써야 하지.
7. 양념이 많이 들어가면 느끼하잖아. 과다한 수식어나 현학적 표현은 피하는 게 좋지.
8. 음식 서빙에도 순서가 있잖아. 글도 오락가락, 중구난방으로 쓰면 안 돼. 다 순서가 있지.
9. 음식 먹으러 갈 때 식당 분위기 파악이 필수이듯이, 그 글의 대상에 대해 잘 파악해야 해. 사람들이 일식당인줄 알고 갔는데 짜장면이 나오면 얼마나 황당하겠어.
10 요리마다 다른 요리법이 있듯이 글마다 다른 전개방식이 있는 법이지.
11. 요리사가 장식이나 기교로 승부하려고 하면 곤란하지. 글도 진정성 있는 내용으로 승부해야 해.
12. 간이 맞는지 보는 게 글로 치면 퇴고의 과정이라 할 수 있지.
13. 어머니가 해주는 집밥이 최고지 않나? 글도 그렇게 편안하고 자연스러워야 해.

이날 대통령의 얘기를 들으면서 눈앞이 캄캄했다.
이런 분을 어떻게 모시나.
실제로 대통령은 대단히 높은 수준의 글을 요구했다.
대통령은 또한 스스로 그런 글을 써서 모범답안을 보여주었다.

나는 마음을 비우고 다짐했다.
대통령을 보좌하는 참모가 아니라 대통령에게 배우는 학생이 되겠다고.
대통령은 깐깐한 선생님처럼 임기 5년 동안 단 한 번도 연설비서실에서 쓴 초안에 대해 단번에 오케이 한 적이 없다.

강원국 (라이팅 컨설턴트, 객원 필진)

[두 대통령과 함께한 전략적 글쓰기 24] 어떤 글의 형식을 택할 것인가?

맞는 그릇에 담아야 음식 맛 좋아
– 내용만큼 형식도 중요

아무리 맛있는 음식도 맞지 않는 그릇에 담기면 맛이 떨어진다.
훌륭한 요리사는 음식을 잘 만들뿐 아니라 그릇도 잘 고를 줄 알아야 한다.

글쓰기도 그렇다.
내용뿐만 아니라 형식도 고민해야 한다.

문학에도 장르가 있다.
시, 소설, 수필, 논설문…
작가들은 자기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나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기에 적절한 장르를 찾아 글을 쓴다.
같은 장르 안에서도 문체란 게 있으니 자신이 쓰고자 하는 내용에 맞는 것을 골라 써야 한다.
한 마디로 번지수를 잘 찾아야 글의 느낌이 살아나고 전달이 잘 된다.

신문 기사도 마찬가지다.
팩트(사실관계)가 주가 되는 기사를 박스로 처리한다든지,
분석이나 해설, 전망과 관련된 내용을 스트레이트로 다루는 일은 없다.

우리 일상에서도 부지불식간에 이런 형식에 대해 고민한다.
직장 상사에게 보고해야 할 일이 있을 때, 정식 보고서를 작성해야 할지, 이메일로 보고할지, 구두보고를 할지 생각한다.

특히 요즘은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이 있을 때, 이를 표출할 수 있는 여러 통로가 있다.
굳이 신문이나 방송이 아니더라도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스토리, 블로그 등 참으로 다양하다.
이 가운데 자신의 생각이나 느낌을 전달하기에 가장 적합한 매체를 선택하는 게 중요하다.

대통령이 말을 하고 글을 쓰는 것도 이와 같다.
대통령은 연설이나 기고 요청이 오면 우선 그것을 해야 할지부터 판단한다.
그리고 한다면 어떤 형식으로 할 것인지 생각한다.

대통령이 대외적으로 하는 말과 글은 여러 형식이다.

첫째는 연설문이다.
가장 중요한 자리라고 생각될 때 직접 참석해서 연설을 한다.

두 번째는 영상메시지다.
중요한 자리이기는 하지만 바빠서 갈 수가 없을 때이다.
청와대 안의 녹화하는 장소에서 영상을 녹화해 보낸다.

세 번째는 서면메시지이다.
영상메시지보다는 중요도가 떨어지는 자리에 보낸다.
주로 청와대 수석이나 장관이 가서 대통령의 메시지를 대독한다.

네 번째는 축전이나 조전이다.
서면메시지보다 내용도 짧고 중요도도 떨어진다.

그밖에 담화문, 기고, 서신이 있다.
‘제왕적 대통령’ 시절에는 담화문이라 하면 위압적인 내용의 글에 쓰였지만 두 대통령의 민주 정부에서는 ‘국민에게 드리는 글’이라 하여 현안에 대한 대통령의 생각을 밝히는데 쓰였다.
기고문은 무게감 있는 주제를 얘기할 때 쓰이고, 서신은 친근감을 보이는 글에 적합하다.

김대중 대통령은 ‘국민과의 대화’라는 형식으로 방송을 자주 활용했다.
‘국민과의 대화’가 있을 때는 공보수석실 안에 TF팀을 구성해 철저히 준비했다.
그렇다고 권위주의 정권 때처럼 질문을 미리 받거나 그리하지 않았다.
속된 말로 ‘짜고 치는 고스톱’ 같은 건 싫어했다.
대통령 스스로가 순발력이 있고 어떤 질문에 대한 답도 준비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럴 필요가 없었다.
그럼에도 대통령은 모의연습까지 할 정도로 신경을 많이 썼다.
복장과 넥타이까지 직접 챙겼다.
출연해서도 조크를 던지고, 어떤 질문에는 길게 어떤 질문에는 짧게 답하면서 지루한 느낌이 들지 않게 했다.
방송의 특성을 알고 그것에 맞춘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 때 ‘라디오 주례연설’을 검토한 적이 있다.
라디오 연설은 ‘노변담화’라 하여 미국의 루스벨트 대통령이 1930년 대 초반 뉴딜정책에 대한 국민적 지지를 얻기 위해 시도하여 좋은 반응을 얻은 후 널리 쓰이는 방식이다.
‘노변담화(爐邊談話)’라는 명칭은 경직된 형식이 아니라 난롯가에서 친구와 정담을 나누듯이 친근하게 다가간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결과적으로 시행하지 않았다.
야당에서 공중파의 편파적 사용이라고 문제 삼을 게 뻔했다.
대통령도 일방통행식 라디오 연설을 탐탁지 않게 생각했다.

강원국 (라이팅 컨설턴트, 객원 필진)

[두 대통령과 함께한 전략적 글쓰기 22] 애드리브를 어떻게 볼 것인가?

그럴 때만 일국의 대통령인가요?
– 노 대통령 애드리브를 위한 변명

노무현 대통령은 임기 내내 시달렸다.
‘일국의 대통령이 준비된 연설을 해야지, 왜 그렇게 즉흥적으로 연설을 하느냐.’고.
애드리브에 대한 끊임없는 공격이었다.
그에 대한 대답은 분명하다.
‘왜 그래야 하는데요? 그럴 때만 일국의 대통령입니까?’

노 대통령의 애드리브는 현장 교감을 위한 연설의 일부였다.
그가 애드리브를 하는 경우는 세 가지 상황이다.
첫째, 현장의 청중 상황이 예상과 다를 때
둘째, 앞서 연설한 사람이 준비해간 연설문 내용을 먼저 언급해 버렸을 때
셋째, 연설 현장에서 새로운 생각이 떠올랐을 때

이런 때에도 준비해간 연설문을 고집해야 하는 것인가?
순발력 있는 대응과 생생한 현장 연설이 어려워 써준 대로만 읽어야 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왜 굳이 그래야 하는지 모르겠다.

노 대통령은 현장에 가기 직전까지 고치기를 반복한다.
연설 시작 직전에 고친 연설문이 소위 ‘준비된 연설문’일 뿐이다.
그것을 연설 시작 후에 한 번 더 고친들 그게 무슨 문제인가.
기자들에게 사전에 나눠주는 준비된 연설문이란 것도 기자들의 취재 편의를 위해 제공되는 것일 뿐, 실제로 연설한 내용이 진짜 연설문이다.
준비된 연설문이란 건 그야말로 사전에 만들어 놓은 연설문일 뿐이다.

애드리브를 즐겨하는 클린턴과 오바마 대통령을 질타하는 것을 본 일이 있는가.
순발력이 뛰어나다, 매력적이다, 준비한 원고보다 감동을 준다는 등 칭찬 일색이다.

노 대통령 입장에서 애드리브는 상대에 대한 추임새이고 배려였다.
그에게는 원고를 줄줄 읽는 것은 청중에 대한 예의가 아니었다.
눈을 맞추고 그들과 교감하며 말하는 것이 최소한의 성의 표시라고 생각했다.
결코 가벼워서가 아니다.
‘본인은’으로 시작하는 권위주의적, 제왕적 대통령의 모습이 싫었을 뿐이다.

김대중 대통령 역시 청중의 반응에 대해 각별히 신경 썼다.
특히 국민의 마음을 읽어내고, 정서적으로 부응하려고 노력했다.
서민생활의 어려움에 대해서는 진심을 담아 공감했다.
때로는 눈물도 흘렸다.
순발력 또한 노 대통령 못지않게 뛰어났다.
하지만 예를 갖추는 방식이 달랐다.
김 대통령은 원고를 읽는 것이 청중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자신이 녹음해서 내려 보내준 원고, 즉 머릿속에 완벽하게 정리되어 있는 연설 내용도 글로 써서 그것을 다시 읽었다.

그렇다고 설화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2001년 국군의 날 기념사가 문제가 됐다.
“우리 역사를 되돌아보면 세 번의 통일 시도가 있었다. 신라와 고려의 통일은 성공했지만 세 번째인 6·25사변은 성공하지 못했다.”
야당과 보수언론이 벌떼 같이 문제 삼았다.
연설비서실도 벌집을 쑤셔놓은 것 같았다.

애드리브 자체는 나쁘지도 좋지도 않다.
따라서 애드리브를 하면 안 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좋은 애드리브는 현장감을 살리고 청중과 혼연일체가 되게 한다.
다만, 실패한 애드리브가 문제가 될 뿐이다.
애드리브로 인해 오히려 분위기가 썰렁해 진다거나, 예정된 연설 시간을 맞추지 못하는 것 등이 문제다.

노 대통령은 언젠가 이런 얘기를 했다.
“자네들 내가 즉흥적으로 얘기하는 것 같지? 물론 그럴 때도 있지. 그러나 대부분은 자네들 연설문을 보고 이 대목 정도에서 이런 얘기를 추가해야겠구나 생각을 한다네.
간혹 원고에 없는 얘기를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좀 길어지는 경우가 있지. 그때는 연설을 하면서 준비한 원고 어디쯤으로 되돌아갈지를 찾아본다네. 그래서 가끔 말을 하면서 원고를 뒤적거리지. 추가된 분량만큼 미리 준비한 연설에서 빼야 하니까. 그래야 연설시간을 넘기지 않고 끝낼 수 있거든.”
실제로 노 대통령은 귀신 같이 본래 원고로 돌아와 연설시간을 맞추곤 했다.

노 대통령의 애드리브가 환영받은 적이 한 번 있다.
2005년 취임 2주년 국회 국정연설 때이다.
대통령은 연설 말미에 원고에 없는 내용을 말했다.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선진한국과 한나라당의 선진한국이 같아 이를 표절했다는 얘기가 있는데, 증빙자료를 제출하면, 로열티를 제공하는 방안을 생각해 보겠다.”
대통령의 위트였다.
한나라당 의원들의 박수가 터져 나왔고, 다음날 언론들도 우호적인 기사를 내보냈다.

끝으로, 대통령의 회고록 <성공과 좌절>에서 직접 얘기한 대목을 보면 그의 진솔함을 엿볼 수 있다.
“저도 대통령이 될 줄 알았으면 미리 연습을 하는 것인데, 체질적으로 제가 허리를 잘 굽히는 편이고 윗자리에 앉으면 불안해지고, 말은 위엄 있게, 행동은 기품 있게 할 필요가 없는 환경 속에서 살았습니다. 준비 안 된 대통령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이 있는데, 다른 점에서는 승복하지 않지만 언어와 태도에서 이야기한다면 충분히 훈련받지 못했던 점은 있습니다.”

강원국 (라이팅 컨설턴트, 객원 필진)

[두 대통령과 함께한 전략적 글쓰기 18] 같기도, 다르기도 했던 두 대통령의 연설문

예의 중시 vs 교감 중시
– 두 대통령 연설문의 차이

김대중 대통령을 모시다 노무현 대통령을 만나 깜짝 놀랐다.
어쩌면 이렇게 닮았는지.
지도자는 원래 이렇구나, 이래야 하는구나 생각했다.
두 분 모두 호기심과 인정이 많았다.
독서와 사색, 토론하기를 좋아했다.
사안의 본질을 꿰뚫어 보는 통찰력, 미래를 보는 혜안을 가졌다.
그리고 그것을 말과 글로 표현할 줄 알았다.

그밖에도 공통점이 참 많았다.

두 분 다 연설문에 공을 많이 들였다.
그것이 국민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했다.
공리공론보다는 실사구시를 추구했고, 사례나 수치를 들어 전하고자 하는 내용의 신뢰도를 높이려고 했다.
무엇보다 좀 더 나은 글을 쓰고자 하는 의욕이 넘쳤다.
나아가 글쓰기 자체를 즐거움으로 여겼다.

또한, 논리를 중시했다.
김 대통령 연설문은 대단히 논리적이다.
서면메시지나 축전과 같이 짧은 글도 기승전결의 논리적 구조를 중요시했다.
앞뒤가 인과관계로 들어맞아야 한다.
소위 ‘3김시대’에 기자들이 “YS의 말은 아무리 받아 적어도 나중엔 기사 쓸 것이 없는 반면, DJ의 말은 그대로 기사가 된다.”고 할 정도로 김 대통령 연설문은 하나의 완결된 구조를 가졌다.
노무현 대통령 역시 율사 출신답게 논리를 중시했다.

차이점 또한 많다.

노무현 대통령 연설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단어가 무엇일까?
솔직, 소탈, 강조어법이 아닐까.
이에 비해 김대중 대통령은 설득, 논리, 반복이 생각난다.

먼저, 일반론에 대한 생각이 달랐다.

노무현 대통령은 연설에 일반론을 담는 것을 꺼려했다.
자신만의 독창적인 논리와 주장, 제안을 담으려고 했다.
2003년 5월 제11차 반부패 국제회의(IACC) 연설문 초안에서 부패의 해악에 대해 언급한 후, 국제 공조를 통해 부패를 일소해야 한다고 썼다.
대통령은 전면 수정을 지시했다.
부패가 안 좋은 것은 모르는 사람이 없고, 국제 공조 역시 공자님 말씀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것보다는 대한민국이 부패 척결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고,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해나갈 것인지, 우리의 이야기를 넣으라는 주문이었다.

이에 비해 김대중 대통령은 일반론에 가까운 지론을 펼치는 걸 즐겨했다.
자신의 생각체계를 완벽하게 갖춘 사상가의 면모였다.

“인류는 농업혁명, 도시혁명, 사상혁명, 산업혁명과 지식정보혁명 등 다섯 번의 혁명을 거쳤으며, 21세기는 눈에 보이지 않는 지식과 정보, 문화가 인류 진보를 이끄는 힘이 될 것입니다.”

“무엇이 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합니다. 모든 사람이 인생의 사업에서 성공할 수는 없지만, 원칙을 가지고 가치 있게 살면 성공한 인생이고, 이러한 점에서 우리 모두는 성공한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다음은, 인용에 대한 선호 차이다.

노 대통령은 남의 말이나 속담, 격언을 인용하는 것을 탐탁지 않게 여겼다.

그에 반해 김 대통령은 세계적인 학자나 권위 있는 국제기구를 자주 인용했다.
마치 대학교수의 좋은 강의를 듣는 것 같은 연설문을 썼다.

‘합리적 기대이론’을 주창한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로버트 루카스 교수의 말을 인용하여 연설문 초안을 작성한 적이 있다.
“경제는 그 주체들이 기대한대로 이뤄진다. 좋아질 것이라고 생각하면 실제로 좋은 방향으로 가고, 나빠질 것이라고 생각하면 나빠진다.”
이후에 대통령은 ‘경제는 심리다.’며 이 내용을 몇 차례 인용하곤 했다.

타고르의 시 ‘동방의 등불’도 단골 메뉴였고, “2050년경에는 우리나라의 국민소득이 8만 달러를 넘어 일본, 독일 등을 제치고 미국 다음의 경제 강국이 될 것이다.”는 골드만삭스의 보고서를 간혹 인용했다.

많은 사람이 아는 대로 즉석연설에 대한 견해 차이도 있다.

김 대통령은 반드시 사전에 준비한 연설문을 읽었다.
정치인은 그래야 한다는 철학을 갖고 있었다.
1년 중 3개의 연설문은 아무리 바빠도 직접 썼다.
연두회견 모두연설과 광복절 경축사, 국군의 날 연설문이다.

노 대통령은 청중과 직접 호흡하는 현장 교감형 연설을 선호했다.
정색을 하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일반인들이 평소 쓰는 표현으로 자연스럽게 얘기 나누듯이 연설하는데 주안점을 뒀다.
하지만 노 대통령도 준비는 철두철미했다.
연설해야 할 날짜가 오기까지 고치고 다듬고 또 수정했다.
애드리브까지도 사전에 생각하는 경우가 많았다.
중요한 현안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밝히는 글은 ‘국민께 드리는 글’이라는 형식으로 직접 작성했다.

김 대통령은 메시지의 반복을, 연설의 시작은 무조건 ‘존경하고 사랑하는 국민 여러분’이었다.
노 대통령은 변화와 새로운 시도를 좋아했다.

김 대통령은 배경에서부터 파급효과에 이르기까지 친절하게 풀어서 설명하는 방식을 택한다.
그래서 첫째, 둘째, 셋째 하는 식으로 풀어나가는 것을 자주 사용했다.
첨단기술을 얘기할 때는 반드시 IT, BT, NT, ET, CT, ST 여섯 가지를 다 들었다. 초안에서 IT, BT만 넣어놓으면 대통령이 수정하면서 나머지 4개를 꼭 추가했다.
국민의 정부의 성과를 설명할 때에도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지식기반사회, 생산적 복지, 화해와 협력의 남북관계까지 한 묶음으로 언급되어야 한다.
하나라도 빠트리면 반드시 채워 넣는다.
그래서 연설문이 전반적으로 길었다.
‘그리하여’, ‘그러므로’ 등 접속사도 많이 썼다.

그에 반해 노 대통령은 문단 처음에 단도직입적으로 규정하고 뒤에 풀어서 설명하는 식이었다.

표현방식에 있어서도 김 대통령은 겸양의 표현을, 노 대통령은 자신 있는 표현을 좋아했다.

노 대통령은 철학적이고 큰 담론을 좋아한 반면, 김 대통령은 서생적 문제인식과 상인적 현실감각이 함께 반영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사상가적 면모를 보여주는 한편, 다른 한편으로는 국민들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고 현실적 대안을 제시하는 내용이 함께 조화를 이루도록 했다.
이상만 추구하면 글이 공허해지고, 현실에 집착하면 가치가 없어진다는 지론에 따른 것이다.

김 대통령은 말을 신중하게 고르고, 조심스럽게 접근했다.
각계의 여론을 수렴하고 관련 부처와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었다.
특히 광복절 경축사는 적어도 두어 달 전부터 비서실장 주재의 태스크포스팀을 구성하여 각계각층의 의견을 꼼꼼하게 수렴했다.
그래서 튀는 내용이 없었다.

노 대통령은 상대적으로 직설적으로 하고 싶은 얘기를 하는 타입이었다.
에둘러 표현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말하고자 하는 바를 당당하게 얘기하고자 했다.

두 대통령은 여러 면에서 다르면서 같았고, 같으면서 달랐다.
하지만 분명한 것 한 가지는 있다.
우리 현대사에서 가장 필력이 뛰어난 정치인으로 두 사람을 꼽는데 아무도 이견이 없을 것이라는 점이다.

강원국

[두 대통령과 함께한 전략적 글쓰기 17] 시간과 노력을 들여라

손녀뻘 되는 비서 앞에서 연습하는 대통령
– 성실함과 준비성이 글쓰기의 기본

두 대통령의 글쓰기 특징은 성실하게 미리 준비한다는 점이다.

“글은 머리로 쓰는 게 아니라 엉덩이로 쓰는 것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말이다.
그만큼 시간과 노력이 들어가야 나오는 게 글이란 얘기다.

성실과 근면을 유독 강조하고 본인 스스로 그 모범이 되었던 김대중 대통령.
역대 대통령 가운데 연설문 작성에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한 대통령이었다.

두 대통령은 글을 빨리 쓰는 스타일은 아니었다.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꾹꾹 눌러쓰는 타입이라고 할까?
그렇게 글을 많이 쓰고, 글쓰기의 달인이면서도 글 쓰는 것을 힘들어 했다.

특히 노무현 대통령은 허리가 좋지 않아 오랫동안 책상에 앉아 글을 쓰는 것이 쉽지 않았다.
언젠가 이런 얘기도 했다.
“말로는 글이 잘 써지는데 손으로 쓰려면 힘이 들어요.”
그렇다고 일필휘지가 안 되는 건 아니다.
급하면 급한 대로 뚝딱 글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그중에서도 좋은 카피를 만드는 데 있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물론 이 또한 성실함의 결과이다.
평소 그 주제에 대해 골똘하게 고민한 것이 어느 순간 한 줄의 명카피로 툭 튀어나온 것이다.

김대중 대통령 역시 조어의 천재였다.
정곡을 찌르는 한 마디를 찾아냈다.
우리 모두가 잘 아는 ‘철의 실크로드’, ‘햇볕정책’, ‘행동하는 양심’이 모두 김 대통령의 작품이다.

이 모든 것은 준비 없이 되는 일이 아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일 년 동안 해야 할 주요 연설에 대해 연초부터 생각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농부가 일 년 농사 계획을 짜듯이 멀리 내다보고 큰 틀에서 메시지를 배분했다.
연설비서실에 그렇게 구상한 내용이 메모로 전해지기도 했다.
“올해 4.19에는 이런 얘기를, 5.18에는 이런 메시지를 내보내면 어떨까요?”
그것은 3.1절, 광복절 등 주요 기념일이 다가올 때도 마찬가지였다.
어느 참모보다 먼저 머릿속으로 연설문을 쓰기 시작했다.
2006년 광복절을 두 달 가까이 앞둔 어느 날, 연설비서실은 미처 생각도 못하고 있는데, 부속실에서 연락이 왔다.
“다음 주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돌아오는 광복절 경축사에 어떤 메시지를 담을 것인지 토론하겠다고 하십니다. 연설비서관이 발제를 하라고 하셨습니다.”
대통령은 그 바쁜 와중에서도 참모들보다 먼저 생각하고 먼저 준비했다.

노 대통령은 임기가 끝나갈 무렵 책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회고록이 아니었다.
재임 때의 경험을 글로 남겨 후일에 참고가 되었으면 했다.
성공만이 아니라 실패의 기록을 남기고자 했다.
몇몇 비서관이 이 일을 돕는 일에 참여했다.
회의를 할 때마다 대통령이 발제하고 토론을 주도했다.
그리고 숙제를 내줬다.
하지만 다음 회의 때 만나면 가장 성실하게 숙제를 해온 사람은 늘 대통령이었다.

김대중 대통령은 더 철저하게 준비했다.
세세한 부분까지 꼼꼼하게 챙겼다.

먼저, 의견부터 듣기 시작했다.
광복절 연설의 경우, 전 부처와 각종 위원회에서 보고서가 올라왔다.
청와대 안팎의 사람들을 모아 식사를 하면서 직접 청취하기도 했다.
국민들이 듣고 싶은 내용이 무엇인지 확인하고자 했다.
어느 한쪽의 얘기만 듣는 것도 경계했다.
진보 쪽 얘기를 들으면 보수진영의 얘기도 들어 균형을 잡으려고 했다.

그런 후 각종 자료를 검토했다.
공보수석실에서도 많은 참고자료가 올라갔다.
대통령은 어느 것 하나 그냥 지나치는 법 없이 모두 읽었다.
괜찮다 싶은 내용은 따로 놔뒀다가 다시 읽었다.

또한 사람을 만나고 자료를 읽으면서 틈틈이 메모를 했다.
재임 중 여러 계기에서 발언할 내용을 적은 노트가 무려 27권이나 됐다고 하니, 일 년에 다섯 권 이상의 메모를 하면서 자신이 할 말을 미리 준비한 셈이다.

이런 요지 정리를 통해 머릿속에 얼개가 서면 비로소 집필에 들어간다.
각고의 시간 끝에 연설문이 완성되면 직접 서서 읽어본다.
그저 한번 읽어보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입에 완전히 붙을 때까지 읽고 또 읽었다.
혼자 해보기도 하지만, 어떤 때는 이희호 여사를 앞에 두고, 또 어느 때는 손녀처럼 생각했던 관저 비서팀의 장옥추 씨에게 들어보라며 연설을 했다.
그러다가 더 좋은 표현이 생각하면 수정한다.
글을 쓰는 시간보다 이렇게 퇴고하는 시간이 더 걸릴 만큼 철두철미하게 준비했다.

손녀뻘 되는 비서 앞에서 연설을 해 보이는 일흔의 대통령을 머릿속에 그려보라.
정말 멋있지 않은가.

다시 노무현 대통령의 신년연설에 얽힌 이야기 두 토막
2006년 1월 신년연설
연설 시간이 40분으로 정해졌다.
대통령은 “신년연설에 뭘 담지?”란 질문을 시작으로 다섯 차례에 걸쳐 15시간 동안 연설문 내용을 구술했다.
대통령이 검토한 자료만 해도 A4 용지 500장 분량.

2007년 1월 임기 마지막 신년연설
대통령은 대한민국이 지금 어디에 서 있으며, 어디로 가야 하는지 충정 어린 고언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오랫동안 준비했다.
대통령은 두툼한 책 한 권을 들고 생중계 카메라 앞에 섰다.
다 읽으려면 2시간이 넘는 분량의 원고였다.
시간을 맞추기 위해 원고 중간 중간에 경과 시간 표시를 해두었다.
그러나 대통령은 한 마디 한 마디를 건너 뛸 수가 없었다.
오히려 원고에 없는 내용도 추가할 정도로, 하고 싶은 말, 꼭 해야 할 말이 많았다.
결과는 안 좋았다.
대통령 스스로 ‘페이스를 잃었다’고 할 정도로 시간 조절에 실패했다.
준비 안 된 연설이라는 질타가 쏟아졌다.
하지만 대통령에겐 임기 중 가장 오랜 시간, 가장 심혈을 기울여 준비한 연설이었다.

강원국 (라이팅 컨설턴트, 객원 필진)

[두 대통령과 함께한 전략적 글쓰기 16] ‘대통령 스피치라이터’란 자리

보이지 않는 유령이 되어라
– 대통령 스피치라이터

스피치라이터.
우리말이 있으면 좋은데 딱히 없다.
연설문 대필자? 연설 작가? 좀 이상하다.
그냥 스피치라이터가 좋겠다.

대통령 스피치라이터는 보람 있는 자리다.
대통령의 시간을 절약해주는 일을 하기 때문이다.
청와대 모든 참모들이 이런 일을 하지만, 다른 참모들이 만든 일의 결과물은 대통령이 참고만 할뿐이다.
연설문은 대통령이 직접 보고 읽어야 한다.
본인 것이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통과할 수가 없다.
마음에 들 때까지 대통령의 시간적 부담을 덜어주는 게 스피치라이터 임무다.

대통령 스피치라이터의 조건은 무엇일까?
거두절미하고 얘기하면, 고스트 라이터(Ghost Writer)가 되어야 한다.
이것이 가장 중요하다.

노무현 대통령께서 이런 말을 했다.
“이건 내 연설문이 아니야.”
스피치라이터에게 너무나 치명적인 지적이다.

자기를 버려야 한다.
스피치라이터에게는 ‘내’가 없다.
언젠가 어느 고위 공무원이 ‘공무원에겐 영혼이 없다’고 해서 화제가 된 적이 있는데, 스피치라이터야말로 영혼이 있어선 안 된다.

대신에 연설하는 사람에 빠져 살아야 한다.
그 사람에게 빙의되어야 한다.
그 사람의 아바타가 되어야 한다.
연설 현장에 가면 그분은 어떤 생각, 무슨 말을 할까?
그것만 생각해야 한다.
그 사람의 논리 전개 방식과 고유의 표현 방식, 어투나 호흡, 즐겨 쓰는 용어와 농담까지 철저하게 따라가야 한다.
그래서 특유의 개성과 색깔이 드러나도록 해야 한다.
누가 봐도 이 연설문은 그 사람의 것이라는 생각이 들게 해야 하는 것이다.

연설문을 쓰면 김 대통령 연설문은 호남 출신 행정관이, 노 대통령 연설문은 부산 출신 행정관이 어투까지 흉내 내면서 몇 번씩 읽어봤다.
김대중 대통령은 ‘그리하여’, ‘~해마지 않습니다’, ‘말하자면’ 같은 표현을 자주 썼다.
노 대통령 역시 자주 쓰는 단어들이 있었다.
예를 들어 ‘더 이상’은 늘 ‘이상 더’라고 써야 한다.
연설문에 ‘더 이상’으로 써놓아도 대통령은 ‘이상 더’라고 읽었다.
이런 표현이 많다.
연설비서실은 각자 책상에 붙여놓고 가급적이면 대통령이 자주 쓰는 단어를 썼다.
자신을 드러내는 순간, 그는 이상 더 스피치라이터가 아니다.

2007년 신년 기자회견 연설문
1월말, 대통령 신년연설이 있었다.
그리고 며칠 후 신년 기자회견을 갖게 되어 있었다.

기자회견이 있을 때마다 모두말씀이란 게 있다.
김대중 대통령 때에는 일 년 중 가장 큰 연설문이 두 개였다.
연두기자회견 모두말씀과 광복절 경축사.
노 대통령 때부터는 대통령 신년연설이 생겨 기자회견은 기자들과의 질의응답에 초점이 맞춰졌다.

그래서였다.
대통령께서 며칠 전에 있었던 신년연설에 많은 얘기를 했으니,
거기에서 빠진 얘기만 넣어 간략하게 작성해달라고 전화로 지시했다.
정말 간략하게 작성해 보고했다.
행사 당일 아침 대통령은 대노했다.
내가 대통령의 뜻을 잘못 읽은 것이다.
‘간략하게’의 의미를 내 편한 대로 해석한 것이다.
스피치라이터로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쯤에서 내가 고스트 라이터를 하게 된 배경에 대해 고백을 하는 게 좋을 것 같다.
나는 여러 사람 앞에서 말하는 게 심각할 정도로 부담스럽다.
대학 4학년 때, 논문을 발표해야 졸업할 수 있었다.
학우들 앞에서 발표할 용기가 도무지 나지 않았다.
발표하는 날 아침, 병에 술을 한 통 담아왔다.
내 차례가 되기 직전에 화장실에 가서 벌컥 마셨다.
시간이 지날수록 취기가 올랐지만 떨리지는 않았다.

청와대에 들어가기 직전, 대우그룹에서 마지막 직급은 과장이었다.
하지만 차장으로 대우 생활을 마칠 수 있었다.
차장 진급이 내정이 된 상태에서 승진자 교육에 들어가지 않고 미뤘다.
교육 과정 중에 3분 스피치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어느 날 대우그룹 회장비서실이 해체를 맞았다.

스피치라이터의 두 번째 조건은 잘 알아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말귀를 알아먹어야 한다.
알아듣는 게 쉬운 것 같아도 그렇지 않다.
대통령의 구술을 함께 들어도 열이면 열 모두 해석이 다르다.
그 중에 분명 답이 있기는 한데, 아무튼 서로 다른 얘기를 한다.
“대통령은 이런 말씀을 하고 싶은 거야.”
“이 말을 꺼내고자 하는 대통령의 의도는 이것이야.”
십인십색이다.

모르면 물어봐야 한다.
대충 깔아뭉개고 앉아서 쓸 일이 아니다.
필요하면 다시 구술을 해달라고 요청해야 한다.
노무현 대통령은 스피치라이터를 집무실 옆방으로 불렀다.
청와대 역사에서 처음으로 연설비서관이 본관에 위치하게 된 것이다.
처음 이사한 날, 대통령께서 연설비서관실에 왔다.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는 우리에게 대통령은 차도 한 잔 안주냐며 경직된 분위기를 누그러뜨렸다.
냉장고에 있는 콜라 한 잔을 따라드렸다.
대선 유세 때, ‘청와대 복도에서 참모들과 어깨 툭 치며 인사하는 대통령이 되고 싶다’고 한 얘기가 빈말이 아니었구나 생각했다.

김대중 대통령과 업무적으로 만나는 기회는 영상메시지 녹화 때 뿐이었다.
모든 것은 필문필답이고, 구두로 받는 코멘트는 부속실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들었다.
영상메시지는 대통령이 직접 현장에 가지 못하는 경우에 녹화를 해서 보내는 연설 대용이다.
그런 영상메시지가 한 달에 서너 건은 됐다.
일정을 잡아 한 번에 두 건 정도를 녹화하는데, 해당 메시지 초안을 작성한 행정관이 배석하게 되어 있다.

그밖에 스피치라이터로서 조건이 한두 가지 더 있을 수 있다.
몸이 튼튼해야 하고, 약간의 순발력이 있으면 금상첨화다.
간혹 번갯불에 콩 구워먹듯이 연설문을 써야 하는 때도 있어서 그렇다.
김선일 씨 테러사건과 관련하여 담화문을 써야 하는 경우가 그랬다.
새벽에 연락을 받고 사무실에 나와 곧장 써서 대통령께 보고해야 했다.
이런 때는 애간장이 탄다.

스피치라이터는 단순히 연설문만 쓰지는 않는다.
연설문을 쓰는 과정에서 대통령에게 들은 내용 중에 다른 비서실에서 알아야 할 것은 해당 부문에 알려주는 통로 역할도 한다.
연설문에서 ‘무엇을 하겠다’고 대통령이 언급했는데, 해당 부처에서 액션플랜을 갖고 있지 않으면 낭패이기 때문이다.
‘올해의 3대 목표, 5대 과제’ 이런 식으로 묶어 새로운 슬로건을 만들어주는 것도 스피치라이터의 몫이 되기도 한다.
대통령의 입을 통해 발표되면 그것이 곧 목표와 과제가 된다.

하지만 스피치라이터는 메시지의 내용을 만드는 사람은 아니다.
그것은 정책 담당자의 몫이다.
다만, 그것을 설득력 있게 전달하는 것이 스피치라이터의 역할이다.
그런데 간혹 내용까지 만들어내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실제 그렇게 해보려는 스피치라이터도 있다.
그것은 착각이다.

대통령 스피치라이터는 힘들기만 한 것은 아니다.
얻는 것도 많다.
무엇보다 ‘대통령’이라는 시대의 거인에게 배울 수 있다.
대통령의 생각을 연설문 쓸 때처럼 제대로 배울 기회는 없다.

스피치라이터는 자부심도 크다.
대통령의 생각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잘 안다는 자부심이다.
연설비서실은 늘 대통령의 최근 생각을 쫓는다.
각종 행사나 회의, 혹은 식사자리에서 대통령이 하는 한마디 한마디를 챙겨서 쫓아가야 한다.
이것이 연설문 쓰는 것만큼 중요하다.
아니, 이것을 잘하면 연설문은 거저 써진다.

기업이나 단체에서도 CEO의 말을 따라가는 담당자를 둘 필요가 있다.
CEO도 결국은 말로 경영을 하기 때문이다.

대통령 연설문은 해당 부처와 각종 위원회 등에서 초안을 받는다.
글 자체로선 매우 훌륭하다.
그러나 다시 써야 한다.
기본적인 정보만 취하고 대통령의 생각으로 새로 써야 한다.

이 세상에 글을 잘 쓰는 사람, 생각이 뛰어난 사람은 많다.
하지만 김대중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의 연설문을 쓸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다.
매일 매일 이분들의 생각을 쫓아간 사람만 쓸 수 있다.
그러니 스피치라이터는 글을 잘 쓰는 사람이 아니다.
생각이 많은 사람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런 사람일수록 자기의 생각으로 자기 글을 쓰려고 하기 때문이다.
노 대통령은 유시민 전 장관을 비롯해 내로라하는 문필가들에게 의견을 구하고 연설문 초안을 받아보기도 했다.
그것은 김 대통령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단 한 번도 채택된 적이 없다.
자신의 연설문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강원국 (라이팅 컨설턴트, 객원 필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