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페인과 커뮤니케이션] 오바마의 연두교서 전략2 – 연설이 끝난 후에도 연설을 계속하라.

1. 미국시간 20일 저녁 6:30분, 오바마의 신년 의회 연설을 2시간 반 앞두고 백악관은 온라인을 통해 오바마의 연설문을 전격 공개했다. 관례적으로 엠바고 조건으로 연설 직전에 언론에 배포하기는 했지만 이렇게 국민들에게 먼저 직접 공개하는 것은 처음이다. 사전공개에 따른 모든 위험을 감수하며 연설문을 게재한 이유는 하나다. 연설문을 미리 (혹은 실시간으로 함께) 보고, 마음에 드는 내용을 주변에 트위터나 페이스북으로 퍼나르도록 유도하기 위함이다.

2. 미리 준비한 것은 이것만이 아니다. 백악관에서 준비한 연설 중계 영상은 반분할 화면으로 편집되어 연설 내용과 함께 화면 오른쪽에는 중요 키워드, 인포그래픽, 도표 등 다양한 자료 화면이 시청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나타난다. 유튜브에 올려 공유하기에 손색이 없다.

3. 이날 오바마 대통령은 자신 만만했다. 현 상황에 대해 ‘위기의 그늘은 지나갔다’고 정의했고, 앞으로 미국 중산층 경제를 되살리겠다고 선언했다. 이를 위해 부자증세를 예고하며 금융 재벌 등 사회 기득권에 대해 선전포고를 보냈다. 국민들의 지지를 이끌어내, 개혁안 싸움에서 공화당을 불리한 위치로 내려 앉히려는 것이다.

4. 결과는 백악관이 기대한 대로다. 국정연설이 끝난 직후 CNN에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81%가 2015년 연설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시장조사업체 닐슨에 따르면 국정연설 중 트위터에는 실시간으로 관련글 260만건이 올라왔으며, 오바마 대통령의 계정에 반응을 보내는 글도 4만4000건에 달했다고 한다.

5. ‘우린 아직 안끝났어요(We’re Not Finished Yet)’
오바마의 신년 의회 연설이 끝나고 백악관 홈페이지에 올라온 멘트이다. 이 멘트 밑으로는 SNS 공유를 기다리는 연설 주요 메시지들이 감각적인 이미지로 디자인되어 정렬되어 있다. 2015년 백악관은 미 헌법이 규정한 ‘State of the Union’의 의무를 ‪#‎SOTU라는‬ 새로운 형식의 커뮤니케이션으로 바꾸어 놓는데 성공한 것이다.

 

김성은(캠페인 컨설턴트)

[말과글] 네가 어떤 사람인지 세상에 보여주라

* 5월19일 동아일보 <횡설수설>에서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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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태영의 ‘나는 이렇게 쓴다’- 글쓰기의 시작을 위한 노트 14] 글의 세계에서는 백화점보다 전문매장이 경쟁력이다.

 

독자는 다른 사람의 글을 읽으면서
무언가를 배우거나 얻고자 한다.
반대로 작가는 글을 쓰면서
자신이 알거나 취재한 사실들을 담으려고 노력한다.
특히 정치인들은 연설 기회가 있을 때마다
자신의 많은 것들을 이야기하려고 한다.
국회의원들은 대정부질문을 하게 되면
출석한 장관들 모두를 상대로 질문을 하려고 한다.
자신의 모든 관심사를 제한된 시간에 쏟아내려고 한다.
대통령도 크게 다르지 않다.
자신이 추진하고 있는 모든 정책을 설명하려고 한다.
모든 계층을 상대로 최소한 한마디라도 전하려고 한다.
그러다 보면 연설이나 글이 백화점식이 되고 만다.
백화점식 연설의 가장 큰 단점은
연설 후에 뚜렷하게 기억나는 대목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2007년 초 노무현 대통령의 신년연설이 그랬다.
대통령이 욕심을 많이 냈다.
마지막 신년연설임을 의식하여 많은 내용을 담으려 한 것이
오히려 산만해지면서 의미 있는 메시지 전달에 실패하고 말았다.
평소처럼 대중연설 스타일로 하면
특정한 주제에 대해 비교적 깊이 설명하고 다른 주제들은 건너뛰게 된다.
그러면 청중들은 특정 주제에 대해 강한 메시지를 전달받게 된다.
후보수락연설, 취임사, 신년연설, 광복절 경축사 등은 주요계기의 연설이다.
관심이 집중되기 때문에 대통령도 내용 하나하나에 신경을 쓰게 된다.
상대적으로 연설 시간도 길어질 수밖에 없다.
주요 계기의 연설에서 명연설이 나오기 힘든 이유이다.

좋은 글, 좋은 연설이 되려면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A friend to everybody is a friend to nobody”란 말이 있다.
글의 세계에서는 백화점보다는 전문매장이다.

윤태영

[윤태영의 ‘나는 이렇게 쓴다’- 글쓰기의 시작을 위한 노트 9] 글과 그림은 통한다. 글에도 가선을 그어보자.

인물 스케치를 할 때 여러 가지 가선을 활용하게 된다.
사람 얼굴을 묘사하는 경우,
머리 한가운데에서 코를 통과하는 중심선을 세로로 그린다.
이 중심선 위에 눈, , 입이 위치할 곳에 각각 가로로 보조선을 그린다.
일종의 기준이 되는 선이다.
이 가선에 따라 눈, , , 머리카락 등을 그려 넣으면 한결 수월하다.
스케치가 완성되면 중심선이나 보조선을 지우개로 지운다.
글을 쓰는 것도 스케치와 마찬가지다.
전체 글을 관통하는 큰 흐름을 먼저 생각한다.
일종의 중심선이다.
여기에 각각의 내용을 담을 항목을 미리 정한다.
말하자면 머리카락, , , 입이 들어갈 위치를 정해두는 것이다.

지방선거 출마자의 연설문을 쓴다고 가정하자.
전체를 관통하는 흐름은 출마의 이유일 것이다.
선거 후반이 되면 공약이 키워드가 될 수도 있다.
어쨌든 이것이 얼굴로 치면 세로 중심선에 해당될 것이다.
이제 각 내용을 담을 항목을 구분해 놓는다.
1) 인사, 2) 자기소개, 3) 출마 이유, 4) 자신의 강점, 5) 지역공약, 6) 지지호소
대체로 위와 같이 될 것이다.
이렇게 구분해놓으면 내용이 뒤죽박죽 섞일 염려가 없다.
한 항목에 지나치게 많은 내용이 담기고,
다른 항목엔 내용이 부족해질 염려도 없다.
눈과 입의 크기가 서로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경우가 없어지는 것이다.
연설문이 다 완성되면
보조선을 지워 그림을 완성하듯이 항목 표시를 지워버리면 된다.
때로는 연설자의 시간 배분을 위해서 남겨둘 수도 있다.

윤태영

[두 대통령과 함께한 전략적 글쓰기 4] 뺄 것이 없을 때까지 줄여라

다이어트 해야 할 것은 살만이 아니다.
– 글은 짧을수록 좋다

“할 말이 별로 없으면 짧게 하는 것으로도 한몫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좀 더 간결하게 다듬어 보십시오.”
<2005년 11월 APEC 정상회의 공식 만찬사>

“가급적 줄일 수 있으면 더 줄여주기 바랍니다. 핵심이 없이 지루한 글은 짧은 것만 못합니다. 길이를 줄이는데 망설일 일은 아닙니다.”
<2005년 12월 말레이시아 경제인 오찬 연설문>

“짧은 글일수록 압축된 어휘와 간결한 문장으로 써야 힘이 생깁니다. 다시 한 번 다듬어 주시기 바랍니다.” <2006년 1월 신년사>

“내용이 너무 길면 긴장감을 잃으면서 지루하고 문장이 어려워집니다. 듣다가 앞의 얘기를 기억하지 못할 정도가 된다면 문제입니다.”
<2006년 11월 제43회 무역의 날 기념사>

연설비서실에서 올린 초안에 대한 노무현 대통령의 코멘트다.
모두 줄일 수 있으면 더 줄이라는 주문이다.
글쓰기의 기초에 대한 지적이다.
아직도 이 내용을 보면 얼굴이 화끈거린다.

그렇다.
전하고자 하는 내용을 전할 수만 있다면 글은 짧을수록 좋다.
글이 길다고 감동이 더 있고, 더 깊은 인상을 주는 것은 아니다.
광고 카피처럼 때로는 한 문장, 단어 하나가 긴 글보다 더 힘 있고 감동적인 경우가 많다.
오히려 글이 길면 초점이 흐려지고, 읽는 이로 하여금 말하고자 하는 핵심이 무엇인지 파악하기 어렵게 할 공산이 크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저런 말을 늘어놓다 보면 오해와 억측을 나을 수 있다는 점이다.
특히 언론에 발표하는 성명서나 어떤 사안에 대해 해명을 하는 경우에는 각별히 유념해야 한다.
글의 초점을 잘못 해석하거나 의도적으로 왜곡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 “당신의 글에 이런 내용이 있지 않느냐?”고 꼬투리를 잡아도 할 말이 없다.

굳이 이런 악의적인 경우가 아니더라도, 읽는 사람의 수고와 시간을 배려하는 것은 중요하다.
별다른 감동도, 유익도, 재미도 없는 글을 긴 시간 읽게 하는 것은 도리가 아니지 않은가.

노무현 대통령은 늘 자신이 전하고자 하는 바를 함축하는 한 단어, 한 문장을 찾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예를 들어, 인사 청탁은 안 된다는 단호함을 보이기 위해 “인사 청탁하면 패가망신한다.”는 말을, 부동산 투기 근절 의지를 전하기 위해 “강남불패면 노무현도 불패다.”라고 말했다.

독자나 청중은 긴 글이나 장황한 말 속에서 한 단어, 한 문장만 기억한다는 게 노 대통령의 지론이다.
글을 쓸 때는 바로 그 문장을 찾아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한 문장을 어떤 때는 ‘표어’라고도 했고, ‘카피’, ‘명제’라고도 했다.
바로 이 표어, 카피, 명제를 놓고 늘 고심했다.

짧은 글쓰기는 긴 글보다 결코 쉽지 않다.
짧은 글 속에 모든 것을 얘기해야 하고, 또한 핵심을 찔러야 하기 때문이다.

에이브러햄 링컨의 게티즈버그 연설은 단 266개 단어였다.
이 자리에 함께 했던 당대 최고의 웅변가 에드워드 에버렛은 2시간 가까운 연설을 했다.
그야말로 ‘연설하고 있네.’를 몸소 보여준 것이다.
결국 아무도 에버렛의 말을 기억하는 사람은 없다.

누구나 아는 얘기 중에, 더 극단적인 사례도 있다.
프랑스 작가 빅토르 위고가 출판사에 원고를 보낸 후 반응이 궁금해서 이렇게 편지를 보냈다.
“?”
이에 대해 출판사에서 답을 보내왔다.
“!”
그 결과로 <레미제라블>이 탄생했다.

혀가 짧아 고생했던 처칠도 짧은 연설로 유명하다.
“포기마라, 포기마라, 절대 포기하지 마라.”
1941년 영국 옥스퍼드 대학 졸업식 축사에서 단 세 마디만 했지만, 아직도 명연설로 많은 사람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도 짧은 연설을 자주 했다.
2005년 울산에서 열린 제86회 전국체육대회
준비해간 축사에는 “2010년까지 스포츠·레저산업을 세계 10위권으로 끌어올리겠다.”는 등의 장황한 비전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런데 막상 현장에 가보니 야간 개회식에 열광하는 수 만 명의 청중과 선수단이 보였다.
과연 그들의 귀에 거창한 5년 후의 비전이 들릴까?
그런 얘기를 들을 준비도 되어 있지 않은 듯했고, 그런 말을 할 상황도 아니었다.

대통령은 즉석에서 이렇게 연설하고 끝냈다.
“선수단 여러분, 최선을 다하십시오. 정정당당하게 승부하십시오. 그러면 모두 승리자가 될 것입니다.”
이 짧은 연설 안에 대통령은 당시 정치권과 경제계에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까지 담았다.
지루하고 긴 연설을 예상했던 청중들의 반응이 뜨거웠던 것은 물론이다.

2005년 제60회 경찰의 날 축하행사 자리
환갑을 맞은 터라 야외에서 성대한 축하행사가 계획됐다.
그런데 갑작스레 폭우가 쏟아졌다.
위험을 무릅쓰고 시범을 보인 여경들이 추위에 떨고 있었다.

대통령의 연설 차례가 됐다.
역시 60주년인지라 경찰에 대한 당부를 담은 긴 연설이 준비되어 있었다.
그러나 대통령은 원고를 덮었다.
그리고 말했다.
“경찰관이라는 사실이 큰 자랑과 긍지가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지원하겠습니다. 국민 여러분, 우리 경찰에게 힘찬 응원의 박수를 보냅시다. 경찰의 날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어떤 긴 연설보다 경찰에 대한 대통령의 따뜻한 애정이 녹아있었다.

이에 반해 김대중 대통령은 긴 연설을 선호했다.
그것이 국민에 대한 성의이자 예의라고 생각했다.
정책 등에 대해 첫째, 둘째, 셋째…하는 식으로 소상하게 설명하는 쪽을 택했다.

어느 쪽이 더 좋은 연설인지, 우열이 있을 수 없다.
수사학의 대가인 키케로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글은 쓰는 사람의 스타일에 따라, 글의 성격에 따라, 그리고 글을 읽는 대상이 기대하는 바에 따라 길 수도 짧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 한 가지는 있다.
군더더기가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글을 쓸 때는 더 넣을 것이 없나를 고민하기보다는 더 뺄 것이 없는지를 한 번 더 생각해봐야 한다.

더 이상 뺄 것이 없는 글이 좋은 글이다.
군살은 사람에게만 좋지 않은 게 아니다.

강원국 (라이팅 컨설턴트, 객원 필진)

[첫문장, 끝문장] 수사학 – 말하기의 규칙과 체계, 키케로

키케로

0. 1969년 닉슨 미국대통령이 프랑스를 방문했다. 드골 프랑스대통령은 만찬이 열린 엘리제궁에서 환영연설을 했다. 닉슨은 그 연설에 감명 받았다. 내용과 표현, 단어선택이 탁월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연설은 원고가 없이 즉흥적으로 이뤄졌다. 닉슨 일행 중 한 사람이 드골에 물었다. “원고도 없이 어떻게 그렇게 훌륭한 연설을 할 수 있습니까?” 드골은 대답했다.

“사실 미리 써놓은 원고를 밤새 외운 겁니다. 즉흥연설이 어디 있겠습니까.”

인간은 언어로 소통한다. 생각은 언어를 통해서 정리되고, 언어로 전달된다. 리더들의 말과 글은 더 중요하다. 특히 공식석상의 말 한 마디, 한 단어는 신중하게 엄선된다. 로마의 위대한 수사학자였던 키케로의 연설에 대한 저술은 말을 잘 하고자 하는 사람들이라면 꼭 봐야 할 고전이다. 그는 연설의 영역을 크게 세 가지로 나눴다. ‘즐거움’을 위한 연설, 정책설득을 위한 연설, 그리고 법정에서의 연설이다. 각각 연설에 대한 핵심 문장을 소개한다. 현재에도 가지는 함의가 있으니 참고하시면 좋을 듯하다.

1. 즐거움을 위한 연설

청중에게 즐거움을 주기 위해 연설해야 할 경우, 연설의 내용을 어떤 순서로 구성해야 하는가에 대한 방법은 다양하다. 연설 시기의 특성을 고려해야 하고, 어떤 화제를 올려야 할지 따져야 한다. 예를 들어 삼단 논법과 같이 소주제에서 대주제로 넘어가거나 반대로 큰 것에서 세세한 것의 순서로 말할 수도 있다. 혹은 세세한 것을 말하다가 큰 주제를 던지거나 단순한 것들을 나열하다가 복잡한 것을 설명하기도 하고, 명백한 사실을 말하다가 불명확한 것을 묻기도 하고 신빙성 있는 내용들을 말하다가 믿기 힘든 것을 더하기도 해야 한다. 변칙을 주어 연설에 흥미를 더하는 것이다. 이른바 장식(수식)에 해당하는 것 모두를 고려해야 한다.

2. 정책설득을 위한 연설

서론은 짧아야 한다. 때에 따라 서론을 생략해도 된다. 청중은 자신의 실익에 관련된 부분에만 관심이 있기 때문이다. 너무 많은 사실을 늘어놓아서도 안 된다. 사실은 과거나 현재 사안에 속한다. 설득은 미래에 대한 것이다. 정책설득을 위한 연설은 신뢰와 감동을 일으켜야 한다.

3. 법정에서의 연설

원고가 말하는 방식과 피고가 말하는 방식은 다르다. 원고는 먼저 사건의 경과를 추적하고, 개별 논거들을 명확하고 신속하게 내놓고 날카롭게 결론 내려야 한다. 원고의 주장은 증거자료들로 보강되어 단단해져야 한다. 핵심사항을 중심으로 각각의 사안과 주장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원고는 감정에 호소할 줄 알아야 한다. 특히 연설을 마무리할 때 판관의 감정을 격정적으로 자극해야 한다. 마무리가 아닌 다른 부분에서도 때때로 감정에 호소해야 한다. 법정연설의 목적은 재판관을 분노케 하는 것에 있다.

정리 김정현

출처: 키케로, <수사학>, 도서출판 길, 2012년 제1판 8쇄.

[정치 커뮤니케이션] 케네디 대통령 재임기의 침묵을 떠올리자 – 대통령의 연설에 대한 케네디의 생각

케네디 대통령의 믿음

케네디 대통령의 믿음

0. 11월 22일이면 존 F. 케네디 서거 50주기다. 미국에서는 케네디 암살의 미스터리를 다룬 뉴스들이 올해도 어김없이 보도되고 케네디와 그의 통치를 조명한 서적들이 출간되는 등 분주한 모습이다. 클린턴 전 대통령의 스피치라이터였던 제프 셰솔(Jeff Shesol)이 케네디와 관련한 글을 뉴요커에 기고했다. 자신의 말에 책임을 지는 정치인에 대한 갈증은 한국이나 미국이나 비슷한 것 같다.

1. 1962년 8월 케네디 재임기, 뉴욕타임즈는 75명 역사학자들이 평가한 역대 대통령들의 평가 결과를 보도했다. 케네디는 기사를 읽고 “놀라움을 표했다.” 우드로 윌슨과 테오도르 루즈벨트의 높은 순위 때문이었다. 그는 윌슨이 적어도 멕시코에 대한 내정 개입, 제1차 세계대전 개입 결정등 적어도 두가지 재앙에 대해 책임이 있다고 생각했다. 흥미로웠던 점은 그의 평가 기준이 ‘정치적 교화’보다 ‘확실한 성취’에 있었다는 점이다. 목표에 대한 성취 없이 교화에 힘쓰는 윌슨, 루즈벨트는 제임스 포크, 해리 트루먼같은 실질적 성취를 이룬 이들보다 낮게 평가되어야 한다고 본 것이다.

2. “말은 많았으나 성취한 것은 적다.” 흥미로운 역설은 이런 그의 비판이 그의 재임기에 대한 비판과 정확히 일치한다는 점이다. 이는 분명히 잘못된 사실이다. 케네디의 업적은 내부적(미국 평화봉사단, 우주개발 프로그램)으로도 외부적(핵전쟁 위기 탈출)으로도 명확했고, 종교적인 관용부터 공공영역 전반의 공적인 사고방식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점은 과소평가 될 수도, 되어서도 안 된다. 하지만 그의 사후 50주기, 그는 그의 성취보다 그의 말로 기억되고 있다. 케네디 스피치라이터였던 테드 쇠렌센(Ted Sorensen)은 전후 냉전기, 어떤 인물의 단어와 경구들도 케네디의 것만큼 강한 국가적 기억을 남길 순 없었다고 평가했다. 그의 지적은 상징적이다. 케네디에 비할만한 유일한 커뮤니케이터로 평가받는 로널드 레이건의 스피치라이터들은 그들이 작성한 문구에 대해서도 같은 평가를 요구할 지 모른다. 하지만 레이건의 사상은 오래 지속되었지만, 그의 문구들은 ‘단명’했음을 부정할 수 없다.

3. 우연히 이뤄지는 건 없다. 케네디는 정치 입문 초기 명연설가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의 초기 스피치라이터 중 한 명은 “케네디가 어떤 원고라도 그 생명과 리듬을 말려 죽여버린다.”고 불평했을 정도다.) 하지만 그는 10년 이상 부지런히 노력했다. 윈스턴 처칠의 연설을 분석했고, 보이스 코치의 컨설팅을 받았다. 그는 연설에 대한 가르침들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였다. 쇠렌센이 그에게 준 많은 명연설문들을 모두 읽고, 활용을 위해 인상적인 구절을 적곤 했다. 정치적 연설의 힘은 그에게 자명한 것이었다.

4. 하지만 그에게 연설은 내재되었다가 주문에 의해 발현되는 힘이 아니었다. 케네디는 연설이 ‘올바른 단어들을 이용해 물을 와인으로 바꿀 수 있는 연금술’과 같다는 생각을 믿지 않았다. 대신 연설이 ‘실천의 선도자’라는 확고한 믿음을 갖고 있었다. 그는 어떤 일을 행할 때까지 무엇이라도 말하는 데 싫증내지 않았다. 그렇지 않다면, 이는 ‘수다’에 불과할 뿐이었다. 이는 대중을 지루하게 할 뿐 아니라 그에 대한 의심을 키울 것이라고 생각했다. “단어 그 자체론 충분치 않습니다.” 케네디는 암살로 인해, 연설할 기회를 갖지 못했던 댈러스에서의 연설에서 이를 말할 예정이었다.

5. 오늘 날 케네디는 고대 유물처럼 보인다. 최근의 대통령들은 루즈벨트처럼 너무 많이 말한다. 그들은 연설하고, 트윗하고, 국제 회담, 의회의 협상, 문화 행사, 국가 기념일 등에 대해 하루도 빠짐없이 논평한다. 2011년 10월, 오바마 대통령은 1985년 슈퍼볼 챔피언 시카고 베어스와 2011년 NCAA 여자농구 챔피언 텍사스 A&M Aggies를 찬양했고, 스티브 잡스와 무하마드 카다피의 죽음에 대한 논평을 했고, 레이프 에릭슨 데이(Leif Erikson Day)와 미국 캐릭터 기념주간(National Character Counts Week)을 다시 한 번 선언했다. 그리고 투나잇쇼(The Tonight Show)에 출현했다. 이 모든 것이 ‘얘기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은’ 많은 예들 일부다. 이는 현 대통령을 힐난하기 위함이 아니다. 내가 연설문을 작성했던 빌 클린턴과 케네디의 연간 연설문 양을 비교해 보자. 1962년 케네디는 목차와 어펜딕스를 제외하고 903페이지를 채웠다. 1994년 이는 두배가 되었다. 무려 2159페이지에 달했다. 물론 클린턴은 오바마처럼 24시간, 7일 체제에서 재임했다. 케네디는 8시간, 5일 근무의 이점을 누렸다. 대통령들에게 침묵을 지키는 것은 사치다. 만약 그랬다간 반대파가 그의 공백을 차지할 것이다.

6. 우리는 연설과 실천의 연결을 약화시켜 왔다. 역사학자 아서 슐레신저(Arthur Schlesinger)는 내게 “정치 연설은 ‘저급 수사학’의 형태가 되었다.”고 말했다. 그의 의도는 연설의 질이 케네디 시대보다 떨어졌다는 것이 아니었다. 대통령들의 말이 많아지며 역설적으로, 그들의 말의 무게가 떨어졌음을 의미했다. 11월 22일은 케네디의 서거일이다. “케네디가는 울지 않는다.”라고 그의 일가가 말했었던 것 같이 우리도 울지 말자. 대신 그 시대의 다른 어떤 것을 불러일으키자. 케네디의 억양과 명문대신 의미있는 순간, 잠시 침묵을 지킴으로써 실질적 성취 위에 놓여있는 진정한 ‘통치의 생각’에 다가서자.

이현동

출처: 뉴요커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