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태영의 ‘나는 이렇게 쓴다’- 글쓰기의 시작을 위한 노트 14] 글의 세계에서는 백화점보다 전문매장이 경쟁력이다.

 

독자는 다른 사람의 글을 읽으면서
무언가를 배우거나 얻고자 한다.
반대로 작가는 글을 쓰면서
자신이 알거나 취재한 사실들을 담으려고 노력한다.
특히 정치인들은 연설 기회가 있을 때마다
자신의 많은 것들을 이야기하려고 한다.
국회의원들은 대정부질문을 하게 되면
출석한 장관들 모두를 상대로 질문을 하려고 한다.
자신의 모든 관심사를 제한된 시간에 쏟아내려고 한다.
대통령도 크게 다르지 않다.
자신이 추진하고 있는 모든 정책을 설명하려고 한다.
모든 계층을 상대로 최소한 한마디라도 전하려고 한다.
그러다 보면 연설이나 글이 백화점식이 되고 만다.
백화점식 연설의 가장 큰 단점은
연설 후에 뚜렷하게 기억나는 대목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2007년 초 노무현 대통령의 신년연설이 그랬다.
대통령이 욕심을 많이 냈다.
마지막 신년연설임을 의식하여 많은 내용을 담으려 한 것이
오히려 산만해지면서 의미 있는 메시지 전달에 실패하고 말았다.
평소처럼 대중연설 스타일로 하면
특정한 주제에 대해 비교적 깊이 설명하고 다른 주제들은 건너뛰게 된다.
그러면 청중들은 특정 주제에 대해 강한 메시지를 전달받게 된다.
후보수락연설, 취임사, 신년연설, 광복절 경축사 등은 주요계기의 연설이다.
관심이 집중되기 때문에 대통령도 내용 하나하나에 신경을 쓰게 된다.
상대적으로 연설 시간도 길어질 수밖에 없다.
주요 계기의 연설에서 명연설이 나오기 힘든 이유이다.

좋은 글, 좋은 연설이 되려면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A friend to everybody is a friend to nobody”란 말이 있다.
글의 세계에서는 백화점보다는 전문매장이다.

윤태영

[두 대통령과 함께한 전략적 글쓰기 12] 좋은 글을 위해선 집중하고 몰입하라

개그콘서트가 인기인 이유
– 몰입해서 써라

“책을 읽을 수도 글을 쓸 수도 없다.”

“사형을 언도받은 상황에서 껌 종이, 과자 포장지에 못으로 깨알 같이 눌러 썼다.”

앞의 글은 노무현 대통령이 남긴 마지막 글의 일부이다.
뒤의 글은 김대중 대통령의 옥중서신 얘기다.

두 글 모두 절박함이 묻어난다.
죽음을 앞둔 심정만큼 절절한 것이 있을까.

그 절박한 상황에서 글을 쓰고 있다.
노 대통령은 글조차 쓸 수 없는 절망의 끝자락에서 글을 쓰고 있다.
김 대통령은 언제 사형이 집행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글을 쓴다.
글을 통해 세상을 바꾸고 싶었고, 그 글에 전심전력을 다한 두 분이었다.

중학교 아니면 고등학교 국어 시간에 배웠다.
글을 잘 쓰려면 삼다(三多), 즉 다독(多讀), 다작(多作), 다상량(多商量)을 해야 한다고 했다.
송나라 구양수의 말이다.

많이 읽고, 많이 써야 한다는 건 알겠는데, 다상량(多商量)에 대해선 갸우뚱했었다.
우선, 상(商)과 양(量)이란 한자 사용이다.
상인할 때 상(商), 수량할 때 양(量)이 아니다.
헤아릴 상(商), 헤아릴 양(量)이란 뜻으로 쓰였단다.
헤아리고 또 헤아려?
전심을 다해서 몰입하란 뜻일 것이다.

노 대통령 역시 글쓰기를 위해선 세 가지가 필요하다 했다.
독서, 사색, 토론이다.
대통령은 바쁜 청와대 생활에서도 반드시 짬을 내서 책을 읽었다.
청와대 참모는 물론 학자, 관료, 시민단체 사람들과 밤늦게까지 토론하는 것을 좋아했다.
그만큼 글에 대한 애착이 남달랐다.
아니, 사는 이유 중의 하나가 글을 쓰기 위해서였는지 모른다.

개그콘서트란 프로그램이 있다.
시청률이 높을 때는 30%를 넘나 들으니 가히 국민 프로그램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게 거저 주어진 것은 아닐 것이다.
만들어진 프로그램을 보는 것은 잠깐의 웃음과 재밋거리지만,
그것이 만들어지기까지는 얼마나 많은 불면의 밤과 뼈를 깎는 창조의 과정이 있었겠는가.
창조적 아이디어는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지 않는다.
죽을힘을 다해 몰입해야 나오는 것이 창조력이다.
그것은 영감이나 직관과는 다르다.
‘열정’과 ‘고민’의 산물이며, 뭔가를 개선하고 바꿔보려는 문제의식의 결과물이다.

글쓰기도 마찬가지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집중하고 몰입해야 한다.
무엇보다 절박해야 한다.

2007년 5·18 민주화운동 27주년 기념사를 쓸 때다.
대통령에게 보고할 날짜까지 글을 쓰지 못하면 상상조차 하기 싫은 일이 벌어지는데, 좀체 풀리지를 않는다.
대통령도 뾰족한 아이디어가 없다고 했다.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에게 의견도 구해봤다.
발을 동동 거리며 몇날 며칠을 그것만 생각했다.
밥 먹을 때, 걸어 다닐 때도.
그런데 어느 날 꿈속에서 글이 술~술~ 써졌다.
깨자마자 부리나케 메모했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완벽하게 맞아떨어지는 글이었다.
이때만이 아니다.
궁하면 통한다고 했든가.
반드시 써야할 상황이면, 그래서 그것만 생각하면 꿈에서 글이 써지고는 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거의 늘상 그랬다.
그분의 집중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연설문 회의가 있을 때면 대통령은 연서비서실에서 작성한 초안을 죽 한 번 훑어본다.
그리고 탁 덮는다.
자리에서 일어나 뒷짐 지고 구술을 시작한다.
“자네들이 써온 연설문 3페이지에 있는 부동산 문제 있지? 그걸 다음 페이지로 넘겨보게. 그리고 다음 페이지에 있는 교육 문제를 2페이지 복지 얘기 뒤쪽에 배치해 보게.”

대통령은 머릿속에 연설문 전체를 그린 듯이 입력시켜 놓고 자유자재로 재배치를 한다.
심지어 초안에 있는 표현이나 문구 하나까지 구체적으로 지적하며 이렇게, 저렇게 고치라고 얘기한다.
그러면 그 연설문을 쓴 우리는 주문을 따라가지 못해 노트북 앞에서 허둥대기 일쑤였다.
나는 노 대통령이 특별히 머리가 비상해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몰입의 결과라고 생각한다.
집중하기 때문이다.

많이 읽고, 많이 써보지 않아도 죽을힘을 다해 머리를 짜내면 누구나 좋은 글을 쓸 수 있다.
목숨 걸면 누구나 글 잘 쓸 수 있다.
왜, 글 쓰는 데 목숨까지 걸어야 하느냐고?
그래서 못쓰는 것이다.

들은 얘기 하나 하고 끝내겠다.
노태우 대통령도 연설문에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최선을 다해 연설을 준비하는 스타일이었다고 한다.
전형적인 모범생 스타일.
정확한 날짜는 모르겠지만, 유엔에 가서 영어로 연설할 일이 있었다.
당시만 해도 유엔 총회에 가서 대한민국 대통령이 연설하는 것은 대단한 사건이었다고 한다.
공중파 방송이 생중계를 하고 야단법석 부렸다.
노태우 대통령도 연설 준비에 열과 성을 다했다.

연설 당일.
일어나선 안 될 일이 벌어졌다.
당시 연설비서관실이 엄청난 실수를 ‘자행’하고 만 것이다.
낭독본을 출력하면서 마지막 한 장을 빠트렸다.
대통령이 연설문을 읽어가다가 눈이 휘둥그레졌다.
얼마나 당황했겠는가.
하지만 대통령은 영어 연설을 무사히 끝마쳤다.
하도 셀 수 없이 연설문을 읽고 또 읽은 덕분에 완전히 외워버렸던 것이다.
낭독본 마지막 한 장을 빠트린 연설비서실 직원이 그 후 어떻게 됐는지 궁금할 텐데, 거기까진 듣지 못했다.

강원국 (라이팅 컨설턴트, 객원 필진)

[말과 글 사전] 김선욱, 베토벤 소나타 전곡을 연주하다.

김선욱큼

피아니스트 김선욱이 화제다.
올해 11월21일, 2년 간에 걸쳐 베토벤 전곡을 연주하는 장정이 끝난다.
베토벤 연주에 객석이 마감됐다고 한다.
런던왕립국학원 지휘과를 우수한 성적으로 근래 졸업했다.
그런데 지휘과를 졸업했다는 것은 “이제 피아노를 맘껏 연습할 수 있다”는 뜻이라고 한다.
집중과 반복, 그는 베토벤에 중독된 피아니스트 다.

“절제하면서 서서히 달아오르다가 마침내 비등점에 도달하는 것”

“언제부턴가 하루가 아주 단순해졌어요. 아침에 일어나 식사하고 신문 읽고, e메일 확인하고 답장 보내고, 그리고 운동을 좀 해요. 그 다음에 점심 먹고 피아노 연습. 저녁 늦게까지 연습하죠. 그렇게 살아요. 안 바뀌네요. 바뀌면 왠지 불안할 거 같아요. 물론 연주 스케줄이 잡혔을 때는 좀 다르죠. 비행기 타고 연주할 도시로 가서 미술관도 들러보고 맛있는 음식도 먹으러 다니죠.”

참고: 7월11일 경향신문 인터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