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커뮤니케이션] 케네디 대통령 재임기의 침묵을 떠올리자 – 대통령의 연설에 대한 케네디의 생각

케네디 대통령의 믿음

케네디 대통령의 믿음

0. 11월 22일이면 존 F. 케네디 서거 50주기다. 미국에서는 케네디 암살의 미스터리를 다룬 뉴스들이 올해도 어김없이 보도되고 케네디와 그의 통치를 조명한 서적들이 출간되는 등 분주한 모습이다. 클린턴 전 대통령의 스피치라이터였던 제프 셰솔(Jeff Shesol)이 케네디와 관련한 글을 뉴요커에 기고했다. 자신의 말에 책임을 지는 정치인에 대한 갈증은 한국이나 미국이나 비슷한 것 같다.

1. 1962년 8월 케네디 재임기, 뉴욕타임즈는 75명 역사학자들이 평가한 역대 대통령들의 평가 결과를 보도했다. 케네디는 기사를 읽고 “놀라움을 표했다.” 우드로 윌슨과 테오도르 루즈벨트의 높은 순위 때문이었다. 그는 윌슨이 적어도 멕시코에 대한 내정 개입, 제1차 세계대전 개입 결정등 적어도 두가지 재앙에 대해 책임이 있다고 생각했다. 흥미로웠던 점은 그의 평가 기준이 ‘정치적 교화’보다 ‘확실한 성취’에 있었다는 점이다. 목표에 대한 성취 없이 교화에 힘쓰는 윌슨, 루즈벨트는 제임스 포크, 해리 트루먼같은 실질적 성취를 이룬 이들보다 낮게 평가되어야 한다고 본 것이다.

2. “말은 많았으나 성취한 것은 적다.” 흥미로운 역설은 이런 그의 비판이 그의 재임기에 대한 비판과 정확히 일치한다는 점이다. 이는 분명히 잘못된 사실이다. 케네디의 업적은 내부적(미국 평화봉사단, 우주개발 프로그램)으로도 외부적(핵전쟁 위기 탈출)으로도 명확했고, 종교적인 관용부터 공공영역 전반의 공적인 사고방식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점은 과소평가 될 수도, 되어서도 안 된다. 하지만 그의 사후 50주기, 그는 그의 성취보다 그의 말로 기억되고 있다. 케네디 스피치라이터였던 테드 쇠렌센(Ted Sorensen)은 전후 냉전기, 어떤 인물의 단어와 경구들도 케네디의 것만큼 강한 국가적 기억을 남길 순 없었다고 평가했다. 그의 지적은 상징적이다. 케네디에 비할만한 유일한 커뮤니케이터로 평가받는 로널드 레이건의 스피치라이터들은 그들이 작성한 문구에 대해서도 같은 평가를 요구할 지 모른다. 하지만 레이건의 사상은 오래 지속되었지만, 그의 문구들은 ‘단명’했음을 부정할 수 없다.

3. 우연히 이뤄지는 건 없다. 케네디는 정치 입문 초기 명연설가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의 초기 스피치라이터 중 한 명은 “케네디가 어떤 원고라도 그 생명과 리듬을 말려 죽여버린다.”고 불평했을 정도다.) 하지만 그는 10년 이상 부지런히 노력했다. 윈스턴 처칠의 연설을 분석했고, 보이스 코치의 컨설팅을 받았다. 그는 연설에 대한 가르침들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였다. 쇠렌센이 그에게 준 많은 명연설문들을 모두 읽고, 활용을 위해 인상적인 구절을 적곤 했다. 정치적 연설의 힘은 그에게 자명한 것이었다.

4. 하지만 그에게 연설은 내재되었다가 주문에 의해 발현되는 힘이 아니었다. 케네디는 연설이 ‘올바른 단어들을 이용해 물을 와인으로 바꿀 수 있는 연금술’과 같다는 생각을 믿지 않았다. 대신 연설이 ‘실천의 선도자’라는 확고한 믿음을 갖고 있었다. 그는 어떤 일을 행할 때까지 무엇이라도 말하는 데 싫증내지 않았다. 그렇지 않다면, 이는 ‘수다’에 불과할 뿐이었다. 이는 대중을 지루하게 할 뿐 아니라 그에 대한 의심을 키울 것이라고 생각했다. “단어 그 자체론 충분치 않습니다.” 케네디는 암살로 인해, 연설할 기회를 갖지 못했던 댈러스에서의 연설에서 이를 말할 예정이었다.

5. 오늘 날 케네디는 고대 유물처럼 보인다. 최근의 대통령들은 루즈벨트처럼 너무 많이 말한다. 그들은 연설하고, 트윗하고, 국제 회담, 의회의 협상, 문화 행사, 국가 기념일 등에 대해 하루도 빠짐없이 논평한다. 2011년 10월, 오바마 대통령은 1985년 슈퍼볼 챔피언 시카고 베어스와 2011년 NCAA 여자농구 챔피언 텍사스 A&M Aggies를 찬양했고, 스티브 잡스와 무하마드 카다피의 죽음에 대한 논평을 했고, 레이프 에릭슨 데이(Leif Erikson Day)와 미국 캐릭터 기념주간(National Character Counts Week)을 다시 한 번 선언했다. 그리고 투나잇쇼(The Tonight Show)에 출현했다. 이 모든 것이 ‘얘기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은’ 많은 예들 일부다. 이는 현 대통령을 힐난하기 위함이 아니다. 내가 연설문을 작성했던 빌 클린턴과 케네디의 연간 연설문 양을 비교해 보자. 1962년 케네디는 목차와 어펜딕스를 제외하고 903페이지를 채웠다. 1994년 이는 두배가 되었다. 무려 2159페이지에 달했다. 물론 클린턴은 오바마처럼 24시간, 7일 체제에서 재임했다. 케네디는 8시간, 5일 근무의 이점을 누렸다. 대통령들에게 침묵을 지키는 것은 사치다. 만약 그랬다간 반대파가 그의 공백을 차지할 것이다.

6. 우리는 연설과 실천의 연결을 약화시켜 왔다. 역사학자 아서 슐레신저(Arthur Schlesinger)는 내게 “정치 연설은 ‘저급 수사학’의 형태가 되었다.”고 말했다. 그의 의도는 연설의 질이 케네디 시대보다 떨어졌다는 것이 아니었다. 대통령들의 말이 많아지며 역설적으로, 그들의 말의 무게가 떨어졌음을 의미했다. 11월 22일은 케네디의 서거일이다. “케네디가는 울지 않는다.”라고 그의 일가가 말했었던 것 같이 우리도 울지 말자. 대신 그 시대의 다른 어떤 것을 불러일으키자. 케네디의 억양과 명문대신 의미있는 순간, 잠시 침묵을 지킴으로써 실질적 성취 위에 놓여있는 진정한 ‘통치의 생각’에 다가서자.

이현동

출처: 뉴요커 링크

[유민영의 ‘위기관리 규칙’ 리뷰 3] 리델 하트 ‘억지력 혹은 방어’

출고사진_파이널

‘리뷰’ 첫 번째 글에서 로버트 F. 케네디 전 미 법무부장관이 쓴 책 <13일>을 언급한 바 있다.
‘쿠바 미사일 위기 회고록’이라는 부제가 달린 책이다. 이 책에는 케네디 대통령이 협상 과정에서 신조로 삼았던 영국 군사 전략가의 규칙이 나온다.
케네디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 한 잡지에 리델 하트의 책에 대한 서평을 썼고 거기에 인용되어 나온 대목이다.

피그스만 침공 실패라는 악조건, 냉전의 시대라는 거대한 그림자에도 불구하고 케네디는 공격과 전쟁을 선택하지 않았다.
세계 3차 전쟁이라는 예측할 수 없는 공포와 군인들의 전쟁이라는 강박 앞에서 케네디 형제는 전략을 세웠고, 전략을 관철했으며, 전략을 실행했다. 그리고 터키 미군 기지 철수로 타협했다.
케네디는 리더로서 자기 결정의 중대함을 이해했고 군부의 압박을 견뎌냈다. 무엇보다 그는 자신의 방향대로 상황을 이끌고 갔다.
그것이 리더가 하는 일이다.

더할 것이 없다.
일독을 권하고 생각을 권해본다.

1. 가능하면 단호하게 행동하라.
2. 어떤 경우에도 냉정을 유지하라.
3. 끝없이 인내하라. 
4. 절대 상대를 구석으로 몰지 말고 항상 상대의 체면을 살려 주어라. 
5. 상대의 입장에서 상대방의 시선으로 상황을 보아라.
6. 악마와 같은 독선에 빠지지 마라. 그것만큼 자기 눈을 가리는 것은 없다. 
– 존 F. 케네디. 리델 하트의 <억지력 혹은 방어> 서평, <새터데이 리뷰>, 1960년 9월3일(<13일>, 로버트 F. 케네디, 열린 책들)

훌륭한 규칙에 대한 사족(蛇足)
1. ‘가능하면’이 미덕이다. 절대의 조건을 걸지 않았다.
2. 위기 대처는 ‘냉정과 열정 사이’가 아니다. 그러니 ‘어떤 경우에도’가 붙었다.
3. ‘냉정’에 ‘인내’까지 붙였다. 인내하지 못하는 쪽이 전략을 잃는 것이다.
4. 전쟁은 한 쪽의 승리이거나 양쪽의 패배를 의미한다. 양립하는 냉전의 질서 안에서 승리는 타협을 전제로 한다. 그러면 존재와 실체는 인정되어야 한다. 케네디 대통령은 쿠바 위기를 해결한 후 1963년 후르시초프의 처지를 이해하는 발언을 했다. 후르시초프도 자신이 군부에게 받는 압박과 마찬가지로 핵전쟁 강행이라는 강경파에 밀리고 있었다는 것이다.
5. 전쟁과 외교의 형상은 역관계다. 반대편의 시선을 알아야 모든 것을 본 것이고, 제대로 본 것이다.
6. 리더십과 독선은 병립하지 않는다. 양립할 수 없다. 실패한 리더십을 독선이라 부를 뿐이다.
※ 리델 하트는 천재적인 군사학자로 일컬어지며 전쟁술과 관련한 책들을 기술했으며 현대 전쟁의 기술인 기동전·기갑전 교리에 영향력을 끼쳤다고 평가된다.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 <억지력 혹은 방어>뿐 아니라 롬멜 장군의 일기를 바탕으로 쓴 <롬멜 전사록>등을 집필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나치가 패망한 후 독일군 장교들에 대해 우호적 견해를 유지해 논란이 되었다.

유민영

* ‘위기관리 규칙’ 리뷰 이전 글을 보시려면
– [유민영의 ‘위기관리 규칙’ 리뷰 1] 로버트 맥나마라 미국 전 국방부장관의 11가지 교훈 https://acase.co.kr/2013/09/04/crisisreview01/
– [유민영의 ‘위기관리 규칙’ 리뷰 2] 데미지 콘트롤을 위한 10계명 – 크리스토퍼 르헤인 https://acase.co.kr/2013/09/06/crisisreview02/

[유민영의 ‘위기관리 규칙’ 리뷰 1] 로버트 맥나마라 미국 전 국방부장관의 11가지 교훈

포그오브워

※ 왜 내부자료를 다 내놓느냐고 묻는 분들이 계셨다. 에이케이스가 번역하고 정리해서 내놓는 자료는 비공개 자료가 아니다. 발견했고 정돈했을 뿐이다. 물론 기초자료가 모든 것의 시작이다. 그러나 전부는 아니다. 에이케이스는 계속해서 연구 자료에 대한 개방과 공유의 정신을 유지할 것이다.
이번에는 위기관리 케이스 스터디의 연구중 위기관리 규칙에 대한 자료들을 바탕으로 글을 연재하려고 한다.

‘나는 공직 복무의 경험이 없이 역사를 기록하는 지식인들을 보았다. 깊이 생각하지도 않은 채 중대한 결정에 참여하는 정치인들도 보았다. 전자는 일반적 원인을 찾는 경향이 있다. 후자는 날마다 새로운 사건 속에서 살면서 모든 것이 특정한 사건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그들이 잡고 있는 밧줄이 세상을 움직인다고 믿는 경향이 있다. 둘 다 세상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
– Alexis de Tocqueville

1. 1차대전 당시 프랑스의 총리를 지낸 조르주 클레망소가 말한다. “전쟁은 군인들에게 맡겨놓기엔 너무나 심각한 문제이다.” 클레망소는 76세의 노구를 이끌고 전선의 군인을 격려했으며 반전주의자들과도 투쟁했다. 프랑스 문민통제의 전통은 그렇게 세워진다.
2. 케네디 대통령 당시 쿠바 핵미사일 위기는 위기전략과 위기관리를 연구하는 이들에게는 교과서 같은 존재다. 쿠바 위기를 다룬 ‘D-13 (Thirteen Days, 2000)’은 위기전략 연구자들이 꼭 봐야할 영화다. 거기에는, 케네디 대통령과 로버트 케네디 법무부장관 형제가 주인공이지만 인상깊은 한 명이 더 있다. 통계 전문가이자 공군 장교 출신 로버트 맥나마라 국방부장관이다. 문민 장관이다. 쿠바위기와 베트남 전쟁당시 국방장관을 지낸, 미국과 전 세계의 진보진영의 타겟이 되었던 인물이다.
3. 그렇지만 훗날 그에 대한 평가는 달라지고 있다. 공직을 맡아 한 시대의 그 짐을 짊어진 사람으로서의 평가다. 그가 죽기 전에 남긴 다큐가 있다. 포그 오브 워(Fog of War, 2003). 11가지 교훈으로 구성된 이 다큐 또한 위기전략과 철학의 좋은 교과서라 할 것이다. 11가지 교훈을 분석해 봤다.

* 로버트 맥나마라가 말하는 11가지 교훈

1. Empathize with your enemy : 적과 공감하라.
2. Rationality will not save us : 합리적 사고가 항상 정답은 아니다.
3. There’s something beyond one’s self : 내가 알고 있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4. Maximize efficiency : 효율성을 극대화하라.
5. Proportionality should be a guideline in war : 전쟁에서는 비례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가이드라인이 되어야 한다.
6. Get the data : 데이터를 모아라.
7. Belief and seeing are often both wrong : 믿는 것과 보는 것 둘 다 틀릴 때가 있다.
8. Be prepared to re-examine your reasoning : 나의 논리를 재점검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9. In order to do good, you may have to engage in evil: 좋은 일을 하기 위해서 나쁜 일도 할 수 있어야 한다.
10. Never say never: ‘절대’라는 말은 절대 하지 말아라.
11. You can’t change human nature : 인간의 본성은 바꿀 수 없다.

1. 필자가 위기전략 강의 때 가장 많이 인용하는 규칙이다. 위기관리의 규칙들이 어떤 경우는 기술에 가깝고 어떤 경우는 어떤 경우는 추상에 가깝다. 위기전략은 현실과 이성, 그리고 신념과 경험이 조화롭게 작동해야 한다. 맥나마라의 교훈은 필드의 규칙이고 생각의 교훈이다. 나무랄 것이 없어 설명으로 리뷰를 대신하려고 한다.

2. 적의 전략과 생각을 읽어야 전략을 짜고 대처를 할 수 있다. 이해관계자를 포함한 ‘역관계’의 이치를 이해하는 것이 전략의 시초다. 상대방이 있는 게임이라는 점, 그것이 시작이다. 그런 점에서 적에 대한 이해와 공감이 그 첫째인 것은 울림이 크다.

3. 효율성은 극대화되어야 하고, 위기의 상처는 어디선가에서 동일한 일이 일어났을 때의 상황과 비교해서 비례적으로 인식되어야 하고, 데이터는 과학적으로 인식되어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전쟁의 이유와 위기의 과정이 합리적인 것은 아니다. 합리적이지 않은 것은 합리적이지 않을 뿐이다. 전장의 밖에서 이성의 눈으로만 봐서는 답을 찾기 어렵다.

4. ‘내가 틀릴 수 있다는 것’에 대한 심각한 주의도 여러 항목에서 발견된다. 나의 논리를 재점걸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고, 믿는 것고 보는 것 둘 다 틀릴 수 있으며, 내가 알고 있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거듭되는 강조다. 내가 틀리지 않았다면 위기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위기란 내가 어제 한 일의 결과물이라는 아주 분명한, 위기의 전제에 대한 이야기다.

5. ‘나쁜 손’, ‘더러운 손’에 대한 이야기도 또한 경험의 세계에 바탕을 둔 통찰이다. 전쟁과 위기가 정직과 신뢰를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착한 다툼의 필드도 아니고, 정부와 기업이 위기를 ‘착한 손’과 ‘깨끗한 손’으로만 극복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이상과 가치의 이면에 존재하는 위험과 어둠의 요소를 인식하는 것, 그것 또한 현실의 결과에 가까운 해법을 찾는 길이다. 그것은 주어진 숙명의 영역이다. 나쁜 일을 하라는 것이 아니라 그 역할을 인지하고 해법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6. 딱 한가지 이견은 이것이다. 되돌이킬 수 없는 최후의 승부, 마지막 승부라면 쓸 수 없는 말은 없다. 전략의 판단은 모든 것에 우선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순간이 아니라면 ‘절대’는 쓰지 않아야 할 금기어다. 스스로 공격로와 퇴로를 막는 단어다. 자신의 수를 축소시키는 대표적인 언어다.

7. 마지막은 인간의 기억과 신뢰에 대한 경고로 끝난다. 제일 무서운 것은 사람이고, 사람 안에 든 무서운 본성이다. 사람은 변화한다고 필자는 믿는다. 그러나 위기와 전쟁의 상황에서 취해야 할 태도와 자세는 변화하지 않는 것이 있다는 것, 더 최악의 상황이 있을 수 있다는 최악의 가이드라인이다. 그래야 감정에 휩쓸리지 않고 직면할 수 있다.

8. 맥나마라의 경험과 성찰은 자신의 경험에 대한 어설픈 과장이나 미화를 허용하지 않는다.
영화 ‘D-13’, 다큐 ‘포그 오브 워’ 그리고 로버트 케네디의 회고록 ‘D-13’ 과 쿠바미사일 위기관리 전반을 분석한 책 ‘결정의 엣센스’ 네 가지를 권해 본다.

유민영

[첫문장, 끝문장] 나는 베를린 시민입니다, 존 F. 케네디 (1963년 6월 26일)

“연설가는 설득하고자 하는 사람에게 어떻게 신뢰를 줄 수 있는지의 방법과 그들의 마음을 어떻게 움직일 수 있는지의 방법을 발견해야 한다. ”
– 키케로, 수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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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50년 전 오늘 미국의 케네디 대통령은 서베를린으로 날아갑니다.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미국은 터키의 미군 기지를 포기합니다. 동베를린과 나뉘어 냉전과 직접 대처하고 있는 서베를린 시민은 안전에 대한 극단의 공포를 갖고 살아갑니다. 혹시 서베를린을 소련이 공격할 지도 모른다는, 미국이 포기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죠.

2. 80%의 서베를린 시민이 모였다고 합니다. 그들은 결국 듣고 싶은 이야기를 듣습니다. 케네디는 그들이 듣고 싶은 이야기를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연설의 초미에 등장하는 ‘나는 베를린 시민이다’는 정치인의 연설문의 백미 중 백미라 할 수 있습니다.

3. 케네디는 서베를린 시민들이 필요할 때 갔습니다. 미국을 포함한 자유국가가 그들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방어를 넘어섭니다. 그리고 불안에 떠는 시민들에게 동일체라는 정체성을 심어주었습니다. 메시지는 군더더기가 없이 명쾌하고 분명합니다. 베를린 시민은 이후 다른 대통령에 의해 ‘세계시민’으로 발전하지만 포괄적이서 오히려 집중력이 떨어집니다

4. 케네디 이후 거의 모든 미국 대통령이 서베를린/베를린을 방문해 연설을 했습니다. 훌륭한 연설도 있었지만 케네디의 연설을 넘어설 수 없었습니다. 얼마 전 오바마도 대통령이 되어서는 처음으로 베를린 연설을 했습니다. 실패했습니다. 오바마가 필요할 때 갔고, NSA 도청으로 감정이 좋을 수 없을 때 갔고, 간 이유가 명료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하늘과 땅 차이의 연설을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5. 케네디는 그 후 다섯 달 후 암살당합니다. 그러나 서베를린 시민들은 영원히 그를 잊지 못할 것입니다.

유민영

<연설 전문>

서베를린이 지닌 불굴의 정신을 세계에 알려주신 시장님의 초청으로 베를린을 방문하게 돼 영광입니다.

2000년 전 가장 훌륭한 자랑거리는 “나는 로마 시민입니다”였습니다. 이제 자유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자랑거리는 “나는 베를린 시민입니다(독일어)”입니다.

세상에는 자유진영과 공산진영 간의 중요한 문제가 무엇인지 이해를 못하거나 또는 이해를 못하겠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들에게 베를린으로 오라고 합시다. 공산주의가 미래의 흐름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들에게 베를린으로 오라고 합시다. 유럽 일부 지역에선 공산주의자와 함께 일을 도모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들에게 베를린으로 오라고 합시다. 공산주의는 나쁜 제도지만 그것이 경제를 발전시킨다고 말하는 이도 있습니다. 그들에게 베를린으로 오라고 합시다(독일어). 그들에게 베를린으로 오라고 합시다.

민주주의는 많은 장애물을 안고 있으며 완벽하지도 않지만, 우리는 결코 국민을 가두거나 국민이 떠나는 것을 막기 위해 벽을 쌓은 적이 없습니다. 미 국민은 지난 18년의 역사를 여러분과 함께한 것을 영광으로 여긴다는 것을 대서양 건너 수만 마일 떨어진 곳에 살고 있는 미 국민 정부를 대신해 말씀드립니다. 18년간 포위당하고도 서베를린처럼 활기차고 힘차게, 희망과 결의를 가지고 살아가는 도시는 없었습니다. 베를린 장벽이야말로 공산주의의 실패를 전 세계에 보여주는 명백하고 확실한 증거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여기에 만족하지 않습니다. 시장님 말씀처럼 가족을 뿔뿔이 흩어놓고, 남편과 아내, 형제와 자매를 갈라놓고, 함께 살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떼어 놓는 것은 역사와 인륜에 어긋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서베를린에서 진리인 것은 전체 독일에서도 진리이듯이, 네 명 중 한 명의 독일인이 자유인으로서의 기본권, 즉 선택의 자유를 누리지 못하는 한 유럽에서 지속적이고 진정한 평화가 이뤄질 수 없습니다. 18년간 평화와 신의를 지켜온 독일의 현 세대는 자유로울 권리, 평화롭게 가족과 조국을 통일할 권리를 얻었습니다. 말을 맺으며 여러분께 오늘의 위험을 넘어 내일의 희망을 바라보라고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베를린시나 독일만의 자유를 넘어 전 세계의 자유를 바라봅시다. 베를린 장벽 너머의 정의로운 평화의 날과 너와 나를 넘어선 전 세계 인류를 바라봅시다.

자유란 불가분의 것입니다. 단 한 명이라도 노예 상태에 있으면 모든 이가 자유롭지 못합니다. 우리는 모든 사람이 자유를 찾아 이 도시가 하나가 되고 이 나라가 하나가 되고 유럽 대륙이 하나가 돼 평화롭고 희망 가득한 세상에 살게 될 그 날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반드시 올, 그날이 오면 서베를린 시민들은 자신들이 20년 가까이 그 최전방에 있었다는 사실을 자랑스러워할 것입니다.

모든 자유인은 그들이 어디에 살더라도 베를린 시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저 역시 자유인의 한 사람으로서 자랑스럽게 말하겠습니다. “나는 베를린 시민입니다(독일어).”

사진 포함 연설전문 출처: 중앙일보, 링크